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관료제도와 지방행정
1. 서문
장기간 불황으로 일본 경제가 어려워지자, 경제기획청은 수차례에 걸쳐 경기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지방단독사업비가 경기대책의 중요한 한 항목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제까지 지방이 중앙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 경기대책을 만들면서 거꾸로 중앙정부가 지방자치단체에 지방사업을 확대해 주도록 도움을 요청하게 된 것이다.
이미 개별 정책에 있어서는 노인의료 무료화나 산업폐기물 처리법처럼 지방자치단체에서 시작된 것이 국가의 정책으로 채택된 사례도 적지 않다. 이것들은 일본의 지방자치단체의 경제력이 커졌으며, 이를 관리·운영하는 지방공무원들의 능력과 자질이 성숙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1885년 메이지(明治) 유신에 의해 근대적 관료제를 도입한 이래, 일본의 관료제는 1백여년의 오래 세월을 거치며 끊임없이 변천해 왔다.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의 경우도 1947년 민선자치제가 도입된 이후 50여년간 지방의 관료제도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이런 오랜기간을 통해 일본의 관료제는 성숙되었고, 관료제를 통한 행정능력의 극대화가 일본의 발전과 지방자치의 성장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 이에 이글은 일본의 관료제와 일본 지방행정의 특징을 살펴봄으로써 우리 관료제와 지방행정에 대한 시사점을 찾고자 한다.
2. 인재 육성을 통한 행정의 영속성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일본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정권의 교체가 심하다. 내각의 수명이 1년이 채안되는 경우도 많았고 최근들어서는 자민당-비자민연립- 자민당의 정권교체도 겪었다.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도 매번 선거에 의해 자치단체장을 뽑기 때문에 선거결과에 따라 공약사항이 달라질 수 있다. 이처럼 정권의 부침이 심한데도 불구하고 일본은 행정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렇듯 행정의 일관성이 유지될 수 있는 데는 행정관료들이 업무의 전문성을 인정받으로써 상당한 인사의 독립성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어 대부분의 장관은 정치가인 국회의원들로 임명된다. 외견상 정책결정권과 인사권 모두 정치가가 갖게되어 정치권의 입김을 받기 쉬운 형태를 띠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부처의 인사 및 운영은 사무차관이하 행정관료들에 의해 움직인다. 그래서 잦은 정권의 교체 속에서도 부처의 인사제도는 흔들리지 않을뿐더러 정책의 영속성도 이루어질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런 인사의 자율성을 획득하기까지 공무원들의 많은 노력이 숨어있다. 관료 자신들이 공직사회 내부에서 부단한 인재양성 노력을 통해 얻어진 결과이다. 인사권자가 누가 되든 부처내에서 다음 차관은 누구, 다음 국장은 누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분위기를 조성하여 이를 깨기 어렵도록 만들고 있다. 이 흔들리지 않는 간부후보는 한미디로 "만인의 눈에 바로 이 사람"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사람을 뽑는 것이다. 일본의 차관 포스트에 대한 경쟁은 입성하면서부터 시작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들은 해외연수, 계장부터 과장보좌 시절까지 철저한 실무경험을 쌓고, 과장급이 되면 다른 부처 및 의회와의 접촉을 통해 대외 교섭능력을 키워간다.
이들중 발군의 실력을 보인 자가 발탁되어 주요 포스트를 거치면서 간부로 육성되어 간다. 대장성의 경우 차관후보는 긴키(近畿)재무국장을 거쳐 오사카, 도쿄 등 간사이(關西) 경제계를 섭렵하고 이어 거시경제정책을 담당하는 경제기획청 관방장을 거친후, 최종적으로 예산을 담당하는 주계국장을 거쳐 차관에 오르도록 되어있다. 한편 지방정부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자치성은 현(縣)의 총무부장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재무국장을 거쳐 차관에 오르게 된다
일찌감치 능력있는 자를 추려, 십수 년간 갈고 닦아, 능력의 검증을 거쳐 그 기관을 대표하는 후보로 만들어, 이 사람을 범 부처적으로 밀어준다. 이처럼 관료조직 내부에서 행정의 전문가를 육성한 것이 정치권의 바람을 타기 쉬운 구조 속에서 외부로부터의 입김을 막고 자신의 인사질서를 지켜나가는 핵심이 되는 것이다.
인재의 발탁과 육성도 물론이거니와 다른 동기생에게 조금씩 포기하는 마음을 심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초기에는 치열하게 경쟁했더라도 주류의 보직에서 멀어지면 깨끗하게 승복하고 우수한 동기생을 적극적으로 밀어주도록 만든다. 그렇지 않으면 차관을 배출하지 못하는 기수도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은 해 들어온 동기생이 최종의 차관직에 오르면 동료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나머지 사람들은 스스로 물러난다.
