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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제 2 절 우루과이라운드와 쌀

제 2 절 우루과이라운드와 쌀


1. 한국인과 쌀


UR협상의 타결이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은 실로 광범위하고 크다. 우선 무역자유화가 촉진되면 무역에 크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우리 경제의 현실을 감안할 때 거시적·장기적 관점에서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농산물과 서비스 등의 분야에서는 상당한 피해가 예상된다.

농산물, 그 중에서도 특히 쌀의 경우는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볼 때 단순한 식량 이상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자원이다. 한반도에서 쌀이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적어도 3천년이 넘는다. 그 후 오랜 세월 동안 쌀은 우리의 생활과 문화속에서 하나의 '신앙'으로 자리잡아 왔다. 쌀과 관련된 속담이나 풍속이 유별나게 많은 민족이 우리 민족이다. "쌀이 두 되만 있어도 처가살이 할 놈 없다"며 쌀을 통해 처가살이가 못할 노릇임을 비유했는가 하면, "쌀농사 짓는 놈 따로 있고, 쌀밥 먹는 놈 따로 있다"며 빈부의 격차를 비꼬기도 했다.

우리에게 쌀은 생명의 원천이요, 행복의 상징이요, 삶의 근원이었다. 따라서 쌀만큼은 시장을 개방하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했지만, 결국 쌀시장도 예외없이 개방하는 것으로 결말이 났다. 협상과정에서의 우여곡절이야 어찌됐든 어치피 국제간의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쌀시장개방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농업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방안들이 무엇인가를 냉정하고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때라고 본다. "길을 가다가 돌이 나타나면 약자는 그것을 걸림돌이라고 하고, 강자는 그것을 디딤돌이라고 한다"는 영국의 사상가 토마스 카알라일(T. Carlyle)의 말을 음미해 볼 때가 아닌가 한다.


2. 쌀개방 압력의 주역들


쌀개방을 그토록 집요하게 요구한 나라는 물론 미국이다. 그런데 미국의 농산물 총생산액 중에서 쌀이 차지하는 비중은 불과 1%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미국의 농산물 전체 수출액 중에서 쌀은 6%만을 차지하고 있다. 더욱이 미국에서 쌀농사를 짓는 전체 농민수는 고작 1만 2천명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의 쌀재배농가를 중심으로 한 미국내 농업단체들은 미국정부에 대해 세계 쌀시장 교역조건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조직적인 로비를 벌여 왔다. 이들이 주로 노리고 있는 나라가 바로 쌀을 주식으로 삼고 있는 한국과 일본이다.

이들과 함께 쌀시장개방의 최대압력단체로는 미국의 카길사(社)를 비롯한 세계적인 곡물메이저들을 꼽고 있다. 세계곡물업계의 '큰손'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 곡물메이저들은 쌀·밀·콩 등 세계의 곡물수출시장에서 상권의 80-90%를 장악하고 있다. 세계곡물시장의 가격이 등락할 때마다 그 배후에는 이들이 작용하고 있다.

곡물메이저들은 막강한 자금력과 첨단 정보망을 가지고 세계의 농산물 작황을 손바닥 들여다 보듯이 훤히 알고 있다. 이들은 현재 세계 도처에 각각 1백여개씩의 곡물회사와 사료회사 등 자회사를 거미줄처럼 쳐놓고 각국의 곡물정보를 수집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인공위성을 통해 세계 각국의 작황정보를 알아내 어떤 농작물의 흉작이 예상되면 미리 그 품목을 매점해 버리는 등의 방법으로 가격을 조작해 폭리를 취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1980년에 입었던 냉해로 인하여 불가피하게 쌀을 수입하려 하자 재고물량을 거머쥐고 있던 곡물메이저들은 1979년에 1톤당 2백달러하던 쌀값을 무려 550달러로 올려 팔아 먹기도 했다. 앞으로도 예기치 못한 흉년이 들기라도 하면, 값이 싸고 비싸고를 따질 겨를도 없이 남아 있는 재고쌀을 사러 세계의 쌀창고를 뒤지고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

1995년 현재 우리의 식량자급률은 30%를 밑돈다. 주식(主食)인 쌀의 경우도 매년 자급률이 떨어지고 있다. 1991년에 102.3%였던 자급률이 1992년에는 97.5%로 연간 쌀소비량에도 미치지 못하더니, 1993년과 1994년에는 각각 96.8%와 87.8%로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될 경우 UR협상에 따라 우리가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물량보다 더 수입해야 할지도 모른다.

