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절 농업을 살리는 길
1. 정부가 나서라
농산물시장이 완전히 개방되어 수입농산물이 쏟아져 들어오면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국내산 농산물은 설 땅을 잃을 수 밖에 없다. 이제는 농산물도 공산품과 마찬가지로 본격적인 경쟁의 시대에 접어 들었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수입농산물이 따라올 수 없는 고유한 특성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현재 수입농산물과의 경쟁에서 앞설 수 있는 품목은 별로 많지 않다.
쌀의 경우 1994년 연평균 소비자가격을 기준으로 비교해 볼 때 우리나라가 태국에 비해서는 4배 가량, 미국보다는 1.6배 가량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소값의 경우도 미국보다 4배 이상, 호주보다는 7배 이상 비싼 실정이다.
더욱이 지금처럼 농촌이 도시에 비해 생활하기가 더욱 어려운 실정에서는 자체적으로 경쟁력을 키우기란 거의 절망에 가깝다. 따라서 농업이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정부의 과감한 투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시기는 많아야 10년 남짓하다. 농산물의 안정적인 공급원을 확보하는 일은 민족의 생존과도 직결되는 문제인만큼 온 국민의 지혜를 모아 합리적인 대안들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농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부가 농업에 대해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인식을 대전환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공업 위주의 불균형성장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과정에서 농업은 상대적으로 소외될 수 밖에 없었고, 그 결과 농업은 자립의 기반을 점점 상실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바람직하지 못한 경제현실은 상당 부분이 정부의 경제정책에 기인한 것이므로, 도농간 불균형의 해소를 통한 국토의 균형발전이라는 차원에서도 앞으로 정부의 투자우선순위가 농업부문에 주어져야 할 당위성이 있는 것이다.
우선 대대적인 농업구조개선을 위해 정부가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지금과 같이 단위당 생산비가 외국에 비해 턱없이 높은 상황에서는 도저히 경쟁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생산비를 낮출 수 있는 방안들을 다각적으로 모색하여 실천에 옮겨야 한다. 이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과제가 과학영농과 영농의 기계화를 이루는 것이다. 경지정리사업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과학영농을 위한 연구개발에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2. 희망의 싹
이와 관련한 한 가지 사례를 들면, 농촌진흥청에서는 못자리를 만들지 않고 논에 직접 파종하는 재배기술을 연구하여 현재 거의 실용화 단계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이 기술은 기계이양식에 비해 육모비용을 98%나 절감할 수 있는 획기적인 재배기술이다. 농촌진흥청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논을 갈지 않고 직접 파종하는 '직파'재배기술을 오는 1997년까지 농가에 보급할 계획으로 있다. 이는 과학영농을 위한 꾸준한 연구가 가져온 결실이며, 첨단농업기법의 개발을 위해 정부가 더욱 적극적인 지원을 할 필요가 있음을 반증해주는 좋은 사례이다.
그런가 하면 경상남도 농촌진흥원에서는 콤바인으로 쌀을 수확하면서 동시에 보리를 파종할 수 있는 '2모작 직파재배법'을 개발했다. 이 차세대 농사법은 콤바인 뒷부분에 파종기를 달도록 고안된 특수 콤바인이 벼를 수확함과 동시에 보리를 파종토록 되어 있다. 또 보리 수확철에는 보리를 수확함과 동시에 볍씨를 파종할 수 있어 연중무휴로 연작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시험재배 결과 벼농사의 경우 10에이커당 파종시간은 1.5시간으로 일반적인 경운기계 모내기 때의 4.3시간보다 65% 이상 노동시간이 절약된 반면, 수확량은 일반농사법과 비슷한 469kg으로 나타났다. 이 농사법이 본격적으로 보급되면 노동력 부족으로 줄어드는 보리재배면적을 늘릴 수 있고 쌀 생산원가를 줄일 수 있어 국가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과거에 감자는 가난과 굶주림으로 허덕이던 사람들이 먹는 주식의 대명사였다. 그러나 지금은 프렌치프라이 등 젊은층이 선호하는 식품의 재료로 쓰이고 있다. 그런데 최근 대관령에 있는 농촌진흥청 고냉지 시험장에서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우량 씨감자를 수경재배로 대량생산하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한국산 감자는 프렌치프라이를 만들기에는 알이 너무 잘아 부적당했다. 그래서 미국에서 냉동수입한 감자를 사용했다. 이번에 개발된 씨감자로 생산하면 감자알은 과거보다 굵어지고, 생산비도 절약된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얼마전 충북 괴산군에 사는 한 농민은 '왕실'이라는 이름의 신품종 사과를 만들어 일본과 미국으로부터 로얄티를 받고 팔게 되었다고 한다. 화훼농민이 경작하는 장미 한 송이마다 선진국에 로얄티를 지불하고 있는 실정을 감안할 때, 이러한 신품종의 개발은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농업부문의 R & D는 자칫 경시되기 쉽다. 국가도, 기업도, 개인도 농업부문 연구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는 안된다. 우수한 인력의 배분도 문제다. 법대나 의대로만 가는 수재들 가운데 일부만 농업부문에서 활동해도 우리 농업은 달라질 것이다. 비단 우루과이라운드가 겁이 나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생명과 생존을 귀중히 여긴다면 농업에 대한 연구와 지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3. 품질로 승부를
농산물의 생산비용을 낮추기 위한 부단한 노력과 함께 병행해야 할 것이 있다. 일반적으로 경제학에서 말하는 경쟁의 개념에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을 바탕으로 하는 '가격경쟁'과, 다른 경쟁상품보다 품질에서 앞섬으로써 경쟁력을 갖는 '품질경쟁'의 두 가지가 있다. 위에서 말한 생산비의 절감을 통한 가격경쟁은 우리 경제의 여건상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품질경쟁에 주력하는 것이다.
더욱이 사람들의 소득수준이 향상되면서 소비의 추세도 양보다는 질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특히 농산물의 경우에 고품질의 상품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경쟁력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1992년에 과천 정부종합청사의 국무위원 식당에서 각계인사 50여명이 초청되어 한국의 신품종인 일품(一品)벼, 일본이 자랑하는 고시히카리, 미국의 칼로스 등 5개 품종의 쌀밥시식회가 열린 적이 있다. 여기에서 단연 뛰어나다는 찬사를 받은 것은 다름아닌 일품벼였다.