3. 경쟁을 통한 철저한 업무수행 태도
일본의 공직사회에는 복지부동이란 없다. 그래서 관청가의 불은 꺼지지않고 공무원들은 자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오히려 너무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때로는 불필요한 간섭이라 할 정도로 대책을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 흠으로 치부될 정도다.
이처럼 열심히 일하는 것은 일본의 관청간에 경쟁의식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속한 기관이나 부서가 명성을 유지하려면 구성원들이 열심히 뛰어야 한다. 일본의 공무원들은 국민의 주목을 받는 참신하고 유용한 정책을 만들려면 남보다 더욱 철저히 연구해야 한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름난 부서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은 마치 싸움꾼처럼 일을 한다.
통산성의 '종이 폭탄'이 좋은 예다. 통산성은 어느 관청이 법령을 만들면 이에 대한 질문을 100 항목정도 작성하여 팩스로 보낸다. 이 싸움의 핵심은 상대방이 팩스를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대량으로 보내는 것이다. 상대가 밤을 세워 답변을 써보내면, 말꼬리를 잡아 50항목 정도를 추가 질문을 또다시 보낸다. 이런 질문에 혼쭐이 나게 되면, 그제야 서로 얼굴을 맞대고 협의에 들어가게 된다. 이 때문에 때에 따라서는 자기 부처의 이익을 침해당하지 않으려고 트집을 잡는다는 소리마저 듣는다.
경제기획청 내국조사1과가 작성하는 일본의 「경제백서」는 정연한 논리 전개로 호평을 받고 있다. 그 백서의 각 구절은 부처 간에 이해 관계가 걸려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장 개방의 필요성을 강조하면 농림수산장관으로부터, 공단 개발에 따른 환경 파괴를 경고하면 건설성과 통산성으로부터 당장 호된 종이 폭탄 세례를 받게 된다. 확실한 수치를 증거로 제시하고 정연한 논리를 전개하지 않으면 한 문장도 살릴 수 없다.
지방자치단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자체간에는 눈에 보이지않는 경쟁이 있다. 자신들의 지역에 보다 많은 공장을 유치하고 주민복지를 위한 보다 많은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중앙에 지원을 요청할 때는 철저한 분석을 토대로 필요성을 끈질기게 설명하여 지원금을 얻어내고 시설을 지을 때도 다른 지역보다 특색이고 하자없는 건물을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이것이 지역의 편에서 주민복지 수준을 높이고 지방 경제력을 튼튼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4. 권한과 역할의 분담을 통한 최대 동원 시스템
일본의 관료조직이 최선의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데는 공무원 개개인이 갖는 역량외에 조직자체가 갖고 있는 인적·물적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를 가르켜 무라마쓰(村松岐夫) 교수는 '최대동원 행정관리'라고 부르고 있다. 이런 최대동원 시스템을 가동시킬 수 있는 원동력은 권한과 역할의 적절한 분담에 있다.
예컨대 각 직급간에는 역할과 권한이 철저하게 분담되어 있다. 국장의 제일 중요한 업무는 정부 위원으로 국회에 나가 답변하고 국회 관계를 원만히 끌어가는 것이다. 과장은 법령 개정이나 정책 추진을 위해 정치가에게 설명하고 민간 단체와 의사 소통을 원할히 해 상호 이해를 돈독히 하는 일이 주요 업무다. 정보의 근원지를 찾아 다니며 문제점을 발굴하고, 항상 민원 지역에 달려가 민원인과 대화하고, 의회 통과를 위해 정치가들을 찾아가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이 과장 이상 관리직의 주요 일과이다.
반면 주로 책상에 앉아 일하는 계층은 공무원이 된 지 5-15년인 계장과 과장 보좌들이다. 실제 보고서나 책자는 모두 이들이 꾸민다. 한창 혈기 왕성한 이들이 열심히 머리를 쓰지 않으면 다른 부처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으며, 소관 업무의 권위 또한 지킬 수 없게 된다.
또한 기술직과 사무직간에도 서로 업무를 존중해 주고 있다. 그래서 전문 기술을 가진 기술직 집단에는 특별한 재량이 주어진다. 기술직의 예산이나 인사 등은 기술직 집단이 자율적으로 관리하며, 의사결정권도 독자적인 틀 안에서 행한다.
한편 저변의 실무직 하위 공무원들은 다년 간의 체험을 바탕으로 법령 적용을 꼼꼼히 챙기는 일을 맡는다. 실제로 이들의 일이 평시 업무의 대부분을 차지할지도 모른다. 고시 출신의 간부 후보생들이 추구하는 일은 새로운 업무 개발과 추진에 있을 따름이다. 따라서 정확하고 공정한 법규정의 적용과 에산의 집행으로 대민사항을 직접 담당하는 일은 주로 실무직 직원들의 몫이다.
