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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제 3 절 잘못된 소비

제 3 절 잘못된 소비


1. 피라미드 판매


소비는 참으로 가치있는 경제행위이다. 그것은 즐거움을 주고,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준다. 그러나 지나침은 부족함만 못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합리적인 소비생활을 하지 못하면 반드시 부작용이 따른다. 그리고 그 부작용은 소비자들에게 유형·무형의 손해를 입히는 경우가 많다. 그 가운데 사행심에 현혹되어 큰 피해를 입는 사례로서 피라미드 판매조직에 의한 사기가 있다.

원래 피라미드란 말은 '높이'라는 뜻의 '피레무스'에서 왔다. 피라미드 하나를 완성하는 데에만 10만명의 사람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피라미드에 쓰일 돌을 운반할 도로를 만드는 일에 10년, 기반과 지하실을 만드는데 또 다른 10년이 걸렸다고 한다. 가장 큰 피라미드를 올리는데 2.5t짜리 돌이 자그마치 230만개가 들어갔다고 한다. 바벨탑 이후 인류가 쌓아올린 실로 어마어마한 구조물이다.

피라미드를 쌓는데 사용되는 돌들은 위로 올라갈수록 그 숫자가 줄어든다. 마침내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는 단 하나의 돌만이 놓이게 된다. 아래의 돌은 위의 돌을 떠받치기 위해 존재한다. 결국 가장 정상에 있는 돌 하나를 떠받들기 위해 수백만개의 돌들이 들어간 것이다.

이렇게 하여 피라미드는 고대 이집트문명을 대표하는 상징물이 된다. 그러나 오늘날 피라미드의 이미지는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다. 소수의 특권층을 위해 다수의 서민이 존재하는 정치구조를 빗대어 피라미드구조라고 부르기도 한다. 경제에서는 '피라미드 판매'라는 말이 있다.

피라미드 판매는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는 사기판매이다. 원래 1940년대 미국에서 처음 시작된 이 판매방식은 물건을 사는 사람이 동시에 파는 사람이 된다. 피라미드 사기조직은 "며칠 내로 투자액의 2-3배를 벌도록 해주겠다"고 유혹한다. 일부 쉽게 돈을 벌어보려는 사람과 주부 또는 청소년들이 주된 피해자들이다.

먹이사슬의 맨 위에 소수의 사기꾼들이 앉아 있고, 물건을 구입한 사람은 곧 판매원이 되면서 피라미드 판매는 시작된다. 물건을 구입한 고객을 새로운 판매원으로 끌어 들여 다시 물건을 판매한다. 소비자가 판매원으로 둔갑해 새끼치기 식으로 조직을 불려 나가기 때문에 순식간에 방대한 유통망을 형성한다.

이같은 사기조직은 현재 전국적으로 5백여개에 달하며, 피해자만도 2만여명에, 피해액이 어림잡아 1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고대문명의 상징물이다. 그러나 피라미드 판매는 사기 상술의 한 전형에 지나지 않는다.

한편 피라미드 판매와 유사하지만, 합법적으로 인정되는 방문판매방식으로 '다단계 판매'가 있다. 다단계 판매가 피라미드 판매와 다른 점은 판매원과 소비자가 단순히 상품만을 거래한다는 것이다. 다단계 판매는, 판매원이 상품을 팔면서 소비자에게 "물건을 사용한 후 품질이 좋으면 다른 사람에게도 권하고, 대신 실적이 있으면 후원금(소비자가격의 25% 이내)을 주겠다"고 제의해 판매를 확산시키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피라미드 판매가 입회비 등의 명목으로 고가의 상품을 떠맡은 판매원이 상품을 팔기보다는 다른 판매원을 끌어들이는데서 주된 수입을 올리는 것과 비교해 볼 때, 다단계 판매는 상품 판매를 통하여 수입을 올린다는 점에서 피라미드 판매와 분명히 구별된다. 현재 법으로 허용된 건전한 다단계 판매회사는 화장품, 세제, 건강식품 등 소비성 상품의 판매만을 원칙으로 하고, 1백만원 미만의 물품만을 취급해야 한다.

그러나 방문판매방식이 원래 그러하듯이 다단계 판매 역시 대부분 혈연이나 학연 등에 의해 거래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품질보다는 인정에 이끌려 상품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해당상품이 등록된 업체에 의해 만들어 졌는가를 반드시 확인하고 구입해야 한다. 또한 구입한 상품을 반품하고 싶을 때는 물품을 받거나 계약서를 작성한 후 20일 이내에, 방문판매는 10일 이내에 반품신청을 하면 된다.

