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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노벨경제학상수상자]아마르티아 센 Amartya Sen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은 빈곤 문제에 관심을 갖고 후생경제학과 사회적 선택 문제에 기여한 공로로 1998년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센은 기아의 원인에 관한 연구로 유명한 학자로서, 실제로 존재하거나 예상되는 식량 부족의 결과를 예방 혹은 제한하기 위한 실제적 해결책을 개발하는 데 앞장섰다.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는 센의 연구가 "중요한 경제적 문제들에 관한 논의에서 윤리적 차원을 복원시켰다"고 평가했다. 노벨상위원회는 경제학의 사회적 토대에 관한 그의 연구를 높이 평가하여, 주로 시장경제 분야를 연구하는 보수적인 학자들에게 수여하던 지난 몇 년간의 전통을 깨고 그에게 노벨상을 수여했다.

후생경제학은 경제 정책을 공동체의 복지에 미치는 효과의 측면에서 평가하려는 경제학의 한 분야이다. 이 문제에 평생을 바친 센은 '경제학자의 양심'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의 영향력 있는 논문 〈집단적 선택과 사회복지 Collective Choice and Social Welfare〉(1970)는 개인의 권리, 다수의 지배, 개인적 상황에 관한 정보 획득 등의 문제를 다룬 것으로, 많은 연구자들이 여기에서 자극받아 기본적 복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센이 개발한 빈곤의 정도를 측정하는 빈곤지수는 빈곤층의 경제적 처지를 향상시키기 위한 유용한 정보를 산출해냈다. 그는 불평등에 관한 이론적 연구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이 태어나고 유아 사망률도 더 낮은 일부 빈곤한 나라에서 여성의 수가 남성보다 오히려 더 적은 이유를 남자아이들의 보건 위생 상태가 더 좋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센이 기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개인적 경험 때문이다. 9세 때인 1943년 그는 3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벵골 대기근을 목격했다. 그는 당시에 인도에 식량이 충분히 있었더라면 그처럼 엄청난 인명 손실은 없었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 인도의 농촌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어 식량을 구입할 능력이 없었고 그 때문에 식량의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 센은 〈빈곤과 기아 : 자격과 박탈에 관한 에세이 Poverty and Famines : An Essay on Entitlement and Deprivation〉(1981)라는 저서에서 많은 경우 기아가 발생한 때에도 식량 공급량은 그다지 줄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센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식량 공급량의 감소보다는 임금 감소, 실업, 식량 가격 상승, 식량 배급 체계 미비 등의 수많은 사회·경제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사회 내 특정 집단의 기아를 유발시켰다.

식량 위기 문제를 다루는 각국 정부와 국제 단체들은 센의 연구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그에 따라 정책 입안자들은 당면의 고통을 완화시키는 방법만이 아니라, 공공사업 추진이나 식량 가격의 안정을 통해 빈곤층의 소득 감소를 보전하는 방법을 찾으려 했다. 정치적 자유를 굳게 신봉하는 센은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하는 곳에서는 지도층이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해야 하기 때문에 기아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경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교육과 공중보건의 개선과 같은 사회 개혁이 경제 개혁보다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센은 1933년 11월 3일 인도 벵골의 산티니케탄에서 태어나 캘커타의 프레지던시대학을 다녔다. 이후 그는 케임브리지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학사학위(1955)와 석사학위(1959), 박사학위(1959)를 받았다. 트리니티 칼리지에 있는 동안 그는 애덤 스미스 상(1954), 렌베리 장학금(1955), 스티븐슨상(1956)을 받았다. 그는 인도와 영국의 많은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쳤는데, 인도의 자다브푸르대학교(1956∼58)와 델리대학교(1963∼71), 영국 런던대학교의 런던 경제학대학(1971∼77), 옥스퍼드대학교(1977∼78)에서 교편을 잡다 미국 하버드대학교(1988∼98)로 옮겨 경제학과 철학 교수로 재직했다. 그후 1998년 케임브리지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 교수가 되어 지금에 이른다. 센은 인도인으로서는 6번째 노벨상 수상자이자 최초의 경제학상 수상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