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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칼럼]국립대학의 교육과 연구 질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

-'국립대학 발전계획안'에 대한 비판과 대안-  

                                      김 형 기(경제통상학부 교수, 국교협 정책위원)


  국립대학 발전계획안(이하 '계획안')은 대학을 일종의 기업조직으로 보고 교육과 연구의 질을 높이기 위해 과거 기업이 도입한 낡은 품질관리 기법을 대학에서 적용하고 있다. 하나의 조직으로서 대학도 최소의 투입으로 최대의 산출을 내어 효율적으로 운영되어야 하기 때문에, 대학운영에 경영과 관리 개념을 도입하려는 사고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대학은 기업조직이 아니라 교육기관이라는 특수성이 망각되어서는 안 된다. 교육과정은 인격과 인격의 만남과 상호작용의 과정이고 비판과 토론을 통해 교학상장(敎學相長)하는 과정이다. 이는 양적으로 계량되거나 표준화될 수 없는 문화적 과정이다. 특히 고도의 비판정신과 창의성이 요구되는 대학교육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특수성을 무시하고 생산과정에 적용되는 관리의 개념을 그대로 대학교육에 적용하는 것은 큰 오류다.
  '계획안'은 교수의 연구 및 교육의 성과를 높이기 위한 내부 경쟁시스템 구축을 위해 교수계약 임용제, 교수업적평가제, 교수연봉제, 우수교수 인센티브제 등의 도입을 제안하고 있다. 과연 이 제도들이 연구 및 교육의 질 향상에 기여할 것인가? 오로지 경쟁원리에 기초한 고용 및 인센티브제도가 과연 대학의 경쟁력을 강화할 것인가?
  계약제와 연봉제가 교수들 사이의 경쟁을 촉진하여 연구와 교육의 질을 높이는 측면이 있겠지만, 오히려 그 질을 악화시켜는 측면이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고용안정이 생산성 향상과 품질 향상에 기여할 것인가 아니면 해고의 위협이 생산성 향상과 품질 향상을 자극할 것인가? 어느 것이 참인지는 아직 검정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노동시장 관행과 문화에 비추어 계약제와 연봉제가 과연 대학조직의 효율을 높일지도 미지수다. 오히려 별 뚜렷한 능력상의 차이가 없는데도 연봉이 차이가 난다면 불평과 상호불신을 조장하여 조직의 효율성을 떨어뜨릴지 모른다.
  '계획안'은 대학사회 내에 '경쟁시스템' 구축만 강조할 뿐 '협력시스템' 구축에는 관심이 없다. 교수들이 팀을 이루어 서로 협력하여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시스템의 구축은 연구와 교육의 질 향상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개별 교수들간의  경쟁을 부추기는 '계획안'의 인센티브 제도들은 개인의 경쟁력 향상에는 어느 정도 기여할지 모르나 이러한 집단적 효율성 나아가 시스템의 총체적 효율성 획득에는 오히려 부정적 효과를 미칠 것이다.
  대학혁신 시스템 구축에는 적자생존의 원자적 경쟁이 아니라 '협력 속의 공정한 경쟁'이 필요하다. 경쟁을 통한 혁신만이 아니라 협력을 통한 혁신도 중요하다. 특히 네트워크를 통한 상호교류가 생산성 향상에 핵심적 요소가 되는 디지털 경제에서는 개인들간의 협력체제 구축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이러한 점에 대한 인식이 없이 경쟁을 통한 혁신이란 관점에 서 있는 '계획안'은 실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계획안'은 현재의 교육투자 재원의 분배방식 변경을 통해 연구와 교육의 질을 높이려 하고 있다. 추가적인 교육투자 없이 주어진 재원을 재분배하는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여 교수들을 상호 경쟁시켜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자는 것이다. 국립대학의 연구 및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획기적인 교육투자가 없이는 '계획안'의 인센티브 제도들은 유명무실해져 결국 실패하게 될 것이다.      
  대학의 교육과 연구의 질을 높이기 위한 시스템은 어떻게 구축되어야 할 것인가?    
  첫째, 실효성이 없고 부작용만 초래할 가능성이 높은 연봉제 도입 시도는 철회되어야 한다. 대신, 보상체계는 '기본보장+활동 및 성과에 따른 차등'이란 원칙에 기초하여 설계되어야  즉 월급체계는 성과에 따라 차등을 두지 말고 '기본보장 원칙'에 따라 연공서열형으로      설계하고, 연구비 등은 '활동에 따른 차등 원칙'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소그룹 단위의 교육혁신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부와 대학원에서 전공별 공동강의, 다학문간 공동강의, 대학간 공동강의, 산학연 공동강의 등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새로운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그룹에게는 활동기준으로 보상을 해야 할 것이다.
  셋째, 교수협의회의 의결기구화에 기초한 참가 시스템과 전공간·다학문간의 팀단위 공동연구와 교육혁신프로그램 실시를 통한 협력시스템과 대학간·팀간·프로그램간의 경쟁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래서 '참가-협력-경쟁'을 통한 대학혁신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