이는 우리 쌀이 품질경쟁에서는 오히려 우위에 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머지 않아 핑크빛에 향기 나는 쌀도 선보일 예정으로 있다고 한다. 더 나아가 모양이나 빛깔, 맛, 향기 면에서 더욱 우수한 쌀품종이 개발될 수 있도록 끊임없는 연구와 투자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일품벼의 사례는 우리의 모든 농산물이 고품질의 다품종 생산체제로 전환하여 고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4. 대수술의 시작
한 마디로 전통적인 농업생산방식의 부분적인 개선이 아닌 생산체계의 일대혁신만이 앞으로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를 위해서는 인식의 대전환이 있어야 한다. 즉, 농산물이 생산되어 소비자들에게 판매되기까지 '생산-저장-가공-유통-판매'의 모든 과정에서, 생산되는 부가가치의 대부분이 생산자인 농민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먼저 생산과 관련해서 살펴 보면, 첫째, 기존의 개별영농이나 일부에서 거론되고 있는 기업영농의 생산방식보다는, 마을단위나 더 확대해서 면단위의 '협동영농'방식이 가장 바람직한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전북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에서는 20농가가 무공해 논딸기를 재배하기로 하고, 재배에서 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작업을 공동으로 해나갔다. 이들은 재배기술이나 기타 생산과정에서의 문제점들을 함께 토의하면서 개선해나가, 1992년에는 총 4억원의 수입을 올려 농가당 2천만원씩의 소득을 얻었다. 이러한 방식은 기존의 영세성을 극복함과 동시에 부가가치가 실제로 생산에 참여한 농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는 점에서 적극 권장할만한 대안이라고 생각된다.
5. 유기농법
둘째, 유기농법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 앞으로 우리 농업이 찾아내야 될 활로 가운데 하나가 유기농업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유기농업은 자연생태계의 순환에 순응하는 농법이다. 화학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다. 설사 사용하더라도 소량에 그친다. 즉, 유기농법은 오염이 안된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법인 것이다.
지난 1960-1970년대에 우리 농업은 식량증산이라는 기치 아래 대량생산체제로 개편되었다. 모든 농업생산물에 화학비료가 남용되었다. 그 결과 토양은 날로 피폐화되고 작물의 생장력은 날로 약해졌다. 각종 병충해가 기승을 부렸고,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갈수록 독성이 강한 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이 유기농업이다.
생명자원인 농산물은 종류가 매우 다양하지만 그 나라, 그 지역의 기후와 토양에 최적인 작목이 있게 마련이다. 유기농법이야말로 환경을 보전할 뿐만 아니라 무공해농산물을 생산한다는 점에서 혁신적인 농법이다. 그 동안의 농업생산방식이 수입농업이었다면 유기농업은 '한국식 농업'이다. 지역의 특성에 맞는 유망한 작물들을 개발한 다음, 유기질비료 등을 사용한 유기농법을 통하여 농약이나 화학비료의 사용을 퇴치하고 장기적으로는 토양을 개선해 나가면, 오히려 병충해가 생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농약 등을 사용하지 않은 무공해농산물이라는 이점 때문에 비록 높은 가격이더라도 도시의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호응을 얻을 것이다.
이미 선도적인 일부 농민들은 전국 곳곳에서 유기농법이라고 하는 희망의 불씨를 키워 나가고 있다. 현재 유기농업을 하고 있는 전국의 농가는 약 3천 가구 정도이다. 이는 총 농가수의 0.15%에 해당한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작물의 특성이나 기술미비 등으로 부득이 소량의 화학비료를 과도기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준(準)유기농업인구까지 합하면, 약 3만명의 농민이 자연농업인 유기농업에 승부를 걸고 있다.
농업에 관한 한 가장 전문가는 농민이다. 실제로 충북 청원군 신니면 용원리에서 17년간 유기농업을 하고 있는 한 농민은, 야산기슭 1만평의 농토에 벼와 각종 채소류 35종을 심어 1994년 한 해에 5천만원의 순수익을 거뒀다. "10년전만 해도 6백만원 수준이던 수입이 4년전부터 수요증가와 함께 본궤도에 오르기 시작했어요. 같은 규모의 일반농가 수입 2천만원선에 비해 많은 편이지만 화학비료나 제초제 등을 쓰지 않음으로 해서 드는 노동강도는 몇배 이상입니다."
최근에는 오리를 이용하여 농약없는 쌀을 생산하려는 노력도 선보인다. 경남 울산시 농촌지도소에서 시도하고 있는 이른바 '오리농법'이 그것이다. 이 농사법은 벼이삭이 패기 직전인 8월초까지 논에 오리를 풀어 기르면 제초제와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쌀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으로, 농촌진흥청의 시험연구 결과 이미 '실천가능한 농법'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오리가 부리와 발로 바닥을 파헤치며 해충을 잡아 먹으면 잡초 제거와 해충 방제가 가능해진다. 뿐만 아니라 논물을 휘저어 산소를 공급하고 벼포기를 흔들어 자극을 주게 돼 벼의 뿌리 활력을 강하게 한다는 것이다. 또 오리 배설물은 양질의 유기질 비료가 돼 일반 논에 비해 질소비료를 50% 가량 줄일 수 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오리를 이용한 농사법은 농약이나 비료 사용에 따른 비용 절감과 수질오염 방지는 물론 노령화된 농촌 노동력도 절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유기농업과 관련하여 축산농가의 분뇨를 퇴비공장으로 완벽히 수거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재활용이 가능한 동물 폐기물은 일반 폐기물과 구분, 퇴비장으로 직결시킴으로써 퇴비생산비를 줄이고 환경오염을 예방하는 여러 가지 효과를 거두자는 것이다.
6. 소비자를 왕으로
세째, 특화작목을 개발하여 전문화해야 한다. 좁은 농지에서 여러 품종을 경작해서는 경쟁이 되지 않는다. 지역의 기후와 토양에 맞는 작목이 있게 마련이다. 가령 강원도 대관령이나 전북 남원 운봉 등 고지대에는 고냉지 채소나 감자와 같은 작목을 특화하여 집중적으로 재배할 경우, 상대적으로 품질면에서 우위에 있게 되어 충분한 상품가치가 있다. 또한 오랜 동안 특화작목을 재배하는 과정에서 축적된 노하우는 더 양질의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네째, 소비자를 생각하는 농업이 되어야 한다. 앞으로는 국내산 뿐만 아니라 외국산 농산물과도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그러므로 농산물을 생산하는 사람들은 옆집의 김서방, 옆마을의 이서방이 무엇을 생산하는가만 볼 것이 아니라, 미국의 카우보이씨, 중국의 띵호아씨, 호주의 캥거루씨, 네델란드의 풍차씨가 무엇을 어떻게 생산하는가도 생각하며 농사를 지어야 할 시점에 와있다. 그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소비자들이 진정으로 원하고 찾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같은 값이면 품질이 우수한 상품을, 같은 품질이면 값이 싼 상품을, 그리고 값이 비싸더라도 품질이 뛰어난 상품을 선호하는 것은 모든 소비자들의 공통된 심리이다. 농산물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소비자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정확히 파악하여 거기에 맞는 농산물을 생산하고 공급해야 한다.
