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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대형사고와 정부규제

한국에는 워낙 대형 사건 사고가 꼬리를 물고 일어나기 때문에 웬만한 일들은 금방 관심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그러다 보니 무슨 일이 터져도 차분히 원인을 규명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기 보다는,그저 사람들만 잡아 처벌해서 화풀이 하는 것이 우리의 문제 대처 방식이 되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사고가 터지면 무조건 인재(人災)로 몰아가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그리고는 그런 사람들만 아니었으면 그런 사고는 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애써 자위하고는 과거와 별로 달라진 것 없이 그냥 지나간다.외환위기 때도 그랬고,지난번 씨랜드 화재사고 때도 그랬다.그러니 대형사고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이번 인천 화재사고도 그렇게 될 조짐이 보여 걱정이다.

인천에서 발생한 화재사고는 그 지역의 일부 악덕 업자와 부패한 공무원들 탓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너무나 구조적이고 전국적이다.이것은 결코 규제의 미비나 규제완화 때문이 아니다.이것은 보다 근본적으로 우리나라 공무원 관리체제와 정부규제의 실패로 보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정부규제가 더더욱 개혁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규제를 강화한다고 지켜지지도 않을 새로운 규제들을 더 만들거나 기준을 강화하는 것은 문제를 더 악화시킬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자주 발생하는 대형사고가 정부규제가 약하거나 없기 때문이 아니다.서울 하늘이 뿌옇고,팔당호 수질이 악화된 것은 우리나라에 환경규제가 없어서가 아니다.있는 규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사실 우리나라의 각종 환경기준이나 안전기준들은 선진국에 비해 손색이 없다.

문제는 현실과 규정이 따로 돈다는 데 있다.지금 있는 규제도 제대로 집행이 안되는 현실을 놓아두고 마치 규제가 부족해서 사고가 난 듯이 지금도 이미 충분히 많고 복잡한 규제 덩어리 위에 졸속으로 규제를 추가해서 더 얹어 보았자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오히려 부정부패만 더 조장할 뿐이다.

인천 화재사고 조사에서도 드러났듯이 각종 기준과 규정들이 규제 현장에서 노골적으로 무시되고 집행이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영업정지를 시켜도 버젓이 영업을 지속하고,또 이를 감시해야 할 공무원은 현장 확인도 하지 않고 허위 보고를 할 정도라면,세계 최고의 규정과 기준을 아무리 도입해도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사실 이런 문제는 소방분야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환경,식품위생,산업안전 등 우리 삶의 질과 관계된 소위 사회적 규제의 집행과정에 만연된 문제이다.

따라서 사회적 규제에 대한 올바른 개혁 방향은 법이 법대로 집행되도록 만들어 현실과 규제의 괴리를 없애고 규제 준수율을 향상시켜 국민생활 보호의 수준을 실질적으로 높이는 것이 되어야 한다.지켜지지도 않을 규제를 자꾸 만들면 행정력을 분산시켜 그나마 지금 있는 규정들의 유효성만 더 떨어뜨릴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규제 준수율이 낮은 이유는 법 집행을 게을리 하는 법집행자들의 무능과 부패에도 기인하겠지만,명분론과 당위론에 치우친 나머지 비현실적인 기준과 절차를 잔뜩 만들어 놓고는 집행하는 사람이나 지키는 사람이나 모두 법대로 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도 지키지 않는 규제기준과 절차를 현실화해서 누구나 지킬 수 있도록 만든 다음 위반자를 철저하게 적발,처벌하는 것도 규제개혁의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만약 기준을 현실화할 수 없다면 일정기간 내에 규제 준수율이 일정 수준 이상 되도록 그 달성 책임을 규제 집행자들에게 부과하고 이에 미달할 때에는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도록 강제해야 한다.

지킬 수도 없는 법을 만들어 놓고 법을 안지킨다고 국민 탓만 하는 위선적 규제풍토와 제대로 집행할 의사와 능력도 없으면서 규제를 마구 남발하는 규제만능주의부터 해소해야 한다.이렇게 될 때 비로소 법 따로 현실 따로인 우리나라 규제행정의 병폐가 없어지고 국민생활의 실질적 보호가 가능해 질 것이다.

정부에 한시적으로 안전관리 기획단을 설치해서 안전관련 규제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을 강구한다고 한다.현장에서 실행되지도 않을 새로운 규제만 양산하는 기구가 되어서는 안되겠다.있는 규제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부터 강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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