현재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다단계 판매와 피라미드 판매가 엄격히 구별돼, 다단계 방식은 허용되지만, 피라미드 방식은 계속 불법으로 간주되어 처벌받고 있다. 소비자들의 입장에서는 불법적인 피라미드 판매와 합법적인 다단계 판매를 분명히 구별하여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2. 과시소비


요사이 우리 주변에는 남의 시선은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나만 좋으면 된다는 식의 소비행태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 마치 돈으로 한풀이라도 하려는 듯이 무분별하고 지나친 소비를 일삼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의식속에 내재되어 있는 생각은 무엇일까. 남을 의식하지 않는 분에 넘치는 소비는 과연 옳은 것일까.

이를 가리켜 흔히 우리는 '과소비'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여기서 말하는 과소비란 원래 경제용어라기보다는 국민계몽운동적인 성격이 강한 용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경제학에서는 과소비와 비슷한 말로 과시소비(conspicuous consumption)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과시소비란 자기가 경제적 또는 사회적으로 남보다 앞선다는 것을 여러 사람들 앞에서 보여주려는 본능적 욕구에서 나오는 소비를 말한다. 결국 과시소비란 돈을 가지고 남들 앞에서 자신의 신분을 높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소비이다. 따라서 이 소비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일수록, 그리고 실제보다 대개는 과장되게 나타나곤 한다.

대도시일수록 과시소비가 많이 나타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도시에서는 보이지 않는 경쟁이 치열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경제능력을 남들이 알아줄 기회가 별로 없는 관계로, 전시적이고 과시적인 소비를 자주 하게 된다. 결국 도시생활에서의 체면유지를 위해 가족수보다 훨씬 큰 집을 장만해야 하고, 고급 승용차를 구입해야 하며, 장식용일지라도 피아노를 구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가 하면 모임은 호텔에서 가져야 하고, 스포츠는 골프를 즐겨야 한다.

1994년 현재 전국에서 운영중인 골프장은 85곳. 여기에다 이미 허가를 받아서 건설중에 있는 111곳까지 합하면, 앞으로 196곳의 골프장이 운영될 것이다. 이는 면적으로 따져 여의도의 약 70배, 경기도 전체면적만한 귀중한 땅이 골프장으로 사용되게 되는 것이다. 물론 푸른 초원과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숨가쁜 도시생활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 하겠으나, 문제는 우리의 실정에서 과시적 소비를 부추기고 환경오염 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는데 있다.


3. 모방소비


이처럼 사람들이 과시소비를 하려고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베블렌(T. Veblen) 같은 경제학자는 사람의 본능적 욕구에서 그 원인을 찾으려고 한다. 그는 사람이란 무엇인가 자기 것을 만들고 창조하려는 본능이 있고, 그런 다음에는 남의 것을 약탈하고 지배하려는 본능이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이리 저리 분주히 뛰지만,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하면 '지배본능'을 통해 자신의 능력과 존재가치를 과시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원시사회에서는 힘센 무사들이 자기집 대문앞에 자기가 죽인 적들의 목을 달아매놓음으로써 힘을 과시하곤 했다. 사실 인류역사의 오랜 기간이 노예의 역사였으며, 미국의 경우 1865년까지만 해도 노예가 합법적으로 공인된 사회였던 것만 보아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요즈음의 지배본능은 옛날처럼 칼이나 무력을 휘둘러대는 것이 아니라 돈을 많이 버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배본능이 과시본능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기업가정신을 영어로 'animal spirit'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나, 몇몇 거대한 다국적기업들이 한 나라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것들이 오늘날 지배본능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우리들 주변을 살펴 보면 소위 '돈좀 있다'는 사람들이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하여 눈에 거슬리는 호화사치생활을 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런데 더욱 문제는 주위에서 정도에 지나친 생활을 하는 사람을 보면 이를 무시하거나 핀잔을 주어야 할텐데, 오히려 없는 사람들까지도 있는 척하면서 그들을 부러워하고 모방하려고 애쓴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행동은 지배본능과는 다른 형태인 '모방본능'이 아닌가 생각된다.

과시풍조를 모방하려는 예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유명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나오는 영화배우 클라크 게이블은 선천적으로 어깨가 낮은 관계로 양복 어깨에 딱딱한 받침을 넣어 입었는데, 이것이 뒤에 유행하여 너도 나도 양복에다 받침을 넣어서 입고 다니게 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한국의 청소년들이, 외국의 패션잡지나 국내 유명 연예인들의 복장을 흉내내어 입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심지어 그들의 신발까지도 그대로 따라서 신고 다니는 행동은 못말리는 모방본능이다. 그것은 개성있는 행동이라기보다는 자존심 없는 흉내내기에 불과하다.

