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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법경제학노트]불법행위이론 (Tort Law)

. 불법행위법에 관한 지적흐름의 개관



가. 불법행위법의 기원

불법행위(a tort)란 계약의 파기를 제외하고 민사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잘못된 행위를 말한다 (Landes and Posner, 1987). 예를 들어 화가 나서 사람을 때린다든지(battery, 폭행), 차를 부주의하게 몰아 보도로 침입한다든지(negligence, 과실), 허가 없이 타인의 토지에 들어간다든지(trepass, 침해), 남을 부당하게 비방하는 행위(defamation, 명예훼손) 등이 이에 해당된다.

18세기 중반이후 William Blackstone이 영국 보통법에 대한 저술을 시작할 무렵부터 근대 불법행위법의 주요 법리들은 이미 영국 보통법의 근간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전통은 미국혁명 이후 미국 주 및 연방법원에서 적용되기 시작하였다.

미국에 철도부설 이전에는 폭행 또는 폭행협박을 제외한 사고와 관련된 소송이 매우 드물었다. 따라서 불법행위법의 비중이 크지 못했으며 사고책임을 과실 또는 엄격책임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불확실성이 매우 컸던 시기였다. 철도가 도입되면서 사고가 급증하였으며 19세기 중엽에 이르자 사고에 관한 표준책임원리는 과실책임(negligence rule)주의이며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엄격책임(strict liability)주의를 사용한다는 기준이 정착되면서 근대불법행위법의 체계 구성되게 된다.

19세기만 하더라도 재해를 당한 근로자가 고용주로부터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고용주의 과실을 입증해야만 하였다. 그런데 20세기 초 근로자의 산업재해보상(workmen's compensation) 운동이 급격하게 퍼지면서 과실책임주의가 엄격책임주의로 대체되었다.



나.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원리의 변천

역사적으로 불법행위법은 고의로 행한 피해에 대해서만 관여하였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낯선 사람들(strangers) 사이의 사고가 매우 드물게 발생했으므로 대부분의 사고 및 그에 따른 피해는 계약법의 범위내에서 조정된 반면, 고의성이 있는 피해에 대해서는 과오(fault)를 인정하고 엄격책임이 적용되었다.

19세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엄격책임으로부터 과실책임으로 변화되게 된다.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기차가 도입되고, 따라서 의도하지 않은 대규모의 사고가 일어날 개연성이 높아지게 되었다. 따라서 과오는 고의성이 있는 피해에만 국한되지 않게 되었다. 즉 주의가 부족한 행위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게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과실(negligence)이 불법행위법의 핵심 개념으로 부각되었다.



산업혁명 초기 과실책임주의가 도입된 사실에 대한 학계의 주장

Liberman(1985)은 당시 발전을 시작하던 업계를 보호해주기 위해(업계의 비용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과실책임주의가 도입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엄격책임에 의해 당연히 업계가 책임을 질 경우이나 이제 과실의 입증이 있어야만 책임을 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Liberman은 이러한 맥락에서 보수적인 법원이 당시 자주 사용했던 다양한 법리들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 법리들은 결국 가해자의 면책 사유로서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는 논리 (보조금 가설)이다.



동료사용인규칙(fellow servant rule) : 설사 근로자가 작업 중에 피해를 입었다고 하더라도 그의 동료에게 과실이 있었다면 사용인에게 배상을 청구할 수 없음. 회사주나 관리인이 개인적으로 과오가 있을 때에만 청구가 가능함.
기여과실 (contributory negligence) : 원고 자신의 과실이 존재할 때에는 피고를 상대로 소를 제기할 수 없음.
위험감수 (assumption of risk) : 위험한 직장을 선택하는 것처름 스스로 위험을 감수했다고 판단할 때에는 원고 스스로 책임을 짐.
특수한 인과관계 (proximate cause) : 행위와 피해 간 매우 직접적인 관계가 성립해야지만 피고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할 수 있음.
횡사에 대한 소청구 금지 (prohibition against wrongful death suits) : 불법행위법은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사적인 문제를 다루므로 사고로부터 사망이 야기되었다는 근거로 이미 사망한 자가 피고에 대해 소를 제기할 수 없음.
주의기준 (standard of card) : 피고행위의 합리성을 간단히 결정할 수 없을 때에는 법관이나 배심원의 자의성이 개입되었는데, 흔히 주의 기준의 한계를 설정함.