소비자들의 애국심이나 애향심에 호소하여 국산품을 애용해야 한다거나, 농업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전통적인 산업이니까 보호받아야 한다는 식의 소극적이고 나약한 사고로는 국제화 및 개방화 시대에 살아 남을 수 없다.
7. 일석이조
다음으로 저장시설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자. 농산물은 신선도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생산 못지 않게 보관의 문제도 중요하다. 특히 농산물의 특성상 수확기에는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고 비수확기에는 물량이 없어 팔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당연히 가격 또한 계절에 따라 들쭉날쭉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 농산물의 안정된 가격체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산지에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 지역에 대형의 저온저장시설을 갖추어야 한다. 여기에 소요되는 막대한 재원은 정부와 농협 등의 단체가 부담해야 한다. 지금처럼 일부 중간상들이 수확기에 많은 물량을 싼값에 '사서 재어 놓기'했다가 가격이 폭등하는 비수확기에 방출하여 톡톡한 재미를 보는 일이 계속된다면, 이는 중간상만 배부르게 하고 생산자와 소비자는 피해를 보게 하는 꼴이 되고 만다.
또한 농산물의 가공과 관련해서도 개선해야 될 문제점들이 있다. 오늘날 한국의 재벌들은 거의 예외없이 식품가공업에 진출하고 있다. 높은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처럼 앞을 다투어 경쟁하지는 않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식품가공업에 농민조직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여기에서 발생하는 부가가치를 농민의 손에 돌아가게 하자는 것이다.
경북능금농협에서 생산하는 '우리천연능금쥬스'가 그 가능성을 밝게 해주는 대표적인 히트상품이다. 국내시장 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수출되고 있는 이 사과쥬스는 주산지인 경북지역의 사과로 생산하기 때문에 산지의 생산농가에게는 안정된 수입원을 보장해줄 뿐만 아니라 현지주민의 고용까지도 해결해 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전남 해남에서 생산되는 참다래 역시 비슷한 성공사례이다. 이 곳의 참다래 생산농가들은 '한국 참다래 유통사업단 영농조합 법인'을 설립하여, 주주의 자격으로 직접 경영에도 참여하고 있다. 참다래는 수입 키위보다 맛이 좋아 국내 소비자들에게도 인기가 있을 뿐만 아니라, '참다래 캔'의 형태로 가공되어 국내시장 및 대만과 캐나다 등 해외시장에 수출까지 되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가공농산물이 개발·보급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과감한 투자가 필수적이다. 특히 각 지역마다 산재해 있는 농공단지를 활용하는 방안도 효율적이라고 본다. 이렇게 되면 산지에 근접함으로써 얻게 되는 여러가지 이점들과 함께 여기에서 나오는 수익금이 해당농민조직을 통하여 농가에 분배되고 고용증대효과도 가져와 농외소득의 증가에도 기여할 수 있다.
8. 재주는 곰이 넘고
다음으로는 농수산물 유통구조의 개선을 들 수 있다. 우리 속담에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주인이 챙긴다"는 말이 있다. 땀흘려가며 애써서 생산하는 사람은 농민인데, 정작 돈을 챙기는 사람은 유통업자들이다. 농수산물 유통과정이 너무 복잡하여 농어민은 땀흘려 생산만 하고 돈은 중간상에게 돌아가는 지금의 유통구조를 시급히 개혁해야 한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마디로 심지 않고 거두려는 사람을 줄이자는 것이 유통구조개선이다. 유통과정에서 불로소득을 얻는 중간상인, 매점매석으로 이익을 보는 계층 모두를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1994년의 농림수산부 자료에 따르면, 무, 배추, 마늘 등 10개 주요 농산물의 유통마진율이 평균 52.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배추의 경우에는 유통마진율이 79.8%로 나타나, 가령 소비자가 1천원을 주고 배추 1포기를 사면 8백원 가량이 유통과정에 있는 수집상, 중간상, 소매상에게 돌아가고 정작 생산농민은 2백원 밖에 받지 못한다는 말이 된다.
유통실태를 조사한 결과 충남 아산에서 농민이 포기당 1백 85원에 판 배추를 산지수집상은 2백 25원 60전, 위탁도매상은 2백 40원, 중간도매상은 4백 50원에 각각 넘겼으며, 소매상은 생산지가격의 5배에 해당하는 9백원에 최종소비자에게 팔았다.
심지어 1995년 9월 23일 현재 서울에서는 배추 한 포기의 최종 소비자가격이 무려 5천원이 넘는 믿기지 않는 일까지 일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산농민이 받는 가격은 형편 없이 낮다. "농산물값을 소비자가격의 절반만 받아도 우루과이라운드 파동은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을 것이다"는 농민의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신선도를 유지해야 하는 농산물의 수집과 보관 및 유통이 중간상인의 손에 들어가다 보니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 식품치고 날 것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야채나 과일, 생선에 방부제를 뿌린 악덕상인이 구속되는 사례가 빈번하며, 영세상인은 물론 심지어 유명 백화점조차 유통기일을 속여 팔다가 적발되기도 한다.
생산자와 소비자는 물론이거니와 안정된 식생활과 국민건강을 동시에 보호한다는 차원에서도 전근대적이고 복잡한 농수산물의 유통구조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그 재원은 정부와 농수축협 등이 부담해야 한다. 그리하여 저장창고는 물론 생산지와 소비지의 유통시설들을 대대적으로 확충해 중간유통단계를 대폭 줄여 나가야 한다.
9. 1촌 1동 운동
마지막으로 농산물의 판매에 관해 언급하겠다. 농산물의 판매에 있어서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은 직거래 체계를 확대하는 일이다. 도시와 농촌간에 직거래망을 구축하게 되면, 농민은 안정된 판로를 확보할 수 있고, 도시민은 좋은 품질의 농산물을 믿고 구입할 수 있다.
