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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P2P와 컨텐트 경제

P2P와 컨텐트 경제



지난 몇 년 사이에 인터넷의 사용이 급속히 확대됨에 따라 국내에서도 “컨텐트”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그 중요성이 크게 강조되고 있다. 그럼에도 이 말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분한 이해가 부족했던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여기서는 컨텐트가 왜 그렇게 중요한지를 최근에 관심과 논란을 동시에 끌고 있는 냅스터의 사례와 이로부터 유래된 P2P 네트워킹을 중심으로 논의해보기로 한다.


냅스터, 어떤 회사인가?

1990년대 중반 인터넷이 일상화된 이후로 각 기업과 소비자들은 인터넷에 관련된 숱하게 많은 신조어와 유행의 흐름을 목격해왔다. 한 때 “자바(Java)”가 커피의 한 가지인지 프로그래밍 언어인지 분간을 못하면 시대에 뒤진 컴맹쯤으로 취급받곤 했었다. 그리고 바로 작년 초반까지만 해도 이커머스, 특히 장래에 화학약품에서 사무용품에 이르기까지 기업간의 모든 거래를 중개할 것으로 기대되던 B2B(business to business) 전자상거래가 세상을 당장 바꿔놓을 것처럼 떠들썩 했었다.

모든 유행이 그러하듯이 이들 용어는 어느새 역사의 한 구석으로 밀려나 버렸고 이제 첨단을 달리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어휘의 하나로 P2P(peer to peer 또는 친구 동료간을 의미)가 급속히 부상하고 있다. 이 새로운 추세의 배경에 있는 기업이 바로 냅스터(Napster)라는 묘한 이름의 신생기업이다.

인터넷을 통해 소리바다 등 음악파일 검색 사이트에서 MP3 파일을 내려받아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냅스터라는 이름과 헤드폰을 쓴 고양이 얼굴의 회사 로고에 이미 익숙해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컴퓨터로 음악을 감상하는 층은 여전히 10-20대의 신세대에 한정되어 있으므로 그렇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 여기서 약간의 설명을 덧붙이기로 한다.

냅스터는 생긴지 고작 1년 남짓한 회사로 19세의 한 결손가정 출신 대학중퇴생이 취미삼아 제작한 파일공유 프로그램이 인터넷 상에서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상업적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판단, 그의 사업가 삼촌에 의해 설립이 됐다고 한다. 1999년 5월 서비스를 개시한 이래 냅스터는 2000년 12월 현재까지 대학캠퍼스를 중심으로 전세계 3천8백만이라는 경이적인 사용자 수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동사가 음악저작권을 무시한 채 사용자들에게 무상으로 음악을 나눠주는 셈이 되어서 음반업계의 신경을 건드린데 있었다. 작년 7월 미국의 레코드 산업협회(RIAA)는 저작권 침해로 냅스터를 제소하였고, 급기야는 법원이 RIAA의 손을 들어주고 냅스터 사이트의 폐쇄를 명령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사이트 폐쇄명령은 일시 유예되었지만 동사의 장래는 극히 불투명한 상태에 있었다.

냅스터가 회생의 기회를 잡은 계기는 10월 말 세계 3위의 미디어기업 버텔스만이 냅스터에 대한 저작권 소송을 취하하고 제휴를 체결한다는 발표를 하고부터 였다. 그로부터 지난 여름 한 때 유행어로 떠올랐던 P2P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P2P 네트워킹


말 그대로 P2P란 중앙 호스트 컴퓨터의 개입을 배제한 개개인간의 파일교환 등 온라인 상 직접 교통을 의미한다. 이 P2P가 세간의 주목을 끄는 이유는 단지 그 기능이 음악파일을 주고받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P2P는 음악파일 뿐만 아니라 디지털로 전환 가능한 모든 종류의 컨텐트를 배급하고 또 각 기업내 업무의 분산처리와 기업간 거래의 애플리케이션으로 무한히 영역을 확장시켜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세계최대의 반도체제조업체인 인텔(Intel)社의 경우 반도체 설계용 슈퍼컴퓨터를 구입하는 대신 엔지니어들로 하여금 사내 1만여대 PC의 여유 하드디스크 공간을 네트웍으로 연결, 사용케 함으로써 지금까지 5억 달러 이상의 비용 절감 효과를 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거기다가 인텔은 작년 여름 신생 P2P업체들을 지원하기 위한 협의체까지 결성해놓은 상태다.

