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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취업

어느 스물 네 살 젊은이의 비전 일으키기

어느 스물 네 살 젊은이의 비전 일으키기

스물 넷의 포항제철 근로자 정동학은 자기 또래의 대졸 관리자가 삼촌뻘 아저씨 뻘 되는 기능직 근로자를 발로 차며 호통하는 것을 보고 절망했다. 20년 후 바로 자신의 미래가 이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렇게 살 수는 없었다.

석세스파트너에 나온 정동학 심미안 성형외과 원장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고, 독자들의 문의도 빗발쳤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여건에 의하면 평범한 포항제철 근로자로 평생을 살아갔을 수도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비전을 일으켰다.

열아홉 시절부터 시작한 거친 근로자 생활. 정동학은 일터에서 돌아와선 하루 2,3시간을 자고 공부한 끝에 28세 늦깍기로 의대에 들어갔다. 철저한 계급사회인 수련의 시절, 그는 자기보다 한참 어린 선배들에게 머리를 숙여가면서 배웠고, 기억력이 떨어져 남들보다 두 배 세 배 더 노력하며 공부해야 했다.
임상의 과정에선 더 큰 고난이 따랐다. 축농증 등 웬만한 이비인후과 과목은 선배 의사들이 꽉 잡고 있었고, 남들이 안 하는 것은 기도협착증과 코 성형 뿐이었다. 그는 코 성형 분야를 선택했는데, 그때부터 목숨을 건 투쟁이 시작됐다.
그때만 해도 코 성형은 성형외과에서 전담하는 과목이었고, 선배 의사들은 ''''왜 여길 기웃거리냐며'''' 노골적으로 적대시했다.

"그건 환자들이 선택할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잘할 수 있으면 과가 문제가 안 되지요. 더구나 코는 기능을 가진 기관입니다. 단순히 모양만 좋게 만들어서는 안 되고 내부를 잘 아는 의사가 손을 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때부터 그는 깍듯한 후배 노릇을 포기하고 미친 개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선배들의 방해와 멸시를 정면으로 뚫었다. 2년 동안의 임상의 과정을 거치면서 코 성형 관련 논문은 모두 탐독했고 500차례 이상 코 성형을 집도하는 기록을 세웠다.
그 후 서서히 노력한 결과가 나타났다. 수십 차례의 국내외 병원 초청 수술 시연, 30여 편의 논문 발표, 전문의를 대상으로 9년 째 개최하고 있는 코 성형 워크숍, 해외 학회 초청 발표, 직접 개발한 코 성형 기구로 낸 두 건의 특허, 해외에서도 번역된 전문의용 코 성형 서적이 그것이다.

또한 2000달러의 수강료를 지불하고 그의 병원에서 코 성형 연수를 받고자 문을 드리는 대만 중국 필리핀 일본 의사들이 그 명성을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가장 뿌듯하게 여기는 결과는 따로 있다. 현재 그의 병원에는 환자의 80%가 성형 부작용 등으로 재수술을 받은 환자고, 전체 환자의 70%가 다른 의사가 보낸 환자라고 한다. 코 성형 분야에서는 다른 의사들이 인정한 최고의 전문가가 된 것이다.

정동학은 20년 후 새파란 관리직 사원에게 하대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이처럼 비전이란 ‘도저히 못 참겠다.’ ‘난 이렇게 살 수 없다’라고 했을 때 일어난다. 이러한 사람만이 척박한 현실을 딛고 일어서 파란 오아시스를 찾아나설 수가 있다.

그래서 정동학은 사생활은 거의 포기했고, 결혼도 늦었지만, 20년 전엔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일을 해냈고 꿈을 이룬 것이다. 포항제철엔 아직도 정동학의 전설이 떠돈다.


 


글/이상우(석세스파트너 팀장, 홈페이지www.successpartner.co.kr)


츨처: 네이버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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