결국 거대한 일본을 움직이는 힘은 조직내 모든 사람을 총체적으로 잘 활용하는데서 나온다. 이견이 있을 때는 격렬하게 싸우면서도 일에 관한한 상대의 영역을 존중하여, 그들이 가진 모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일본 관료조직의 힘이 되고 있다.
5. 직업윤리와 자체 정화 시스템
일본은 각 담당자에게 많은 권한이 위임된 반면 이에 상응하는 책임도 크다. 이들은 맡은 일을 공정하게 처리해야 하는 도덕성과 직업윤리가 요구된다.
공정한 업무집행을 위해서는 여러 장치가 필요하다. 권한이 한쪽으로 몰리지 않도록 제도적인 견제장치도 필요하고, 항상 이권에 대한 유혹을 받는 경우는 적절한 감시·감독도 필요하다. 또한 부정부패가 발생한 경우는 단호한 처벌도 따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거대하고 복잡해진 공무원조직을 일일이 감시할 수 없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조직을 통한 자체 윤리관의 확립이 중요하다.
일본의 각 부처에는 일류의식이 있다. 예컨대 관리자들은 자신이 재임하는 중에는 예산삭감이 없어야 하는 것처럼, 부정에 연루된 자가 나오지 말아야 한다는 의식도 강하다. 그래서 각 조직내부에는 자율권이 부여된 그룹별로 자체정화 기능이 작동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특히 중요한 것은 실제 일선에서 뛰고 있는 실무직 공무원들의 역할이다. 상위직에 오를 수 있는 국·과장급 이상의 간부직은 승진을 위한 치열한 상호경쟁 과정을 통해 직업윤리와 도덕성에 대해 검증을 거친다. 그러나 실제 행정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하위 실무직 공무원들이다. 이들은 승진의 기회도 적고 보수가 높은 것도 아니다. 이들의 근로의욕과 책임의식을 복돋우지 않고는 행정이 원만히 이루어 질 수 없다.
그래서 일본은 하위직에도 일의 보람을 찾을 수 있도록 막중한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간부 후보들이 빠른 시일에 이곳저곳 보직을 옮겨 다니며 일반행정관의 길을 갈 때 하위 실무직 공무원들은 과 내의 연속성을 이어가는 일을 맡는다. 여기서 이들은 상당한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맡은 분야의 전문가로 커간다.
일본은 얼핏 간부직들이 가진 것처럼 보이는 명령권도 사실상 행사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그래서 유력 재계인사가 관료의 상층부에 청탁을 하더라도 그것을 아래로 내려보내 실무자들에게 사무를 집행하도록 할 수 없다. 따라서 민간의 유력자도 갖가지 신청수속을 조직의 하부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
일본의 행정 절차는 모두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이것은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며, 합리적인 규칙을 유지하는 수단도 된다. 만약 위에서 결정되어 밑으로 내려오는 방식으로 된다면 외부의 유력자이 행정부의 고위층을 파고들기 쉬울 것이다.
실무직 공무원들은 현장에서 수년간 반복적인 일을 해가며 일에 대한 각종 정보와 경험을 쌓는다. 이들은 상사들이, 보이지 않는 권력의 힘에 의해 물러서려 할 경우에 규정을 들이대고 이를 따질 수 있다. 따라서 각종 청탁이 많은 인허가 사무를 정해진 기준에 따라 판단하는 것도 이들이다. 시장개방과 무역자유화가 되더라도 국민들의 건강과 안전을 꼼꼼히 따지고 검사하는 일도 이들의 역할이다.
일본의 행정은 실무직의 역할을 중시하고 이들에게 전문분야를 맡김으로써 업무의 의존도를 높히고 있다. 다시 말해 그들의 역할을 존중하고 그들에게 만족을 줌으로써 관청의 저변에 해당하는 이들이 잘 움직이도록 만들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하위 실무직의 조직내에서 스스로 부당하게 일처리하는 경우 준엄하게 제재를 가함으로써 자신들의 권위를 지켜 나가고 있다.
반면 조직이 자체정화 능역을 가지려면 우선 공직이란 직장이 매력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공직에 우수한 인재가 모여들고, 직업에 애착을 가지고 일하며, 직장에서 따돌림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일본은 공무원들에게 적어도 대기업 수준에 상응하는 급여수준과 복지를 보장하고 있다.