가령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의 아파트 단지와 전북 완주군 고산면이 농산물 직거래 계약을 체결하여, 현지에서 생산한 신선하고 위생적인 농산물이 소비자들에게 직송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거래방식이 이미 일부 농민과 대도시 소비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농산물 직거래는, 생산자의 입장에서는 확실한 판로를 보장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중간유통과정을 줄임으로써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어서 좋고, 도시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복잡한 유통단계를 거쳐서 사먹는 농산물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신선한 농산물을 구입할 수 있어서 좋다. 농민은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고, 도시민은 더 싸게 사먹을 수 있는 것이 직거래 방식의가장 큰 장점이다.
'1촌(村) 1동(洞) 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러한 농산물 직거래 방식은 또한 도시에 사는 주민과 청소년들이 현지를 직접 방문하여 농촌의 어려운 실상을 몸소 체험함으로써, 생명산업인 농업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자연스럽게 흙의 소중함을 깨닫는 기회도 될 것이다.
10. 일본시장을 잡아라
원래 농산물은 공산품과는 달리 쉽게 상하거나 변질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에 근접한 나라가 경쟁에서 훨씬 유리하게 되어 있다. 지금 세계에서 농산물을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는 다름 아닌 일본이다. 우리는 세계 최대의 농산물시장을 바로 코앞에 두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대한 우리의 농산물 수출량은 중국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 등 우리보다 지리적으로 먼 아시아 국가들에도 밀리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과거 대일 농산물 수출에서 드러난 몇가지 고질적인 문제점들을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품질관리상의 문제를 들 수 있다. 국내시장에서 판매하는 농산물의 판매방식이 대개 그러하듯, 눈짐작으로 상품·중품등을 가려내어 포장을 한다. 그런데 이처럼 낙후된 품질관리로는 식성이 까다롭기로 소문난 일본인들의 기호를 충족시킬 수 없다.
둘째, 신용상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납기일자나 선적일자를 어기는 경우가 종종 있는가 하면, 농산물의 국내 공급물량이 달려 국내시장에서 가격이 오르기라도 하면, 일본측 수입업자와의 계약을 어기고 국내시장에 내다 팔아버리는 경우조차 생기기도 한다. 이와 같은 신용도의 저하는 일본 수입업자들이 한국으로부터 떠나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세째, 상도덕상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 수출이 잘돼 주문이 늘어나면 질이 낮은 물건까지 마구잡이로 섞어서 수출하는 경우가 있다. 현지에서 이러한 물건을 구입한 소비자가 갖게 되는 불신감은 한국의 농산물 전체에 파급되어 매우 좋지 못한 인상만 심어줄 뿐이다.
일본인들은 "눈과 코로 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식품의 모양과 향기를 중시하고, 양보다는 질을 따지는 경향이 있다. 일본인들의 기호가 까다롭다는 것은 잘 이용만 하면 오히려 농산물 수출을 늘리는 데 유리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신선도나 당도 등에서 철저히 고품질의 농산물로 대응하고, 위생면이나 신용면에서 높은 신뢰도만 얻는다면, 일본에 대한 농산물의 수출 전망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우리가 가장 유리하다. 가령 배편으로 수송할 경우 우리는 하루면 되지만, 대만은 3-4일, 덴마크는 1개월이나 소요된다.
그러므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및 생산자단체가 합동으로 대일 농산물 수출증대를 위한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한 방안들 가운데에는 유망특화작물의 재배단지를 조성하고, 유통기간의 단축을 통하여 신선도를 유지하며, 포장규격 준수 및 품질등급별 분류를 철저히 시행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 아울러 보다 광범위한 판매망을 확보하기 위하여 일본 현지에 있는 대형슈퍼마켓 등과의 직거래를 적극 추진하고, 일본 전역을 순회하는 식품전시회 등을 수시로 개최하여 우수한 우리 농산물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전략도 긴요하다고 본다.
11. 소비자가 할 일
농촌을 지키고 농업을 유지·발전시키는 데에는 소비자들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일본의 농촌에서 농산물이 유통되는 과정을 보면, 농업이 결코 농민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좋은 농산물을 알아주는 소비자가 있어야 농민들이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소비자들로부터 주문을 받아 전국 각지의 생산자단체와 연결, 좋은 농산물을 가정에 배달해주는 '소비생활협동운동'이라는 조직이 패전직후부터 후생성의 법적인 보호 속에 성장해 왔다. 또한 이같은 조직은 주부들의 주도로 결성되어 운영되고 있다. 상근직원의 90% 이상이 주부들이라고 한다. 무조건 값싼 농산물을 찾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식품을 사자는 소비자들의 운동이야말로 우리 농촌을 지키는 또 하나의 힘이 될 것이다.
12. 농업은 산업의 뿌리
이상에서 농민이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농업이 경쟁력을 갖추며, 농촌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농민들의 힘만으로는 절대 불가능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농업의 문제는 정부와 농민 그리고 도시민이 다같이 힘을 모을 때만 가능하다. 우선 정부는 과거 1960-1970년대에 공업부문에 그랬던 것처럼 이제는 농업부문에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 생산자인 농민은 보다 좋은 농산물을 안전하고 신선하게 공급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생산에 임해야 한다. 소비자인 도시민들 또한 가족의 위생과 건강이 달려 있 는 식품의 안전한 확보를 위해 해야 할 역할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농업문제를 경제적인 시각에서만 접근해서는 안된다.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 2만달러로 높아져도 도시와 농촌이 고루 발전하지 않으면 갈등은 더욱 커진다. 농촌이 살아야 민족이 산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설령 국민소득수준이 제자리 걸음을 할지라도 계층간에 고루 잘 살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국가의 먼 장래를 위해서도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산업을 나무에 비유하자면, '농업은 나무의 뿌리이고, 공업은 나무의 줄기이며, 상업은 나무의 잎'이다. 아무리 줄기가 굵고 잎이 무성하다고 해도 뿌리가 튼튼하지 못하면 그 나무는 오래 살지 못한다. 그동안 우리는 눈에 잘 띠는 줄기와 잎을 무성하게 하는데만 신경을 썼지 눈에 잘 띠지 않는 뿌리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뿌리가 많이 약해졌다. 이제 약해진 뿌리를 강하게 키울 때다. 튼튼한 뿌리로 거듭 날 때 한국경제라는 나무는 더 커다란 거목으로 자랄 것이다. 농업이 없는 산업, 농촌이 없는 도시, 농민이 없는 민족은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1. 정부가 나서라
농산물시장이 완전히 개방되어 수입농산물이 쏟아져 들어오면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국내산 농산물은 설 땅을 잃을 수 밖에 없다. 이제는 농산물도 공산품과 마찬가지로 본격적인 경쟁의 시대에 접어 들었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수입농산물이 따라올 수 없는 고유한 특성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현재 수입농산물과의 경쟁에서 앞설 수 있는 품목은 별로 많지 않다.
