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절 화폐가 뭐길래
1. 황금귀신 이야기
판소리 흥보가에는 흥보가 박통을 타는 대목이 나온다. "돈 봐라 돈 봐라, 얼씨고나 돈봐라. 잘난 사람은 더 잘난 돈, 못난 사람은 잘난 돈, 살리고 죽일 권리를 가진 돈, 부귀공명이 붙은 돈, 이놈의 돈아, 아나 돈아, 어디 갔다 이제 오느냐. 얼씨고나 좋을씨고, 얼씨고나 좋을씨고, 얼씨고 절씨고, 지화자 좋다."
돈을 싫어하고 마다할 사람이 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가난을 이겨내는 사람은 많지만, 재물(돈)을 이겨내는 사람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귀신도 돈은 어지간히 좋아하는 모양이다. 도깨비 이야기에 감초처럼 등장하는 것이 돈이다. 옛말에 제사상을 차리는데 들어간 돈이 많으면 귀신이 기뻐하고 조상님이 복을 내리신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옛날에 한 지독한 구두쇠 양반이 살고 있었다. 이 사람은 한번 수중에 들어온 돈은 도무지 쓸줄을 몰랐다. 돈이 생기는 족족 항아리에 담아 땅을 파고 묻어 두었다. 땅속에 묻혀서 오랜 세월을 지내야만 했던 돈들이 드디어 들고 일어났다. 하루는 꿈에 지하에 있던 금전·은전·동전이 노랑 귀신·하양 귀신·빨강 귀신으로 변신해 주인에게 나타나더니, "우리에게도 제발 자유좀 다오. 햇볕 한번 보게 해다오. 밖에 돌아다니고 싶으니 다리좀 다오. 돈은 돌아서 돈인데 왜 우리를 이렇게 사장(死藏)시켜 놓고만 있느냐. 우리를 사장했으니 너도 죽어라" 하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꿈에서 깬 주인은 며칠을 시름시름 앓더니 결국 죽고 말았다. 그뒤 식구들도 원인 모를 병에 걸려 한명 두명 죽어 나갔다. 궁궐같던 집은 순식간에 흉가로 변하고 말았다. 돈을 잘 대우하지 못한 탓에 돈귀신에게 당했다는 황금귀신 이야기이다
그런 집에 가난하지만 정직하고 베짱이 두둑한 한 젊은이가 들어가서 그 황금귀신을 물리치고 금은동전을 꺼내와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돈을 이기고 돈을 쓰는 사람은 살고, 돈을 감추고 쓰지 못하는 자는 죽는다는 돈에 관한 철학이 담겨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
2. 화폐의 뜻
돈. '돌고 돌아서 돈'이라는 돈. 잘 굴러다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돈.우리나라 화폐의 단위인 '원'이 한문의 둥글 원(圓)이 아닌가. 1962년 화폐개혁 이전에는 '환'이었는데 이것 역시 둥글다는 의미는 마찬가지이다. 화폐(돈)란 사전적 의미로 '상품의 교환가치를 나타내고, 상품을 교환할 때 매개물로 쓰이며, 동시에 가치저장의 수단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돈이란 상품을 매매하는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지불수단을 의미한다. 따라서 형태가 어떤 것이든 그것이 지불수단으로 통용되기만 하면 화폐라고 할 수 있다.
화폐와 비슷한 말로 통화(通貨, currency)가 있다. 통화는 화폐와는 약간 다른 개념이다. 화폐는 현금화폐를 말하며, 현금화폐와 수표를 합친 유통수단·지불수단으로서의 유통화폐를 줄여서 통화라고 부른다. 주식이나 채권은 넓은 의미의 돈은 되지만 통화라고 하지 않는다. 통화는 물건을 사거나 세금을 낼 때 언제든지 사용이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흔히 쓰는 유동성(流動性, liquidity)이라는 개념은 이와는 또 다르다. 유동성이란 사람들이 재산을 가능한 한 화폐의 형태로 보유하고자 하는 것을 말한다. 이 때 얼마나 빨리 화폐와 교환될 수 있는가에 따라 유동성의 크기가 달라진다. 똑같이 1억원 하는 금송아지와 아파트가 있다면, 금송아지가 유동성이 크다. 금송아지는 금은방에 가면 금방 현금과 바꿔주지만, 아파트는 최소한 며칠은 경과해야 현금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돈이 다른 물건과 교환되기 쉬운 성질은 물이 흐르는 것과 같이 유동적인 것이라는 데서 유동성이라고 하는 것이다.