인텔이 P2P에 이렇게 화끈 달아 있는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파일공유와 데이터 분산처리, 지능형 검색 등을 포괄하는 P2P 기술이 상용화되면 각 기업과 일반 소비자들 사이에서 그 활용도가 매우 높아질 것이고, 그럴 경우 PC에 보다 과중한 업무처리 능력이 요구되므로 상당한 업그레이드 및 신규구매 수요가 창출될 것이다. 따라서 반도체 메이커 인텔은 보다 많은 고성능 칩을 팔 수 있게 된다는 계산이다.

이밖에도 미 버클리大가 주관하는 외계생명체 탐사 프로젝트 ‘SETI@home’은 인터넷 상의 약 2백만대 컴퓨터를 연결, 푸에르토리코 아레시보 전파망원경으로 잡은 외계신호 데이터를 분산병렬 처리하는 방식으로 지금까지 일반 컴퓨터 한 대가 무려 34만년이 걸려 처리해야 할 방대한 분량의 자료를 분석해 냈다고 한다.

이렇듯 P2P는 컴퓨터 처리능력을 최대한으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혁신적인 수단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어떤 기술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술자체의 잠재력 뿐만 아니라 시장성까지 충족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이 P2P로 돈을 벌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런 면에선 아직 그렇게 확실한 대답이 나오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인텔이 P2P에 적극적 투자를 하고 있는 반면에 오라클이나 컴팩 컴퓨터 등 다른 주요 기업들은 아직 투자를 주저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렇다는 것은 P2P가 아직도 확고한 수익모델로 자리잡지 못했기 때문이라 하겠다.


수익모델

냅스터와 유사 서비스인 뉴텔라(Gnutella) 같은 음악파일 공유사이트의 인기로 상당한 주목을 받게 된 P2P 네트워킹은 앞으로 정보공유 방식과 개별 컴퓨터의 사용방식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하지만 뭔가를 혁신하기 위해, 그리고 B2B 마켓플레이스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P2P가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고 할 수 있다. 바로 1년여 전 기업간 거래의 방식을 완전히 뒤바꿔 놓으리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B2B는 상이한 구성요소 간의 기술적 양립 불가능성 등으로 인해 그저 수많은 거래방식 중 하나의 선택으로 전락한 바 있다.

P2P 네트워킹이 결국 유망한 사업이 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주장은 오늘날 전세계에서 사용되는 컴퓨터의 수가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최근 수많은 신생업체들이 P2P 네트워킹의 강점을 이용해 돈을 벌겠다는 기대 속에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들을 제안했으나, 대부문 단명하거나 또는 시장에서 아예 이름도 알리지 못한 채 사라지기도 한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벤처투자회사들이 P2P에 군침을 흘리는 이유는 기존 전자상거래 사이트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선 광고와 마케팅에 막대한 액수의 투자를 해야 하는 반면, P2P는 그런 문제를 깨끗이 해결하고 있다는데 있다. 기존 전자상거래 회사들은 신규고객을 유치하고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단 한 푼의 수입을 거두기도 전에 수 십억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어야 한다. 이에 비하면 P2P는 마치 바이러스가 퍼지듯 저절로 이용자가 늘어나는 특성이 있다. 냅스터의 경우도 1천만명 이상의 이용자를 확보하는 동안 단 한 차례의 공식 광고를 한 적이 없다. 순전히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간 셈이다.

P2P는 크게 나눠 두 종류의 기술로 구분된다. 하나는 서로 다른 2개의 컴퓨터간에 디지털 파일 및 데이터를 공유하는 것을 말하며, 다른 하나는 서로 다른 컴퓨터들의 CPU 사이클을 공유하는 것이다. 현재 이 두 가지 기술을 이용해 내놓아진 몇 가지 수익모델들이 있다.