쌀의 경우 1994년 연평균 소비자가격을 기준으로 비교해 볼 때 우리나라가 태국에 비해서는 4배 가량, 미국보다는 1.6배 가량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소값의 경우도 미국보다 4배 이상, 호주보다는 7배 이상 비싼 실정이다.
더욱이 지금처럼 농촌이 도시에 비해 생활하기가 더욱 어려운 실정에서는 자체적으로 경쟁력을 키우기란 거의 절망에 가깝다. 따라서 농업이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정부의 과감한 투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시기는 많아야 10년 남짓하다. 농산물의 안정적인 공급원을 확보하는 일은 민족의 생존과도 직결되는 문제인만큼 온 국민의 지혜를 모아 합리적인 대안들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농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부가 농업에 대해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인식을 대전환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공업 위주의 불균형성장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과정에서 농업은 상대적으로 소외될 수 밖에 없었고, 그 결과 농업은 자립의 기반을 점점 상실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바람직하지 못한 경제현실은 상당 부분이 정부의 경제정책에 기인한 것이므로, 도농간 불균형의 해소를 통한 국토의 균형발전이라는 차원에서도 앞으로 정부의 투자우선순위가 농업부문에 주어져야 할 당위성이 있는 것이다.
우선 대대적인 농업구조개선을 위해 정부가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지금과 같이 단위당 생산비가 외국에 비해 턱없이 높은 상황에서는 도저히 경쟁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생산비를 낮출 수 있는 방안들을 다각적으로 모색하여 실천에 옮겨야 한다. 이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과제가 과학영농과 영농의 기계화를 이루는 것이다. 경지정리사업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과학영농을 위한 연구개발에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2. 희망의 싹
이와 관련한 한 가지 사례를 들면, 농촌진흥청에서는 못자리를 만들지 않고 논에 직접 파종하는 재배기술을 연구하여 현재 거의 실용화 단계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이 기술은 기계이양식에 비해 육모비용을 98%나 절감할 수 있는 획기적인 재배기술이다. 농촌진흥청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논을 갈지 않고 직접 파종하는 '직파'재배기술을 오는 1997년까지 농가에 보급할 계획으로 있다. 이는 과학영농을 위한 꾸준한 연구가 가져온 결실이며, 첨단농업기법의 개발을 위해 정부가 더욱 적극적인 지원을 할 필요가 있음을 반증해주는 좋은 사례이다.
그런가 하면 경상남도 농촌진흥원에서는 콤바인으로 쌀을 수확하면서 동시에 보리를 파종할 수 있는 '2모작 직파재배법'을 개발했다. 이 차세대 농사법은 콤바인 뒷부분에 파종기를 달도록 고안된 특수 콤바인이 벼를 수확함과 동시에 보리를 파종토록 되어 있다. 또 보리 수확철에는 보리를 수확함과 동시에 볍씨를 파종할 수 있어 연중무휴로 연작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시험재배 결과 벼농사의 경우 10에이커당 파종시간은 1.5시간으로 일반적인 경운기계 모내기 때의 4.3시간보다 65% 이상 노동시간이 절약된 반면, 수확량은 일반농사법과 비슷한 469kg으로 나타났다. 이 농사법이 본격적으로 보급되면 노동력 부족으로 줄어드는 보리재배면적을 늘릴 수 있고 쌀 생산원가를 줄일 수 있어 국가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과거에 감자는 가난과 굶주림으로 허덕이던 사람들이 먹는 주식의 대명사였다. 그러나 지금은 프렌치프라이 등 젊은층이 선호하는 식품의 재료로 쓰이고 있다. 그런데 최근 대관령에 있는 농촌진흥청 고냉지 시험장에서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우량 씨감자를 수경재배로 대량생산하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한국산 감자는 프렌치프라이를 만들기에는 알이 너무 잘아 부적당했다. 그래서 미국에서 냉동수입한 감자를 사용했다. 이번에 개발된 씨감자로 생산하면 감자알은 과거보다 굵어지고, 생산비도 절약된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얼마전 충북 괴산군에 사는 한 농민은 '왕실'이라는 이름의 신품종 사과를 만들어 일본과 미국으로부터 로얄티를 받고 팔게 되었다고 한다. 화훼농민이 경작하는 장미 한 송이마다 선진국에 로얄티를 지불하고 있는 실정을 감안할 때, 이러한 신품종의 개발은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농업부문의 R & D는 자칫 경시되기 쉽다. 국가도, 기업도, 개인도 농업부문 연구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는 안된다. 우수한 인력의 배분도 문제다. 법대나 의대로만 가는 수재들 가운데 일부만 농업부문에서 활동해도 우리 농업은 달라질 것이다. 비단 우루과이라운드가 겁이 나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생명과 생존을 귀중히 여긴다면 농업에 대한 연구와 지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3. 품질로 승부를
농산물의 생산비용을 낮추기 위한 부단한 노력과 함께 병행해야 할 것이 있다. 일반적으로 경제학에서 말하는 경쟁의 개념에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을 바탕으로 하는 '가격경쟁'과, 다른 경쟁상품보다 품질에서 앞섬으로써 경쟁력을 갖는 '품질경쟁'의 두 가지가 있다. 위에서 말한 생산비의 절감을 통한 가격경쟁은 우리 경제의 여건상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품질경쟁에 주력하는 것이다.
더욱이 사람들의 소득수준이 향상되면서 소비의 추세도 양보다는 질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특히 농산물의 경우에 고품질의 상품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경쟁력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1992년에 과천 정부종합청사의 국무위원 식당에서 각계인사 50여명이 초청되어 한국의 신품종인 일품(一品)벼, 일본이 자랑하는 고시히카리, 미국의 칼로스 등 5개 품종의 쌀밥시식회가 열린 적이 있다. 여기에서 단연 뛰어나다는 찬사를 받은 것은 다름아닌 일품벼였다.