1만원권 현금이더라도 쓰지 않고 평생 장롱속에 넣어두면 통화가 아니다. 통화는 시중에서 지금 사용되는 돈이며, 이를 전국적으로 합한 것이 통화량(通貨量)이다. 이 통화량이 적정수준 이상으로 늘어나면 물가가 오른다. 그래서 정부는 통화량이 같은 날 일시에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직업별로 월급날을 달리 하도록 권유한다. 같은 공무원이라도 부처에 따라 봉급날짜가 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3. 화폐의 출현
아주 옛날에는 화폐가 필요하지 않았다. 백만년전 선사시대의 사람들은 기아를 면하기 위해 먹을 것을 확보하는 일이 생존 그 자체였다. 남자들은 사나운 야생동물을 잡기 위해 집단으로 사냥을 나갔다. 여자들은 과일, 곡식, 뿌리를 찾아 산과 들을 헤매야 했다. 고된 하루의 일과가 끝나면 습득한 노획물들을 한데 모아 놓고 서로 나누어 가졌다. 자급자족의 경제였던 것이다.
그러나 사회가 좀더 발전하면서 자기에게 필요한 물건을 스스로 조달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지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서로에게 필요한 물건을 맞바꾸는 물물교환의 경제가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화폐가 등장하게 된다. 원시시대의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등지에서는 소금이 화폐로 널리 사용되었으며, B.C. 5000년경 지금의 터키 지역에서는 밀과 보리가 화폐의 역할을 했다. 돈이라고 불리는 것으로서 제일 먼저 나타난 '물품화폐'(commodity money)의 예들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물품화폐는 삼한시대 이전부터 사용된 곡물이었다. 가장 최근 들어서는 6·25사변 당시 피난지 부산에서 의약품이 화폐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4. 소금 이야기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소금이 중요한 화폐의 구실을 하였다는 사실이다. 흔히 사람들은 소금을 조미료 정도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세계에서 1년간 생산되는 소금의 총량 가운데 고작 5%만이 음식을 준비하고 간을 맞추는 데 쓰이고 있을 뿐이다. 소금은 약 1만 4천 종의 공정에 사용되며, 시장에 출하되는 거의 모든 화공품의 제조에 반드시 들어가는 물질이기도 하다. 여러 가지 용도 가운데서도 소금은 강철, 유리, 플라스틱, 제약, 심지어는 컬러TV 생산에서 특히 중요하다.
소금은 인류에게 알려진 광물 가운데서 다이아몬드 다음으로 견고한 물질이다. 이 때문에, 그리고 얼음과 눈을 녹이는 성질 때문에, 소금은 도로건설 및 겨울철 도로 유지에도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뿐만 아니라 소금은 신화에서나, 전설에서나, 미신에서나, 인간의 믿음이라는 식탁에서 항상 명예스러운 자리를 점하여 왔다. 예를 들어 소금을 엎지르면 악운을 뜻했고 그 악운을 풀기 위해서는 왼쪽 어깨 너머로 소금 한줌을 집어 던져야 했다. 서양에서 전해지는 얘기에 따르면 착한 귀신은 사람의 오른쪽 어깨 뒤에 서있고, 나쁜 귀신은 왼쪽 어깨 뒤에 서있다고 한다.
그래서 왼쪽 어깨 너머로 소금 한줌을 집어 던지면 소금이 나쁜 귀신의 눈으로 들어가 귀신이 하려고 하던 나쁜 짓을 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던진 소금이 같이 식사하던 어떤 사람에게 떨어질 경우, 그 사람은 악운에 시달리게 된다는 믿음도 있다.
스코틀랜드인들에게는 갓난 아기들을 그들을 헤치려는 악령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갓난 아기 옆에 소금을 놓아 두는 관습이 있다. 악령과 엎질러진 소금을 연관시키는 믿음은 기독교의 설화에까지 침투해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유명한 '최후의 만찬'에도 나타나 있다. 예수의 제자들이 모두 예수 주변에 모여 있는데, 배반자 유다 앞에는 뒤집힌 소금 그릇이 놓여 있다.
따라서 예로부터 소금이 중요한 화폐로 사용된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고대 로마제국의 병정과 관리들은 '살라리움'(salarium)이라고 하는 소금 배급을 받았다. 이는 소금이란 뜻의 라틴어로서, 영어의 '봉급'(salary)의 어원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콩고의 도로공사 노동자들이 소금으로 급료를 받았다고 하며, 뉴기니아에서는 지금까지도 거친 소금이 중요한 화폐로 남아 있다고 한다.
5. 화폐의 발달과정
그런가 하면 오늘날에도 남태평양의 피지섬에서는 일부 원주민들이 거북의 이빨을 돈으로 인정하고 있다. 돈이 필요한 원주민은 거북의 떼를 얕은 물가로 몰고 온다. 그러면 몇 마리가 진흙속에서 질식해 죽는다. 원주민은 그 이빨을 뽑아서 돈으로 쓴다.
그러나 물품화폐는 운반이나 저장이 불편하고 분할하기가 어려웠으며 동질성에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 '금속화폐'(metallic money)이다. 금속화폐는 내구성과 동질성 그리고 편리성을 비교적 골고루 갖추어 이전에 사용되던 모든 물품화폐를 물리치고 화폐의 왕좌를 차지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저울로 무게를 달아 가치를 따지는 '칭량화폐'(稱量貨幣)가 선보였다. 그러나 칭량화폐는 사용할 때마다 일일이 무게를 달아야 하는 수고로움과 진짜와 가짜를 구별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뒤따랐다.