Landes and Posner(1987)는 과실책임주의가 대두된 것은 시대적 배경에 따른 자연적인 현상이라는 시각을 제시하였다. 이는 경제발전과 더불어 낯선 사람들 간에 발생하는 사고가 급증하여 불법행위법의 영역을 늘릴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무조건 가해자에게 책임을 지게 하는 것보다 어떤 식으로든 과실이 입증된 경우로 국한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한 결과라는 주장이다. 즉 과실이 입증된 경우에 가해자 배상토록 하는 것은 경제효율성을 지향하는 보통법의 자연스런 진화과정에서 개발된 것이라는 시각이다.

Schwart(1981)는 19세기의 불법행위법이 새롭게 등장하는 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취지에서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가설을 뉴햄프셔와 캘리포니아의 판례를 검토함으로써 보조금 가설을 부정하였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과실책임주의로 진화하였음을 확인하였다.

19세기 중반부터 정착되기 시작한 과실책임주의는 20세기 들어와 다시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일단 사고가 발생하면 피해자에게 보상은 해 주어야 한다는 피해자 구제중심의 시각이 팽배해지기 시작하였다. 즉 사고에 의한 피해자는 법적제도를 통해 반드시 구제되어야 한다는 시각이다. 이러한 주장의 대표적인 학자는 Coleman(1974)인데, 그는 불법행위법의 기본은 책임(liability)과 구제(recovery)로서 다음의 두 가지 질문으로 표현할 수 있다. 첫째, 가해자에게 그 보상을 의무화시킬 조건은 무엇인가? 둘째, 피해자의 보상요구를 정당화시킬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은 무엇인가? 이렇게 책임과 구제의 문제를 구별하여 제기한 것은 모든 사고피해자들을 보상할 수 있는 보험체계를 사회가 만들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는 소위 비과오체계(no-fault system)라 불리는 데 과오의 유무에 관계없이 모든 피해자는 보상받을 수 있다.

20세기 초반에 일기 시작한 법원의 변화는 엄격책임주의로의 복원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먼저 당시 주류를 이루고 있던 매수인 주의원칙(caveat emptor)이 퇴색되기 시작했다. 산업혁명이 무르익으면서 구매자가 자신을 보호할 정도로 구매하는 상품에 관한 지식을 갖는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확신되었기 때문이다. 동료사용자규칙 역시 더 이상 유효하지 못하게 되었는데, 급증하던 산업재해로부터 발생하던 비용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데 적절하지 못하다는 소치였다. 위험감수의 법리도 제 기능을 못하게 되었다. 근로자가 부주의하게 위험한 직장을 선택한 다음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보상이 대상이 될 수 있게 되었다. 특수 관계의 원리도 MacPherson v. Buick Motor Co.(NY, 1916)을 계기로 실효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는 행위와 피해 사이에는 계약 당사자와 같은 직접적인 관계가 성립해야 한다는 원리였으나 Cardozo 판사를 이를 부정하였다. Buick사의 자동차를 타다가 상해를 입은 원고는 판매업자와 계약을 맺은 것이지 제조업체와는 직접적인 계약관계가 없다는 피고의 항변을 기각하고, 제조업체는 최종 소비자를 위해 주의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하였다.

엄격책임의 복원을 선도한 중요 분야의 하나는 제조물책임 관련 사건들이었다.

Epstein(1995)은 1916년부터 1968년까지를 '엄격책임주의의 번성'(rise of strict liability) 시대로 명명하고, 주요 사건들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위 Buick 사건에서 Cardozo 판사는 원천적으로 위험한 상품에서 발생한 사고뿐만 아니라 부실 제조로 인하여 발생한 사고는 요원성(remoteness)에 불문하여 공급자에게 소송을 걸 수 있다는 입장을 명백히 하였으며, 이 사건이 의미하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피고가 의도적으로 상품의 결함을 부실표시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즉 결함(defect)의 유형은 중요하지 않고, 결함 그 자체가 중요하게 되었다.

1944년 Escola v. Coca-Cola Bottling Co.(CA, 1944)에서 Traynor 판사는 엄격책임을 도입하는 기반을 확실히 하였다고 주장한다. 식당의 여종업원이 냉장고 속에 쌓던 코카콜라병이 폭발한 사건이었다. Traynor 판사는 피고의 과실을 입증하는 일은 소송비용만을 높일 것이라며, 원고는 해당 상품이 원래 상태에서 결함이 있었고, 정상적인 사용(normal use) 도중 피해를 야기시켰다는 사실만 보이면 된다고 판시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해당 상품의 결함을 원고는 구매 당시 몰랐어야 한다는 조건, 즉 위험이 숨겨져 있었어야(hidden) 한다는 조건이다.

