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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논평]경기양극화 현상을 진단한다

산업 및 소득의 양극화 현상은 산업구조의 변화, 노동시장 구조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다.
다만 산업내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점, 경제의 불안정성이 커질 가능성 등 제반 부작용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지루한 조정국면을 지속하던 경기가 하반기 들어 다시 상승조짐을 보이고 있다. 7∼8월 산업생산 증가율이 다시 높아지고 있으며 3/4분기 수출증가율도 27.3%에 달했다. 하락추세를 지속하던 경기선행지표에도 개선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지표상으로는 실물경기가 개선되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실제 경기의 회복을 체감하는 국민들은 그리 많지 않은 듯 하다.

실제로 느끼는 경기가 좋지 못한 주원인은 높은 생산증가에도 불구하고 유가 상승으로 수입부담이 늘어나 국민들의 실질소득이 크게 늘어나지 않은 데다 구조조정과 관련된 불안심리가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경기의 양극화로 경기상승의 수혜를 입지 못하는 부문이 다수 존재하고 있는 것도 체감경기 부진의 원인으로 일반적으로 지적되고 있다.


산업별 생산격차 확대

일반적으로 양극화의 개념은 소비, 투자, 수출, 생산, 주가, 고용, 임금, 부동산 등 제반 경제부문에 인용되고 있지만 이러한 각 부문별 양극화를 가져오는 배경 혹은 결과로서 산업과 소득의 양극화 두 가지가 지적될 수 있다. 우선 산업양극화 측면을 살펴보자

금년 들어 높은 산업생산이 지속되고 있지만 이들중 상당부분이 반도체, 통신기기, 컴퓨터 등 정보통신 관련 품목의 생산증가에 의해 이끌어지고 있다. 1∼8월중 전체 생산증가율은 21.0%에 달하고 있지만 이들 3개 품목을 제외할 경우 생산증가율은 11.0%로 떨어지게 된다. 생산집중화 현상은 하반기 들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데 7∼8월 산업생산 증가율이 21.7%인데 반해 3개품목을 제외한 생산증가율은 7.2%에 그치고 있다. 철강, 화학, 기계류 부문은 생산이 한자리수 증가에 머물고 있으며 섬유, 가죽제품의 경우 하반기 들어 마이너스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비제조업중에서는 건설경기의 부진이 두드러진다. 건설경기는 98년 이후 마이너스 성장을 지속하고 있으며 금년 상반기중에도 5.9%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생산격차는 기업수익성에도 반영되고 있다. 상반기중 주요 상장기업의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위의 3개 품목을 포함하는 영상·음향·통신기기 부문에서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으며 건설, 기계류, 섬유, 의복 부문에서는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경기양극화, 산업구조 변화 측면에서 보아야

사실 우리나라에서 산업간 경기양극화는 해방 이후 자본주의 경제에 편입되면서 줄곧 이어져왔던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경제개발 계획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60년대 이래 농업중심의 사회에서 선진형 구조로 단기간에 변모하게 되었다. 일차산업 중심에서 경공업 중심으로, 70년대 이후부터는 설비집약형 중화학공업과 건설업 위주로 산업구조가 빠르게 변화하였으며 90년대 중반부터는 반도체와 정보통신 관련 산업의 성장이 두드러졌다.

산업구조 조정의 급진전은 경기하강으로 주력산업에서 소외된 산업들의 경기가 침체되거나 소득격차가 확대되는 시기중에는 양극화라는 이름표를 달게 되었다. 특히 90년대 이래 성장의 속도가 전반적으로 둔화되면서 양극화의 문제점이 더욱 빈번하게 지적되고 있다.

산업간의 경기양극화가 지속되고 있는 원인을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하나는 경제성장으로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새로운 기술과 제품이 등장하면서 산업에 대한 수요가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득의 빠른 증가로 의식주 등 필수적 소비지출 품목의 소비비중이 낮아지면서 교양오락, 통신, 교육 등 선택적 소비지출 항목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결국 의식주와 관련된 산업, 즉 음식료 제조 및 서비스, 섬유 및 의복, 주택건설 산업의 비중이 감소하고 정보통신, 문화서비스 부문의 산업의 비중이 높아지게 된다. 특히 건설업의 경우 80년대말 주택 200만호 공급계획 이후 주택보급률이 빠르게 높아지면서 수요가 줄어 91년 12.6%까지 차지했던 비중이 2000년 상반기 현재 7.7%로 하락했다. 이는 농림어업의 감소속도와 비견될 만한 급격한 쇠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수출특화구조의 심화

산업구조 변화의 두 번째 원인으로는 세계경제 분업화의 틀 속에서 한국의 특화구조가 심화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쉽게 말해 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는 것과 동시에 수출상품의 구조가 일부 품목에 편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경제의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80년대 후반 3저호황기에 39.5%를 기록한 이후 감소추세를 보였으나 IMF 경제위기를 계기로 내수부문의 성장이 크게 제약되면서 금년 상반기중에는 이 비중이 45.4%까지 높아졌다. 수출상품의 구조 측면에서도 편중도가 높아지고 있다. MTI 기준 상위 5대품목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0년대 들어 꾸준한 증가추세를 보여 2000년 중에는 40%를 넘어섰다. 특히 반도체 단일품목의 비중이 15.1%에 달하고 있다.