이러한 불편을 덜어준 것이 '주조화폐'(鑄造貨幣)이다. 주조화폐는 일정한 양의 금속을 일정한 모양으로 주조한 것으로서, 무게를 달 필요 없이 개수만 세면 되는 편리함이 있었다. 그러나 주조화폐는 다액거래시 무거워 휴대나 운반하기가 불편했다.
이때부터 '지폐'(紙幣, paper money)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지폐의 특징은 실질가치와 명목가치가 다르다는 것이다. 이전의 물품화폐나 금속화폐는 자체의 실질가치와 화폐로서의 명목가치가 같았다. 소재로서 지니고 있는 가치가 곧 화폐로서의 가치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이에 반해 지폐의 경우 실질가치는 종이값과 인쇄비 정도가 고작인데, 명목가치는 수백배, 수천배가 될 수 있다.
가령 1만원권 지폐의 경우에 종이값과 인쇄비를 합쳐 1백원이 들어간다고 한다면, 명목가치가 실질가치의 1백배가 되는 것이다.
6. 그레샴의 법칙
그런데 실질가치가 큰 화폐와 작은 화폐가 똑같은 명목가치를 지닌 화폐로 동시에 유통되게 되면, 실질가치가 큰 화폐는 유통과정에서 사라지고 실질가치가 작은 화폐만이 계속 유통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것을 그레샴의 법칙(Gresham's law)이라고 한다.
이는 16세기에 영국의 금융가 토마스 그레샴(T. Gresham)이 제창한 법칙이다. 그는 재정에 밝았을 뿐만 아니라 런던 거래소의 설립자로도 유명하며 엘리자베스 1세의 재정고문관이기도 했다. 1558년 그는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재정상의 충고를 담은 서한을 바쳤는데, 그 첫머리의 글귀가 바로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한다'(Bad money drives out good)는 것으로서 뒤에 그레샴의 법칙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18세기 경까지만 해도 유럽에는 지폐가 없었고, 화폐는 모두 동화 아니면 은화였다. 그런데 왕은 재정상의 궁핍을 덜기 위하여 종종 화폐의 질을 떨어뜨리곤 했다. 가령 백원짜리 은화에는 백원 값어치의 은이 함유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 함량을 떨어뜨리고 명목만 백원이라고 하여 유통시켰던 것이다. 그렇게 되고 보니 사람들은 자연히 백원 어치의 은을 함유한 은화, 즉 양화는 깊숙이 보관하고 질이 나쁜 은화, 즉 악화로 지불을 하게 되었다. 그 결과 양화는 자취를 감추고 악화만이 유통되게 되었다. 결국 악화가 양화를 추방하고 만 셈이다.
1만원권 지폐가 두장 있다고 하자. 하나는 이제 막 한국은행에서 나온 빳빳한 새 돈이다. 다른 하나는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오래된 헌 돈이다. 사람들은 새 돈(양화)은 가지고 있으려고 하고, 헌 돈(악화)은 내다 쓰려고 한다. 그래서 시중에는 악화만 유통되고 양화는 구축되고 만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시중에 질이 나쁜 돈만이 범람하게 되고 질이 좋은 돈은 장농이나 금고속으로 들어가버려 결과적으로 질이 좋은 돈이 질이 나쁜 돈에 밀려나고 만다는 말이다.
오늘날 악화 중에서 최고의 악화는 지폐이다. 1만원권의 명목가치는 1만원이다. 그러나 그것의 실질가치는 종이조각에 불과하다. 메모지로서의 용도에 지나지 않는다. 1만원권의 실질가치는 명목가치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은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1만원권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유통되는 것이다. 만일 실질가치가 1만원 이상이라면 나오자 마자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실제 값어치가 더 나가기 때문에 유통되지 않고 금고속으로 숨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레샴의 법칙이 적용되는 경우이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그 예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부정한 방법으로 출세를 하는 사람이 득실거리는 사회에서는 청렴하고 정직한 사람들이 발붙일 틈이 없다. 불로소득이 만연하는 경제에는 성실하게 벌어들인 근로소득이 대우를 받지 못한다. 가짜의 등살에 눌려 진짜가 맥을 못춘다. 폭력적이고 선동만을 일삼는 학생들이 판을 치는 캠퍼스에서는 합리적이고 면학적인 학생들이 주눅이 든다. 16세기에 나온 그레샴의 법칙은 20세기가 다 지나가도 한국에서는 여전히 건재하고 있는 것이다.
