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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칼럼]김대중정부의 노동개혁에 대한 평가

금년 2월까지 현정부가 완수하겠다고 선언한 노동개혁은 애초부터 그 실체가 불분명한 개혁이었다. 노동개혁의 주요목표는 '신노사문화 정착'과 '노동시장 유연화'의 두가지 과제를 들 수 있다. 이상적으로 들리는 이 노동개혁의 두가지 과제는 사실 이율배반적인 과제이어서 달성여부에 대해 애초부터 많은 의구심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좀더 구체적인 이면을 살펴보면, 첫 번째 과제는 노사관계를 평화롭게 연착륙시키겠다는 정치적인 색채가 짙은 노사관계적인 과제이다. 이러한 과제달성을 위해서는 현재 가동되고 있는 노사정위원회와 같이 정부의 정치적 조정기구를 개발하여 노사간  잉여분배에 관하여 평화적인 타협을 유도하는 것이 중요한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타협의 결과가 설사 국가전체의 '사회 파이(social pie)'를 감소를 시키더라도, 여론형성 주도세력인 노사정간의 합의를 유도하여 정치안정을 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인정될 것이다.

또 하나의 과제는 노동시장을 보다 경쟁적으로 구축하여 사회파이를 크게 하자는 경제효율성에 관한 과제이다. 이 과제의 이면에는 '줄 것 주고 받을 것 받는다'는 식의 노사관계 官治조정은 아무리 세련된다고 한들,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전제로 한다. 이 과제달성을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공정한 경쟁질서를 확립하고 투명하고 효율적인 法治가 보다 중요할 것이다. 이익집단의 강력한 저항이 있다고 하여도 이를 장기적으로 꾸준히 집행해 가는 정책일관성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굳이 이 두가지 과제를 적절히 봉합하여 보면, 현정부의 노동개혁은 한마다로 '노동시장 유연화를 정치적인 해법으로 풀어보자는 식'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다 보니 노동개혁은 애초부터 정박할 항구 없이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배의 형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노동개혁을 운영하는 정부의 구체적인 정책행보를 살펴보면 이러한 주장에 설득력을 더한다. 경제위기가 발생한 98년부터 99년초까지의 개혁 전반기동안에 정부는 노동시장유연화 과제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98.1.15 정부는 노사정위원회를 구성하여 실업대책, 기업구조조정 등에 대하여 논의를 시작하였으며, 98.2.20에는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제도를, 98.7.1에는 근로자 파견제도를 하였고, 이 당시 노동정책의 핵심도 공공고용서비스 확충, 직업훈련, 고용유지지원과 같은 실업해고를 위한 시장정책에 초점을 맞추었다. 물론 그 성과에 대하여서는, 관료주의와 단기성·선심성 정책메뉴로 인하여, 효과가 크지 않았다는 비판들도 제기되긴 하지만, 어쨌거나 전반기 정부정책은 노동시장 유연화와 이에 필요한 사회안전망구축에 초점을 맞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99년 중반이후 정부 노동정책은 반짝경기에 편승하여 노동시장개혁을 이미 완수한 것으로 봉합해버리고 정치적 지대가 큰 노사관계의 정치적 이슈에 더 몰두하게 된다. 이 때 굳이 개혁 후반기의 시작이라고 칭하면 이 시기동안에 정부는 안락상태에 빠진 노사정위원회를 법제정을 통하여 상설화하여 법정근로시간단축, 노동전임자임금·복수노조 문제 및 비정규직고용보호문제에 매달리게 된다. 그러나 법정근로시간단축문제도 불황이 예상 밖으로 지속되어 노사양측 모두에 부담되어 년내 개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반감되어 버렸다. 또한 노조전임자임금·복수노조의 문제도 유예하기로 담합하여 당장의 어려운 문제들은 협상테이블 아래로 감추어 버렸다. OECD나 ILO에 복수노조 허용 스케쥴을 밝혀 놓고도 이를 유예하는데 참여한 정부도 무원칙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단면이며, 앞으로도 이문제는 참여한 노사정 3자의 부담으로 남을 것이 분명하다. 노사관계문제 해결에 뚜렷한 성과가 없자 정부는 비정형근로자문제와 여성문제로 달려가서 당장의 입법성과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렇다면 정부의 노동개혁 방향이 이렇게 노동시장문제에서 노사관계문제로 급선회하게된 그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그 첫 번째 원인은 유연화 과제의 본질이 기업의 장기경쟁력 확보라는 점을 분명히 하지 못하고, 국내기업의 해외매각에 지나치게 큰 비중을 두어 유연화 방향이 지나치게 단기적이고 외형적인 방향으로 설정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초기에 진행된 노동개혁논의의 핵심은 산업구조조정과 관련된 정리해고 허용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정리해고의 허용은 고용의 유연성 제고를 위한 필수적 조치임은 분명하나 유연성제고를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점에서 유의되어야 한다. 해외자본유치도 경영 노하우(know-how)를 흡수와 지배구조를 투명케 하여 기업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해외매각에 집착하여, 외국자본이 우리의 적대적 노사관계를 인질 삼아 헐값에 인수하고자 하는 전형적인 전략에 몰리게 되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금융부분 구조조정도 매각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부실은행과 기업의 구조조정은 지연되어만 가는데도 국민은행·주택은행과 같은 우량은행간 합병부터 서두른 것도 성과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이라고 추측해본다. 또한 장기수익성제고보다는 채무비율을 단기에 개선하도록 기업에 강요하여 금융시장경색을 초래하고 기업은 기업대로 유동성 확보가 절대절명의 과제로 인식하여, 장기근속자의 탈법·불법적인 해고가 증가하고 신규채용 축소---> 비정규직 증가--->노동시장불안정성의 증대를 초래하였다는 점도 부인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이러한 외형적·단기적 유연화 추진정책은 개혁초기부터 불필요한 정치적 불안정과 리더쉽 약화를 초래하여 노동개혁의 방향을 더욱 정치적인 방향으로 몰고 가게 하는 악순환의 원인이 된다.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해서는 기업으로 하여금 저질·저임 노동력을 동원에 기초한 구시대의 경쟁전략을 과감히 포기하고 장기적인 인적자원의 육성과 인적자원 경영에 초점을 맞추도록 유인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단기적인 노동시장 유연화정책이 남발되고, 노동시장의 질적 효율화 문제보다는 실업률 수치의 단기감소에만 매달려 노동시장유연화정책이 본질적으로 퇴색하게 된다. 또한 구조조정의 사회적 비용을 여러 경로로 기업에 지워  높은 채용비용하에 기업은 정규직 채용을 꺼리게 되었으며, 과도한 수준의 비정규직 고용과 이들에 대한 탈법·불법적인 처우도 목격되게 된다. 노동계 또한 억울한 '고통전담'을 주장하며 거리로 뛰쳐나가 언론에는 이기적인 집단으로만 비쳐지게 되며 노조에 대한 국민정서를 악화시키게 된다. 노동개혁이 노사양측의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된 본질적인 원인은 정부가 공정한 게임의 법칙을 구축하기보다는 그때그때 이익집단의 주장을 무마하는 식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며 결과적으로 반시장적 규범이 자리잡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노사정위원회의 운영도 권력기반이 부재하고 전문성이 미흡한 공익계에 맡겨져 경제정책의 부산물을 매끄럽게 처리하는'청소기구'의 들러리화 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설상가상으로 노동위원회·법원의 판례와 노동부의 행정치침 모두 시장인프라로서 혼돈스럽고 불일치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여 노사양측을 교란시킨 결과도 자주 목격된다. 또한 가뜩이나 대기업·중소기업으로 단층화된 우리의 노동시장의 이중성을 더욱 고착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점도 학계에서 지적된다.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한 경쟁질서와 규범설정보다는 구조조정게임 자체를 '도 아니면 모식 게임(all or nothing game)'으로 전락시켜 불필요한 노사갈등 증폭시킨 점도 부인되지 못할 것이다.

