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경제학(Law and Economics)은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가? Cooter와 Ulen은 "특정법적 문제에 관한 완벽한 경제적 분석"이라고 법경제학을 정의한 바 있다. 이들은 법경제학이 대체로 다음의 세 가지 단계에 의해 분석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본다.
첫 단계에서는 모든 개인과 집단이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잘 알려지고 명쾌하게 정의된 어떤 경제적 목적을 극대화하려 한다는 가정을 세운다. 예컨대 통상적인 경제이론에서 개인은 부와 여가를, 기업주는 이윤을 극대화한다는 가정을 하는 것과 동일한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법경제학의 두 번째 분석단계에서는 관련된 모든 의사결정자들이 서로 접촉하고 협상한 결과 어떤 균형상태(equilibrium)가 도출된다는 사실을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일단 균형상태에 도달하면 제 3의 요소가 새로이 충격요소로 작용하지 않는 한 자발적으로는 그 균형이 깨어지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이렇게 도달한 균형상태가 과연 경제적으로 효율적인가를 판단하는 작업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경제적 분석을 하는데 있어서 연구자들이 법을 중요시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법이란 개별재산권을 재설정하는 기능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달리 표현하면 법이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고 집행되는가에 따라 관련된 경제주체들의 모든 행위에 매번 다른 가격이 매겨지게 된다는 의미이다. 행위를 하는데 지불해야 할 가격이 바뀐다면 경제주체들의 최적행위조합 또한 달라져야 할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법이란 통상적인 미시경제학의 극대대화문제에서 예산제약조건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결국 법에 대한 경제적 분석으로 정의된 법경제학은 법이 창출한 암묵적 가격(implicit price)의 변화에 경제주체가 어떻게 반응하고, 그 결과는 어떤 특성을 갖는지를 밝히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러한 학문적 스타일이 어떤 경로로 태동하였는지 잠시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듯하다.
때는 19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촉망받는 경제학자인 Aaron Director는 2차대전이 끝난 후 정부에서 일을 마친 1947년에 교수직을 찾고 있었다. 그의 실력은 시카고 대학에도 익혀 알려져 있던 터라 시카고 대학의 교수들은 그를 채용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거기에는 장애물이 하나 있었는데 교수가 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으로서 요구되는 박사학위가 그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디렉터가 시카고 대학에 온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될 무렵 법대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던 Henry Simon이 작고하였다. 시카고대학 법대내에 경제학자 한 명을 두는 것이 이미 관례화 되어 있었으므로 디렉터의 동료들은 대학당국을 설득하여 사이먼의 후임에 그를 임명토록 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러한 전례가 알고 보면 디렉터가 시카고 대학으로 올 수 있었고 궁극적으로 법경제학의 싹을 틔우게 할 수 있었던 한 요소로 작용하였다.
당시 경제학과 직접적인 관련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 법률은 반독점법(Antitrust Act)이었다. '독점'이라든가 '독점화하려는 시도'와 같이 경제학적인 용어가 명시된 법률은 반독점법밖에 없었으므로 디렉터는 법대교수로 취임한 후 반독점에 관련된 판례들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디렉터는 곧바로 판결문에서 여러 경제이론들이 오용되어 왔었다는 사실과, 경제이론들을 제대로 적용하면 오히려 반대의 판결들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더욱 많은 판례들을 읽어 나가면서 그는 반독점법에서 사용할 수 있는 분석기법들을 개발하였다. 그의 분석이 기존 논리와는 다른 점이 많았으므로 시카고 법대의 교수들은 그의 연구활동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다.
예컨대 법대의 Edward Levi는 자신의 반독점학 강의를 디렉터와 절반씩 나누어 진행하자는 제의를 하였다. 기존의 법이론에 따라 레비가 판례 중심으로 먼저 몇 시간 강의를 하고 똑같은 내용을 디렉터가 경제분석을 사용하여 재차 강의하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시간이 흐를수록 디렉터의 이론이 레비의 강의보다 논리적으로 더욱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는 점이다. 디렉터의 강의가 날이 갈수록 유명해지면서 이제 경제학은 비단 반독점법에 국한되지 않고 회사법·파산법·유가증권 규제·노동법·소득세법·불법행위법등에 광범위하게 적용되기 시작하였다.