돈이나 재화의 경우에는 양화가 아까워 집에 두고 악화만 유통시키면 이득이 될지 모르나,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좋은 인재(양화)를 집에 두고 해가 되는 사람들만 활동하도록 놔두면 안된다. 사람의 경우에는 악화는 집에 머물게 하고 양화는 유통시켜 국가와 사회에 공헌하도록 해야 한다.
7. 세계 최대의 황금창고
수 천년 동안 변함없이 인간의 사랑을 받아온 금속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금일 것이다. 금의 화폐적 가치는 별문제로 하더라도 인간들은 이 황색의 부드럽고 무겁고 번쩍거리는 금속이 그 자체로서 높은 가치가 있다고 믿어 왔다. 금은 여간해서는 파괴되지 않으며 절대로 녹슬지 않는다. 금은 권세와 영예 그리고 영속성의 상징으로 계속 남아 있을 것이므로, 금이 인간 세상에서 매력을 상실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오늘날에도 금은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개인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금은 유력한 부의 수단이다. 세계에서 황금덩어리가 가장 많은 곳은 어디일까. 뉴욕 맨하탄 거리 땅속 어디엔가에 세계 최대의 황금창고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맨하탄 남부 리버티 33번가에 있는 뉴욕 연방준비은행(FRB)의 2.5m 지하가 전세계 황금의 4분의 1 이상이 보관돼 있는 곳이다. 무게로 치면 9천 7백 50톤, 시가 1천 2백 60억 달러(약 1백조 8천억원) 상당의 금괴가 미식축구장 절반만한 크기의 지하창고에 차곡차곡 쌓여 황금벽을 이루고 있다. 해마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2만 2천명 수준에 이른다고 한다. 머지 않아 뉴욕의 관광명소로 자리잡을 추세다.
금괴 임자들 대부분은 외국의 중앙은행과 국제금융기구이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은 보관자의 역할을 할 뿐이다. 연방준비은행이 세계 최강국 미국의 정치중립기관이므로 안심하고 맡길 수 있고, 세계 금융의 중심도시가 뉴욕인 만큼 금을 결제수단으로 사용하는 거래의 경우 운반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점이 맨하탄의 지하로 세계의 금이 몰려든 이유이다. 특히 이곳에 금을 보관해둔 측끼리 거래를 하는 경우라면 창고안 금괴의 위치를 변화시키는 것만으로 지불이 완료된다는 것이다.
별도의 보관료는 없지만 금이 연방준비은행의 창고밖으로 나가거나 들어올 경우에 운반비를 내야 한다. 개당 13kg이나 되는 금괴를 벽돌처럼 쌓아 정리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어서 운반자들은 부상에 대비, 마그네슘으로 만든 특수신발을 신는다고 한다.
창고로 들어온 금은 감시·경호·금고서비스팀 등으로 구성된 통제그룹이 지켜보는 가운데 빛깔과 순도에 따라 등급이 매겨진다. 보관상태도 완벽에 가깝다. 특수경비대의 철저한 감시는 물론이거니와 구조물로 된 외벽에 둘러싸인 금고나 다름없다고 한다. 황금창고를 드나들 수 있는 문은 아예 없다. 단 다중 통제장치로 작동되는 자물쇠를 순서에 따라 열면 다음날 일정시간에 강철 콘크리트 구조물 사이를 수직으로 회전하는 강철 실린더가 90도 회전하면서 높이 2.7m, 폭 3m의 틈새를 드러낸다.
"부르스 윌리스 주연의 영화 '다이하드3'의 처음 구조는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보관된 황금을 탈취한 도둑과 이들을 추적하는 경찰에 대한 이야기였읍니다. 그러나 영화사측은 이곳의 시설을 둘러보고 난 후 아예 무대를 바꿔버리더군요." 1백% 안전보관을 자신한다는 연방준비은행 부총재의 설명이다.
8. 오늘날의 화폐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지폐를 일반적인 지불수단으로 사용하도록 법으로 정해 놓고 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지폐인 5천원권, 1만원권 등의 한국은행권이 바로 이러한 '법화'(法貨, legal tender)로서, 국내에서는 어떤 거래에서든지 지불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
지폐는 이전에 등장한 어떤 다른 화폐들보다도 우월하기는 하지만, 거액거래시 휴대가 불편하고 보관의 안전성에서도 불안한 측면이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등장하는 것이 예금화폐(預金貨幣, deposit money)이다. 예금화폐는 은행예금을 기초로 하여 발급되는 수표로서, 이 수표 위에 금액을 자유롭게 기재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주조화폐와 지폐 그리고 예금화폐가 혼용되고 있다. 그 중에서 비중이 가장 큰 화폐는 역시 예금화폐이다. 그러나 멀지 않은 미래에는 현금이나 수표가 필요하지 않은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컴퓨터와 통신기술의 발전이 새로운 화폐의 출현을 앞당기고 있는 것이다.
