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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삼성車 처리와 시장원리

삼성자동차가 법정관리를 신청했다는 소식은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한 기업이 법정관리를 신청한다는 것은 사실상 그 기업이 빚을 더 이상 갚을 능력이 없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일단 그 기업이 퇴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기업도 아니고 우리나라 정상급 재벌인 삼성그룹의 삼성자동차가 더 이상 빚을 갚을 능력이 없다는 것을 자인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우리나라 경제에 전례 없는 일일 뿐 아니라 국내외적으로도 적지않은 충격이 될 것이다.

“5대기업도 퇴출된다”선례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면 이번 삼성자동차의 법정관리 신청을 계기로 그동안 우리경제의 운영 시스템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엄청나게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2년여 동안 우리 경제가 위기를 겪으면서 수없이 많은 크고 작은 기업들이 부도를 내고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퇴출당하였지만, 그동안 상위 5대 재벌의 계열기업들은 몇몇 방계기업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무풍지대로, 자금난으로 부도를 내거나 퇴출당한 기업은 단하나도 없었다.

물론 5대 재벌 계열사의 부도사태는 국가경제적으로 심각한 사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그동안 정부는 이들 계열사에 대해 원리원칙에 입각한 기업퇴출보다는 재벌간의 사업 맞교환을 통해 부실 기업을 연명시키는 소위 빅딜 정책을 추진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빅딜이라는 정책 자체가 시장원리에 맞지 않는 일종의 편법일 뿐 아니라, 그 때문에 그동안 추진과정에서 과도한 정부의 개입에 대해 많은 비판과 문제가 제기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이번 삼성자동차의 법정관리 신청을 빅딜의 무산으로 보는 시각도 있으나, 그보다는 오히려 이제는 최상위 재벌그룹 계열사라도 부도가 나고 퇴출당할 수 있다는 선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시장원리에 입각한 정상적인 기업 구조조정 원칙이 회복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다만, 이 과정에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조원이 넘는 개인재산을 내놓기로 했고, 이 돈을 삼성생명 주식을 매각하여 마련하도록 한 것은 원칙에서 벗어난 일이다. 실패한 사업에 대해 최대주주가 자기의 투자자본을 초과해서 사적으로 부담한 것은 이것이 비록 이건희 회장의 자발적인 행동이라고 해도 상법의 기본정신과 시장경제원칙에 위배되는 처사이다.

또한 이를 통해 채권자들은 거의 손실을 보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동안 삼성자동차에 돈을 빌려준 사람들도 책임의 일부를 져야 하는 것이 원칙에 맞는 일이다. 재벌기업에게 빌려준 돈은 기업이 망해도 떼이지 않는다는 선례를 만든다면 이것도 잘못된 일이다.

자동차 투자실패 책임져야

또한 삼성생명 주식을 상장시켜 매각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 특혜가 아니냐는 시비가 일고 있다. 그러나, 비상장회사의 주식이라고 해서 아무런 가치가 없는 휴지조각이 아니다. 다만 시장에서 형성된 시가가 없을 뿐이다. 따라서, 삼성생명 주식의 상장을 허용하는 것을 갑자기 주주들에게 수조원의 재산을 거저 얻게 하는 특혜라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삼성생명의 자산 중에 보험계약자의 몫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투명하고 정당한 절차에 의해 그 소유권을 인정해주고, 나머지 순자산을 기준으로 삼성생명의 주가가 산정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추정된 주당 70만원의 삼성생명 주가가 이것을 감안 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 점은 앞으로 논란의 대상이 될 것이다.

우리가 외환위기 직후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고 공기업 지분을 해외에 매각해야만 했던 이유가 우리가 가진 재력으로는 도저히 기업과 금융기관의 누적된 부실채권을 메울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동안 부실금융기관을 되살리기 위해 엄청난 규모의 국민세금을 투입하고, 일부는 외국인에게 매각해야만 했던 것이다.

이번에 삼성생명 주식의 상장을 허가하여 생긴 이익을 부실채권의 해소와 구조조정에 사용하도록 한것은 궁여지책이지만 지금의 우리 현실을 볼 때 일종의 묘수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삼성자동차의 처리가 지연되고 그로 인해 재벌구조조정이 지연되어 초래되었을 국민경제적 손실을 감안하면 일단 현실적인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삼성그룹의 과오투자와 삼성자동차의 실패로 인해 삼성그룹은 물론 국민경제적으로도 큰 손실과 부담을 안게 되었지만, 오히려 이것이 이제는 재벌기업도 부도가 날 수 있고, 5대 재벌이라도 잘못된 투자는 다 날릴 수 있다는 엄정한 시장경제의 원리를 우리경제에 확고하게 뿌리내리는 계기가 된다면,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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