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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논평]기업·금융부실 악순환 고리를 끊기 위한 정책과제 (1)

우리 경제는 지금 기업부실이 금융기관 부실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신용경색을 유발해 기업부실을 증가시키는 고질적인 악순환 구조에 빠져들고 있다. 이와 같은 구조에서 헤어나려면 무엇보다 악순환을 유발하는 연결고리들을 찾아내 끊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 우리경제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고질적인 악순환 구조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대우사태 이후 기업부실이 금융기관 부실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신용경색을 유발해 기업부실을 증가시키는 악순환 고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금융부실이 기업부실로 이어지는 악순환 구조

2000년 6월 현재 금융기관 부실채권은 고정 이하 여신과 잠재부실을 모두 포함할 경우 금융기관 총 여신 590조원의 15.5%인 91조원(은행권 64.2조원, 비은행권 27조원)에 달하고 있다. 더욱이 대우를 포함한 상당수의 부실기업의 처리가 지연되면서 금융기관의 잠재부실이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막대한 규모의 금융기관의 부실은 금융중개기능을 마비시키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또한 2차 금융구조조정이 임박하면서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의 대출이 지극히 보수적으로 운용되고 있어 중견기업들 마저도 자금조달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반면 기업들의 위기대처 능력은 매우 취약한 편이다. 그동안의 구조조정에도 불구 상당수 기업들은 여전히 저수익성, 과다한 부채에 시달리고 있다. 증권거래소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현재 상장기업중 30%가 넘는 기업들이 영업활동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차입금 이자마저 감당하지 못하는 상태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은 경기가 호황이었고 수출이 호조를 보였기 때문에 기업 및 금융기관 부실문제가 금융시장의 잠재적인 불안요소로 작용할 뿐 현실화되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고유가, 미국경제 침체 등으로 세계경기가 빠르게 둔화된다면 수출감소 및 내수침체로 인해 기업수익성이 급속히 악화될 것이다. 한계기업의 부도가 속출하면서 다시 금융기관 부실이 크게 늘어나는 악순환이 심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최근 정부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공적자금 40조원을 추가조성하고 부실기업의 조기퇴출을 유도하기로 한 것은 일단 긍정적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공적자금 투입은 문제해결을 위한 시작에 불과하고 아직 극복해야 할 무수한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누적된 부실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이를 일거에 해결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인 데다 고유가, 미국경기 침체 등 일부 경제불안 요인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동안 정책실기로 정책신뢰도가 워낙 저하되어 있는 상태에다 집단이기주의, 남북문제, 국회공전 등 정치사회적 갈등이 증폭되고 있어 정부의 정책추진력도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한계를 감안하면서 본문에서는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점과 정부가 우선적으로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알아보고자 한다.


악순환을 유발하는 연결고리 차단해야

우리경제를 짓누르고 있는 이와 같은 악순환 구조를 타파하려면 무엇보다 악순환을 유발하는 연결고리들을 찾아내 끊어야 할 것이다.

첫째, 가장 시급한 과제는 금융기관 부실채권의 정리라고 할 수 있다. 금융기관 부실채권은 금융시장의 동맥경화를 일으키는 근본적인 장애요인이다. 이미 정부가 40조원 규모의 공적자금을 조성하겠다는 방침을 밝혔기 때문에 일단 부실채권 정리를 위한 물꼬는 텄다고 할 수 있다. 공적자금의 규모가 다소 많다는 지적도 있으나 외환위기 당시보다 부실규모가 더 늘어났고 실물경기 둔화, 신용경색으로 추가적 부실발생이 우려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40조원의 규모는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공적자금을 사용하는데 있어 정부, 기업, 채권단간 손실분담원칙을 명확히 정하고 부실경영진에 대한 강도높은 책임추궁을 하여 자금사용의 효율성을 높이고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둘째, 부실기업 처리를 신속히 마무리해야 한다. 부실기업 처리가 지연될수록 금융기관의 잠재부실이 더욱 늘어나게 되어 40조원의 공적자금으로도 부족해질 수 있다. 대우차 문제의 경우 빠른 시간에 매각을 성공시키던지 위탁경영 등 본격적인 기업회생작업을 실시하든지 조속한 방침이 확정되는 것이 시장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최근 정부는 채무상환능력, 수익성, 안정성을 기준으로 부실기업을 가려내 시장에서 퇴출시킨다는 방침을 정한 바 있다. 그런데 부실판정 기준이 너무 낮으면 부실기업 처리의 효과가 없을 것이지만 반대로 기준이 너무 엄격해도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평가항목중 이자보상배율이 1.0미만인 기업들이 일차 심사대상이 될 것이라 정부가 밝힌 바 있는데 상장기업중 이자보상배율이 1.0미만인 기업이 전체의 30%를 넘고 있다. 이 기업들 모두가 퇴출되지는 않겠지만, 누가 최종 퇴출 대상인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으로 인해 금융기관이 자금운용을 보수화한다면 단기적으로 신용경색이 더 심화될 우려가 있다. 따라서 정부가 나서서 부실기업을 선정하는 인상을 주기보다는 가이드라인만 정하되 구체적인 결정은 채권단의 자율적 책임하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부실기업 퇴출이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회사정리법, 파산법, 화의법 등 도산관련 법안을 정비해야 할 것이다.


정크본드 시장 활성화 및 국채금리 인하 고려해야

셋째, 신용경색 해소를 위한 다양한 조치가 필요하다. 시중자금이 투신 등 제2금융권에서 이탈해 은행에만 몰림으로써 회사채와 CP 의존도가 높은 중견기업들의 자금사정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정부가 채권전용펀드 조성, 프라이머리 CBO 발행 등 자금시장안정 대책을 발표하여 시행하고 있는데 투신권의 수신기반 확충을 위해서 좀더 다양한 자금유인책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은행들이 수신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기업대출을 꺼리고 있는데 자발적으로 대출을 늘릴 수 있는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채금리를 더 떨어뜨릴 필요가 있다. 국채금리와 기타금리간 차이가 별로 없어서 금융기관들이 무위험 자산인 국채에만 투자하려고 하여 신용경색을 조장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채 발행물량을 줄이고 공개시장 조작을 통해 국채를 사들여서 국채금리를 떨어뜨리는 것을 고려해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40조원 규모의 공적자금이 추가조성됨으로써 이자지급 부담이 더 커졌기 때문에 정부가 여력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행히 내년까지는 세수가 많이 들어올 전망이므로 이 재원을 활용하는 것을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한편 외환위기 당시 발행한 회사채의 만기 도래액이 올해 말과 내년 초로 집중돼 자금시장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는데 만기 도래 회사채의 차환발행을 용이하게 하고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는 정크본드 시장을 지금부터 활성화하는데 힘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출처 : LG 경제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