1. 황금귀신 이야기
판소리 흥보가에는 흥보가 박통을 타는 대목이 나온다. "돈 봐라 돈 봐라, 얼씨고나 돈봐라. 잘난 사람은 더 잘난 돈, 못난 사람은 잘난 돈, 살리고 죽일 권리를 가진 돈, 부귀공명이 붙은 돈, 이놈의 돈아, 아나 돈아, 어디 갔다 이제 오느냐. 얼씨고나 좋을씨고, 얼씨고나 좋을씨고, 얼씨고 절씨고, 지화자 좋다."
돈을 싫어하고 마다할 사람이 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가난을 이겨내는 사람은 많지만, 재물(돈)을 이겨내는 사람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귀신도 돈은 어지간히 좋아하는 모양이다. 도깨비 이야기에 감초처럼 등장하는 것이 돈이다. 옛말에 제사상을 차리는데 들어간 돈이 많으면 귀신이 기뻐하고 조상님이 복을 내리신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옛날에 한 지독한 구두쇠 양반이 살고 있었다. 이 사람은 한번 수중에 들어온 돈은 도무지 쓸줄을 몰랐다. 돈이 생기는 족족 항아리에 담아 땅을 파고 묻어 두었다. 땅속에 묻혀서 오랜 세월을 지내야만 했던 돈들이 드디어 들고 일어났다. 하루는 꿈에 지하에 있던 금전·은전·동전이 노랑 귀신·하양 귀신·빨강 귀신으로 변신해 주인에게 나타나더니, "우리에게도 제발 자유좀 다오. 햇볕 한번 보게 해다오. 밖에 돌아다니고 싶으니 다리좀 다오. 돈은 돌아서 돈인데 왜 우리를 이렇게 사장(死藏)시켜 놓고만 있느냐. 우리를 사장했으니 너도 죽어라" 하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꿈에서 깬 주인은 며칠을 시름시름 앓더니 결국 죽고 말았다. 그뒤 식구들도 원인 모를 병에 걸려 한명 두명 죽어 나갔다. 궁궐같던 집은 순식간에 흉가로 변하고 말았다. 돈을 잘 대우하지 못한 탓에 돈귀신에게 당했다는 황금귀신 이야기이다
그런 집에 가난하지만 정직하고 베짱이 두둑한 한 젊은이가 들어가서 그 황금귀신을 물리치고 금은동전을 꺼내와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돈을 이기고 돈을 쓰는 사람은 살고, 돈을 감추고 쓰지 못하는 자는 죽는다는 돈에 관한 철학이 담겨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
2. 화폐의 뜻
돈. '돌고 돌아서 돈'이라는 돈. 잘 굴러다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돈.우리나라 화폐의 단위인 '원'이 한문의 둥글 원(圓)이 아닌가. 1962년 화폐개혁 이전에는 '환'이었는데 이것 역시 둥글다는 의미는 마찬가지이다. 화폐(돈)란 사전적 의미로 '상품의 교환가치를 나타내고, 상품을 교환할 때 매개물로 쓰이며, 동시에 가치저장의 수단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돈이란 상품을 매매하는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지불수단을 의미한다. 따라서 형태가 어떤 것이든 그것이 지불수단으로 통용되기만 하면 화폐라고 할 수 있다.
화폐와 비슷한 말로 통화(通貨, currency)가 있다. 통화는 화폐와는 약간 다른 개념이다. 화폐는 현금화폐를 말하며, 현금화폐와 수표를 합친 유통수단·지불수단으로서의 유통화폐를 줄여서 통화라고 부른다. 주식이나 채권은 넓은 의미의 돈은 되지만 통화라고 하지 않는다. 통화는 물건을 사거나 세금을 낼 때 언제든지 사용이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흔히 쓰는 유동성(流動性, liquidity)이라는 개념은 이와는 또 다르다. 유동성이란 사람들이 재산을 가능한 한 화폐의 형태로 보유하고자 하는 것을 말한다. 이 때 얼마나 빨리 화폐와 교환될 수 있는가에 따라 유동성의 크기가 달라진다. 똑같이 1억원 하는 금송아지와 아파트가 있다면, 금송아지가 유동성이 크다. 금송아지는 금은방에 가면 금방 현금과 바꿔주지만, 아파트는 최소한 며칠은 경과해야 현금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돈이 다른 물건과 교환되기 쉬운 성질은 물이 흐르는 것과 같이 유동적인 것이라는 데서 유동성이라고 하는 것이다.
1만원권 현금이더라도 쓰지 않고 평생 장롱속에 넣어두면 통화가 아니다. 통화는 시중에서 지금 사용되는 돈이며, 이를 전국적으로 합한 것이 통화량(通貨量)이다. 이 통화량이 적정수준 이상으로 늘어나면 물가가 오른다. 그래서 정부는 통화량이 같은 날 일시에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직업별로 월급날을 달리 하도록 권유한다. 같은 공무원이라도 부처에 따라 봉급날짜가 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3. 화폐의 출현
아주 옛날에는 화폐가 필요하지 않았다. 백만년전 선사시대의 사람들은 기아를 면하기 위해 먹을 것을 확보하는 일이 생존 그 자체였다. 남자들은 사나운 야생동물을 잡기 위해 집단으로 사냥을 나갔다. 여자들은 과일, 곡식, 뿌리를 찾아 산과 들을 헤매야 했다. 고된 하루의 일과가 끝나면 습득한 노획물들을 한데 모아 놓고 서로 나누어 가졌다. 자급자족의 경제였던 것이다.
