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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논평]기업·금융부실 악순환 고리를 끊기 위한 정책과제 (2)

BIS 만능주의에서 벗어나야

넷째, 금융구조조정이 신용경색을 조장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정부는 현재 부실은행과 공적자금 투입은행을 금융지주회사로 묶는다는 방침과 함께 우량은행들간에도 짝짓기를 독려하고 있다.

그런데 금융기관 구조조정의 기준이 지나치게 BIS 비율 단일지표에만 입각해 있어서 신용경색을 조장하는 측면이 있다. 정부나 금융기관 심지어 일반국민까지 BIS 비율을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있기 때문에 부실은행은 물론 우량은행마저도 항차 있을지 모를 구조조정 과정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BIS 비율에 영향을 주는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를 꺼리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BIS 비율은 글자 그대로 은행의 건전성 지표이지 수익성, 성장성 등 모든 측면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구조조정의 기준이나 은행경쟁력 판단지표로 BIS 비율뿐 아니라 다른 지표도 활용해야 할 것이다.

외환위기를 겪은 나라중 가장 성공적인 금융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평가받는 아르헨티나의 경우 성공요인으로 금융기관의 수익성, 민감도 등을 반영한 종합적 경영평가제도(CAMELS)의 도입을 들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우리처럼 BIS 비율을 모든 금융기관에 일률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다양한 평가방법을 통해 부실이 우려되는 은행에게는 BIS 비율을 더 높일 것을 요구하고 우량은행에게는 그 요구사항을 완화하는 등 BIS 비율 적용을 차등화해 결과적으로 금융기관이 자기 역량에 따라 최적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었다. 우리의 경우도 오래전부터 CAMELS 등이 도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BIS 비율만이 강조되고 있는데 BIS 비율 외에 다른 지표를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BIS 만능주의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할 것이다.

또한 합병이 세계적인 추세이기는 하지만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측면에서 은행합병에 지나치게 연연하는 자세는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실제 조직과 인력축소가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히 합병만을 한다고 해서 부실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거대부실기관이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규율의 확립을 위해서는 정부가 부실은행에 대해서 유동성 공급을 중단함으로써 부실은행의 퇴출을 유도할 수 있어야 하나 거대기관이 부실화 될 경우 대마불사에 따른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구조조정 관련법안 조속히 통과되어야

다섯째, 기업들의 자구노력이 더욱 가속화되어야 한다. 경제위기 이후 구조조정 노력이 지속되면서 기업 재무구조가 개선되고 수익성도 향상되었지만 이는 환율, 금리 등 금융환경 변화에 기인한 바 크다. 실제로 지난해 우리기업들은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렸지만 기업 본연의 활동인 영업이익 부문의 개선폭은 그리 크지 않았다. 부채비율도 200% 수준으로 낮아졌지만 선진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며 이마저도 주로 유상증자 등을 통한 자기자본 확대에 의한 것이며 부채 규모 자체는 별로 줄어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기업의 채무상환능력을 나타내는 이자보상배율이 여전히 낮은 상황이어서 영업성과에 비해 부채상환능력이 크게 취약한 상태이다.

따라서 부채비율을 지금보다 더 떨어뜨려야 할 것이며 핵심업종에 역량을 집중하여 수익성과 경쟁력을 높여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구조조정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는 지금 국회에 계류중인 구조조정투자회사법(CRV),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등 구조조정 관련법안이 조속히 통과되어야 할 것이며 지주회사에 대한 요건을 다소 완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시장의 힘에 의해 구조조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M&A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최근 정부가 M&A시 사전신고제를 사후신고제로 전환하는 등 관련 절차를 개선하였는데 좀더 근본적으로 M&A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공정거래법과 출자총액제한제도 등의 개선도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최근 들어 정부의 기업구조조정의 핵심이 재무구조 개선에서 지배구조 개선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상법과 증권거래법의 개정으로 소액주주권한이 강화되는 등 제도상으로만 보면 우리의 대주주 견제장치는 이미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 다만 정부나 국민의 눈에 지배구조 개선이 미흡하게 보이는 것은 구체적인 성과가 나타나기에는 아직 시간이 짧았다는 점과 함께 일부 기업의 문제가 전체의 문제로 크게 부각된 측면이 있다.

따라서 당장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더 강력한 대주주 견제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기업의 민주화는 달성하겠지만 다른 한편 재무구조 개선, 사업구조 개선 등 더 시급한 구조조정 과제를 어렵게 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물가보다는 경기를 중시해야

여섯째, 거시경제정책은 물가보다 경기를 우선하는 방향으로 추진해야 한다. 올들어 조정징후를 보이던 실물경기가 7월 이후 다시 살아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그동안의 조정에 따른 일시적 반등인지 아직까지는 분명치 않다. 또한 고유가로 인해 세계경기가 당초 예상과 달리 둔화될 가능성이 높아 내년부터는 수출환경마저 크게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고유가와 같은 공급측면의 쇼크는 경기침체와 물가상승이라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야기하기 때문에 경기를 우선할 것인가 물가를 우선할 것인가 하는 정책딜레마를 야기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경제 상황이 어디에 있는 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부에서는 물가상승 압력이 상당히 높아져 있기 때문에 금리인상 등 긴축정책 실시로 물가상승 압력을 완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물론 현재 우리경제가 다른 심각한 문제가 없고 경기과열 상황이라면 당연히 물가를 우선시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앞에서 보듯 우리경제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금융부실로 인해 야기되는 신용경색이다. 금리인상으로 물가상승 압력은 어느 정도 완화될 수 있겠지만 그로 인해 신용경색이 더 심해질 가능성이 있다. 또한 금리인상으로 경기가 침체될 경우 금융 및 기업구조조정을 더욱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따라서 정부와 한국은행은 당초 설정한 내년 물가안정목표를 다소 완화해서 통화정책을 운용할 필요가 있다. 무리하게 물가안정을 고수하려고 할 경우 신용경색 지속, 내수침체 등으로 극심한 경기불황을 겪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책신뢰도 제고가 관건

마지막으로 이와 같은 정책들이 효과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의 정책신뢰도가 제고되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가장 큰 지적은 정부 스스로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금리정책, 현대사태, 투신사 문제 등 각종 현안에 있어서 부처간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가 하면, 동일한 부처 내에서도 문제가 생길 경우 기존의 방침을 수정하는 등 대증적이고 미봉 차원에서 정책을 추진한 결과 정부 스스로 시장의 신뢰를 무너뜨린 측면이 없지 않았다.

앞으로 우리 경제는 은행합병, 부실기업 퇴출, 근로시간 단축, 공기업 구조조정 등 이해관계자간 대립과 갈등을 야기할 수 밖에 없는 난관을 넘어야 한다. 정부가 정책수립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조율을 하되 일단 정한 방침은 원칙에 입각하여 일관성있게 추진하여 시장과 대내외적인 신뢰를 획득해야 할 것이다.

때로는 위기 자체보다는 위기심리가 문제를 더 복잡하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지금 우리 경제가 바로 비슷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IMF 위기를 극복한 저력으로 볼 때 현 상황이 극복하지 못할 위기국면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위기극복을 위해 정부와 국민이 한마음이 되었던 외환위기 초심의 자세이며 그 첫걸음은 정부의 정책신뢰도 제고에 있다고 할 것이다.

<출처 : LG 경제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