점차적으로 시카고 법대의 졸업생들이 배출되면서 몇몇 법대에서도 비슷한 연구가 시작되었고, 특히 예일 법대는 경제학자를 고용하여 경제학과 반독점법을 강의하게 하였다. 그 중에서도 예일 법대는 법학과 경제학 모두에서 박사학위를 소지하고 있던 Guido Calabresi를 채용하면서 법경제학의 발달에 본격적인 기여를 하게 된다.
한편 Galanter와 Palay는 이 무렵 미국법조계에서 일기 시작한 변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한마디로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법은 더 이상 고립된 단일 분야가 아니며 매우 광범위한 분야에 특정법이 미치는 영향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견해가 지식층 사이에 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법의 내용을 단순히 신성시 여기던 관례를 탈피하면서, 특정법에 관련하여 경제주체의 각종 행위를 예측할 수 있는 유익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견해가 부각되었다.
달리 말하면 그런 예측을 위한 각종 계산에 계속적으로 지침을 줄 수 있도록 합리적이고 기술적인 도구로서 법이 이해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부상하였다는 의미이다. 결국 당시의 법으로서는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또 그에 대한 개선작업을 수행하기엔 아무래도 역부족이었다는 인식이 대두되었던 것이다.
당시의 법이 매우 불완전한 도구라는 인식 때문에 법학과 타학문분야의 접목이 시작되었고, 그 대표적인 예가 법경제학이라고 걸런터와 펄레이는 설명하고 있다. 당시 법학자들이 갈망하던 것은 법을 체계적으로 분석할 수 있고, 법이 특정방향으로 바뀌었을 때 과연 그 영향은 어떤 것일까를 학자들로 하여금 예측가능케 하는 그 무엇이었다. 마치 자연과학을 연구하는 것처럼 정교하고 동시에 실증적으로 확인을 가능케 하는 분석도구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법조계가 조우하게 된 것이 바로 경제학이었다. 경제학적인 분석방법이 갖는 설명력은 대단히 컸으므로 학계는 물론이고 법조인들 역시 이제는 객관적인 경제분석을 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로를 통하여 법경제학은 바야흐로 명실상부한 학문분야로서 태동하게 된다.
양진석 (한국경영자총협회, 경제조사팀)
첫 단계에서는 모든 개인과 집단이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잘 알려지고 명쾌하게 정의된 어떤 경제적 목적을 극대화하려 한다는 가정을 세운다. 예컨대 통상적인 경제이론에서 개인은 부와 여가를, 기업주는 이윤을 극대화한다는 가정을 하는 것과 동일한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법경제학의 두 번째 분석단계에서는 관련된 모든 의사결정자들이 서로 접촉하고 협상한 결과 어떤 균형상태(equilibrium)가 도출된다는 사실을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일단 균형상태에 도달하면 제 3의 요소가 새로이 충격요소로 작용하지 않는 한 자발적으로는 그 균형이 깨어지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이렇게 도달한 균형상태가 과연 경제적으로 효율적인가를 판단하는 작업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경제적 분석을 하는데 있어서 연구자들이 법을 중요시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법이란 개별재산권을 재설정하는 기능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달리 표현하면 법이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고 집행되는가에 따라 관련된 경제주체들의 모든 행위에 매번 다른 가격이 매겨지게 된다는 의미이다. 행위를 하는데 지불해야 할 가격이 바뀐다면 경제주체들의 최적행위조합 또한 달라져야 할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법이란 통상적인 미시경제학의 극대대화문제에서 예산제약조건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결국 법에 대한 경제적 분석으로 정의된 법경제학은 법이 창출한 암묵적 가격(implicit price)의 변화에 경제주체가 어떻게 반응하고, 그 결과는 어떤 특성을 갖는지를 밝히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러한 학문적 스타일이 어떤 경로로 태동하였는지 잠시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듯하다.