그러나 사회가 좀더 발전하면서 자기에게 필요한 물건을 스스로 조달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지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서로에게 필요한 물건을 맞바꾸는 물물교환의 경제가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화폐가 등장하게 된다. 원시시대의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등지에서는 소금이 화폐로 널리 사용되었으며, B.C. 5000년경 지금의 터키 지역에서는 밀과 보리가 화폐의 역할을 했다. 돈이라고 불리는 것으로서 제일 먼저 나타난 '물품화폐'(commodity money)의 예들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물품화폐는 삼한시대 이전부터 사용된 곡물이었다. 가장 최근 들어서는 6·25사변 당시 피난지 부산에서 의약품이 화폐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4. 소금 이야기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소금이 중요한 화폐의 구실을 하였다는 사실이다. 흔히 사람들은 소금을 조미료 정도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세계에서 1년간 생산되는 소금의 총량 가운데 고작 5%만이 음식을 준비하고 간을 맞추는 데 쓰이고 있을 뿐이다. 소금은 약 1만 4천 종의 공정에 사용되며, 시장에 출하되는 거의 모든 화공품의 제조에 반드시 들어가는 물질이기도 하다. 여러 가지 용도 가운데서도 소금은 강철, 유리, 플라스틱, 제약, 심지어는 컬러TV 생산에서 특히 중요하다.
소금은 인류에게 알려진 광물 가운데서 다이아몬드 다음으로 견고한 물질이다. 이 때문에, 그리고 얼음과 눈을 녹이는 성질 때문에, 소금은 도로건설 및 겨울철 도로 유지에도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뿐만 아니라 소금은 신화에서나, 전설에서나, 미신에서나, 인간의 믿음이라는 식탁에서 항상 명예스러운 자리를 점하여 왔다. 예를 들어 소금을 엎지르면 악운을 뜻했고 그 악운을 풀기 위해서는 왼쪽 어깨 너머로 소금 한줌을 집어 던져야 했다. 서양에서 전해지는 얘기에 따르면 착한 귀신은 사람의 오른쪽 어깨 뒤에 서있고, 나쁜 귀신은 왼쪽 어깨 뒤에 서있다고 한다.
그래서 왼쪽 어깨 너머로 소금 한줌을 집어 던지면 소금이 나쁜 귀신의 눈으로 들어가 귀신이 하려고 하던 나쁜 짓을 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던진 소금이 같이 식사하던 어떤 사람에게 떨어질 경우, 그 사람은 악운에 시달리게 된다는 믿음도 있다.
스코틀랜드인들에게는 갓난 아기들을 그들을 헤치려는 악령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갓난 아기 옆에 소금을 놓아 두는 관습이 있다. 악령과 엎질러진 소금을 연관시키는 믿음은 기독교의 설화에까지 침투해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유명한 '최후의 만찬'에도 나타나 있다. 예수의 제자들이 모두 예수 주변에 모여 있는데, 배반자 유다 앞에는 뒤집힌 소금 그릇이 놓여 있다.
따라서 예로부터 소금이 중요한 화폐로 사용된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고대 로마제국의 병정과 관리들은 '살라리움'(salarium)이라고 하는 소금 배급을 받았다. 이는 소금이란 뜻의 라틴어로서, 영어의 '봉급'(salary)의 어원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콩고의 도로공사 노동자들이 소금으로 급료를 받았다고 하며, 뉴기니아에서는 지금까지도 거친 소금이 중요한 화폐로 남아 있다고 한다.
5. 화폐의 발달과정
그런가 하면 오늘날에도 남태평양의 피지섬에서는 일부 원주민들이 거북의 이빨을 돈으로 인정하고 있다. 돈이 필요한 원주민은 거북의 떼를 얕은 물가로 몰고 온다. 그러면 몇 마리가 진흙속에서 질식해 죽는다. 원주민은 그 이빨을 뽑아서 돈으로 쓴다.
그러나 물품화폐는 운반이나 저장이 불편하고 분할하기가 어려웠으며 동질성에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 '금속화폐'(metallic money)이다. 금속화폐는 내구성과 동질성 그리고 편리성을 비교적 골고루 갖추어 이전에 사용되던 모든 물품화폐를 물리치고 화폐의 왕좌를 차지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저울로 무게를 달아 가치를 따지는 '칭량화폐'(稱量貨幣)가 선보였다. 그러나 칭량화폐는 사용할 때마다 일일이 무게를 달아야 하는 수고로움과 진짜와 가짜를 구별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뒤따랐다.