첫번째 수익모델은 P2P 네트웍을 통해 디지털 컨텐트 배급을 중개하고 이에 대한 수수료를 징수하는 것이다. 베스트셀러 공포소설 작가 스티븐 킹(Stephen King)이 이 방식을 통해 신간 전자서적의 첫 6 장(章)을 일정한 시차를 두고 배급하다가 최근 중도하차를 발표한 바 있다. 컨텐트를 공짜로 다운로드하게 하지 않고 독자들에게 양심적으로 1달러씩을 지불토록 한 스티븐 킹의 방법은 다운로드를 통해 최초로 매출을 창출했다는 점에서는 한정적이나마 성공적인 실험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 기술은 네트웍을 통해 다운로드된 디지털 컨텐트에 대한 추적은 가능하지만, 구매자가 다운로드 받은 파일을 다른 사람에게 보내는 경우를 추적할 수 있는 방법이 제시되지 못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수익모델은 여전히 소액 수수료 징수의 어려움은 물론이고 네트웍 상에서 수백 만 개의 파일을 운영하는데 드는 엄청난 시간과 비용 등이 극복할 문제로 남아 있다.

많은 업체들이 시도하고 있는 또 다른 수익모델은 기업들이 사내 또는 협력업체들과 디지털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P2P 인프라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 모델은 이미 파일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조직 내부에 P2P 네트웍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이 방식을 수익모델로 삼는 업체들은 고객 업체의 P2P 네트웍을 개발·유지해 주는 대가를 선불로 받거나 또는 월단위 수수료로 청구한다.

이 밖에도 파일이나 정보를 공유하는 단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개별 PC의 마이크로프로세서에서 사용되지 않는 처리능력을 활용하는 기술이 있다. 이 기술은 네트웍으로 연결된 수많은 컴퓨터들이 슈퍼컴퓨터를 대신해 복잡한 단일 작업을 공동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데, 이 기술을 이용하면 기업은 슈퍼컴퓨터를 구매·유지하는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며, 기존에 설치된 PC 네트웍의 활용도를 극대화할 수 있다. 하지만 일련의 컴퓨터들을 모아 제3자가 이들 컴퓨터를 이용해 데이터 처리를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독립적 비즈니스로서의 성공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또 다른 P2P 네트워킹 기술 응용으로 어떤 업체들은 컨텐트의 배급 방식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줄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들은 네트웍과 연결된 개별 컴퓨터 안에 있는 컨텐트를 직접 검색, 접근할 수 있게 해 주는 기술을 시도하고 있다. 즉 이제까지 야후 같은 검색엔진은 각 서버상에 있는 정보만을 검색했지만 앞으로는 네트웍 상에 있는 모든 개인컴퓨터의 하드디스크 안에 있는 정보까지 다 검색하는 것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예를 들어 이런 차세대 검색엔진에 ‘메탈리카’라는 단어를 입력하면 이 록그룹에 관련된 정보 사이트에 실린 문서, 사진, 뉴스, 음악파일 등을 찾아주는 것 이외에도 개인이 PC에 보관하고 있던 메탈리카의 활동초기 미발표 악보와 같은 희귀 자료까지도 찾아낼 수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터넷 경매정보를 개인들끼리 서로 주고받게 하면 중앙서버는 불필요하게 되고 이베이 같은 경매서비스 회사도 문을 닫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하지만 뭔가 성과물이 나올 때까지는 이런 모델의 성공 여부 역시 점치기 어렵다.


장애물

이미 나와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 지닌 불확실성 외에도 P2P 업체들이 넘어야 할 장애물은 많이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장애물은 지적재산권과 관련된 문제다. P2P 네트웍은 저작권이 있는 컨텐트의 불법적 유통 경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한 보다 나은 대안들이 제시되기 전까지 P2P 네트웍은 계속해서 불법 복제를 조장하게 될 것이며 그 책임 추궁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레코드 산업협회가 냅스터를 제소한 것은 기술업체들이 하루아침에 불법복제 범법자가 될 수 있다는 실례를 잘 보여줬다.

