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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아시아의 경제위기와 과학·기술의 중요성

아시아의 경제위기와 과학·기술의 중요성



지지난 해 이후 우리사회의 관심은 온통 IMF 경제위기와 개혁에 쏠려있다. 실업난 등 경제위기가 가져다 준 파장이 엄청났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당연한 일이다. 다행히 위기는 수습의 국면을 맞아 후유증 치료를 위한 각종 개혁조치들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경제위기를 추스리는 과정에서 한가지 중대한 논의가 빠져있다.

97년 7월, 태국경제가 크게 흔들린 이래 1년 남짓한 짧은 기간동안 우리나라를 비롯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여러 나라는 일시에 돌림병을 앓듯이 커다란 홍역을 치렀다. 그러나 아시아 주변국가중 유독 일본, 중국, 대만, 싱가포르 등은 용케 경제위기를 피해갈 수 있었다. 그러면 왜 이들 국가들은 위기에서 비켜갈 수 있었을까?

이번 금융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많은 경제학자들은 금융부문이 취약한데 불구하고 많은 기업들이 과다한 차입에 의존해 왔으며, 정부와 기업이 유착관계를 유지함으로서 자유경쟁에 의한 시장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경제위기의 원인을 규명하기에는 충분치 못하다. 금융기관이나 기업구조의 취약점, 정부의 유착관계 등을 말한다면 중국은 우리나라보다 사정이 좋지 않다. 반면 일찍부터 자본시장 개방정책을 편 말레이시아는 금융부문도 정부의 경쟁력도 당시 아시아의 다른 개도국보다는 튼튼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맞게 된 것은 기업과 금융의 부실상태를 감지한 외국의 금융기관들이 일시에 꾸어준 돈을 회수함으로서 금융위기가 일어난 것은 틀림없다. 따라서 기업 및 금융기관의 구조개혁을 통해 우리 경제구조를 튼튼히 해야 한다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경제위기 치유를 위한 처방을 내리는 가운데 우리가 가볍게 지나치고 있는 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과학기술의 중요성이다. 스위스의 국가경영개발원(IMD)가 매년 평가하는 국가경쟁력 순위 중 과학기술의 순위를 보면, 일본, 대만, 싱가포르, 중국 등 경제위기를 피해갈 수 있었던 국가들의 순위가 우리나라 등 경제위기를 맞은 국가들보다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시장경제의 역사가 짧아 전반적인 산업 생산력이 우리보다 뒤떨어지는 중국만 해도 그들은 로케트를 쏘아 올릴 정도의 원천 기술력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독자적인 연구를 할 만한 연구소가 정부출연 연구소나 대기업 연구소 등을 모두 합해도 50개가 채 안되지만, 중국은 전국 각지에 천 여개가 넘는 대단위 과학기술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경제위기 이전부터 반도체, 자동차, 이동전화기 등 세계 수준의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상품은 기초기술이 부족하여 핵심 부품을 외국으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약점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수출이 늘고 경기가 좋아지더라도 수입도 덩달아 늘 수밖에 없고 경제적 충격으로 환율이 크게 흔들리면 급격히 판매고가 줄게 된다. 실제 외환위기 전인 1996년 우리나라는 가격경쟁력의 상실로 237억 달러의 경상수지 적자를 보였다. 반면 일본, 중국 등 경제위기를 피해 갈 수 있었던 국가들은 시장환경이 바뀌더라도 경상수지 흑자를 볼 수 있는 상품 기술력을 갖고 있어 외환보유고를 넉넉히 쌓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과학기술은 경제위기의 회피와 상당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적어도 원천기술력을 갖고 있었다면 급격한 시장환경의 변화 속에도 상당한 대응력을 갖출 수 있었을 것이다.

최근 우리사회의 논의는 주로 금융기관의 구조조정, 재벌의 개혁 등에 국한되어 있다. 과학기술의 중요성은 오히려 이러한 개혁의 물결 속에 가려져 도외시되고 있다. 대기업은 구조조정의 여파 속에 연구개발 인력부터 줄이고 있으니 말이다.

한일 축구전이나 월드컵 등 굵직한 국제시합에서 우리 대표팀이 패하기라도 하면, 우리는 곧잘 문전처리의 미숙, 새로운 전술의 결여 등을 탓하며 감독과 선수들을 교체시킨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축구는 정작 경쟁력의 원천인 기초체력과 기본기를 기르는데 소홀히 해 온 탓으로 이런 오류가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은 그 나라 경제의 기초 체력이다. 우리의 기초 체력이 튼튼했더라면 어떠한 전염병이라도 이겨낼 수 있는 면역력을 갖출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제라도 각종 개혁조치와 더불어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대덕단지의 연구 분위기를 고취시키는 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