이는 우리 쌀이 품질경쟁에서는 오히려 우위에 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머지 않아 핑크빛에 향기 나는 쌀도 선보일 예정으로 있다고 한다. 더 나아가 모양이나 빛깔, 맛, 향기 면에서 더욱 우수한 쌀품종이 개발될 수 있도록 끊임없는 연구와 투자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일품벼의 사례는 우리의 모든 농산물이 고품질의 다품종 생산체제로 전환하여 고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4. 대수술의 시작
한 마디로 전통적인 농업생산방식의 부분적인 개선이 아닌 생산체계의 일대혁신만이 앞으로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를 위해서는 인식의 대전환이 있어야 한다. 즉, 농산물이 생산되어 소비자들에게 판매되기까지 '생산-저장-가공-유통-판매'의 모든 과정에서, 생산되는 부가가치의 대부분이 생산자인 농민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먼저 생산과 관련해서 살펴 보면, 첫째, 기존의 개별영농이나 일부에서 거론되고 있는 기업영농의 생산방식보다는, 마을단위나 더 확대해서 면단위의 '협동영농'방식이 가장 바람직한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전북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에서는 20농가가 무공해 논딸기를 재배하기로 하고, 재배에서 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작업을 공동으로 해나갔다. 이들은 재배기술이나 기타 생산과정에서의 문제점들을 함께 토의하면서 개선해나가, 1992년에는 총 4억원의 수입을 올려 농가당 2천만원씩의 소득을 얻었다. 이러한 방식은 기존의 영세성을 극복함과 동시에 부가가치가 실제로 생산에 참여한 농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는 점에서 적극 권장할만한 대안이라고 생각된다.
5. 유기농법
둘째, 유기농법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 앞으로 우리 농업이 찾아내야 될 활로 가운데 하나가 유기농업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유기농업은 자연생태계의 순환에 순응하는 농법이다. 화학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다. 설사 사용하더라도 소량에 그친다. 즉, 유기농법은 오염이 안된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법인 것이다.
지난 1960-1970년대에 우리 농업은 식량증산이라는 기치 아래 대량생산체제로 개편되었다. 모든 농업생산물에 화학비료가 남용되었다. 그 결과 토양은 날로 피폐화되고 작물의 생장력은 날로 약해졌다. 각종 병충해가 기승을 부렸고,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갈수록 독성이 강한 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이 유기농업이다.
생명자원인 농산물은 종류가 매우 다양하지만 그 나라, 그 지역의 기후와 토양에 최적인 작목이 있게 마련이다. 유기농법이야말로 환경을 보전할 뿐만 아니라 무공해농산물을 생산한다는 점에서 혁신적인 농법이다. 그 동안의 농업생산방식이 수입농업이었다면 유기농업은 '한국식 농업'이다. 지역의 특성에 맞는 유망한 작물들을 개발한 다음, 유기질비료 등을 사용한 유기농법을 통하여 농약이나 화학비료의 사용을 퇴치하고 장기적으로는 토양을 개선해 나가면, 오히려 병충해가 생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농약 등을 사용하지 않은 무공해농산물이라는 이점 때문에 비록 높은 가격이더라도 도시의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호응을 얻을 것이다.
이미 선도적인 일부 농민들은 전국 곳곳에서 유기농법이라고 하는 희망의 불씨를 키워 나가고 있다. 현재 유기농업을 하고 있는 전국의 농가는 약 3천 가구 정도이다. 이는 총 농가수의 0.15%에 해당한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작물의 특성이나 기술미비 등으로 부득이 소량의 화학비료를 과도기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준(準)유기농업인구까지 합하면, 약 3만명의 농민이 자연농업인 유기농업에 승부를 걸고 있다.
농업에 관한 한 가장 전문가는 농민이다. 실제로 충북 청원군 신니면 용원리에서 17년간 유기농업을 하고 있는 한 농민은, 야산기슭 1만평의 농토에 벼와 각종 채소류 35종을 심어 1994년 한 해에 5천만원의 순수익을 거뒀다. "10년전만 해도 6백만원 수준이던 수입이 4년전부터 수요증가와 함께 본궤도에 오르기 시작했어요. 같은 규모의 일반농가 수입 2천만원선에 비해 많은 편이지만 화학비료나 제초제 등을 쓰지 않음으로 해서 드는 노동강도는 몇배 이상입니다."
최근에는 오리를 이용하여 농약없는 쌀을 생산하려는 노력도 선보인다. 경남 울산시 농촌지도소에서 시도하고 있는 이른바 '오리농법'이 그것이다. 이 농사법은 벼이삭이 패기 직전인 8월초까지 논에 오리를 풀어 기르면 제초제와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쌀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으로, 농촌진흥청의 시험연구 결과 이미 '실천가능한 농법'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오리가 부리와 발로 바닥을 파헤치며 해충을 잡아 먹으면 잡초 제거와 해충 방제가 가능해진다. 뿐만 아니라 논물을 휘저어 산소를 공급하고 벼포기를 흔들어 자극을 주게 돼 벼의 뿌리 활력을 강하게 한다는 것이다. 또 오리 배설물은 양질의 유기질 비료가 돼 일반 논에 비해 질소비료를 50% 가량 줄일 수 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오리를 이용한 농사법은 농약이나 비료 사용에 따른 비용 절감과 수질오염 방지는 물론 노령화된 농촌 노동력도 절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유기농업과 관련하여 축산농가의 분뇨를 퇴비공장으로 완벽히 수거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재활용이 가능한 동물 폐기물은 일반 폐기물과 구분, 퇴비장으로 직결시킴으로써 퇴비생산비를 줄이고 환경오염을 예방하는 여러 가지 효과를 거두자는 것이다.
6. 소비자를 왕으로
세째, 특화작목을 개발하여 전문화해야 한다. 좁은 농지에서 여러 품종을 경작해서는 경쟁이 되지 않는다. 지역의 기후와 토양에 맞는 작목이 있게 마련이다. 가령 강원도 대관령이나 전북 남원 운봉 등 고지대에는 고냉지 채소나 감자와 같은 작목을 특화하여 집중적으로 재배할 경우, 상대적으로 품질면에서 우위에 있게 되어 충분한 상품가치가 있다. 또한 오랜 동안 특화작목을 재배하는 과정에서 축적된 노하우는 더 양질의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네째, 소비자를 생각하는 농업이 되어야 한다. 앞으로는 국내산 뿐만 아니라 외국산 농산물과도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그러므로 농산물을 생산하는 사람들은 옆집의 김서방, 옆마을의 이서방이 무엇을 생산하는가만 볼 것이 아니라, 미국의 카우보이씨, 중국의 띵호아씨, 호주의 캥거루씨, 네델란드의 풍차씨가 무엇을 어떻게 생산하는가도 생각하며 농사를 지어야 할 시점에 와있다. 그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소비자들이 진정으로 원하고 찾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같은 값이면 품질이 우수한 상품을, 같은 품질이면 값이 싼 상품을, 그리고 값이 비싸더라도 품질이 뛰어난 상품을 선호하는 것은 모든 소비자들의 공통된 심리이다. 농산물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소비자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정확히 파악하여 거기에 맞는 농산물을 생산하고 공급해야 한다.