모방본능은 필연적으로 '모방소비'를 부추긴다. 모방소비란 내게 꼭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남들이 하니까 나도 따라서 무작정 하는 식의 소비이다. 마치 남이 시장에 가니까 나도 장바구니 들고 덩달아 나서는 격이다. 이러한 모방소비는 참여하는 사람들의 수가 대단히 많다는 점에서 과시소비 못지 않게 큰 경제악이 된다.


4. 구성의 오류


이와 같은 과시소비나 모방소비가 인간의 본능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본다면, 그것이 좋다, 나쁘다고 단정지어 말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인위적으로 다스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과시소비는 한 사람의 행동이 다른 사람과 이웃에 미치는 영향력의 관점에서 신중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문제이다.

자신의 입장에서는 분명히 옳다고 생각한 행동이 구성원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옳지 않은 행동이 되고 마는 경우를 우리는 주변에서 많이 목격한다. 가령 차량이 매우 혼잡한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어떤 차량이 급한 용무가 있다고 하여 신호를 무시하고 질주하는 경우 그러한 행동은 본인 개인의 입장에서는 옳다고 판단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을 신호대기 중인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가지고 있다면, 차량으로 뒤엉켜 오히려 시간만 훨씬 많이 소모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 것이다. 논리학에서 말하는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던 쓰레기의 문제만 해도 그렇다. 나 하나쯤 음식쓰레기 좀 버린다고 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겠느냐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버리다 보니 전국적으로는 그 쓰레기량이 엄청날 정도로 늘어나 국토를 크게 오염시키고 있다.

그 결과 이러한 오염원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투입되어야 하는데, 그 재원은 두 말할 것도 없이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마련해야 한다. 결국 자신이 버린 쓰레기를 자신이 낸 세금으로 치우는 셈이다. 무심결에 내가 버린 쓰레기가 부메랑(boomerang)이 되어 다시금 내게 되돌아오는 셈이다.

과시소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내 돈으로 마음껏 쓴다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식으로 무분별하고 비이성적인 소비를 하게 되면, 서로 과시하고 싶거나 모방하고 싶은 심리가 발동하여 비정상적인 소비생활이 만연하게 된다. 그 결과 사회전반에 걸쳐 낭비적이고 사치적인 소비풍조가 싹터 온 나라를 향락적·퇴폐적 분위기로 몰고 간다. 오렌지족의 등장, 각종 청소년문제 등 오늘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들 가운데 상당 부분이 경제에 대한 그릇된 인식, 특히 잘못된 소비문화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5. 졸부들의 행진


"압구정동 오렌지족 등 가진 자를 증오한다. 욕만 나온다. 백화점에서 한번에 7백만원 이상씩 쓸 수 있는 사람들이 싫었고 돈을 빼앗고 싶었다." 무고한 시민을 납치하여 잔인하게 살해한 '지존파' 일당이 검거된 후 '가진 자'들에 대해 갖고 있던 적개심의 일부를 드러낸 말이다. 이들의 끔찍한 범행이 용서받을 수 없는 죄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일부 부유층과 그 자녀들의 천민적 행태가 소외계층의 복수심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중증에 빠져 있는 것이 현재의 우리 사회가 아닌지 또한 묻고 싶은 심정이다.

소외계층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위화감을 느끼게 하는 현장을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집단이 오렌지족이다. 이들은 대형 승용차나 외제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한달에 수백만원, 많게는 1천만원이 넘는 돈을 물쓰듯 쓴다.

또한 고가의 사치품도 일반인들에게는 소외감과 함께 심한 상대적 박탈감을 가져다 준다. 서울의 수입의류 전문점에서는 한 벌에 3백만원이 넘는 여성복, 2백만원짜리 블라우스, 한켤레에 40만원하는 발리구두, 10만원짜리 손수건 등도 품질보다는 단지 외제고 비싸다는 이유만으로 날개 돋힌듯 팔려 나간다.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가 이런 사람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되고 있다. '졸부들의 행진'에 사회가 들썩이고 있다. '졸부들의 문화'가 사회 구석구석에 스며들고 있다. 과시소비가 그렇고 과소비 또한 다를 바 없다. 정작 내게 필요해서가 아니라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돈을 마구 쓰는 것이다.