6. 리더십과 주인의식
행정에 대한 신뢰는 밑에서 행정을 받쳐주는 주는 관료집단과 이를 지휘하는 기관장의 리더십이 어울어질 때 진가를 발휘한다. 일본의 지방자치의 전통을 세우는데는 여러 선각자적인 민선 자치단체장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1960년대 등장했던 미노베(美濃部亮吉) 도쿄지사는 주민복지를 위해 도시가 당연히 갖춰야할 최저한의 시민생활기준으로서 '시빌미니멈'을 도입하고, 또 "한사람의 반대자가 있는 한, 하나의 다리도 놓지않겠다"고 하며 시민과의 대화를 강조하여 주민자치에 신기원을 열었다. 70년대 나가스(長洲一二) 가나가와(神奈川)현 지사는 중앙의 획일주의적인 통제에서 벗어나 지방의 개성, 지방의 문화를 중시하는 '지방의 시대'를 주도했다. 한편 오이타(大分)현의 히라마쓰(平松守彦) 지사는 '일촌일품운동'을 제창하여 얼굴있는 특삼품을 개발하여 주민의 소득을 높여 주었으며, 구마모토(熊本) 현의 호소카와(細川護熙) 지사는 자신을 주식회사 구마모토의 사장이라 하면서 기업유치에 힘써 지역의 경제력 확충에 힘썼다.
그런데 이와 같은 자치단체장의 선각자적인 리더십 속에는 철저한 주인의식과 책임감이 내포되어 있다. 도쿄의 미노베 지사는 차기선거에서 당선기능성이 희박해지자 다음 지사가 소신있게 투자예산을 편성·집행할 수 있도록 하기위해 자신의 임기말에는 투자예산의 편성 및 집행을 자제하는 절제력을 보여 주었다. 한편 고베(神戶)시의 미야자키(宮崎辰雄) 시장이 포트 아일랜드 등 각종 대단위 투자사업을 성공리에 마칠수 있었던 이면에는 전임자들이 과거 세입이 좋았던 시절, 여유 재원을 인기사업에 쓰지않고 훗날을 위해 사유지 매입·기금 적립 등으로 축적해 놓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적어도 주인의식이 강한 단체장들은 자기 임기중의 공적에 연연하지 않고 후대의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방행정을 이끌어 왔던 것이다.
다만 기관장들이 자신의 소신을 관철시키는데는 다음 사항에 유의한다. 기관장의 역할과 관련하여 무라마쓰 교수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펴고 있다.
기관장의 임무는 첫째, 전문가집단을 잘 활용하여 정책수립 및 집행능력을 극대화하도록 조직을 관리하는 것이다. 둘째, 기관장이 속한 정당과 그가 관리하고 있는 관청, 그리고 각종 이익단체를 포함한 유권자집단에 이해대립이 있을 때, 이를 적절히 조정하는 것이다. 셋째, 기회가 주어지면 자신이 속한 소신을 정책에 반영키는 것이다.
무라마쓰 교수는 이 가운데 일상적으로 가장 중시되어야 할 것으로 첫 번째 조직능력의 극대화를 들었고 반면, 가장 신중해야 할 것으로 세 번째인 소신의 달성을 꼽았던 것이다.
7 맺는말
지금 일본의 관료조직도 커다란 변화를 겪고 있다. 올해 확정된 「행정개혁법」을 통해 2001년부터 중앙부처를 대폭 통폐합하기로 한 것이다. 작은 정부, 간소한 행정은 이미 세계적인 추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들은 과거 여러차례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조직정비와 비용절감 등의 개혁을 꾸준히 추진해 온 덕분에 이러한 변화에 비교적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그간 지방자치단체는 행정의 효율화·간소화를 위해 부서를 줄이거나 직할지방기관을 통폐합하고 쓰레기 수집, 기계설비 운영 등의 단순 행정서비스는 민간으로 기능이관을 해 온 터였다. 한편 바깥의 변화의 흐름에 대응하도록 직원들을 민간기업, 다른 지방자치단체, 중앙정부와 수시로 인사교류를 실시함으로 시대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높혀 왔다.
결국 관료집단이 행정을 주도하고 시대변화를 주도해 나가기 위해서는 우선 공무원 자신들이 업무에 전문성을 확보하여 행정의 프로로서 명확한 봉사자세와 직업윤리를 갖고 스스로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한다. 이점에서 우리는 일본의 관료제도가 갖는 장점을 취하고 반면에 이들이 범한 시행착오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 행정의 질을 높여 나가야 할 것이다
< 참고자료 >
이호철(1996), 『일본의 지방자치, 어제와 오늘』, 삼성경제연구소, 서울
이호철(1996), 『일본 관료사회의 실체』, 삼성경제연구소, 서울
公務員硏究會 編(1993),『公務員になりたい人の本』, ダイヤモンド, 東京
宮崎辰雄(1993), 『神戶を創る』, 河出書房新社, 東京
鳴海正泰(1982), 『戰後自治體改革史』, 日本論評社, 東京
川北隆雄(1991), 『通産省』, 講談社現代新書, 講談社, 東京
村松岐夫(1994), 『日本の行政』, 中公新書, 中央公論社, 東京
依田薰(1994), 『お役所のしくみ』, 日本實業出版社, 東京
1. 서문
장기간 불황으로 일본 경제가 어려워지자, 경제기획청은 수차례에 걸쳐 경기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지방단독사업비가 경기대책의 중요한 한 항목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제까지 지방이 중앙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 경기대책을 만들면서 거꾸로 중앙정부가 지방자치단체에 지방사업을 확대해 주도록 도움을 요청하게 된 것이다.
