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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기업지배구조와 경제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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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지배구조와 경제발전
(CORPORATE GOVERNANCE AND ECONOMIC DEVELOPMENT:
THE KOREAN EXPERIENCE)

장하성
고려대 교수

Summary

외자유출이 경제위기의 주범이라는 일부의 주장은 재고되어야 한다. 경제위기를 전염병에 비유하자면 외자유출은 단지 전달체일 뿐이지 전염병균 자체는 아니다. 외자는 단지 높은 이윤과 투자 안정성을 찾아서 유출입되는 것일 뿐이다. 경제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과거 고도성장을 이룩했던 체제 내부에서 형성되었으며 고도성장에 기여했던 많은 요인들이 결국 위기의 원인이 된 것이다.

정부나 기업 모두가 위기에 책임이 있지만 기업이나 특히 재벌이 원인 발생에 책임이 있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가장 위험한 점은 소수 특정인이 경제력과 정치권력을 동시에 소유하고있을 때이다. 한국의 재벌은 바로 그렇게 부와 정치권력을 모두 향유한 경우로 사회 곳곳에 재벌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이같은 재벌의 막강한 권력으로부터 일반 시민의 경제 권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질서가 필요한 것이다. 때문에 미시 경제발전의 핵심은 시민의 경제 권리, 그 중에서 특히 투자가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되어야 하며 이같은 시장질서가 정착되어야만 새로운 개방시장경제 하에서 건실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개방시장경제체제 하에서 재벌구조는 이미 효율성을 상실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민간분야 개혁의 핵심은 재벌개혁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의 재벌 회사들에서 합리적인 기업지배구조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상호출자나 투명성 부재를 이용한 경영권 침해로 총수들은 경영실패에 대하여 아무런 책임을 지지도 않으며, 인수합병도 불가능하게 되어있다. 불공정 내부자거래를 이용하여 계열사간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사례는 회사 자체의 수익성이나 경쟁력을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재벌 계열사들과 경쟁하는 중소기업들의 경쟁력을 약화시켜 궁극적으로 경제 전체의 경쟁력을 저하시킨 요인이 되었다.

재벌들이 합리적 기업지배구조의 기본요건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또 다른 폐해는 경영진이 주주들의 권리를 무시하고 정보도 전혀 공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은 신정부 출범이래 금융개혁과 기업지배구조 개혁을 위한 많은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법개정이나 규제만으로 시장개혁이 달성될 수 없기 때문에 각자가 자기의 권리를 찾기 위한 정당한 권리 행사를 하는 수밖에 없다. 최근 한국에서는 시민단체들에 의해서 전개된 소액주주운동과 주주소송 때문에 실질적인 재벌개혁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현재까지 진행된 개혁은 대부분 시장기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정부의 압력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아직 시장기능의 일부로 장착된 것도 아니며 장기간 지속될 수도 없다. 더욱 중요한 점은 이러한 개혁들이 아직 법률상의 개정에 머물고 있고 재벌에 대한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 재벌개혁은 더 철저하고 효율적으로 추진되어야 하고 특히 기업지배구조의 개혁없이는 달성될 수 없을 것이다.

정부는 재벌개혁을 단행함으로써 단기간의 부작용이나 역효과가 나더라도 장기적으로 궁극적으로 무엇이 경제에 득이 되는지를 판단하여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단지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한국 경제가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고 모든 시민들의 경제 권리를 보장하는 새로운 모습으로 환골탈퇴하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