또한 P2P 업체들은 사용자들의 두려움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P2P 기술은 해킹과 바이러스 침투를 비롯한 보안 및 개인정보 보호 문제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많은 컴퓨터 이용자들에게서 결코 환영 받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설사 100% 완벽한 보안 장치가 있다고 해도 많은 컴퓨터 사용자들은 타인에게 자신의 컴퓨터 내부에 대한 직접 접촉을 허용하는 P2P 개념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을 것 같다. 自社 네트웍 보안에 상당히 민감한 기업들은 더 그럴 것이다.


컨텐트와 개인간 통신

미래의 컴퓨팅 환경을 완전히 바꿔놓을 가능성을 갖는 P2P의 중요성은 그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더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 새로운 기술이 더욱 큰 의미를 갖는 것은 위에서 말한 몇 개의 신 비즈니스를 창출한다는 면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그것보다는 그 동안 평행선을 그리며 발전해왔던 컨텐트와 개인간의 통신이 마침내 P2P 기술에 의해 통합되는 계기를 갖게 된다는 점이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컨텐트(content)란 인터넷 사용이 폭발적으로 늘면서부터 상당히 많이 사용되는 용어가 됐다. 그렇지만 컨텐트는 인터넷의 내용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매체의 내용으로서 책, 신문, 영화, 방송 프로그램, 스포츠 행사 등까지 포괄하는 매우 광범위한 범주의 의미를 갖는다. 국내에서는 이 말을 컨텐츠, 콘텐츠 등 복수형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지만 통칭으로서는 단수형인 컨텐트가 더 정확한 표기이고 다만 여러 다양한 형태의 컨텐트를 지칭할 때는(예를 들어 오락, 예술 컨텐츠 등) 복수형을 쓰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이런 컨텐트는 보통 전문적인 인력에 의해 준비 제작되어 다수의 사람들에 의해 소비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컨텐트의 전달방향은 雙方向이었다기 보다는 一方的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런 한편으로 인터넷의 발전은 이메일, 채팅, 뉴스그룹 등 1대1 쌍방향 통신의 수요를 급속도로 증대시켜 왔다. 이런 종류의 개인적 통신은 그 자체로서 질 높은 컨텐트라고는 결코 할 수 없다. 흔히 채팅의 대화에서 “몇 살이냐?” “어디 사냐?” “저녁 먹었느냐?””연애 좀 할까?” 등 내용은 그야말로 하찮아 보이고 아까운 대역폭(bandwidth)을 낭비할 뿐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많은 연구에 따르면 앞으로 인터넷 데이터 흐름의 압도적 비율을 이런 개인통신(물론 비즈니스용 통신을 포함)이 차지하고 전문적 컨텐트는 계속해서 그 비중이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이다. 그렇게 되면 개인 1대1 통신 서비스를 통해 기업들이 거둬들이는 수입이 더 많아질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발전의 패턴은 인터넷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과거의 기술에서도 얼마든지 나타났던 것이다. 그 증가추세는 상당히 둔화되고 있지만 지난 1백년 동안 꾸준한 성장을 보여 온 유선전화 통신이나 지난 몇 년 사이에 폭발적으로 수요가 늘어난 무선전화 서비스 같은 경우도 대부분의 통화내용이 쓰잘데 없는 일상잡담으로 채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거의 전적으로 비즈니스 통신용으로 쓰여왔고 따라서 상당히 “심각한” 내용으로 채워지던 텔렉스 같은 응용분야는 이미 멸종된지 오래다.

사실 이런 1대1 통신 중심의 인터넷 비즈니스 재편 예상은 요즘 많은 사업가들의 전략적 초점과는 상반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세계적 전자제품 메이커 소니의 오가 노리오 회장은 “컨텐트 없는 네트웍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말했으며, 전세계에 걸쳐 광섬유 네트웍을 보유하는 글로벌 크로싱의 前 CEO리오 힌더리도 “다른 회사를 위해 멍청한 파이프(dumb pipes) 노릇만 하고 싶진 않다. 회사에서 판매하는 상품이 서버와 서버선반이 전부라면 그건 정말 바보스런 짓이다. 우리는 따라서 네트웍과 컨텐트를 통합하는 일에 회사역량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한다.

