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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경제개혁 "환상"을 깨라

한국경제가 외환위기를 당한 것이 꼭 2년 전 이 무렵이다. 지난 2년은 우리가 그 이전 20여년 간 겪은 풍상을 능가하는 고통과 시련의 기간이었다. 또 한편 생각해보면 그 절망과 고통 속에서도 다시 한 번 우리의 저력과 의지를 보여준 기간이기도 했다.

달력 한 장을 바꾸어도 지난 시간과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 사람들의 자연스런 마음인데, 하물며 한 해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백 단위 천 단위의 햇수가 바뀌는 금년에, 한국인들이 그 동안의 위기를 겪으면서 지금의 한국경제와 한국경제의 미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 보는 것은 매우 뜻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주간조선이 이번에 실시한 한국경제의 비전에 대한 설문조사는 그 결과가 관심의 대상이 될만 하다.

개인이나 집단이나 엄청난 충격과 고통을 겪고 나면 많은 심리적 변화가 있게 마련이다. 분명 한국 사회도 적지않은 심리적 변화를 겪었을 것이다. 그것이 어떤 것이고 어떤 외형적 변화로 나타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위기를 불러왔던 과거의 나쁜 버릇으로 되돌아가지 말아야 하고, 외세 공포증이 악화되어 우리 사회가 더욱 폐쇄적으로 되지 말아야 하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의 저력과 미래에 대한 확신을 잃지 않는 것이다.

지금 나타나고 있는 한국경제의 회복은 IMF는 물론이고 우리 스스로도 놀랄 만큼 빠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그 동안의 개혁이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은 착각이다. 노동개혁, 재벌개혁, 금융개혁, 정부개혁 등 주요 개혁 정책이 모두 아직도 진행 중이고 아직도 한 일 보다 해야 할 일이 더 많다는 것은 정부 스스로도 시인하고 있다.

지금의 경기회복은 다분히 정책적인 경기부양의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지금의 빠른 경기부양은 오히려 우리가 미처 변화하기 전에 다시 과거의 나쁜 버릇으로 빠져들게 하는 마약이 될 수도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지금의 경기상승은 기본적으로 그 동안의 불황으로 인한 실질임금의 하락, 고용감소로 인한 인건비 부담의 감소, 그리고 저금리 정책에 의한 차입이자 부담의 감소 때문이다. 이것을 우리 경제에 만연한 구조적 모순을 해소하고 경쟁력을 회복한 결과로 착각하면 안된다.

●개혁 모양만 갖추다간 영원히 "2류국"

우리가 지금 필요한 것은 조급한 경기부양이 아니라, 지속적 개혁을 통해 한국경제 운영시스템을 바꾸고, 기업, 금융, 정부 관리체제를 개혁하는 일이다. 한국 경제위기를 초래한 근본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관료와 정치인의 금융지배, 그 결과 초래된 금융기능의 상실, 이에 편승한 대기업들의 방만한 차입경영,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가 생산한 몫보다 더 받아가겠다는 욕심, 남의 돈으로 편하게 살겠다는 게으름, 목소리만 높이면 떡을 더 받아낼 수 있다는 집단이기주의, 그리고 이를 부추겼던 정치인들의 기회주의적 행태, 이런 과거의 나쁜 관행이 청산되지 않으면, 경제성장률이 아무리 10%가 넘고 일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가 넘어도 그것이 무너지는 데는 불과 1년도 안걸린다는 것을 우리는 그동안 비싼 대가를 치르고 배웠다.

진정으로 우리가 21세기에 선진국이 되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지금 우리가 이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변화하는가에 달려 있다. 어중간하게 개혁하는 모양만 갖추다가 다시 예전 행태로 돌아가면, 우리는 영구히 이류 국가로 남게 될 것이다.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것도 좋지만,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도 필요하다.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사회, 성실과 정직이 보상받는 사회, 투명하고 공정한 기회가 보장되는 사회, 공짜와 특혜가 없는 사회, 기강과 질서가 확립되어 있는 사회, 그것이 바로 선진사회이고, 이것이 바로 우리의 21세기 비전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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