Escola 사건에서 그 기원을 이룩한 엄격책임주의는 실제 적용시에 특히 세 가지 사실을 강조하였다고 Epstein은 지적한다. 첫째, 결함은 인지되지 못한 것(hidden)이어야 한다. 둘째, 중간계층, 즉 도매상 및 소매상 등이 최종 소비자가 당면하는 위험을 증가시킬 만한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No risk increasing activity by middlemen). 셋째, 소비자는 그 제품을 적절하게 사용하여야 한다. 바로 이 세 가지 조건이 소위 부실표시이론(misrepresentation)을 구성하는 요소라고 볼 수 있다.



미국 불법행위법의 변천을 종합하자면 산업혁명 이전의 불법행위법은 고의적 피해에만 적용되었고, 그 때의 책임원리는 엄격책임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계약법의 범주에 포함되었는데, 이는 완전한 이방인 사이의 사고는 아직까지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후에는 고의성 없는 과실도 불법행위법에서 다루게 되었으며, 점차 과실책임주의로 이전하게 되었다.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불법행위법이 이미 상당히 확대되어 있었으며, 엄격책임으로 복귀된 상태였다. 이는 19세기의 논리처럼 불법행위의 고의성이 농후해져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안전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므로 과실이 없더라도 책임을 지어야 한다는 인식이 전반적으로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이방인 사이의 사고가 늘어나므로 계약법은 점차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2. 불법행위법과 경제효율성



가. 책임원리와 경제효율성

책임원리에 대한 경제효율성 분석은 Calabresi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는 사고로 피해가 일어났을 때 자동적으로 가해자 또는 피해자가 사고비용을 담당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부정하였다. 즉 사고에 대한 책임과 보상 문제를 계약의 차원에서 결코 다루지 않고, 새로운 접근방식 - 공공정책의 목적이 무엇인가에 따라 달라짐 - 을 제시하였다. Calabresi(1970)는 분쟁 해결을 불법행위법의 제일 목적으로 간주하지 않고 "사고법의 기본 기능은 사고의 비용과 사고회피의 비용의 합을 줄이는 데 있다"고 하여 이 비용합계를 극소화하기 위해 사회가 어떤 식으로 책임을 배분해야 하는가에 초점을 두었다. 이하에서는 Calabresi(1970) 및 Shavell(1987)의 분석을 바탕으로 과실책임주의와 엄격책임주의의 경제효율성에 대해 살펴본다.



가해자가 취할 수 있는 예방노력을 X라는 연속변수로 표시하고, X가 한 단위 늘어날수록 예방비용도 θ만큼씩 선형적으로 증가한다고 가정하면 예방비용은 θX로 표시할 수 있다. 피해는 확률적으로 발생한다고 가정하고, 갑의 행동이 실제로 피해를 발생시킬 확률을 P라고 하자. 이 확률이 갑이 피해방지를 위해 얼마만큼의 예방노력을 하는가에 따라 좌우된다고 하면 X의 함수인 P(X)로 표시할 수 있다. 예방노력이 증가할수록 P는 감소하므로 P'(X)<0이다. 일단 을에게 피해가 발생하면 외부비용이 H만큼 발생한다고 하자. 따라서 갑의 행위로부터 발생하는 피해의 기대치는 P(X)·H가 된다. 갑의 행위로부터 발생하는 총 사회비용의 기대치 SC는 예방비용과 피해의 기대치를 더하여 계산할 수 있으므로 SC=θX+P(X)·H가 된다. 아래의 [그림]에는 예방노력비용, 피해의 기대치, 총 사회비용의 기대치가 각각 그려져 있다. 불법행위법의 경제효율성이란 SC가 최저값을 갖도록 X* 를 찾아냄으로써 달성될 수 있다.