정부의 후반부 노동개혁 전망은 아무래도 노동시장의 문제보다는 노사관련법을 입법화하여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데 초점이 맞출어 질 전망이다. 현임장관이 최근 밝힌 향후 추진 개혁방향도 지극히 노사관계적인 이슈에 정치적으로 접근한다는 인상을 준다. 일관된 청사진하에 노동정책을 추진하기보다는 그때그때 떠오르는 정치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미봉적인 입법화를 서두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정부는 노동자들이 진정한 의미의 사회적 파트너로서 기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동시장유연화를 통한 국가의 장기 효율성달성이 1차과제이고 또한 2차과제이어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사관계 제도와 관행들을 과감히 개혁해 나가야 하고 노동위원회·법원·노동부 등의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인프라 구축에 앞장서야한다. 또한 노사정위원회를 정치도구로 전락시켜서는 안될 것이다. 노사양측도 단기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편협한 이기주의를 탈피하여야 한다. 노사정 주체들이 장기적이고 책임감 있는 대안을 갖고 대전환의 기회들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하고 공익계도 '적당한 중립'이 아니라 전문성에 기초하여 공익을 진정코 대변하고자는 소명의식이 더욱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조준모 (숭실대학교 교수, 경제학)
비정규노동, 창간준비호, 한국비정규노동센터(www.workingvoice.net), 2001. 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