때는 19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촉망받는 경제학자인 Aaron Director는 2차대전이 끝난 후 정부에서 일을 마친 1947년에 교수직을 찾고 있었다. 그의 실력은 시카고 대학에도 익혀 알려져 있던 터라 시카고 대학의 교수들은 그를 채용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거기에는 장애물이 하나 있었는데 교수가 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으로서 요구되는 박사학위가 그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디렉터가 시카고 대학에 온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될 무렵 법대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던 Henry Simon이 작고하였다. 시카고대학 법대내에 경제학자 한 명을 두는 것이 이미 관례화 되어 있었으므로 디렉터의 동료들은 대학당국을 설득하여 사이먼의 후임에 그를 임명토록 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러한 전례가 알고 보면 디렉터가 시카고 대학으로 올 수 있었고 궁극적으로 법경제학의 싹을 틔우게 할 수 있었던 한 요소로 작용하였다.
당시 경제학과 직접적인 관련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 법률은 반독점법(Antitrust Act)이었다. '독점'이라든가 '독점화하려는 시도'와 같이 경제학적인 용어가 명시된 법률은 반독점법밖에 없었으므로 디렉터는 법대교수로 취임한 후 반독점에 관련된 판례들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디렉터는 곧바로 판결문에서 여러 경제이론들이 오용되어 왔었다는 사실과, 경제이론들을 제대로 적용하면 오히려 반대의 판결들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더욱 많은 판례들을 읽어 나가면서 그는 반독점법에서 사용할 수 있는 분석기법들을 개발하였다. 그의 분석이 기존 논리와는 다른 점이 많았으므로 시카고 법대의 교수들은 그의 연구활동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다.
예컨대 법대의 Edward Levi는 자신의 반독점학 강의를 디렉터와 절반씩 나누어 진행하자는 제의를 하였다. 기존의 법이론에 따라 레비가 판례 중심으로 먼저 몇 시간 강의를 하고 똑같은 내용을 디렉터가 경제분석을 사용하여 재차 강의하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시간이 흐를수록 디렉터의 이론이 레비의 강의보다 논리적으로 더욱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는 점이다. 디렉터의 강의가 날이 갈수록 유명해지면서 이제 경제학은 비단 반독점법에 국한되지 않고 회사법·파산법·유가증권 규제·노동법·소득세법·불법행위법등에 광범위하게 적용되기 시작하였다.
점차적으로 시카고 법대의 졸업생들이 배출되면서 몇몇 법대에서도 비슷한 연구가 시작되었고, 특히 예일 법대는 경제학자를 고용하여 경제학과 반독점법을 강의하게 하였다. 그 중에서도 예일 법대는 법학과 경제학 모두에서 박사학위를 소지하고 있던 Guido Calabresi를 채용하면서 법경제학의 발달에 본격적인 기여를 하게 된다.
한편 Galanter와 Palay는 이 무렵 미국법조계에서 일기 시작한 변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한마디로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법은 더 이상 고립된 단일 분야가 아니며 매우 광범위한 분야에 특정법이 미치는 영향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견해가 지식층 사이에 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법의 내용을 단순히 신성시 여기던 관례를 탈피하면서, 특정법에 관련하여 경제주체의 각종 행위를 예측할 수 있는 유익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견해가 부각되었다.
달리 말하면 그런 예측을 위한 각종 계산에 계속적으로 지침을 줄 수 있도록 합리적이고 기술적인 도구로서 법이 이해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부상하였다는 의미이다. 결국 당시의 법으로서는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또 그에 대한 개선작업을 수행하기엔 아무래도 역부족이었다는 인식이 대두되었던 것이다.
당시의 법이 매우 불완전한 도구라는 인식 때문에 법학과 타학문분야의 접목이 시작되었고, 그 대표적인 예가 법경제학이라고 걸런터와 펄레이는 설명하고 있다. 당시 법학자들이 갈망하던 것은 법을 체계적으로 분석할 수 있고, 법이 특정방향으로 바뀌었을 때 과연 그 영향은 어떤 것일까를 학자들로 하여금 예측가능케 하는 그 무엇이었다. 마치 자연과학을 연구하는 것처럼 정교하고 동시에 실증적으로 확인을 가능케 하는 분석도구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법조계가 조우하게 된 것이 바로 경제학이었다. 경제학적인 분석방법이 갖는 설명력은 대단히 컸으므로 학계는 물론이고 법조인들 역시 이제는 객관적인 경제분석을 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로를 통하여 법경제학은 바야흐로 명실상부한 학문분야로서 태동하게 된다.
양진석 (한국경영자총협회, 경제조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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