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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경제를 다수결로 해결하나

지금 정부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을 국정의 기본이념으로 표방하고 있다. 두 제도 모두 헌법에 명시된 기본이념이기 때문에 어느 정부나 민주화를 더 진전시키고, 시장경제를 창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의무다. 다만 병행발전을 추구한다는 것이 지금 정부의 차별화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제도는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민주주의나 시장경제나 모두 분권화된 의사결정을 기본원리로 하고 있다. 그래서 그 운용과정이 항상 시끄럽고 비효율적으로 보인다. 또 이 두 제도 모두 그 운영을 사람이 아니라 제도적 장치에 의존한다는 점도 유사하다.

권위주의 독재체제나 통제된 계획경제는 의사결정 과정이 일사불란하고 효율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역사적 경험은 이들 체제가 결국 자기 정화기능의 상실과 경직성으로 인해 더 큰 비용을 치르면서 붕괴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 유신체제와 소비에트 계획경제의 붕괴가 그 증거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바로 그 의사결정의 분권화라는 비효율적 특징 때문에 장기적으로 더 안정적이고 효율적일 수 있음을 보았다.

지금 우리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얻은 지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두 제도는 당연히 보완관계인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반드시 그런 것이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이 두 제도 모두 제대로 정착돼 있지 않기 때문에 하나도 제대로 하기 어려운데, 두 가지를 병행발전시킨다는 것은 특별히 어려운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토론과 타협, 그리고 공존의 원리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타협이 원칙이지 원칙을 타협하라는 제도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칙과 가치관이 다른 사람끼리도 공존 공생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인 것이다.

타협과 공존이 실종된 결과가 어떠한지는 동티모르와 코소보 같은 곳을 보면 알 수 있다. 다수결에 불복하는 소수, 타협과 공존을 용납하지 않는 다수가 초래한 비극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에서는 양심과 언론의 자유가 기본권으로 보장돼야 한다.

양심과 언론의 자유가 없으면 민주주의가 아니다. 상대방 하는 소리가 죽이고 싶도록 밉지만, 그 사람의 말할 자유를 위해 죽을 수도 있어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언론자유라고 필자는 배웠다.

입만 열면 민주주의와 인권을 주창하는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이 지금 보이고 있는 행태는 유감스럽게도 민주주의의 이러한 기본원리와는 거리가 멀다.

시장경제는 경제주체들의 분산된 의사결정과 물질적 이기심이 원동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경제에서는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과 사유재산권이 보장돼야 한다.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지 않거나 사유재산권이 침해받고 있는 경제는 시장경제가 아니다.

그리고 경제문제는 갖고 싶은 것을 다 가질 수 없다는 현실제약에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절약과 선택, 그리고 기강과 규율이 기본원리다.

경우에 따라서는 괴로운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 경제문제다. 특히 경제주체들의 합리적 의사결정을 유도하기 위한 자기책임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시장경제의 기본원칙이다. 따라서 경제원리는 타협과 화합을 기본원리로 하는 정치논리와 본질적으로 상충관계일 수밖에 없다.

특히 정치적 인기를 의식한 영합주의는 기강해이와 갈라먹기를 부추겨 경제에 치명적 독약이 될 수 있다. 국내외적으로 경제발전이나 경제개혁에 성공한 정치지도자들의 공통된 특징이 정치논리의 경제문제로부터의 철저한 차단이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동안 시장경제를 병행발전시킨다고 하면서 민주주의와 국민여론의 이름으로 경제원리를 부정하고 기강해이를 부추기지는 않았는지 반성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이 원칙이고, 시장경제는 경쟁이 원칙이다. 경제문제를 다수결로 해결하려 한다든지, 정치문제를 경쟁원리로 해결하려 한다면 민주주의나 시장경제는 모두 병행퇴보를 면치 못할 것이다.

그렇데 지금 우리는 여론조사와 다수결로 경제문제를, 그리고 경쟁과 대립으로 정치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 결코 쉬운 명제가 아님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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