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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칼럼]신노사문화 창출, 무엇이 문제인가?

  김 형 기(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
  
          
  실업대책에 주력하고 있던 노동부가 최근 들어 신노사문화 창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얼마전 새로 취임한 노동부 장관은 신노사문화 창출을 가장 역점을 두는 정책으로 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신노사문화 창출은 이미 작년에 대통령이 밝힌 국정 기조중의 하나로 제시되었다.
  신노사문화는 참여와 협력의 새로운 노사문화로 일컬어진다. 신노사문화를 창출하는 것은 한국경제의 현실에 비추어 절실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현재 노동부가 추진하고 있는 신노사문화 창출을 위한 정책 내용을 보면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노동부가 신노사문화 추진기획단을 만들고 시도 단위의 추진협의회를 만들며 시민단체들을 참여시켜 신노사문화 창출을 위한 범국민 의식개혁 운동을 전개하겠다는 것이다. 신노사문화를 위한 노사공동 선언을 추진하고 신노사문화 모범기업 사례를 표창하며 대대적인 교육 홍보사업을 전개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동부의 움직임은 과거 유신독재 정권 아래에서 전개된 새마을 운동이나 노사협력선언 운동을 연상하게 만든다. 또한 이미 실패한 운동으로 드러난 제2건국 운동의 복사판을 보는 느낌이다. 국민의 정부가 일을 추진하는 방식이 어쩌면 그렇게 개발독재 시대의 업무추진 방식을 빼 닮았는지 모르겠다.
  과연 이러한 의식개혁 운동이 노사관계의 당사자인 노사 양측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누구보다 노사협력을 강조하는 사용자들은 과연 이 운동의 실효성이 있다고 볼까? 특히 과거 유신독재 정권이 강요한 노사협력 운동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노동자들이 의식개혁을 앞세운 신노사문화 창출 정책을 신뢰할 것인가?
  물론 다른 한편에서 신노사문화 창출을 위한 합리적 제도 확립을 위한 개혁을 추진한다고 한다. 어떠한 제도개혁이 이루어질지 두고 볼 일이지만, 현재로서는 아무래도 제도개혁보다는 의식개혁 운동이 신노사문화 창출 사업의 중심인 것 같다.
  문화는 사람들의 생활양식이고,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이다. 그렇다면 노사문화란 노동자들과 사용자들의 노사문제를 둘러싼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은 그들이 맺고 있는 관계들의 성격에 따라 달라진다. 물론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그 관계의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  
  우리 나라 노동자들과 사용자들의 생각과 행동은 우리 나라 노사관계의 성격에 상당정도 달려있다. 따라서 현재의 노사문화는 상당정도 과거와 현재의 노사관계의 산물이라 하겠다. 따라서 현재의 노사관계를 바꾸기 위한 제도개혁이 선행되지 않고는 신노사문화를 창달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우리 나라 전체 국민들의 일반적인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이 노사문화에 반영되고 있을 것이다. 노동자도 사용자도 국민의 한 사람이고 사회 속에서 일상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범국민 의식개혁운동의 필요성은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 등장한 정부들이 노사관계 제도개혁은 제대로 하지 않고 의식개혁만 강조하다가 결국은 흐지부지하고 말아 아무런 긍정적 효과도 거두지 못하고 불신만 쌓은 경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현재 노동부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을 보면 국민의 정부도 그런 전철을 밟지 않을까 한다.
  참여와 협력의 노사관계를 지향하는 신노사문화 창출 정책이 실효성 없는 한때의 캠페인성 의식개혁 운동에 그치지 않고 노사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 구축을 위한 혁신 과정이 되려면, 어떠한 정책 기조를 견지해야할 것인가?
  우선, 우리 나라 사용자들과 노동자들의 의식과 행동 그리고 노동운동의 현황과 기업 경영 실태에 비추어, 참여는 '교섭에 기초한 참여'가 되어야 한다. 단체교섭 없는 참여를 노동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노사간에 현실적으로 이해대립이 생길 경우, 합리적 단체교섭을 통해 이를 해결해야 하며 참여의 범위와 내용이 교섭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불필요한 소모적 교섭을 낳는 원인중의 하나인 기업별 교섭체계를 산업별 교섭체계로 전환시켜야 한다. 산업별 교섭체계를 정립하는 일은 현재 개점휴업 상태에 있는 노사정위원회를 활성화시키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기업별 노조체제 아래에서는 노사정간의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기가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그 다음 '참여에 기초한 협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노동자들이 적극적인 작업장 참여를 통해 생산성 및 품질 향상에 노력하고 전략적 의사결정 참여를 통해 기업발전에 주체적으로 기여하려면 노동자들의 경영참가는 필수적이다. 전략적 의사결정 참여없이 작업장 참가만 바라는 사용자들의 태도나 작업장 참가에는 소극적이면서 전략적 의사결정 참가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태도 모두 지양되어야 한다.
  이와 같이 '교섭에 기초한 참여'와 '참여에 기초한 협력'을 통해 마침내 공생적 노사관계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노사관계를 구축하는데는 의식개혁 운동에 선행하여 제도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불신과 갈등을 증폭시키는 제도를 개혁해야 노사간에 신뢰가 생기고 의식이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산업별 교섭의 제도화와 노동자 경영 참여의 제도화가 지금 일정에 올라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