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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칼럼]지방분권을 국정지표로 설정하라

   김 형 기(경북대 교수, 대구사회연구소장)

  대한민국은 '서울공화국'이라는 말이 한때 유행한 적이 있다. 정치, 경제, 문화 등 국민의 삶에 영향을 주는 모든 요인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누리는 혜택이 서울에 편중되어 있는 현실을 비꼰 말일 것이다.  
  지금 서울이 아닌 모든 지역은 '시골'이고 쇠퇴하는 주변부에 불과하다. 어떤 사람들은 지방은 서울의 식민지라고 단언한다. 서울은 대한민국 영토의 극히 일부에 불과한데 어찌해서 대한민국이 '서울공화국'이 되었던가?        
  서울공화국의 역사적 근원은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극도의 서울집중 현상은 36년 동안의 일제 식민지 통치와 30년 동안의 개발독재라는 잘못된 역사적 유산에서 비롯된다.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총독부는 서울을 기지로 해서 지방에 대한 수탈을 자행하였다. 각 지방에서 수탈된 경제잉여가 서울에 집중되고 이것이 일본으로 넘어갔다. 이에 따라 지방은 황폐화되는 반면 식민지 수도 서울은 흥청거렸다.
  1960년대 이후 30여년 동안의 개발독재체제에서 극도로 중앙 집중적인 군사독재정권이 추진한 정부주도형 경제발전 전략이 채택되었다. 그 결과 인적  및 물적 자원이 서울에 집중되었다. 사람과 돈이 지방에서 유출되어 서울에 집중된 것이다.
  모든 주요한 국가의 의사결정이 중앙의 독재정권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나마 지방의 이익을 대변할 가능성이 있는 국회는 거수기와 들러리에 불과하였다. 반민주적인 정치, 경제, 문화가 지배하였다. 이러한 반민주적인 개발독재가 한 세대동안 지배함에 따라 서울과 지방의 격차가 날이 갈수록 확대되었다.        
  '국민의 정부'가 지금 내걸고 있는 국정지표는 민주주의, 시장경제, 생산적 복지라는 세 가지이다. 이 3대 국정지표와 함께 지방분권이 새로운 국정지표로 추가되어야 한다. 현 정부가 출범할 때에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을 국정지표로 설정하였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21세기 여명기에 지구촌의 문명화된 사회가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세계적 표준이기도 하다.
   IMF 경제위기를 계기로 대량실업이 발생하고 저소득 빈곤층 비중이 높아지자 정부는 생산적 복지를 새로운 국정지표로 추가하였다. 시장경제가 자동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복지를 합리적으로 확충하기 위해 '노동을 통한 복지'를 지향하는 생산적 복지를 구현하기 위한 정책대안을 마련중인 것으로 안다.
  그런데 적어도 지난 30년 동안 심화되어온 과도한 중앙집중은 시장경제에 맡겨놓아서는 자동적으로 해소될 수 없다. 원래 시장기구는 '부익부 빈익빈'을 초래하여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미 중앙집중이 크게 진전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경쟁과 수요공급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시장기구에 맡겨두면 중앙집중이 더욱 심화되어 서울과 지방간의 불평등이 더욱 확대될 수 있다. 따라서 지방분권을 위한 획기적인 제도개혁이 없으면 과도한 중앙집중이 시정될 수 없을 것이다.
  지방자치를 실시한지 5년이 되었다. 현재 지방자치는 단체장 직선 이외에 특별히 추진된 것이 없다 할 수 있다. 여전히 거의 모든 핵심적 의사결정권을 중앙정부가 틀어쥐고 있다. 아직까지 지방정부는 중앙정부가 기획하고 결정한 사항을 단순히 집행하는 하위 집행자에 불과하다. 그 결과 돈과 사람의 서울 집중은 완화되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21세기 지식기반경제에서 결정적인 요소인 지식과 정보가 여전히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지방은 지식창출과 정보 생산 능력이 빈약하고 지식과 정보의 소비지로 전락되고 있다. 따라서 이대로 가면 공업화 시대에 심화되어온 서울과 지방간의 격차가 정보화 시대에도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계층간 및 연령간 디지털 격차뿐만 아니라 지역간 디지털 격차가 중대 문제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런 까닭에 지방이 주변화되고 황폐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지방분권을 국정지표의 하나로 설정하고 획기적인 분권화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지식기반경제에서 지역경제의 발전에 핵심적 역할을 담당해야할 지방대학을 육성하는 일, 지방정부에 대한 교부금을 크게 증가시키고 조세 징수권을 이양하는 재정분권을 실천하는 일, 행정분권을 추진하는 일, 자주적인 지역문화를 창달하는 일 등 정치, 경제, 교육, 문화 각 영역에서 내실 있는 분권화가 추진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