6. 자동차의 홍수


과시소비의 사례는 자동차의 소유 형태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잘 아는 바와 같이 한국은 석유자원이 전혀 없는 데다가 국토가 좁아 도로사정이 비좁을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교통체제도 당연히 버스나 전철 등 대중교통수단이 중심이 되도록 짜여졌어야 한다. 그런데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미국처럼 승용차 중심의 교통체제가 짜여져 있는 것이다.

미국은 드넓은 국토에 비해 인구는 상대적으로 적으므로 주로 고속도로망을 이용하는 승용차 중심의 교통체제가 오히려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사정은 그렇지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용차 보유대수는 매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것도 중형차와 대형차의 비중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1987년만 해도 자가용 승용차 대수가 70만대에 불과했으나, 1995년에는 무려 520만대로 급증하여 평균 2가구당 1대꼴로 자가용 승용차를 소유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또한 전국에 있는 총자동차의 약 67%에 해당하는 높은 수치이다.

승용차의 고급화·대형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국민차(경차)와 소형차의 비중은 갈수록 감소하고 있다. 지난 1990년만 해도 소형차가 전체 승용차 시장의 절반 이상(54.0%)을 차지했으나, 1992년 36.9%, 1993년 31.8%, 1994년 22.8% 등으로 매년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배기량 8백cc급의 경차는 1992년 6.8%에서 1994년에는 3.8%로 뚝 떨어졌다. 반면에 배기량 1천 8백-2천cc급 중형차의 경우 1992년 17.8%에서 1993년 18.9%, 1994년 24.2% 등 시장점유율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한편 도로여건이나 부존자원면에서 우리와 비슷한 유럽이나 일본의 경우에는 소형 승용차의 비중이 훨씬 높다. 1993년 현재 1천cc 이하 소형 승용차의 비중은 이탈리아가 50%, 프랑스가 36%, 일본이 26%이다. 우리나라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소득수준에서 우리보다 훨씬 높은 이들 국가의 국민들이 도로여건이나 석유자원이 부족하다는 점을 감안하여 소형차를 선택하는 것은 대단히 합리적이고 성숙한 판단이다. 반면에 도로여건이 너무도 비좁을 뿐만 아니라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승용차, 그것도 중·대형 승용차의 보급이 급속히 늘어나는 추세는 매우 비합리적이고 낭비적인 선택이 아닐 수 없다. 한 마디로 형편과 분수를 모르는 소비행태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자동차 제조회사들에게도 문제가 있다. 소비자들의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자가용 승용차를 구입하는 선택기준이 가격보다는 안전성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함에 따라, 상대적으로 튼튼하다고 생각되는 중·대형차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만일 자동차 제조회사들이 지금보다 안전성이 훨씬 향상된 소형 승용차를 생산한다면, 소비자들의 자동차 선호도에 많은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앞으로는 자가용 승용차의 개념이 부를 과시하는 수단이 아니라 편리함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바뀔 것이다. 이 점을 국내의 자동차 생산회사들은 잘 알고 있다. 그들의 분발을 촉구한다.

자가용 차의 홍수로 서울·부산 등 대도시에서는 출퇴근시 도로가 온통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하기 일쑤이고, 교통체증으로 인해 차량운행속도가 해가 갈수록 점점 떨어져 물동량 수송에 막대한 차질을 빚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도로에 선채 낭비하는 시간과 기름량을 따지자면 이만 저만 큰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는 460km이다. 화물차의 고속도로 주행속도가 80km인 점을 감안하면 쉬었다 간다 해도 6-7시간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다. 그런데 실제로 서울-부산간 컨테이너 운송시간은 평균 12시간 50분이다. 무려 2배의 시간이 소요되고 있는 것이다. 교통체증으로 길에다 돈을 깔고 다니는 셈이다.


7. 현대판 아방궁


주택의 경우는 어떠한가. 현재 우리나라의 도시화율(=도시인구/전체인구)은 74% 수준으로 선진국 평균 70%를 상회하는 높은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도시가구의 주택보급률은 불과 50%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도시가구 둘 중에 하나는 내집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 짓는 아파트나 단독주택의 규모는 점점 더 커져만 간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나라는 국토는 좁은데 비하여 인구는 상대적으로 많다. 비좁은 땅에서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려면 당연히 집의 규모가 필요 이상으로 커서는 안될 것이다. 그런데도 실제로는 소형 아파트보다는 대형 아파트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큰 규모의 아파트만 짓는 건설업자들에게도 문제가 있겠으나, 사람들이 큰 평수의 아파트만을 선호하는데, 자기들인들 기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푸념에는 할 말이 없다.