자급률이 떨어질수록 우리의 식탁은 수입농산물에 의존할 수 밖에 없고, 이는 결국 우리의 식량문제를 곡물메이저의 손에 내맡기지 않으면 안된다는 이야기이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쌀을 비롯한 식량은 석유보다 더 귀중한 자원이다. 그런데도 세계의 곡물메이저에게 우리의 생명을 내맡길 것인가는 우리들이 결정하기에 달려 있다. 그 열쇠는 바로 한국민 스스로가 쥐고 있는 것이다.


3. 또 하나의 복병


그런데 수년 전 쌀수입이 금지되고 있던 때에도 미국쌀(캘리포니아산 '칼로스')이 밥맛이 좋고 농약을 덜 썼다는 이유 등으로 미군부대 등을 통해 국내시장에 반입되곤 했었다. 더욱이 미국은 'M401' 등 우리 입맛에 맞는 신품종의 개발과 재배를 늘리는 등 한국 쌀시장의 공략에 한창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사실 세계 쌀의 약 90%는 과거에 안남미로 불렸던 길죽하고 찰기가 없는 '인디카'계열이다. 그리고 우리가 먹는 쌀은 찰지고 맛이 좋은 '자포니카'계열로 한국·일본·중국북부지역에서만 선호되는 품종이다. 따라서 이들 품종은 같은 쌀이지만 서로 대체성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쌀시장이 본격적으로 개방될 경우 값싸고 질좋은 중국쌀을 더 경계해야 할지도 모른다. 중국은 한국의 쌀시장 개방을 겨냥하여 길림성 연변지방과 양자강 일대에서 '밀양 49호' 등 한국에서 개발된 쌀품종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쌀길이가 길고 찰기가 없는 안남미를 주로 재배해 왔으나, 수년전부터 우리가 먹는 쌀처럼 둥글고 차진 자포니카쌀의 재배를 확대하고 있다.

또한 미국에서는 수송에 40일이 걸려 그 과정에서 변질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데 비하여, 중국에서는 인천항까지 4일이면 수송이 가능하다. 결국 가격과 품질에서 중국산 쌀이 국내 쌀시장을 완전 점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4. 쌀시장 개방일정


쌀시장개방의 구체적인 방식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1995년부터 2004년까지 10년간은 관세화유예기간으로 둔다. 즉, 2004년까지는 관세화를 통한 개방을 유예하는 것이다. 이 기간 중에는 국내 쌀소비량(1986-1988년 평균소비량)을 기준으로 하여 최소시장접근(minimum market approach)을 한다. 최소시장접근이란 국내시장이 최소한 허용해야 하는 수입물량을 말한다.

최소시장접근율은 처음 5년 동안은 1-2%, 이후 5년 동안은 2-4%로 하도록 되어 있다(일본은 1995년에 전체 소비량의 4%인 42만여톤, 6년 후인 2000년에는 8%인 75만 8천톤을 외국에서 사들이기로 되어 있다). 즉, 1995년에 1%를 시작으로 하여 매년 0.25% 포인트씩 수입량을 증가시켜 1999년에는 국내 소비량의 2%를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한다. 그런 다음 2000년에는 다시 2%에서 시작하여 매년 0.5% 포인트씩 늘려 유예기간 마지막 해인 2004년에는 쌀소비량의 4%를 반드시 수입해야 하는 것이다. 이 때까지의 관세는 현행수입관세인 5%를 적용하도록 되어 있다.

총소비량을 기준으로 볼 때 1986-1988년의 우리나라 쌀소비량은 평균 3,940만 섬이다. 따라서 평균쌀소비량에 매년의 최소시장접근율을 곱하면 연도별 쌀수입량이 산출될 수 있다. 즉, 1995년에 39만 섬을 시작으로, 1999년과 2000년에는 79만 섬, 그리고 2004년에는 158만 섬이 최소시장접근에 의한 쌀수입물량이 되는 것이다.

