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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칼럼]사법부가 세운 시장질서

사법부가 시장경제의 공정한 질서를 세우는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판결이 나왔다.

삼성SDS가 이건희 회장의 아들과 딸들 그리고 비서실장에게 발행해준 신주인수권부사채(BW, Bond with Warrants)에 대하여 신주발행금지 결정을 내렸다. 이 판결은 BW의 발행무효를 판단하는 본안(本案)소송이 완결될 때까지 신주발행 또는 양도 등의 거래행위를 금지하는 것이다.

삼성은 그동안 특수관계인에게 발행된 CB, BW 는 법에서 정한 규정을 어기지 않았기 때문에 적법한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법이 시장에서의 모든 종류의 계약에 대해서 가격, 조건 등의 세부사항을 전부 나열하여 정할 수 없다. 특히 지속적으로 변화, 발전하는 시장경제에서 미래의 모든 상황을 미리 가정한 법이란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시장에서의 경제행위의 적법성은 그러한 계약이나 거래가 법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다 하더라도 법정신에 따른 정당한 것이었는가를 법원이 판단하는 판례가 중요한 것이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에서 다음의 두가지 측면에서 의미있는 결정을 하였다.

첫째, 삼성SDS "이사회가 이건희 회장과 특수관계에 있는 이재용 씨등에게만 신주인수권을 주기로 내부적으로 결정하고 이들에게 유리하도록 신주 발행가격을 현저히 낮게 책정한 점이 인정된다"고 가격의 불공정성에 대한 분명한 판단을 하였다.

둘째, "신주 발행가격 등을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고 결정을 이사회에 포괄적으로 일임한 회사의 정관은 상법을 어긴 만큼 무효"이며, "주총의 특별결의를 거치지 않는 등 발행절차 상의 중대한 위법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결정하여 절차상의 위법행위에 대해서도 분명한 판단을 하였다.

법원은 결과적으로 소액주주에게 피해를 입히고 특수관계인에게 유리한 결정의 부당성, 시가보다 지나치게 낮은 가격의 불공정성, 그리고 절차의 위법성에 대하여 함께 판단함으로써 앞으로 CB, BW 발행에 있어서의 기준을 제시하였다.  이 판결은 그동안 재벌들이 편법적인 증여의 수단으로 사용해온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의 적법성에 대하여 분명한 법적 판단을 내림으로써 앞으로 재벌들이 이러한 행위에 제한을 가하는 법적 기준을 제시하였다.

법은 상식이다. 삼성SDS가 소액주주들에게 피해를 입히면서 총수의 가족에게 싼값에 BW를 발행한 것이 불공정한 행위라는 것은 법원의 판단이 없더라도 건강하고 평범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다. 삼성 경영진들도 스스로 자신들이 행위가 비상식적이라는 것을 모를리가 없다. 결국 삼성은 자신들의 행위가 비상식적이지만 합법적인 것이라고 주장한 것과 같다.

이번 사법부의 결정은 법이 건강한 상식임을 보여줌으로써 합법을 가장한 비상식적인 불법행위에 대해 분명한 선을 긋는 중대한 판결이며, 시장경제의 공정한 질서를 세우는데 사법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웅변해준 판결이었다.  

작성자 : 장하성(고려대학교 경영하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