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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제 1 절 물가의 이해

제 1 절 물가의 이해


1. 물가지수


요즘 들어 주부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월급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는데,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만 하니 말이다. 그렇다고 소비를 줄이려고 해도 이미 커진 씀씀이를 일시에 억제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는 부업을 생각하는 주부도 많지만, 마음에 드는 일자리를 찾기도 쉽지 않다.

물가가 오르면 서민들은 살림살이하기가 더욱 힘들어진다고 한다. 왜 그런가. 물가는 왜 오르는가. 물가는 어떻게 계산하는가. 물가가 오르면 어떻게 되는가. 이러한 물음들이 이 장에서 다루게 될 주요한 내용들이다.

먼저 물가란 무엇인가. 물가(prices)란 가격(price)과는 다른 말이다. 가격은 아이스크림, 쌀, 냉장고, 버스요금 등 개별상품 하나하나의 가치를 각각의 화폐액, 즉 돈으로 나타낸 것이다. 반면 물가는 여러 상품들의 가격을 평균해서 돈이 아닌 수치로 표시한 것이다. 이를 물가지수(price index)라고 한다.

물가지수는 우리 몸의 온도를 재는 체온계와도 같다. 몸이 정상인지 아닌지를 체온계를 통하여 알 수 있듯이, 생산·소비·유통 등 모든 경제활동의 결과가 물가지수를 통하여 나타난다. 따라서 물가지수는 경제의 흐름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경제지표이다.


2. 소비자물가지수


이러한 물가지수에는 소비자물가지수, 도매물가지수, 수출입물가지수, GNP디플레이터 등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그 중에서 가계생활과 가장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역시 소비자물가지수이다. 소비자물가지수(CPI: Consumer Price Index)란 전국 주요도시에서 거래되는 각종 상품의 가격과 서비스요금의 오르내림을 조사하여 일정기간 동안의 평균적인 변동상황을 알려주는 통계수치이다.

소비자물가지수는 1936년에 경성상공회의소에서 10개 품목을 조사대상으로 하여 서울시의 소매물가지수를 발표한 것이 처음이었으며, 1965년부터는 경제기획원에서 전도시의 소비자물가지수를 발표하기에 이르렀고, 1993년 이후부터는 통계청에서 이를 작성하고 있다.

소비자물가지수가 작성되어 발표되기까지의 과정을 간단하게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정부의 담당부처인 통계청에서는 매달 3회(5, 15, 25일)에 걸쳐 서울, 부산 등 전국 32개 도시의 64개 시장에 있는 약 6천개의 소매점포에서 거래되는 상품과 서비스의 개별가격동향을 7백여명의 지방통계사무소 직원들이 직접 재래시장, 백화점, 슈퍼마켓을 다니며 현장조사한 다음, 이를 컴퓨터에 전산 입력한다. 이 결과는 중앙컴퓨터에 전달되어 가중평균으로 계산된다.

현재 조사대상품목은 식료품 및 비식료품을 포함하여 470개이다. 여기서 식료품이란 쌀, 쇠고기, 채소, 과일, 외식비 등을 말하며, 비식료품에는 주거, 광열, 의류, 교육, 오락, 교통 등에 드는 비용이 포함된다. 조사대상품목은 그 중요도에 따라 가중치가 각각 다르며, 1천분비로 나타난다. 현재 단일품목으로서 가중치가 가장 높은 것은 쌀로서 가중치가 53.4이다. 이렇게 하여 작성된 소비자물가지수는 기준년도(현재는 1990년)의 지수를 100으로 한 것과 비교한 수치로 최종 조정되어 발표된다. 이 때 기준년도는 5년마다 재조정한다.

소비자물가의 조사대상품목은 사회생활상의 변화를 그대로 반영한다. 소비가 늘어나는 품목은 새로 포함되고 소비비중이 덜한 품목들은 탈락한다. 앞으로는 피자, 생수, 무선호출기(삐삐), 비디오테이프, 컴퓨터 디스켓, 고속도로 통행료, 수영장 이용료 등이 새로이 추가될 예정이다.


3. 통계물가와 피부물가


그런데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작성된 정부통계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소비자들이 실제 피부로 느끼는 체감물가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주부들이 장바구니에서 느끼는 물가가 그렇고, 봉급생활자가 점심값을 지불하면서 느끼는 물가가 그렇다.