이러한 불편을 덜어준 것이 '주조화폐'(鑄造貨幣)이다. 주조화폐는 일정한 양의 금속을 일정한 모양으로 주조한 것으로서, 무게를 달 필요 없이 개수만 세면 되는 편리함이 있었다. 그러나 주조화폐는 다액거래시 무거워 휴대나 운반하기가 불편했다.
이때부터 '지폐'(紙幣, paper money)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지폐의 특징은 실질가치와 명목가치가 다르다는 것이다. 이전의 물품화폐나 금속화폐는 자체의 실질가치와 화폐로서의 명목가치가 같았다. 소재로서 지니고 있는 가치가 곧 화폐로서의 가치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이에 반해 지폐의 경우 실질가치는 종이값과 인쇄비 정도가 고작인데, 명목가치는 수백배, 수천배가 될 수 있다.
가령 1만원권 지폐의 경우에 종이값과 인쇄비를 합쳐 1백원이 들어간다고 한다면, 명목가치가 실질가치의 1백배가 되는 것이다.
6. 그레샴의 법칙
그런데 실질가치가 큰 화폐와 작은 화폐가 똑같은 명목가치를 지닌 화폐로 동시에 유통되게 되면, 실질가치가 큰 화폐는 유통과정에서 사라지고 실질가치가 작은 화폐만이 계속 유통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것을 그레샴의 법칙(Gresham's law)이라고 한다.
이는 16세기에 영국의 금융가 토마스 그레샴(T. Gresham)이 제창한 법칙이다. 그는 재정에 밝았을 뿐만 아니라 런던 거래소의 설립자로도 유명하며 엘리자베스 1세의 재정고문관이기도 했다. 1558년 그는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재정상의 충고를 담은 서한을 바쳤는데, 그 첫머리의 글귀가 바로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한다'(Bad money drives out good)는 것으로서 뒤에 그레샴의 법칙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18세기 경까지만 해도 유럽에는 지폐가 없었고, 화폐는 모두 동화 아니면 은화였다. 그런데 왕은 재정상의 궁핍을 덜기 위하여 종종 화폐의 질을 떨어뜨리곤 했다. 가령 백원짜리 은화에는 백원 값어치의 은이 함유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 함량을 떨어뜨리고 명목만 백원이라고 하여 유통시켰던 것이다. 그렇게 되고 보니 사람들은 자연히 백원 어치의 은을 함유한 은화, 즉 양화는 깊숙이 보관하고 질이 나쁜 은화, 즉 악화로 지불을 하게 되었다. 그 결과 양화는 자취를 감추고 악화만이 유통되게 되었다. 결국 악화가 양화를 추방하고 만 셈이다.
1만원권 지폐가 두장 있다고 하자. 하나는 이제 막 한국은행에서 나온 빳빳한 새 돈이다. 다른 하나는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오래된 헌 돈이다. 사람들은 새 돈(양화)은 가지고 있으려고 하고, 헌 돈(악화)은 내다 쓰려고 한다. 그래서 시중에는 악화만 유통되고 양화는 구축되고 만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시중에 질이 나쁜 돈만이 범람하게 되고 질이 좋은 돈은 장농이나 금고속으로 들어가버려 결과적으로 질이 좋은 돈이 질이 나쁜 돈에 밀려나고 만다는 말이다.
오늘날 악화 중에서 최고의 악화는 지폐이다. 1만원권의 명목가치는 1만원이다. 그러나 그것의 실질가치는 종이조각에 불과하다. 메모지로서의 용도에 지나지 않는다. 1만원권의 실질가치는 명목가치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은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1만원권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유통되는 것이다. 만일 실질가치가 1만원 이상이라면 나오자 마자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실제 값어치가 더 나가기 때문에 유통되지 않고 금고속으로 숨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레샴의 법칙이 적용되는 경우이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그 예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부정한 방법으로 출세를 하는 사람이 득실거리는 사회에서는 청렴하고 정직한 사람들이 발붙일 틈이 없다. 불로소득이 만연하는 경제에는 성실하게 벌어들인 근로소득이 대우를 받지 못한다. 가짜의 등살에 눌려 진짜가 맥을 못춘다. 폭력적이고 선동만을 일삼는 학생들이 판을 치는 캠퍼스에서는 합리적이고 면학적인 학생들이 주눅이 든다. 16세기에 나온 그레샴의 법칙은 20세기가 다 지나가도 한국에서는 여전히 건재하고 있는 것이다.
돈이나 재화의 경우에는 양화가 아까워 집에 두고 악화만 유통시키면 이득이 될지 모르나,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좋은 인재(양화)를 집에 두고 해가 되는 사람들만 활동하도록 놔두면 안된다. 사람의 경우에는 악화는 집에 머물게 하고 양화는 유통시켜 국가와 사회에 공헌하도록 해야 한다.
