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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2000년 전세계로 확산될 특허 전쟁

2000년 전세계로 확산될 특허 전쟁



150년 전통의 싱거사가 마침내 파산 신고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한때 '미싱하면 싱거'로 통할만큼 싱거는 섬유산업을 선도하던 세계적인 기업이었다. 그러나 싱거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본의 중소 미싱업체들이 지그재그식 박음질을 가능케 하는 '켐'장치를 단 재봉틀을 값싸게 세계시장에 쏟아내며 싱거의 아성에 도전했다. 당연히 싱거는 일본업체들을 특허권 침해라고 고소하고 나왔다. 그러나 일본업체들은 원리는 같지만 실현방법이 다르다는 점을 내세워 전혀 다른 새로운 제품이라고 주장하는 한편, 싱거가 기술을 독점하게되면 수요자들이 싼값의 재봉틀을 살 수 없다고 여론에 호소하여 싱거와의 특허분쟁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 엄격해진 특허, 여기에 의존하는 회사도 늘어



특허제도 자체는 오랜 역사를 지녔다. 그러나 과거에는 특허권의 보호가 한정적이었다. 특허명세서에 쓰여진 문장대로 해석하여 원리는 같지만 다른 방법을 사용하면 다른 특허로 인정해 주었다. 또한 과거에는 특허를 침해해도 배상액은 특허의 로얄티 정도에 불과하여 체력이 있는 기업은 그대로 버티더라도 크게 손해볼 게 없었다. 한편 새로운 상품을 개발한 기업측도 특허취득 기간이 수년씩 걸려 제품 사이클이 짧은 상품은 아예 특허를 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런데 미국은 80년대 이후 특허를 점차 엄격히 해석하고 벌금도 강화해 나갔다. 발명의 원리를 중시하여 권리의 범위를 넓게 인정해 주는 추세로 나간 것이다. 일본의 유명한 카메라메이커 미놀타는 하니웰사와 자동포커스 장치에 관한 특허분쟁에서 휘말리면서 1억2,750만 달러의 거금을 벌금을 물어야 했다.

미국에 텍사스 인스투르먼트(TI)라는 반도체 회사가 있다. 이 회사는 지난 58년 직접회로(IC)를 발명한 반도체 분야의 원조격인 회사이다. 한때 메모리반도체로부터 전자계산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여 명성을 날렸지만, 80년대 중반이후 일본에 이어 한국 반도체 회사들의 도전을 받아 급격히 시장점유율을 잃고 말았다. 그러자 이 회사는 특허전담 변호사를 고용하여 후지쓰 등 외국의 반도체회사들을 상대로 특허소송을 벌여 87년 일본기업들로부터 1억 달러 이상의 로얄티를 받아냈다. 우리 반도체 3사들도 8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이 회사에 수십억 달러의 로얄티를 지불했다고 하며, 97년 새로 반도체 산업에 진출한 대만의 뱅가드 인터내셔널 반도체도 이 회사에 연간 3-10%의 로얄티를 주기로 했다고 전해진다.

이 회사는 전체 영업이익의 70%수준인 연간 10억달러 이상을 로얄티로 벌어들인다고 하니 본업인 반도체 장사보다는 특허장사에 나선 셈이다. 그래서 이 회사는 수천명의 연구인력과 매년 10억 달러이상의 연구비를 투입하여 새로운 특허기술을 확보하는 한편, 40여명의 특허변호사를 두어 특허권을 관리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 2000년부터 전세계로 확산될 창의력 경쟁



엄격한 특허제도, 지적재산권의 보호는 점차 글로벌 스탠더드로 되어가고 있다. 특히 2000년부터 세계무역기구(WTO)의 '지적소유권의 무역관련 측면에 관한 협정'(TRIPs)*이 전세계 대부분의 나라에 확대 적용된다. 이것은 앞으로 특허를 지키지 않는 나라와는 무역거래를 하지 않겠다고 국제적으로 약속한 것이다. 이제까지 이 협정은 선진국 그룹(28개국 인구 9억명)에 한정되었다. 이제까지 우리가 미국 등 선진국에 수출할 때는 상대방의 특허권을 침해한 것은 없는지 꼼꼼히 살펴야 했지만 중국 등 대부분의 개도국에 대한 수출은 다소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대로 넘어갔다. 그러나 이 협정이 중국, 러시아를 포함하여 지구상의 대부분의 나라(약 120개국 인구 42억명)에 적용되면 독창적인 제품을 만들든지 특허사용료를 지불하든지 양자간의 선택을 해야만 한다. 이에 따라 모든 나라, 모든 기업들이 독창적인 기술을 확보하는 데 혈안이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바야흐로 세계는 특허란 이름의 창의력 경쟁에 휘말리게 되었다. 특허가 국제적인 기준이 되어서 뿐만 아니라 특허를 통해 발명가들의 아이디어 등 지적소유권을 보호하는 것이 그 나라의 기술혁신을 촉진하는 원천이 된다. 우리가 왜 독자 기술을 확보하는 데 매진해야 하는지 이제 그 이유는 더욱 분명해진다.



* WTO의 지식재산권에 관한 협정으로 'Agreement on Trade-Related Aspects of Intellectual Property Rights'의 약자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