소비자들의 애국심이나 애향심에 호소하여 국산품을 애용해야 한다거나, 농업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전통적인 산업이니까 보호받아야 한다는 식의 소극적이고 나약한 사고로는 국제화 및 개방화 시대에 살아 남을 수 없다.
7. 일석이조
다음으로 저장시설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자. 농산물은 신선도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생산 못지 않게 보관의 문제도 중요하다. 특히 농산물의 특성상 수확기에는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고 비수확기에는 물량이 없어 팔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당연히 가격 또한 계절에 따라 들쭉날쭉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 농산물의 안정된 가격체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산지에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 지역에 대형의 저온저장시설을 갖추어야 한다. 여기에 소요되는 막대한 재원은 정부와 농협 등의 단체가 부담해야 한다. 지금처럼 일부 중간상들이 수확기에 많은 물량을 싼값에 '사서 재어 놓기'했다가 가격이 폭등하는 비수확기에 방출하여 톡톡한 재미를 보는 일이 계속된다면, 이는 중간상만 배부르게 하고 생산자와 소비자는 피해를 보게 하는 꼴이 되고 만다.
또한 농산물의 가공과 관련해서도 개선해야 될 문제점들이 있다. 오늘날 한국의 재벌들은 거의 예외없이 식품가공업에 진출하고 있다. 높은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처럼 앞을 다투어 경쟁하지는 않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식품가공업에 농민조직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여기에서 발생하는 부가가치를 농민의 손에 돌아가게 하자는 것이다.
경북능금농협에서 생산하는 '우리천연능금쥬스'가 그 가능성을 밝게 해주는 대표적인 히트상품이다. 국내시장 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수출되고 있는 이 사과쥬스는 주산지인 경북지역의 사과로 생산하기 때문에 산지의 생산농가에게는 안정된 수입원을 보장해줄 뿐만 아니라 현지주민의 고용까지도 해결해 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전남 해남에서 생산되는 참다래 역시 비슷한 성공사례이다. 이 곳의 참다래 생산농가들은 '한국 참다래 유통사업단 영농조합 법인'을 설립하여, 주주의 자격으로 직접 경영에도 참여하고 있다. 참다래는 수입 키위보다 맛이 좋아 국내 소비자들에게도 인기가 있을 뿐만 아니라, '참다래 캔'의 형태로 가공되어 국내시장 및 대만과 캐나다 등 해외시장에 수출까지 되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가공농산물이 개발·보급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과감한 투자가 필수적이다. 특히 각 지역마다 산재해 있는 농공단지를 활용하는 방안도 효율적이라고 본다. 이렇게 되면 산지에 근접함으로써 얻게 되는 여러가지 이점들과 함께 여기에서 나오는 수익금이 해당농민조직을 통하여 농가에 분배되고 고용증대효과도 가져와 농외소득의 증가에도 기여할 수 있다.
8. 재주는 곰이 넘고
다음으로는 농수산물 유통구조의 개선을 들 수 있다. 우리 속담에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주인이 챙긴다"는 말이 있다. 땀흘려가며 애써서 생산하는 사람은 농민인데, 정작 돈을 챙기는 사람은 유통업자들이다. 농수산물 유통과정이 너무 복잡하여 농어민은 땀흘려 생산만 하고 돈은 중간상에게 돌아가는 지금의 유통구조를 시급히 개혁해야 한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마디로 심지 않고 거두려는 사람을 줄이자는 것이 유통구조개선이다. 유통과정에서 불로소득을 얻는 중간상인, 매점매석으로 이익을 보는 계층 모두를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1994년의 농림수산부 자료에 따르면, 무, 배추, 마늘 등 10개 주요 농산물의 유통마진율이 평균 52.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배추의 경우에는 유통마진율이 79.8%로 나타나, 가령 소비자가 1천원을 주고 배추 1포기를 사면 8백원 가량이 유통과정에 있는 수집상, 중간상, 소매상에게 돌아가고 정작 생산농민은 2백원 밖에 받지 못한다는 말이 된다.
유통실태를 조사한 결과 충남 아산에서 농민이 포기당 1백 85원에 판 배추를 산지수집상은 2백 25원 60전, 위탁도매상은 2백 40원, 중간도매상은 4백 50원에 각각 넘겼으며, 소매상은 생산지가격의 5배에 해당하는 9백원에 최종소비자에게 팔았다.
심지어 1995년 9월 23일 현재 서울에서는 배추 한 포기의 최종 소비자가격이 무려 5천원이 넘는 믿기지 않는 일까지 일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산농민이 받는 가격은 형편 없이 낮다. "농산물값을 소비자가격의 절반만 받아도 우루과이라운드 파동은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을 것이다"는 농민의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신선도를 유지해야 하는 농산물의 수집과 보관 및 유통이 중간상인의 손에 들어가다 보니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 식품치고 날 것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야채나 과일, 생선에 방부제를 뿌린 악덕상인이 구속되는 사례가 빈번하며, 영세상인은 물론 심지어 유명 백화점조차 유통기일을 속여 팔다가 적발되기도 한다.
생산자와 소비자는 물론이거니와 안정된 식생활과 국민건강을 동시에 보호한다는 차원에서도 전근대적이고 복잡한 농수산물의 유통구조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그 재원은 정부와 농수축협 등이 부담해야 한다. 그리하여 저장창고는 물론 생산지와 소비지의 유통시설들을 대대적으로 확충해 중간유통단계를 대폭 줄여 나가야 한다.
9. 1촌 1동 운동
마지막으로 농산물의 판매에 관해 언급하겠다. 농산물의 판매에 있어서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은 직거래 체계를 확대하는 일이다. 도시와 농촌간에 직거래망을 구축하게 되면, 농민은 안정된 판로를 확보할 수 있고, 도시민은 좋은 품질의 농산물을 믿고 구입할 수 있다.