이어서 2005년 이후부터는 쌀시장을 완전개방해야 한다. 이 때는 국내가격과 국제가격의 차이만큼을 '관세상당치'로 부과한다. 여기서 관세상당치란 1986-1988년 국내쌀값과 국제쌀값의 차액을 말한다. 이 관세상당치는 관세화유예기간 10년과 유예기간이 끝난 이후의 10년 동안 매년 1%씩 감축해 나간다.

그러므로 쌀시장이 완전개방되는 2005년의 관세상당치는 원래의 90%이고, 2014년에는 80%의 관세상당치를 적용하게 된다. 국내쌀값을 12만원선, 국제쌀값을 3만원선으로 볼 때, 최초의 관세상당치는 9만원선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될 경우 관세상당치는 10년간 10%를 감축하면 되므로, 2005년의 관세상당치는 8만 1천원이 될 것이고, 감축기간이 끝난 2015년부터는 7만 2천원의 관세상당치만을 수입쌀에 부과할 수 있다.

관세상당치의 기준이 되는 국내쌀값은 관세화유예기간이 끝나는 2004년경에 재협상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만약 국내외 쌀값에 매년 5% 정도의 물가상승요인이 있어서 20년 뒤인 2015년에 가면 쌀값이 지금의 2배로 상승한다고 가정하면, 국내쌀값은 24만원, 국제쌀값은 6만원이 되어 수입쌀에 관세상당치를 더한다 해도 13만 2천원에 불과하다. 더욱이 국내 물가상승률이 상대적으로 더 높을 경우에는 가격차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결국 수입쌀이 품질에서는 비슷하지만 가격에서 월등히 싸다고 할 때, 국민의 애국심에 호소하여 비싸더라도 우리 쌀을 애용하자고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구체적이고 뚜렷한 대안 없이 이대로 시간만 보내다가는 몇 십년 후에는 완전히 경쟁력을 상실하여 쌀농사를 아예 포기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쌀을 위시한 우리의 기초식량에서 최소한의 자급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인 것이다.


5. 감자 이야기


쌀은 우리의 운명을 결정짓는 자원이다. 역사상 식량난으로 엄청난 고초를 당한 민족은 허다하다. 심지어는 멸종의 위기에 몰린 민족도 있다. 잘 알다시피 유럽인의 주식 가운데 하나가 감자이다. 원래 감자의 원산지는 남미의 안데스산맥인데, 영양가가 풍부한데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기 때문에 유럽인들이 자기들 나라로 가지고 가서 재배하기 시작했다.

유럽에서 감자는 가난한 사람들의 주식으로 널리 보급되었다. 1840년대의 아일랜드인들은 거의 전적으로 감자만 먹고 살았다. 그러나 1845년 불과 수주일 사이에 아일랜드의 모든 감자가 시커멓게 타 죽어 갔고 그 정체불명의 병은 유럽대륙으로 번졌다. 이 해에 가장 극심한 감자흉작으로 100만 명이 넘는 아일랜드인들이 굶주리게 되었다. 이것이 미국으로의 이민을 촉진시켰다. 수많은 사람들이 먹을 것을 찾아 이민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원주민은 미시시피강 유역에 살던 인디언들이었다. 이들은 영화 '늑대와 춤을'에서 나오는 야생 물소인 버팔로를 잡아 주식으로 삼고 있었다. 그런데 백인들이 이주해오는 과정에서 인디언들을 멸종시킬 목적으로 버팔로를 닥치는대로 총살하여 불과 30-40년 사이에 무려 1억 마리 이상이 희생당했다. 그 사이 먹을 것이 없어진 인디언들은 그 지역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처럼 주식의 안정적 공급 여부는 한 민족의 생존을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열쇠이다. 수 천년 동안 전통적으로 쌀문화를 유지해온 한민족의 입장에서 쌀이 갖는 의미는 여타의 나라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따라서 쌀시장이 완전개방된다 하더라도 국내에서 생산되는 쌀만큼은 안정적으로 확보되어야 한다. 아무리 여건이 불리하다 하더라도 지킬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과 관심이 필요하다. 지금은 농업을 유지하기 위한 온 국민의 관심과 정부의 획기적인 투자가 절실히 요청되는 중대한 시점이다.

또한 UR협상의 타결은 우리의 장벽만이 아니라 외국의 장벽도 똑같이 허물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기는 곧 기회이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 일고 있는 변화의 실체를 정확히 인식하고 수세적 입장에서 벗어나 공세적 입장으로 탈출구를 적극 모색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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