이미 개별 정책에 있어서는 노인의료 무료화나 산업폐기물 처리법처럼 지방자치단체에서 시작된 것이 국가의 정책으로 채택된 사례도 적지 않다. 이것들은 일본의 지방자치단체의 경제력이 커졌으며, 이를 관리·운영하는 지방공무원들의 능력과 자질이 성숙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1885년 메이지(明治) 유신에 의해 근대적 관료제를 도입한 이래, 일본의 관료제는 1백여년의 오래 세월을 거치며 끊임없이 변천해 왔다.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의 경우도 1947년 민선자치제가 도입된 이후 50여년간 지방의 관료제도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이런 오랜기간을 통해 일본의 관료제는 성숙되었고, 관료제를 통한 행정능력의 극대화가 일본의 발전과 지방자치의 성장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 이에 이글은 일본의 관료제와 일본 지방행정의 특징을 살펴봄으로써 우리 관료제와 지방행정에 대한 시사점을 찾고자 한다.
2. 인재 육성을 통한 행정의 영속성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일본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정권의 교체가 심하다. 내각의 수명이 1년이 채안되는 경우도 많았고 최근들어서는 자민당-비자민연립- 자민당의 정권교체도 겪었다.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도 매번 선거에 의해 자치단체장을 뽑기 때문에 선거결과에 따라 공약사항이 달라질 수 있다. 이처럼 정권의 부침이 심한데도 불구하고 일본은 행정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렇듯 행정의 일관성이 유지될 수 있는 데는 행정관료들이 업무의 전문성을 인정받으로써 상당한 인사의 독립성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어 대부분의 장관은 정치가인 국회의원들로 임명된다. 외견상 정책결정권과 인사권 모두 정치가가 갖게되어 정치권의 입김을 받기 쉬운 형태를 띠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부처의 인사 및 운영은 사무차관이하 행정관료들에 의해 움직인다. 그래서 잦은 정권의 교체 속에서도 부처의 인사제도는 흔들리지 않을뿐더러 정책의 영속성도 이루어질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런 인사의 자율성을 획득하기까지 공무원들의 많은 노력이 숨어있다. 관료 자신들이 공직사회 내부에서 부단한 인재양성 노력을 통해 얻어진 결과이다. 인사권자가 누가 되든 부처내에서 다음 차관은 누구, 다음 국장은 누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분위기를 조성하여 이를 깨기 어렵도록 만들고 있다. 이 흔들리지 않는 간부후보는 한미디로 "만인의 눈에 바로 이 사람"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사람을 뽑는 것이다. 일본의 차관 포스트에 대한 경쟁은 입성하면서부터 시작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들은 해외연수, 계장부터 과장보좌 시절까지 철저한 실무경험을 쌓고, 과장급이 되면 다른 부처 및 의회와의 접촉을 통해 대외 교섭능력을 키워간다.
이들중 발군의 실력을 보인 자가 발탁되어 주요 포스트를 거치면서 간부로 육성되어 간다. 대장성의 경우 차관후보는 긴키(近畿)재무국장을 거쳐 오사카, 도쿄 등 간사이(關西) 경제계를 섭렵하고 이어 거시경제정책을 담당하는 경제기획청 관방장을 거친후, 최종적으로 예산을 담당하는 주계국장을 거쳐 차관에 오르도록 되어있다. 한편 지방정부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자치성은 현(縣)의 총무부장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재무국장을 거쳐 차관에 오르게 된다
일찌감치 능력있는 자를 추려, 십수 년간 갈고 닦아, 능력의 검증을 거쳐 그 기관을 대표하는 후보로 만들어, 이 사람을 범 부처적으로 밀어준다. 이처럼 관료조직 내부에서 행정의 전문가를 육성한 것이 정치권의 바람을 타기 쉬운 구조 속에서 외부로부터의 입김을 막고 자신의 인사질서를 지켜나가는 핵심이 되는 것이다.
인재의 발탁과 육성도 물론이거니와 다른 동기생에게 조금씩 포기하는 마음을 심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초기에는 치열하게 경쟁했더라도 주류의 보직에서 멀어지면 깨끗하게 승복하고 우수한 동기생을 적극적으로 밀어주도록 만든다. 그렇지 않으면 차관을 배출하지 못하는 기수도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은 해 들어온 동기생이 최종의 차관직에 오르면 동료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나머지 사람들은 스스로 물러난다.
3. 경쟁을 통한 철저한 업무수행 태도
일본의 공직사회에는 복지부동이란 없다. 그래서 관청가의 불은 꺼지지않고 공무원들은 자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오히려 너무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때로는 불필요한 간섭이라 할 정도로 대책을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 흠으로 치부될 정도다.