결국 더 큰 문제는 넓은 평수의 아파트만을 고집하는 소비자들에게 있다. 꼭 더 큰 집에서 살아야 자신이 남들보다 부자이고 앞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대형 아파트를 구입하고, 결과적으로 아파트의 가격만 상승시키는 셈이 되었다.

물론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겠지만, 서울의 몇몇 빌라들은 호화스러움의 극치를 보여 준다. 현대판 아방궁과도 같은 이들 호화빌라에는 골목 입구에 경비초소가 있어서 대낮에도 경비원이 삼엄한 경비를 펴고 있다고 한다. 출입문에는 컴퓨터시스템이 도입되어 자가용이 경적을 세번 울리면 대문이 자동으로 열리게 되어 있다.

창틀은 아프리카 케냐산 원목을 사용했고, 창문 또한 적외선 감지장치의 이중창으로 문을 닫고 있어도 통풍이 되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집내부는 온통 호화 수입자재들로 가득하다. 바닥에는 평당 50만원 가는 이태리제 대리석이 깔려 있는가 하면, 오스트리아제 샹들리에, 5백만원짜리 미국산 욕조세트, 핀란드식 2인용 사우나시설 등 007영화에서나 나올듯한 초호화판 내장재들로 꾸며져 있다. 심지어는 실내에 인공폭포가 설치되어 거실 한쪽에 희한한 바위들을 배경으로 폭포가 쏟아지고, 고작 3, 4층 빌라에 엘리베이터 시설까지 갖추어져 있다고 한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을 뿐만 아니라 분노가 치밀 정도로 한심스러운 사람들이다. 자기만 잘 입고 잘 먹고 잘 놀면서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벌면 된다는 식의 생각은 자본주의 본래의 목적에도 어긋나는 '천민자본주의'(pariah capitalism)적인 발상이다.

자본주의의 중요한 특징들 가운데 하나는 개인의 경제활동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개인의 소비행위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잘사는 사람이든 못사는 사람이든 자신의 소득을 가지고 마음대로 자유로운 소비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자유에는 항상 책임이 뒤따르듯이, 자유로운 소비행위에도 늘 책임이 수반된다. 일찍이 경제학의 시조인 애덤 스미스가 말한 것처럼, "낭비하는 자는 사회의 공적이며, 절약하는 자는 공공의 은인"인 것이다.


8. 남아프리카 양의 슬픈 운명


최근 성장제일주의적인 경제정책을 펼치는 과정에서 부동산투기 등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막대한 불로소득을 챙긴 계층의 전시적이고 과시적인 소비행위가 만연되면서, 이것이 일반 국민들의 모방적인 소비를 부추김으로써 사회전반에 사치와 낭비풍조가 팽배하고 있는 현상은 매우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 결과 1994년의 1인당 국민소득은 8천 달러에 불과한데, 소비수준은 1만 5천 달러의 선진국들을 능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1년에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두배나 된다면 그 나라의 장래는 결코 밝지 못하다.

남아프리카에 사는 동물 중에 스프링복(springbok)이라는 양이 있다. 그런데 스프링복은 평소에는 평화롭게 풀을 뜯다가도 큰 무리를 이루면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고 한다. 무리가 크다 보니 맨뒤에서 따라가던 놈들에게는 먹을 풀이 거의 남아있지 않게 된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먼저 풀을 뜯어먹으려고 앞으로 나간다. 다른 양들도 뒤쳐지지 않으려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다 보니 모든 양들이 뒤질세라 뛰기 시작한다. 한번 이러한 뜀박질이 시작되면 무리 전체로 파급되어 모든 스프링복이 일시에 뛰기 시작한다.

수천 수만 마리의 양떼가 밥을 먹을 틈도 없이, 밤과 낮을 가릴 겨를도 없이, 산을 넘고 들을 지나 앞으로만 앞으로만 달려간다. 그러다가 어느 때가 되면 큰 강에 당도하게 된다. 그러나 빠른 속도로 달려온 스프링복의 무리는 미처 정지할 틈도 없이 강으로 뛰어든다. 아니 뒤쪽에서 밀려드는 무리에 떠밀려 바다속으로 빠지고 만다. 목적도 모르고 앞으로만 달려간 스프링복의 비극이다.

남아프리카 양의 슬픈 운명이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은 남이 한다고 해서 무턱 대고 따라 하다가는 큰 화를 당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총체적 과소비' 현상은 상당히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소비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분수에 맞지 않게 과도하고 무분별한 소비는 개인과 국가를 몰락시키는 결정적인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많은 역사적 사실을 통하여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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