가령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의 아파트 단지와 전북 완주군 고산면이 농산물 직거래 계약을 체결하여, 현지에서 생산한 신선하고 위생적인 농산물이 소비자들에게 직송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거래방식이 이미 일부 농민과 대도시 소비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농산물 직거래는, 생산자의 입장에서는 확실한 판로를 보장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중간유통과정을 줄임으로써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어서 좋고, 도시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복잡한 유통단계를 거쳐서 사먹는 농산물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신선한 농산물을 구입할 수 있어서 좋다. 농민은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고, 도시민은 더 싸게 사먹을 수 있는 것이 직거래 방식의가장 큰 장점이다.
'1촌(村) 1동(洞) 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러한 농산물 직거래 방식은 또한 도시에 사는 주민과 청소년들이 현지를 직접 방문하여 농촌의 어려운 실상을 몸소 체험함으로써, 생명산업인 농업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자연스럽게 흙의 소중함을 깨닫는 기회도 될 것이다.
10. 일본시장을 잡아라
원래 농산물은 공산품과는 달리 쉽게 상하거나 변질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에 근접한 나라가 경쟁에서 훨씬 유리하게 되어 있다. 지금 세계에서 농산물을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는 다름 아닌 일본이다. 우리는 세계 최대의 농산물시장을 바로 코앞에 두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대한 우리의 농산물 수출량은 중국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 등 우리보다 지리적으로 먼 아시아 국가들에도 밀리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과거 대일 농산물 수출에서 드러난 몇가지 고질적인 문제점들을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품질관리상의 문제를 들 수 있다. 국내시장에서 판매하는 농산물의 판매방식이 대개 그러하듯, 눈짐작으로 상품·중품등을 가려내어 포장을 한다. 그런데 이처럼 낙후된 품질관리로는 식성이 까다롭기로 소문난 일본인들의 기호를 충족시킬 수 없다.
둘째, 신용상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납기일자나 선적일자를 어기는 경우가 종종 있는가 하면, 농산물의 국내 공급물량이 달려 국내시장에서 가격이 오르기라도 하면, 일본측 수입업자와의 계약을 어기고 국내시장에 내다 팔아버리는 경우조차 생기기도 한다. 이와 같은 신용도의 저하는 일본 수입업자들이 한국으로부터 떠나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세째, 상도덕상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 수출이 잘돼 주문이 늘어나면 질이 낮은 물건까지 마구잡이로 섞어서 수출하는 경우가 있다. 현지에서 이러한 물건을 구입한 소비자가 갖게 되는 불신감은 한국의 농산물 전체에 파급되어 매우 좋지 못한 인상만 심어줄 뿐이다.
일본인들은 "눈과 코로 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식품의 모양과 향기를 중시하고, 양보다는 질을 따지는 경향이 있다. 일본인들의 기호가 까다롭다는 것은 잘 이용만 하면 오히려 농산물 수출을 늘리는 데 유리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신선도나 당도 등에서 철저히 고품질의 농산물로 대응하고, 위생면이나 신용면에서 높은 신뢰도만 얻는다면, 일본에 대한 농산물의 수출 전망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우리가 가장 유리하다. 가령 배편으로 수송할 경우 우리는 하루면 되지만, 대만은 3-4일, 덴마크는 1개월이나 소요된다.
그러므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및 생산자단체가 합동으로 대일 농산물 수출증대를 위한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한 방안들 가운데에는 유망특화작물의 재배단지를 조성하고, 유통기간의 단축을 통하여 신선도를 유지하며, 포장규격 준수 및 품질등급별 분류를 철저히 시행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 아울러 보다 광범위한 판매망을 확보하기 위하여 일본 현지에 있는 대형슈퍼마켓 등과의 직거래를 적극 추진하고, 일본 전역을 순회하는 식품전시회 등을 수시로 개최하여 우수한 우리 농산물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전략도 긴요하다고 본다.
11. 소비자가 할 일
농촌을 지키고 농업을 유지·발전시키는 데에는 소비자들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일본의 농촌에서 농산물이 유통되는 과정을 보면, 농업이 결코 농민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좋은 농산물을 알아주는 소비자가 있어야 농민들이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소비자들로부터 주문을 받아 전국 각지의 생산자단체와 연결, 좋은 농산물을 가정에 배달해주는 '소비생활협동운동'이라는 조직이 패전직후부터 후생성의 법적인 보호 속에 성장해 왔다. 또한 이같은 조직은 주부들의 주도로 결성되어 운영되고 있다. 상근직원의 90% 이상이 주부들이라고 한다. 무조건 값싼 농산물을 찾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식품을 사자는 소비자들의 운동이야말로 우리 농촌을 지키는 또 하나의 힘이 될 것이다.
12. 농업은 산업의 뿌리
이상에서 농민이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농업이 경쟁력을 갖추며, 농촌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농민들의 힘만으로는 절대 불가능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농업의 문제는 정부와 농민 그리고 도시민이 다같이 힘을 모을 때만 가능하다. 우선 정부는 과거 1960-1970년대에 공업부문에 그랬던 것처럼 이제는 농업부문에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 생산자인 농민은 보다 좋은 농산물을 안전하고 신선하게 공급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생산에 임해야 한다. 소비자인 도시민들 또한 가족의 위생과 건강이 달려 있 는 식품의 안전한 확보를 위해 해야 할 역할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농업문제를 경제적인 시각에서만 접근해서는 안된다.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 2만달러로 높아져도 도시와 농촌이 고루 발전하지 않으면 갈등은 더욱 커진다. 농촌이 살아야 민족이 산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설령 국민소득수준이 제자리 걸음을 할지라도 계층간에 고루 잘 살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국가의 먼 장래를 위해서도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산업을 나무에 비유하자면, '농업은 나무의 뿌리이고, 공업은 나무의 줄기이며, 상업은 나무의 잎'이다. 아무리 줄기가 굵고 잎이 무성하다고 해도 뿌리가 튼튼하지 못하면 그 나무는 오래 살지 못한다. 그동안 우리는 눈에 잘 띠는 줄기와 잎을 무성하게 하는데만 신경을 썼지 눈에 잘 띠지 않는 뿌리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뿌리가 많이 약해졌다. 이제 약해진 뿌리를 강하게 키울 때다. 튼튼한 뿌리로 거듭 날 때 한국경제라는 나무는 더 커다란 거목으로 자랄 것이다. 농업이 없는 산업, 농촌이 없는 도시, 농민이 없는 민족은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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