이처럼 열심히 일하는 것은 일본의 관청간에 경쟁의식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속한 기관이나 부서가 명성을 유지하려면 구성원들이 열심히 뛰어야 한다. 일본의 공무원들은 국민의 주목을 받는 참신하고 유용한 정책을 만들려면 남보다 더욱 철저히 연구해야 한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름난 부서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은 마치 싸움꾼처럼 일을 한다.
통산성의 '종이 폭탄'이 좋은 예다. 통산성은 어느 관청이 법령을 만들면 이에 대한 질문을 100 항목정도 작성하여 팩스로 보낸다. 이 싸움의 핵심은 상대방이 팩스를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대량으로 보내는 것이다. 상대가 밤을 세워 답변을 써보내면, 말꼬리를 잡아 50항목 정도를 추가 질문을 또다시 보낸다. 이런 질문에 혼쭐이 나게 되면, 그제야 서로 얼굴을 맞대고 협의에 들어가게 된다. 이 때문에 때에 따라서는 자기 부처의 이익을 침해당하지 않으려고 트집을 잡는다는 소리마저 듣는다.
경제기획청 내국조사1과가 작성하는 일본의 「경제백서」는 정연한 논리 전개로 호평을 받고 있다. 그 백서의 각 구절은 부처 간에 이해 관계가 걸려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장 개방의 필요성을 강조하면 농림수산장관으로부터, 공단 개발에 따른 환경 파괴를 경고하면 건설성과 통산성으로부터 당장 호된 종이 폭탄 세례를 받게 된다. 확실한 수치를 증거로 제시하고 정연한 논리를 전개하지 않으면 한 문장도 살릴 수 없다.
지방자치단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자체간에는 눈에 보이지않는 경쟁이 있다. 자신들의 지역에 보다 많은 공장을 유치하고 주민복지를 위한 보다 많은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중앙에 지원을 요청할 때는 철저한 분석을 토대로 필요성을 끈질기게 설명하여 지원금을 얻어내고 시설을 지을 때도 다른 지역보다 특색이고 하자없는 건물을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이것이 지역의 편에서 주민복지 수준을 높이고 지방 경제력을 튼튼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4. 권한과 역할의 분담을 통한 최대 동원 시스템
일본의 관료조직이 최선의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데는 공무원 개개인이 갖는 역량외에 조직자체가 갖고 있는 인적·물적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를 가르켜 무라마쓰(村松岐夫) 교수는 '최대동원 행정관리'라고 부르고 있다. 이런 최대동원 시스템을 가동시킬 수 있는 원동력은 권한과 역할의 적절한 분담에 있다.
예컨대 각 직급간에는 역할과 권한이 철저하게 분담되어 있다. 국장의 제일 중요한 업무는 정부 위원으로 국회에 나가 답변하고 국회 관계를 원만히 끌어가는 것이다. 과장은 법령 개정이나 정책 추진을 위해 정치가에게 설명하고 민간 단체와 의사 소통을 원할히 해 상호 이해를 돈독히 하는 일이 주요 업무다. 정보의 근원지를 찾아 다니며 문제점을 발굴하고, 항상 민원 지역에 달려가 민원인과 대화하고, 의회 통과를 위해 정치가들을 찾아가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이 과장 이상 관리직의 주요 일과이다.
반면 주로 책상에 앉아 일하는 계층은 공무원이 된 지 5-15년인 계장과 과장 보좌들이다. 실제 보고서나 책자는 모두 이들이 꾸민다. 한창 혈기 왕성한 이들이 열심히 머리를 쓰지 않으면 다른 부처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으며, 소관 업무의 권위 또한 지킬 수 없게 된다.
또한 기술직과 사무직간에도 서로 업무를 존중해 주고 있다. 그래서 전문 기술을 가진 기술직 집단에는 특별한 재량이 주어진다. 기술직의 예산이나 인사 등은 기술직 집단이 자율적으로 관리하며, 의사결정권도 독자적인 틀 안에서 행한다.
한편 저변의 실무직 하위 공무원들은 다년 간의 체험을 바탕으로 법령 적용을 꼼꼼히 챙기는 일을 맡는다. 실제로 이들의 일이 평시 업무의 대부분을 차지할지도 모른다. 고시 출신의 간부 후보생들이 추구하는 일은 새로운 업무 개발과 추진에 있을 따름이다. 따라서 정확하고 공정한 법규정의 적용과 에산의 집행으로 대민사항을 직접 담당하는 일은 주로 실무직 직원들의 몫이다.
결국 거대한 일본을 움직이는 힘은 조직내 모든 사람을 총체적으로 잘 활용하는데서 나온다. 이견이 있을 때는 격렬하게 싸우면서도 일에 관한한 상대의 영역을 존중하여, 그들이 가진 모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일본 관료조직의 힘이 되고 있다.