노동시장 구조변화가 소득양극화 원인

경제위기를 계기로 우리나라의 소득 양극화 현상도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96년 64.2%에 달했던 노동소득 분배율은 이후 계속 떨어져 지난해에는 59.8%로 하락했다. 이는 국민소득 중에서 노동의 대가인 임금으로 지급되는 부분이 줄어들고 대신 자본이나 경영에 대한 대가로 지불되는 부분이 늘어났음을 의미한다. 금년중에도 기업수익성 개선이 임금상승보다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노동소득 분배율이 하락추세를 지속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근로소득 내에서도 격차가 한단계 확대된 것으로 평가된다. 도시근로자 가구를 기준으로 소득계층별 하위 20% 대비 상위 20%의 소득배율은 90년대 중반 평균 4.5배 수준을 유지했으나 98년 이후 5.4배로 높아졌다.

이러한 소득양극화 현상은 일정부분 산업양극화로부터 파급된 것으로 보인다. 제조업의 산업별 임금분포를 살펴보면 97년 이후 분포가 더욱 넓게 퍼지고 있는데 1999년중 이러한 추세가 다소 완화되다가 2000년 들어 크게 확대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소득격차 확대의 더욱 중요한 요인은 역시 노동시장 내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글로벌화 등으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생산형태가 변화하고 노동의 사회적 결속이 약화되고 있다. 특히 경제위기 이후 중간직, 사무직 인원이 대량 실직하고 임시직, 계약직 고용형태가 정착되면서 기업내, 또 기업간 임금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프랑스 경제학자 다니엘 코헨은 새로 생겨나는 벤처형 기업의 경우 생산공간이 보다 전문적으로, 또 소규모로 재편되면서 최고가 최고끼리 뭉치는 ‘능력별 짝짓기’ 현상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르면 개인의 성과가 조금만 차이가 나도 소득의 격차는 극단적으로 벌어지게 된다.


산업내 구조조정 미흡

산업의 양극화현상은 수요변화와 세계경제의 분업구조 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측면이 크다. 산업양극화가 문제시되는 것은 산업구조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산업간 생산요소의 이동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못해 기업부실, 고용불안 및 과잉설비 등의 문제점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산업별 일인당 부가가치를 구해서 추세를 살펴보면 선도산업과 사양산업간에 격차가 확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도체, 통신기기 산업의 경우 90년 대비 99년의 일인당 부가가치가 4~5배 가량 늘어났지만 기타 산업들은 부가가치 성장성이 그리 높지 않았다. 산업마다 생산시스템이 달라 일인당 부가가치를 절대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추세적인 변화를 통해 그 산업내에서 얼마나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평가해볼 수 있다.

제조업 평균 일인당 부가가치를 매년 100으로 볼 때 반도체의 경우 90년 115.9에서 99년에는 181.1로 크게 늘었다. 반도체 산업의 일인당 부가가치가 제조업 평균의 1.8배 수준에 달하고 있다는 뜻이다. 반면 90년 당시 이 지표가 95.6으로 제조업 평균과 비슷했던 건설업의 경우 99년 47.3으로 떨어졌다. 자동차, 의류 산업도 일인당 부가가치 증가가 저조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결국 이들 산업은 수요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생산요소가 다른 산업으로 순조롭게 이동하지 않음으로써 생산성 상승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으로 평가해볼 수 있다. 이는 앞으로도 산업구조 변화에 따른 생산요소의 이동이 상당기간 동안 지속될 것이며 이 과정에서 구조적 실업이나 과잉장비 등의 문제점이 계속 부각될 것임을 시사해준다.


경제의 불안정성 확대 우려

산업양극화에 따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양산업의 수요를 진작시켜 구조변화를 막기보다는 산업의 고부가가치화를 꾀하고 다른 산업으로 생산요소의 이동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대책일 것이다.

아울러 산업양극화의 진행에 따른 부작용도 무시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급격한 산업구조 변화는 소득불평등의 확산외에 경제의 불안정성을 확대시킬 우려가 있다. 이는 수출상품의 집중현상에서 주로 기인한다. 비교우위론에 따르면 한 나라는 자신에 비교우위가 있는 제품에 특화해서 생산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제품구조가 단일화되는 현상도 일견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의 역사를 통해 보면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생산의 편중화가 항상 바람직한 결과만을 가져왔던 것은 아니다.

대영제국의 식민지였던 인도는 19세기초까지만 해도 섬유수출국이었지만 가내수공업을 통한 섬유생산에서 영국의 공산품을 따라잡을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영국산업화의 파트너가 되면서 솜, 황마, 염료 등 공업용 농산품 생산에 특화하게 되었다. 인도는 이러한 특화의 결과로 결국 공업화기반이 붕괴되고 식량자급이 어려워져 기근의 악순환이 발생하게 되었다. 상업용 작물생산에 특화했던 중남미 국가들도 수요변화에 따라 경제가 크게 변동하는 현상을 경험한 바 있다. 가장 가까운 사례는 바로 우리나라 90년대 중반의 반도체경기 급락이라고 할 수 있다. 수출과 경제성장의 원동력으로 평가되던 반도체는 세계반도체가격의 급락과 함께 결국 IMF 경제위기의 주범으로까지 전락하게 되었다.


소득양극화, 성장에도 부정적 영향

결국 수출상품의 집중이 바람직한가는 이러한 특화산업이 장기적으로 안정된 바탕에서 고성장을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반도체산업 중심의 성장은 불안한 시선을 피하기 어렵다. 반도체경기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는 다른 몇 가지 부문에서의 수출경쟁력 확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 측면에서 컴퓨터, 통신기기 등 정보통신 부문의 약진은 다행스런 현상으로 보여진다.

소득의 양극화에 따른 부작용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소득격차의 확대는 국민들간의 이질성을 높여 사회적 합의에 필요한 비용을 증가시킴으로써 경제성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세율조정,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소득격차 확산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일률적인 형평성을 강조하기보다는 효율성을 중시하는 사회보장 혜택이 필요할 것이며 빈부격차의 자기증식을 막기 위한 교육 등 기회의 균등을 강조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출처 : LG 경제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