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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기업 스스로 변하게 하라

그동안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구조조정이라는 것은 새 정부의 새로운 정책도 아니고, 외세가 강요한 것도 아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나라 대기업들과 은행들이 줄줄이 쓰러지고, 우리 경제 가 거덜나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일이었다. 특히 재벌들의 구조조정은 자율 조정에 맡기기에는 상황 이 너무 긴박했기 때문에 정부가 강압적으로라도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그동안 재벌개혁에 대한 정부의 상황 인식이었다.

그렇다면 그동안 정부의 직접 개입에 의한 재벌개혁 정책은 국 내 대기업들이 멸종위기에 처한 것도 모르고 변화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국익을 위해 강제로라도 이들의 행태를 바꾸어야 한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우리나라 재벌들이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정부보 다 모르고 있었을까? 또 정부가 기업의 생존 문제를 기업주보다 더 잘 알고 더 자기일처럼 생각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지 않다. 망해 도 기업이 망하는 것이고, 직접 피해를 보는 것도 기업인들인데 기 업이 원치 않는 구조조정을 정부가 강요하고 심지어 부담까지 떠맡 아야 할 근거는 취약하다.

애당초 기업구조조정은 정부의 역할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었 다. 경쟁력을 상실한 기업은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도태되게 되 어 있고, 또 도태되도록 하면 된다. 단지 한국에서는 이 과정이 마 비되어있었을 뿐이다. 실제로 지난 일년반 동안 정부가 한 일은 과 거와 달리 부실기업의 도산을 방관한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도산 을 모면한 기업들은 이제 과거처럼 차입경영, 족벌경영, 문어발 경 영을 해서는 안된다는 쓰라린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와서 경제가 조금 나아졌다고 해서 일부 재벌기 업들이 구조조정을 회피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 까? 그것은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체제가 과거와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문제가 많다고 여기는 재벌구조는 지난 30 여년간 형성된 국가관리체제의 산물이다. 과거와 같은 정치구조와 경제관리체제하에서는 재벌과 같은 기업구조가 살아남기에 가장 적 합한 최적 구조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의 국가관리체제가 과거 와 달라진 것이 없다면, 과거와 같은 기업구조와 행태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의 경영전략인 것은 당연하다. 요즈음 일부 재벌기업들의 행태가 다시 과거로 돌아가고, 구조조정에 소극적인 것처럼 보이는 배경에는 바로 이같은 기업들의 합리적이고도 예리한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재벌기업들로 하여금 스스로 변화하도록 할 수 있을까? 그 방법은 간단하다. 부실기업의 존폐를 정부의 권한과 역 할 밖으로 스스로 던져버리면 된다. 기업의 생살여탈권을 정부가 가지고 있는 한, 그리고 정부가 기업 경영에 개입하여 책임질 일을 자꾸 만드는 한, 합리적이고 이해타산이 빠른 기업인이라면 어느 누구도 구조조정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사람을 자르고 몸집을 줄여야 하는 고통스런 구조조정보다는, 기업 부실의 책임을 정치인과 관료들에게 떠넘겨 그들이 자기 기업을 감 히 도산시키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 훨씬 안전하고 편리한 생존전 략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벌들로 하여금 스스로 변화하도록 하려면, 먼저 정치 인의 경제 지배, 관료의 금융 지배부터 끝내야 한다. 그리고 기업 이나 은행이나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고 경쟁력을 상실하면 정부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기업인들과 은행인들이 진실로 깨닫도 록 하면 된다.

정부가 은행을 정책집행기관으로 만들어 구조조정을 압박하고 기업활동에 간섭하면 할수록, 기업들은 구조조정보다는 과거의 정 경유착, 특혜 경영의 나쁜 버릇에 더더욱 기를 쓰고 빠져들게 된다 는 점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