5. 직업윤리와 자체 정화 시스템
일본은 각 담당자에게 많은 권한이 위임된 반면 이에 상응하는 책임도 크다. 이들은 맡은 일을 공정하게 처리해야 하는 도덕성과 직업윤리가 요구된다.
공정한 업무집행을 위해서는 여러 장치가 필요하다. 권한이 한쪽으로 몰리지 않도록 제도적인 견제장치도 필요하고, 항상 이권에 대한 유혹을 받는 경우는 적절한 감시·감독도 필요하다. 또한 부정부패가 발생한 경우는 단호한 처벌도 따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거대하고 복잡해진 공무원조직을 일일이 감시할 수 없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조직을 통한 자체 윤리관의 확립이 중요하다.
일본의 각 부처에는 일류의식이 있다. 예컨대 관리자들은 자신이 재임하는 중에는 예산삭감이 없어야 하는 것처럼, 부정에 연루된 자가 나오지 말아야 한다는 의식도 강하다. 그래서 각 조직내부에는 자율권이 부여된 그룹별로 자체정화 기능이 작동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특히 중요한 것은 실제 일선에서 뛰고 있는 실무직 공무원들의 역할이다. 상위직에 오를 수 있는 국·과장급 이상의 간부직은 승진을 위한 치열한 상호경쟁 과정을 통해 직업윤리와 도덕성에 대해 검증을 거친다. 그러나 실제 행정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하위 실무직 공무원들이다. 이들은 승진의 기회도 적고 보수가 높은 것도 아니다. 이들의 근로의욕과 책임의식을 복돋우지 않고는 행정이 원만히 이루어 질 수 없다.
그래서 일본은 하위직에도 일의 보람을 찾을 수 있도록 막중한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간부 후보들이 빠른 시일에 이곳저곳 보직을 옮겨 다니며 일반행정관의 길을 갈 때 하위 실무직 공무원들은 과 내의 연속성을 이어가는 일을 맡는다. 여기서 이들은 상당한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맡은 분야의 전문가로 커간다.
일본은 얼핏 간부직들이 가진 것처럼 보이는 명령권도 사실상 행사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그래서 유력 재계인사가 관료의 상층부에 청탁을 하더라도 그것을 아래로 내려보내 실무자들에게 사무를 집행하도록 할 수 없다. 따라서 민간의 유력자도 갖가지 신청수속을 조직의 하부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
일본의 행정 절차는 모두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이것은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며, 합리적인 규칙을 유지하는 수단도 된다. 만약 위에서 결정되어 밑으로 내려오는 방식으로 된다면 외부의 유력자이 행정부의 고위층을 파고들기 쉬울 것이다.
실무직 공무원들은 현장에서 수년간 반복적인 일을 해가며 일에 대한 각종 정보와 경험을 쌓는다. 이들은 상사들이, 보이지 않는 권력의 힘에 의해 물러서려 할 경우에 규정을 들이대고 이를 따질 수 있다. 따라서 각종 청탁이 많은 인허가 사무를 정해진 기준에 따라 판단하는 것도 이들이다. 시장개방과 무역자유화가 되더라도 국민들의 건강과 안전을 꼼꼼히 따지고 검사하는 일도 이들의 역할이다.
일본의 행정은 실무직의 역할을 중시하고 이들에게 전문분야를 맡김으로써 업무의 의존도를 높히고 있다. 다시 말해 그들의 역할을 존중하고 그들에게 만족을 줌으로써 관청의 저변에 해당하는 이들이 잘 움직이도록 만들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하위 실무직의 조직내에서 스스로 부당하게 일처리하는 경우 준엄하게 제재를 가함으로써 자신들의 권위를 지켜 나가고 있다.
반면 조직이 자체정화 능역을 가지려면 우선 공직이란 직장이 매력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공직에 우수한 인재가 모여들고, 직업에 애착을 가지고 일하며, 직장에서 따돌림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일본은 공무원들에게 적어도 대기업 수준에 상응하는 급여수준과 복지를 보장하고 있다.
6. 리더십과 주인의식
행정에 대한 신뢰는 밑에서 행정을 받쳐주는 주는 관료집단과 이를 지휘하는 기관장의 리더십이 어울어질 때 진가를 발휘한다. 일본의 지방자치의 전통을 세우는데는 여러 선각자적인 민선 자치단체장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1960년대 등장했던 미노베(美濃部亮吉) 도쿄지사는 주민복지를 위해 도시가 당연히 갖춰야할 최저한의 시민생활기준으로서 '시빌미니멈'을 도입하고, 또 "한사람의 반대자가 있는 한, 하나의 다리도 놓지않겠다"고 하며 시민과의 대화를 강조하여 주민자치에 신기원을 열었다. 70년대 나가스(長洲一二) 가나가와(神奈川)현 지사는 중앙의 획일주의적인 통제에서 벗어나 지방의 개성, 지방의 문화를 중시하는 '지방의 시대'를 주도했다. 한편 오이타(大分)현의 히라마쓰(平松守彦) 지사는 '일촌일품운동'을 제창하여 얼굴있는 특삼품을 개발하여 주민의 소득을 높여 주었으며, 구마모토(熊本) 현의 호소카와(細川護熙) 지사는 자신을 주식회사 구마모토의 사장이라 하면서 기업유치에 힘써 지역의 경제력 확충에 힘썼다.