즉 새로운 정보매체인 인터넷이라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전달할 수 있는 유익한 내용물이 없다면 인프라스트럭처가 아무리 좋더라도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TV 방송네트웍 설비가 잘 되어 있어도 시청자들이 보고 즐길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이 없으면 아무 쓸모없는 고철덩어리나 다름없다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이렇듯 정보산업 일반이 성장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건이 컨텐트라는 입장과 1대1 통신이 주된 “킬러 앱”(killer app; 어떤 기술이 급속하게 확대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응용분야. Viscalc라는 엑셀 이전의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이 초기 PC 성장에 결정적 공헌을 했고, 전기소비 급증에는 에디슨의 전구발명이 같은 역할을 했다)이 될 것이라는 입장은 둘 다 팽팽히 맞서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이런 이분법적 발상은 P2P 기술이 등장하면서 사실 무의미한 것이 되어 버렸다. P2P 란 그 성격자체가 개인대 개인의 통신임과 동시에 이 개인간 네트웍을 통해 문자, 비디오, 오디오 등 어떤 형태의 컨텐츠이든 그리고 전문가나 개인을 불문하고 누가 제작했든 관계없이 상호 교환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앞으로 모든 컨텐트 전달이 냅스터식의 무제한 무료 교환이 될 것이라고 보는 예상에는 무리가 있다. 작년 7월 미국 레코드 산업협회가 제기했던 소송건에서도 봤듯이 기존의 컨텐트 제작업체에서 자신들의 수익을 송두리째 빼앗아가는 그런 무정부상태를 방치해둘 리가 없기 때문이다.


컨텐트 경제


P2P라는 새로운 컨텐트 전달 기술로 인해 컨텐트의 전파와 유포는 갈수록 더 용이해지고 그 비용도 낮아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컨텐트를 소비(텍스트 정보를 읽고, 비디오나 오디오를 시청하는 행위)하는 개개인들의 지식수준은 높아질 수 밖에 없게 된다. 높아진 지식수준은 다시 생산성 향상으로 나타나며 결국은 경제전체의 지속적 성장으로 이어지게 된다.

컨텐트의 보급 확대와 경제성장 간의 관계에 대해 조금 더 상세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컨텐트라는 상품은 철강이나 반도체 같은 일반적인 물적재화와는 상당히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 물적재화의 경우 예를 들어 철강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생산요소(철광석, 코크스 등)를 한 단위 투입했을 때 산출되는 철강의 양은 생산량이 늘수록 점차로 감소된다.

한 명의 요리사가 있는 한정된 면적의 부엌에 요리사를 한 명 더 투입하면 만들어지는 요리의 수량이 두 배로 늘 수 있겠지만 여기에 열명을 더 넣는다면 공간이 너무 붐벼서 서로 밀치고 당기는 바람에 요리의 양이 열 배에 못미치게 증가한다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런 “限界생산물 감소”라고 부르는 현상은 농산물에서 제조업 생산물에 이르기까지 전통적 재화를 생산하는데 거의 어김없이 나타난다.

한편 컨텐트는 물적재화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쉽게 이해가 가는 일이겠지만 노래가 수록된 MP3음악파일을 한 개 만드는 데는 작곡가, 작사가, 가수에게 지불해야 하는 비용과 녹음 스튜디오 임대료 등 상당한 제작비가 소요된다. 그러나 일단 ‘완제품’이 만들어지면 일정한 액수의 추가 경비당 생산할 수 있는 음악파일의 수는 오히려 증가하며 나아가서 거의 무한대로 늘어날 수 있다.

