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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취업

스트레스를 주무르자.








추석, 가장 듣기 싫지만 가장 많이 듣는 말 ‘너 아직도 취직 못했니?’

아주 어릴 적엔 추석에 뭘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머릿속 앨범에 추석이란 기억이 대충이나마 자리 잡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인 것 같다. 그 때는 그저 좋았다. 일단 무엇부터 먹어야 될지 모를 정도로 맛있는 음식이 많아서 좋았고 추석만 되면 부모님께서 새 옷을 사 주셔서 좋았다. 아니 좋았다는 표현으로는 조금 모자란 것 같다. 행복했다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한 것 같다.

그랬던 추석이 중고등학교 진학 이후로는 달력에 빨간 날이 연속으로 붙어있는, 학교를 안 가서 좋은 날이라는 것 외에는 딱히 별 다른 의미는 없었던 것 같다. 굳이 의미를 찾자면 성룡 주연의 영화를 비롯해 TV에서 평소에는 잘 해 주지 않던 최신 영화들을 ‘추석특선대작’이라는 이름으로 방송한다는 정도.

나름대로 제일 바빴던 추석은 대학 입학 후였다. 그래도 장한 일 했다고 친척들에게 인사를 다니느라 정신없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턴가 추석이 점점 부담스러워지고 추석 때 고향에 친척들을 만나러 가기가 꺼려지기 시작했다.

예상하고 있었겠지만 물론 대부분이 바로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졸업은 다가오는데 취업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그건 그나마 좀 낫다. 졸업하고 몇 년이 지나도록 취업이 되지 않아 백수로 지낼 때의 그 비참함. 친척들이라도 만나면 ‘졸업한 지 꽤 된 것 같은데 아직 취직 안 했어?, 뭐 다른 계획이라도 있니?, 요즘은 공무원이 최고라던데 공무원 시험 봐라’ 하는 등의 관심인지 질책인지 놀림인지 모를 온갖 소리들이 듣기 싫어 추석과 같은 명절엔 혼자 보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던 것 같다. 사실 그런 잔소리들보다 나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참함, 자괴감이 더 괴로웠는지도 모를 일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추석은 우리 곁을 왔다갔다. 이번 추석엔 특히나 우울한 기사들이 방송과 신문을 가득 메웠다. 일단 극심한 경기침체 소식부터 해서 체불임금 소식, 청년 실업 소식, 그로 인해 추석 귀향마저 꺼리는 많은 구직자들의 모습까지.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구직자들이 이번 추석 때 제일 듣기 싫은 말이 ‘너 아직도 취직 못했니?’였다고 한다. 도대체 이놈의 취업이 뭔지 민족의 대명절 추석에 가족들을 만나는 것 까지 꺼리게 만든단 말인가! 막 화가 나다가 이젠 서글픈 생각마저 든다.











스트레스도 나눠먹자
사실 취업도 문제지만 그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 역시 이만저만 문제가 아니다. 구직생활이 길어지다 보면 인생이 참 황폐해진다는 느낌, 좀 더 심하게 말하면 내 몸이 썩어가고 있다는 느낌마저 간혹 들 때가 있다. 취업이 안 돼서 스트레스 받고, 스트레스가 무기력증으로 이어지고, 무기력증에 빠지다 보니 취업이 될 리가 없고, 그러다 보니 더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많은 구직자들이 이러한 악순환에 빠지고 마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이런 악순환을 막기 위해선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하는데 당장 취업이 되기는 힘들고 그렇다면 해답은 딱 하나다. 바로 취업에 대한 고민이 무기력증으로 이어지지 않게 스트레스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말만큼 쉽지 않은 것이 문제다. 명상이나 심신단련을 통해 스트레스를 줄이고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있다지만 웬만큼 경지에 이른 도인이 아닌 다음에야 그 역시 만만한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방법은? 어떻게 보면 이기적일 수도 있지만 나는 이 스트레스를 주변 사람들에게 널리 나눠주라고 권하고 싶다.










나만의 멘토 구하기
스트레스를 나눠주라니? 이 무슨 생뚱맞은 소리인가 하겠지만 스트레스란 것은 혼자 간직할수록, 마음속에만 담아둘수록 끊임없이 자가 발전을 하고 자가 번식을 한다. 그래서 처음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던 스트레스도 시간이 흐른 뒤엔 눈덩이처럼 불어나 도저히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트레스는 어떻게 나눠줄 수 있을까?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요즘 유행하는 멘토링을 한 번 주목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멘토링은 트로이 전쟁 당시 전쟁에 참여한 오디세우스가 친구 멘토르에게 아들 텔레마코스의 교육을 부탁한 것에서 유래한 단어로 우리말로 번역하면 후견인제도쯤 될 것 같다. 상담자를 멘토(mentor)라 부르고 피상담자를 멘티(mentee)라 부르는데 자신에게 정신적 안정을 가져다주는 사람이라면 가족, 친구, 선생님, 선·후배 등 누구나 멘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될 수 있으면 지금 자신의 고민을 먼저 경험하고 그것을 성공적으로 극복했던 사람, 예를 들어 고시를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고시에 합격한 선배를, 지방대라는 이유로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은 지방대생 출신으로 취업에 성공한 사람을 멘토로 삼는 것이 더욱 좋을 것이다. 요즘엔 청년실업이 전 사회문제가 되면서 정부를 비롯한 공공 기관, 혹은 비록 이윤을 목적으로 하고 있긴 하나 여러 사적 기관에서 전문적으로 멘토를 제공해주는 멘토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 프로그램을 이용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그 외에 취미생활을 통해 쌓였던 스트레스를 푼다거나 자기 나름의 삶의 활력소를 계속 채워줄 수 있는 뭔가를 만드는 것이 좋다. 스트레스는 너무 커지기 전에 싹부터 잘라주는 것이 좋다. 아니 반드시 싹부터 잘라내야 한다.










스트레스 다스리기
적절한 스트레스는 삶에 긴장감을 유지시켜 줘 너무 나태해지지 않고 게을러지지 않도록 해 주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내 몸 속에서 줄기를 뻗어나가고 잎을 키우며 꽃을 피워 거대한 나무가 되면 걷잡을 수 없는 손실을 가져다준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국 직장인들의 스트레스로 인한 한 해 사회적 손실비용이 약 3천억 달러, 우리 돈으로 340조 원에 이른다고 한다. 1996년, 아시아 10개국 직장인들의 스트레스를 조사한 결과 한국 1위, 홍콩 2위, 대만 3위였다고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가 보도했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흡연량과 음주량이 세계 1, 2위를 다투는 것만 봐도 직장인들의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인지 쉽게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몰라서 그렇지 추석에도 맘 편히 고향에 내려가지 못했던 구직자들의 스트레스 역시 직장인들의 그것과 비슷할 것이다. 결국 누가 더 뛰어난 실력을 갖추느냐가 취업성공의 성패를 판가름 짓는 가장 큰 요인이겠지만 누가 더 스트레스를 잘 다스려 마인드 컨트롤을 잘 하느냐 역시 실력만큼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출처: 사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