이처럼 지수물가와 피부물가가 다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중요한 것 몇가지만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소비자물가지수는 470개나 되는 품목인데 비하여 실제로 소비자들이 시장에서 자주 구입하는 것은 생선, 채소, 과일 등의 식품이나 기본생활필수품들이다. 따라서 이들 품목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많이 오르더라도 전체 물가에는 작게 반영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하여 정부에서는 지난 1992년 5월부터 44개 품목의 '신선식품지수'와 33개 품목의 '기본생필품지수'를 소비자물가지수의 보조지표로서 발표하고 있다. 참고로 1994년 2월말 현재 1년전 대비 신선식품지수를 보면, 29.3%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나, 동기간 동안의 소비자물가상승률 6.8%와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둘째, 전반적인 소득수준이 향상되면서 소비의 고급화, 가족수의 증가, 자녀의 진학, 경조비의 증가 등으로 인하여 생활비가 늘어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것을 사람들은 물가상승에 따른 지출증가로 생각하기 쉽다. 물가가 올라가면 생활비는 당연히 늘어나겠지만, 물가가 오르지 않더라도 전보다 지출항목이 많아지면 생활비는 늘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개인의 지출규모가 증가한 것을 마치 물가가 크게 오른 것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용용이네 집은 얼마전 5년간 타던 자가용을 팔고 산뜻한 새차로 바꾸었다. 아빠가 승진하시면서 호봉이 올라 피자파이를 먹는 횟수도 많아졌다. 그런데 아빠는 일요일만 되면 결혼식에 간다고 축하금을 들고 나가시곤 한다. 엄마는 월급이 올라봤자 '물가가 너무 올라' 옛날보다 생활하기가 더 힘들어졌다고 매일 푸념이시다. 이 경우 용용이 엄마의 푸념에는 약간의 오해가 담겨 있다. 생활이 나아지지 않은 것은 물가가 올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지출증가로 인해 생활비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세째, 서비스요금은 농산물이나 공산품과는 달리 지역별·등급별로 가격차가 심하다. 그렇다고 해서 제공되는 서비스의 품질을 비교하는 것도 쉽지 않다. 가령 커피가격의 경우 현재 다방에서 판매하는 커피가격만이 조사되고 있다 보니, 호텔이나 카페 등에서 판매되는 커피값이 아무리 상승하더라도 소비자물가에는 전혀 반영이 되지 않고 있다.

네째, 주택소유 및 그 관련비용은 소비지출이라기보다는 투자지출의 성격이 강하다고 간주하여, 대부분의 국가에서 소비자물가지수 대상품목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전세 및 월세 등 집세만이 조사대상품목에 포함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이처럼 부동산가격이 소비자물가에 포함되어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부동산가격의 급등을 물가상승과 동일하게 보고 있다.

다섯째,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자기중심적인 생각이 강하다. 그래서 가격이 많이 오른 상품은 쉽게 기억하지만, 가격이 오르지 않거나 떨어진 상품은 별로 염두에 두지 않는 경향이 있다. 늑돌이는 동네가게에 갈 때마다 속이 상한다. 즐겨 먹는 아이스크림의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엄마한테 돈을 타내기가 예전보다 여간 어렵지 않다. "내가 싫어하는 종이와 연필값은 내렸는데, 하필이면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은 값이 올랐을까." 늑돌이는 온종일 그 생각만 하다 잠이 들었다. 그날밤 늑돌이는 가게집 아저씨가 공짜로 주는 아이스크림을 실컷 먹는 꿈을 꾸었다.

끝으로 공식적인 통계수치에는 잡히지 않지만, 가격인상과 다름없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가격은 그대로지만 질이 떨어졌거나, 질은 그대로이나 양이 줄어든 경우, 또는 정부의 단속으로 가격은 환원되었으나 위생상태나 서비스가 불량해진 경우 등이 그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통계물가와 체감물가간에 괴리가 발생하는 것은 물가지수 작성상의 애로사항과 소비자들의 물가지수에 대한 인식부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야기되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정부통계상의 물가와 소비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물가 사이의 괴리감을 줄이기 위해서는 우선 물가지수가 실제의 물가변동을 정확히 반영할 수 있도록 개선되어야 한다. 이와 함께 소비자들도 통계물가의 성격과 작성방식을 올바르게 이해함으로써, 주관적 판단에 의해 통계물가를 무조건 불신하거나 경시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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