이를 뒤집어서 다시 말하자면 일단 제작이 끝난 음악파일과 똑같은 복제본을 찍어내는데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은 컴퓨터를 사용함으로써 소비되는 전력요금 정도 뿐일 것이다. 따라서 이 파일을 1백만 부 찍어내 인터넷으로 배포할 경우 그 한계비용은 거의 零에 가까워지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컨텐트를 생산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自社의 제품을 무한대로 생산하는 것이 최대한의 수입을 거둘 수 있는 방법이 된다. 여기에는 여타 전통 제조산업에서 나타나듯이 생산의 지속적 증가에 따른 노동력 부족, 원자재부족 등으로 인한 가격상승 현상도 없을 뿐더러 생산규모가 비대해짐에 따라 생기는 비효율성도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컨텐트 또는 보다 포괄적으로 표현하여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하는 경제에서는 성장의 한계를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선사시대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자연자원의 부존량은 크게 증가하지 않았고 오히려 줄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주어진 자원을 어떻게 활용할 지에 대한 인류 머리 속에 들어 있는 아이디어의 축적량이다. 사실 인류는 사물을 수백만 가지의 용도로 재구성, 재창조할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을 갖고 있다. 아무 쓸모없어 보였던 모래로 인류는 시멘트를 만들어 산업사회의 기반을 세웠고 지금은 같은 소재에서 반도체를 만들어내어 정보사회를 창조하는데 기여했다. 앞으로도 인류의 상상력과 주어진 소재를 재구성하는 능력이 계속되는 한 경제성장의 가능성은 한계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컨텐트 경제는 먼 미래의 꿈과 같은 얘기만은 아니다. 벌써부터 그런 기업이 많이 나타나고 있으며 전통적 기업과 현격한 생산성 격차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마이크로소프트는 작년 말 기준으로 시장가치가 6천억 달러에 달했으면서도 고작 3만1천명의 직원을 두고 있었다고 한다. 반면에 마이크로소프트보다 10배나 많은 직원을 고용하는 맥도날드는 시장가치가 600억 달러에 미치지 못했다고 한다. 즉 마이크로소프트의 직원 한 명이 맥도날드 직원 1백명이 만들어낸 가치보다 더 높은 액수를 생산해냈다는 계산이다.


P2P 성공의 열쇠

물론 P2P가 그 잠재적 가능성을 그대로 실현하여 인류에게 무한한 경제성장을 안겨줄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 동안 숱하게 많은 신기술이 요란한 팡파르와 함께 나타났다가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P2P 네트워킹이 성공을 거두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건은 이 분야 참여기업들에게 지속적 연구개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동기부여로서 충분한 돈을 벌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사람들이 얼마든지 돈을 지불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좋은 컨텐트를 만들어내어 광범위한 소비자들에게 보급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모든 문제는 컨텐트로 집약된다.

P2P의 중요성은 물론 비즈니스적인 측면 뿐 아니라 네트웍 상에서 중앙집권적 통제를 갈수록 어렵게 만듬으로써 각 개인의 사회적, 정치적 파워를 강화시킬 수 있다는 면도 생각할 수 있다. 말하자면 P2P가 대중적 민주주의를 확대시키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앞으로 알파벳 두 개와 가운데 숫자로 조합된 얄팍한 유행어에 현혹되는 사람들의 수는 갈수록 적어질 것이다. 새로운 것이 나왔다가 열기가 식으면 이에 따라 증시가 하락을 거듭하고 신생기업들도 자금부족에 시달리다가 결국엔 枯死하고 마는 악순환은 이제 그만하고 주어진 기술을 놓고 어떻게 최대한으로 활용, 상용화할 것인가를 깊이 있게 고민할 때다.


냅스터 관련 주요일지

· 1999. 5: 숀 패닝(Shawn Fanning)과 숀 파커(Sean Parker) 등에 의해 냅스터 설립


· 1999. 7: RIAA, 美 샌프란시스코 지방법원에 저작권 침해로 냅스터를 제소


· 2000. 4.13: 헤비메탈그룹 메탈리카(Metallica), 美 LA 지방법원에 저작권 침해 및 공갈사기 혐의로 냅스터를 제소


· 2000. 7.26: 美 연방지법 마릴린 파텔(Marilyn Patel) 판사, RIAA의 주장을 인정, 냅스터의 저작권 침해가 우려된다며 일체의 파일공유서비스를 금지하고 사이트를 폐쇄할 것을 명령


· 2000. 7.28: 美 제9 순회항소법원, 냅스터의 항소를 받아들여 사이트 폐쇄명령 실행의 일시 유예를 판결


· 2000. 10.2: 美 제9 순회항소법원, 항소공판 진행을 위한 청문회 개최


· 2000. 10.31: 버텔스만, 냅스터와 제휴사실을 발표하고 향후 가입자 기반 합작 서비스 실시 조건하에 소송취하 의사를 밝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