그런데 이와 같은 자치단체장의 선각자적인 리더십 속에는 철저한 주인의식과 책임감이 내포되어 있다. 도쿄의 미노베 지사는 차기선거에서 당선기능성이 희박해지자 다음 지사가 소신있게 투자예산을 편성·집행할 수 있도록 하기위해 자신의 임기말에는 투자예산의 편성 및 집행을 자제하는 절제력을 보여 주었다. 한편 고베(神戶)시의 미야자키(宮崎辰雄) 시장이 포트 아일랜드 등 각종 대단위 투자사업을 성공리에 마칠수 있었던 이면에는 전임자들이 과거 세입이 좋았던 시절, 여유 재원을 인기사업에 쓰지않고 훗날을 위해 사유지 매입·기금 적립 등으로 축적해 놓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적어도 주인의식이 강한 단체장들은 자기 임기중의 공적에 연연하지 않고 후대의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방행정을 이끌어 왔던 것이다.
다만 기관장들이 자신의 소신을 관철시키는데는 다음 사항에 유의한다. 기관장의 역할과 관련하여 무라마쓰 교수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펴고 있다.
기관장의 임무는 첫째, 전문가집단을 잘 활용하여 정책수립 및 집행능력을 극대화하도록 조직을 관리하는 것이다. 둘째, 기관장이 속한 정당과 그가 관리하고 있는 관청, 그리고 각종 이익단체를 포함한 유권자집단에 이해대립이 있을 때, 이를 적절히 조정하는 것이다. 셋째, 기회가 주어지면 자신이 속한 소신을 정책에 반영키는 것이다.
무라마쓰 교수는 이 가운데 일상적으로 가장 중시되어야 할 것으로 첫 번째 조직능력의 극대화를 들었고 반면, 가장 신중해야 할 것으로 세 번째인 소신의 달성을 꼽았던 것이다.
7 맺는말
지금 일본의 관료조직도 커다란 변화를 겪고 있다. 올해 확정된 「행정개혁법」을 통해 2001년부터 중앙부처를 대폭 통폐합하기로 한 것이다. 작은 정부, 간소한 행정은 이미 세계적인 추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들은 과거 여러차례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조직정비와 비용절감 등의 개혁을 꾸준히 추진해 온 덕분에 이러한 변화에 비교적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그간 지방자치단체는 행정의 효율화·간소화를 위해 부서를 줄이거나 직할지방기관을 통폐합하고 쓰레기 수집, 기계설비 운영 등의 단순 행정서비스는 민간으로 기능이관을 해 온 터였다. 한편 바깥의 변화의 흐름에 대응하도록 직원들을 민간기업, 다른 지방자치단체, 중앙정부와 수시로 인사교류를 실시함으로 시대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높혀 왔다.
결국 관료집단이 행정을 주도하고 시대변화를 주도해 나가기 위해서는 우선 공무원 자신들이 업무에 전문성을 확보하여 행정의 프로로서 명확한 봉사자세와 직업윤리를 갖고 스스로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한다. 이점에서 우리는 일본의 관료제도가 갖는 장점을 취하고 반면에 이들이 범한 시행착오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 행정의 질을 높여 나가야 할 것이다
< 참고자료 >
이호철(1996), 『일본의 지방자치, 어제와 오늘』, 삼성경제연구소, 서울
이호철(1996), 『일본 관료사회의 실체』, 삼성경제연구소, 서울
公務員硏究會 編(1993),『公務員になりたい人の本』, ダイヤモンド, 東京
宮崎辰雄(1993), 『神戶を創る』, 河出書房新社, 東京
鳴海正泰(1982), 『戰後自治體改革史』, 日本論評社, 東京
川北隆雄(1991), 『通産省』, 講談社現代新書, 講談社, 東京
村松岐夫(1994), 『日本の行政』, 中公新書, 中央公論社, 東京
依田薰(1994), 『お役所のしくみ』, 日本實業出版社, 東京
'형설지공 > 경제경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우자동차의 미래 (0) | 2001.01.27 |
---|---|
아시아의 경제위기와 과학·기술의 중요성 (0) | 2001.01.27 |
전시효과와 황소개구리 (0) | 2001.01.26 |
금융개혁이 시급한 이유 (0) | 2001.01.26 |
클린턴, 남아시아에 간 까닭은 (0) | 2001.0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