7. 세계 최대의 황금창고
수 천년 동안 변함없이 인간의 사랑을 받아온 금속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금일 것이다. 금의 화폐적 가치는 별문제로 하더라도 인간들은 이 황색의 부드럽고 무겁고 번쩍거리는 금속이 그 자체로서 높은 가치가 있다고 믿어 왔다. 금은 여간해서는 파괴되지 않으며 절대로 녹슬지 않는다. 금은 권세와 영예 그리고 영속성의 상징으로 계속 남아 있을 것이므로, 금이 인간 세상에서 매력을 상실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오늘날에도 금은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개인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금은 유력한 부의 수단이다. 세계에서 황금덩어리가 가장 많은 곳은 어디일까. 뉴욕 맨하탄 거리 땅속 어디엔가에 세계 최대의 황금창고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맨하탄 남부 리버티 33번가에 있는 뉴욕 연방준비은행(FRB)의 2.5m 지하가 전세계 황금의 4분의 1 이상이 보관돼 있는 곳이다. 무게로 치면 9천 7백 50톤, 시가 1천 2백 60억 달러(약 1백조 8천억원) 상당의 금괴가 미식축구장 절반만한 크기의 지하창고에 차곡차곡 쌓여 황금벽을 이루고 있다. 해마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2만 2천명 수준에 이른다고 한다. 머지 않아 뉴욕의 관광명소로 자리잡을 추세다.
금괴 임자들 대부분은 외국의 중앙은행과 국제금융기구이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은 보관자의 역할을 할 뿐이다. 연방준비은행이 세계 최강국 미국의 정치중립기관이므로 안심하고 맡길 수 있고, 세계 금융의 중심도시가 뉴욕인 만큼 금을 결제수단으로 사용하는 거래의 경우 운반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점이 맨하탄의 지하로 세계의 금이 몰려든 이유이다. 특히 이곳에 금을 보관해둔 측끼리 거래를 하는 경우라면 창고안 금괴의 위치를 변화시키는 것만으로 지불이 완료된다는 것이다.
별도의 보관료는 없지만 금이 연방준비은행의 창고밖으로 나가거나 들어올 경우에 운반비를 내야 한다. 개당 13kg이나 되는 금괴를 벽돌처럼 쌓아 정리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어서 운반자들은 부상에 대비, 마그네슘으로 만든 특수신발을 신는다고 한다.
창고로 들어온 금은 감시·경호·금고서비스팀 등으로 구성된 통제그룹이 지켜보는 가운데 빛깔과 순도에 따라 등급이 매겨진다. 보관상태도 완벽에 가깝다. 특수경비대의 철저한 감시는 물론이거니와 구조물로 된 외벽에 둘러싸인 금고나 다름없다고 한다. 황금창고를 드나들 수 있는 문은 아예 없다. 단 다중 통제장치로 작동되는 자물쇠를 순서에 따라 열면 다음날 일정시간에 강철 콘크리트 구조물 사이를 수직으로 회전하는 강철 실린더가 90도 회전하면서 높이 2.7m, 폭 3m의 틈새를 드러낸다.
"부르스 윌리스 주연의 영화 '다이하드3'의 처음 구조는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보관된 황금을 탈취한 도둑과 이들을 추적하는 경찰에 대한 이야기였읍니다. 그러나 영화사측은 이곳의 시설을 둘러보고 난 후 아예 무대를 바꿔버리더군요." 1백% 안전보관을 자신한다는 연방준비은행 부총재의 설명이다.
8. 오늘날의 화폐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지폐를 일반적인 지불수단으로 사용하도록 법으로 정해 놓고 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지폐인 5천원권, 1만원권 등의 한국은행권이 바로 이러한 '법화'(法貨, legal tender)로서, 국내에서는 어떤 거래에서든지 지불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
지폐는 이전에 등장한 어떤 다른 화폐들보다도 우월하기는 하지만, 거액거래시 휴대가 불편하고 보관의 안전성에서도 불안한 측면이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등장하는 것이 예금화폐(預金貨幣, deposit money)이다. 예금화폐는 은행예금을 기초로 하여 발급되는 수표로서, 이 수표 위에 금액을 자유롭게 기재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주조화폐와 지폐 그리고 예금화폐가 혼용되고 있다. 그 중에서 비중이 가장 큰 화폐는 역시 예금화폐이다. 그러나 멀지 않은 미래에는 현금이나 수표가 필요하지 않은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컴퓨터와 통신기술의 발전이 새로운 화폐의 출현을 앞당기고 있는 것이다.
'형설지공 > 경제경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 3 절 금융 이야기 (0) | 2001.03.08 |
---|---|
제 2 절 미래의 화폐 (0) | 2001.03.08 |
제 2 절 인플레이션 이야기 (0) | 2001.03.08 |
제 1 절 물가의 이해 (0) | 2001.03.08 |
제 4 절 족할 줄 아는 삶 (0) | 2001.03.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