θ=-P'(x)·H를 만족시키는 X가 가 된다. 식의 좌변은 예방노력 X를 한 단위 늘릴 때 발생하는 한계비용이다. 우변은 X를 한 단위 늘림으로써 피해의 기대치가 얼마나 줄어드는가를 나타내고 있다. 이는 X를 늘리는 데 따른 한계비용과 한계수익이 같아지는 수준까지 예방노력을 늘려야 하고, 바로 그 때가 사회후생에 최적이 되는 X*가 됨을 의미한다. 불법행위로 인한 피해를 매우 작게 하려면 X를 그만큼 늘리면 된다. X가 매우 커지면 P(x)·H가 X축에 근접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총 사회비용 SC가 몹시 늘어난다는 것이다. 사고를 줄인다는 목적만을 좇는다면 P(X)를 한없이 줄이기 위해 X를 최대한 늘리는 것이 옳겠지만, 결국 사회비용이 굉장히 높은 수준으로 늘어나 바람직하지 않다. 결국 예방노력을 X*만큼 유지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최적이 된다.



1) 과실책임주의의 경제효율성

과실책임주의하에서는 모든 잠재적 가해자에게 일정 수준의 예방노력을 의무화시킨다. 사고가 일어난 후 갑이 얼마나 예방노력을 기울였던가에 대해서 법원이 조사해 보고 만약 X* 이상이었다면 사고로 인한 을의 피해에 책임을 지우지 않고 X* 미만이었다면 손해배상을 시키는 방법이다.

갑의 입장에서 만약 예방노력을 X* 미만으로 했다면 일어나는 사고의 피해를 전액 보상해야 하므로 비용의 기대치는 X* 좌측에 위치한 SC가 된다. 만약 X*이상으로 예방노력을 했다면 서로 피해에 대해서는 책임이 면제되므로 X*우측에 위치한 θX가 될 것이다. 따라서 갑이 직면한 실질비용곡선은 [그림]에서 굵게 표시된 부분이다. 따라서 갑으로서는 예방노력을 X*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 비용을 극소화시키는 길이다. 결국 예방노력을 X*로 유지시키려는 '사회의 목적'과 경제주체 갑 '개인의 인센티브'가 양립(incentive compatible)되는 경우이다. 즉 법원이 X*만 잘 정하면 과실책임주의는 경제효율성을 보장한다.

과실책임주의는 원칙적으로 경제효율성을 달성할 수 있는 속성을 다분히 지니고 있다. 그러나 효율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함을 Calabresi와 Shavell은 강조하고 있다. 첫째, 사고의 발생이 다분히 가해자에 의해서, 즉 일방적(unilateral)으로 일어나는 속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피해자의 과실 역시 사고발생 확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면 가해자의 과실 여부만으로 책임을 결정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방식이다. 특히 피해자가 사고예방비용 측면에서 비교우위를 가진다면 단순히 가해자의 과실책임주의만을 이용하는 것은 경제효율성을 확보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둘째, 과실책임주의가 성공적으로 기능하려면 무엇보다도 사회의 최적 예방노력수준을 법원이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X*가 잘못 책정되면 경제주체들은 과다 또는 과소 예방노력을 취할 것이기 때문이다.



2) 엄격책임주의의 경제효율성

엄격책임주의(strict liability)하에서는 가해자의 예방노력에 대해서 묻지 않고 무조건 책임을 지우게 된다. 엄격책임주의의 경제효율성을 위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법원이 사고를 발생한 피해를 완벽히 배상시켜야 한다. 여기서 완벽한 배상이란 사고로 인한 피해를 받기 전 피해자의 효용수준을 회복할 수 있을 정도로 배상해 준다는 뜻이다.

엄격책임주의하에서는 예방노력에 대한 법적인 의무수준이 없고, 모든 사고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따라서 가해자 갑이 직면하는 실질적인 비용곡선은 SC가 된다. 이 상황에서 갑은 사적 비용이 극소화되는 X*를 찾아 내어 그 수준만큼 예방노력을 할 것이라는 점에서 경제효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

문제는 이제까지의 논의에서 SC가 제대로 측정되었다는 가정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SC가 제대로 설정되지 못한다면 엄격책임주의의 경제효율성은 깨어지기 쉽다. 을이 당한 피해를 법원이 정확하게 판단할 능력이 없다면 H가 과소 또는 과대 산정될 것이다. H가 과소 산정되면 SC가 좌하향하고, 반대로 과대 산정되면 SC가 우상향한다. 따라서 잠재적인 가해자 갑의 최적예방노력도 각각 X*보다 작거나 또는 크게 되어 총 사회비용을 극소화시키는 수준보다 각각 과소 또는 과대 투입되는 수준에서 예방노력이 결정될 것이다. 엄격책임주의하에서는 실제 피해액에서 조금만 초과 또는 미달되게 책정되어도 그 때마다 SC가 이동하고 따라서 경제효율성이 쉽게 침범된다. 결국 엄격책임주의하에서는 실제 피해액을 정확히 산정할 수 있는 법원의 능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엄격책임주의의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두 번째 조건은 사고의 발생이 가해자와 피해자의 쌍방의 과실 모두에 의존하는지를 검토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법원이 모든 책임을 가해자에게 돌린다면, 갑은 예방노력을 하겠지만 피해자인 을의 입장에서는 주의를 더욱 기울여야 하겠다는 인센티브를 유발시키지 못한다. 즉 사고가 쌍방의 과실에 의해 발생할 때 가해자에게만 책임을 전가해서는 사고비용을 최소화시키지 못한다.

과실책임주의를 사용하면 이러한 피해자의 도덕적 위해(moral hazard)를 억제할 수 있다. 그러나 엄격책임주의는 피해자의 도덕적 위해를 해결하지 못한다. 따라서 엄격책임주의하에서 경제효율성을 가장 확실히 확보하기 위해서는 사고의 속성이 다분히 일방적인 경우에만 적용되어야 한다.

종합하면 사고로 인한 피해에 대한 배상을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완벽히 책정하기 힘들고, 사고 발생이 다분히 쌍방성을 가지고 있을 때 법원이 가해자의 엄격책임주의보다는 일정 형태의 과실책임주의를 사용하는 것이 경제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이 된다. 다만 과실책임주의하에서는 각자가 법정 수준에 걸맞는 예방노력을 했느냐에 대해 조사 및 판단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법원의 소요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 행정비용이 과다하게 높아지면 결국 경제효율성도 깨어질 것이다. 끝으로 엄격책임주의의 장점으로 사고예방을 위한 기술개발에 투자를 더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과실 여부에 관계없이 모든 사고에 대한 배상을 해야 하므로 기술개발을 하려는 인센티브가 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 책임원리의 기타 경제적 속성

Posner는 앞의 Calabresi 및 Shavell의 경제분석이 보여준 바와 같이 사고방지주의에 미치는 효과는 두 책임원리가 대체로 흡사하다고 보았다. 요컨대 사고비용의 기대치가 방지비용보다 클 경우 잠재적 가해자는 주의노력을 기울일 것이며, 그 반대의 경우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두 책임주의하에서 모두 나타난다는 논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격책임주의는 과실책임주의와 상당한 차이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 Posner의 주장이다. 사고발생을 방지하는 방법에는 첫째, 주어진 행위수준에서 얼마나 주의노력(cautious effort)을 하는가이다. 둘째는 행위자체의 수준 내지 정도(activity level)를 조절하는 것이다. 예컨대 교통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 운전시 주의를 하는 것도 한 방법이겠으나 운전 자체를 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엄격책임주의는 잠재적 가해자들로 하여금 행위의 수준을 줄이도록 하며, 과실책임주의는 잠재적 피해자들로 하여금 행위의 수준을 줄이도록 유인한다. 만약 사고비용의 기대치가 주의노력 또는 행위수준을 모두 포함한 방지비용보다 낮다면 과실책임주의하에서 잠재적 가해자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잠재적 피해자들이 방지노력을 하게 될 것이다. 한편 엄격책임주의하에서는 어쨌거나 책임을 벗어나지 못하므로 잠재적 가해자들이 특히 행위수준의 조절을 통해 사고 방지노력을 할 것이다. 따라서 어떤 사고가 잠재적 가해자의 행위 조절을 통해 방지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엄격책임주의가 효율적인 반면 잠재적 피해자의 행위조절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고 판단되면 무책임주의(no liability)가 효율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잠재적 가해자 및 피해자의 주의노력에 의존한다면 과실책임주의를 적절히 사용해야 할 것이다.

또한 Posner는 두 책임원리가 소송비용에 미치는 효과를 비교하고 있다. 과실책임주의는 소송비용이 많이 드는데 이는 법정에서 과실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일 숫자의 소송을 끝내는데 엄격책임주의는 과실책임주의보다 평균 소송비용이 작게 소요된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소송 숫자의 경우에는 그 반대이다. 과실책임하에서는 사고가 일어나도 피고의 과실에 대해서 어느 정도 확신이 들 때에만 소송을 걸 것이다. 그러나 엄격책임에서는 소송을 걸 인센티브가 예외없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