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더 이상 볼모가 되어서는 안 된다.
최근 우리 경제운용에서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 실패한 민간경제주체들을 구제하기 위해 '공적자금'이 너무 자주 그리고 너무 많이 투입될 수 밖에 없는 구석으로 정부가 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97년 말 우리경제가 외환위기를 맞았을 때 그 근본 원인으로 시장경제 시스템을 제대로 정착시키지 못했음이 많이 지적되었다. 60년대로부터 지금까지 우리 정부는 선수마다 최선의 포지션을 정해주며 독려하는 프로 야구팀의 '감독' 같은 역할을 수행해왔다.
이제 우리 경제가 위기를 벗어나고 또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시도해야 할 궁극적 과제는 시장경제 게임의 룰(rule)을 정착시키는 것이다. 시장경제체제의 제일 중요한 룰 가운데 하나는 개별 경제주체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유선택권은 다른 사람에게 손실을 끼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래서 자유선택의 원칙만큼이나 또 하나의 중요한 게임의 룰은 '자기책임(accountability) 원칙'이다.
그것은 민간 개별경제주체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되, 그 의사결정에 대한 보상과 책임은 의사결정 당사자에게 귀속되도록 해야 한다는 법칙이다. 이득 또는 손실이 발생하면 그 이득이나 손실이 의사결정을 한 당사자가 귀속되도록 해야지, 의사결정에 개입하지 않은 제3자가 부담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그렇지 않으면 시장경제에서 가장 금기시하는 사적(私的) 위험의 사회화(社會化)라는 도의적 해이문제를 초래한다. 시장경제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이 두 가지 시장게임의 룰이 뿌리 내리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한 바람직한 정부의 역할은 '감독'이 아니라 민간 경제주체들에게 자기책임 원칙을 적용하는 '공정한 심판'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최근 대우그룹 사태로 인해 여러 금융기관들과 수많은 금융투자가들이 피해를 입게 되었다. 그 피해는 단순히 당사자의 손실로 끝나지 않고, 금융시스템 자체가 붕괴될 수 있는 시스템 위험(systemic risk)을 야기했다. 그러다 보니 정부는 대우채권을 대량 편입한 금융기관 펀드에 투자한 경제주체들의 손실을 직 간접 방법을 동원해서 보상해 줄 수 밖에 없었다. 즉 개별경제주체들이 사적 이득을 얻기 위해 부담한 위험의 결과로 발생한 손실을 정부가 공적자금으로 보상해 주기로 한 것이다. 그 이유는 지난날 수익증권제도를 도입하면서 금융기관들과 투자가들에게 각각 자기책임의 원칙을 적용할 수 있도록 시장경제 게임의 룰을 분명하게 인식시켜 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민간금융기관인 투자신탁회사를 구제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시스템 위험뿐만 아니라 80년대 후반에 증권시장의 붕괴가 우려되었던 시절 가격폭락을 정책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정부가 투신사에 한은특융을 시행하고 그 과정에서 장기간 매도금지원칙 등을 강요한 까닭으로 투신사에게 막대한 손실을 입혔던 원죄에 대한 업보였다.
이러한 경험은 우리에게 두 가지 교훈을 시사한다. 첫째는 원인이 무엇이든 금융시장에 시스템 위험이 발생하면 정부가 볼모가 되어 공적자금을 지원해서 해결해주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몰린다는 것이다. 둘째, 정부가 민간경제주체들에게 보상을 회피할 수 없는 빌미를 주면 역시 정부가 볼모가 된다는 사실이다.
최근 정부는 '고수익 펀드'라는 이름으로 명명된 금융신상품을 허용했다. 그것이 고수익상품이 될 것인지 아니면 원금도 찾지 못할 고손실 상품이 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고수익을 얻을 확률보다는 그렇지 못할 확률이 더 큰 금융상품이다. '고위험 펀드', 또는 '정크펀드'라고 해야 마땅하다. 정크 즉 쓰레기 같은 불량채권에 투자해서 성공하면 고수익을 얻을 수 있지만, 비록 손실을 어느 정도는 만회할 수 있도록 세제지원책이 담겨져 있기는 하지만, 실패하면 원칙적으로 원금도 날릴 수 있는 고위험 펀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고수익 펀드' 또는 보통 사람들은 무엇인지 짐작하기도 어려운 '하이일드 펀드'라고 이름지어 놓고, 대우채 편입 수익증권을 환매하는 사람들에게 정부가 각종 세제혜택까지 주면서 이 펀드에 투자를 유인하고 있는 인상을 주는 것은 매우 걱정스러운 일이다. 훗날 그 펀드들이 대량 실패하는 사태라도 발생하면, 아마도 투자가들은 "고수익 펀드라며 정부가 투자를 유도하고 나서 이제 와 원금도 건질 수 없게 되다니 말이나 되는가" 항의할 것이고, 그러면 정부가 또다시 볼모가 되어 그 손실을 보상해 줘야 하는 구석에 몰리지 않을 지 걱정된다.
정부는 '고수익 펀드'들이 몽땅 저수익 펀드가 된다해도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구석에 몰리지 않도록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개별 투자가들에게 투자내역을 항상 투명하게 밝히도록 하고 또 그것을 감시하며, 개별 투자가들로 하여금 자기가 부담하는 위험을 정확히 인식하게 해서 그 결과에 대해 책임도 부담하도록 명명백백하게 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더 이상 특정 민간 경제집단에게 볼모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
자료: 손정식, '공적자금은 공짜가 아니다'
(매일경제 1999. 11. 24)
최근 우리 경제운용에서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 실패한 민간경제주체들을 구제하기 위해 '공적자금'이 너무 자주 그리고 너무 많이 투입될 수 밖에 없는 구석으로 정부가 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97년 말 우리경제가 외환위기를 맞았을 때 그 근본 원인으로 시장경제 시스템을 제대로 정착시키지 못했음이 많이 지적되었다. 60년대로부터 지금까지 우리 정부는 선수마다 최선의 포지션을 정해주며 독려하는 프로 야구팀의 '감독' 같은 역할을 수행해왔다.
이제 우리 경제가 위기를 벗어나고 또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시도해야 할 궁극적 과제는 시장경제 게임의 룰(rule)을 정착시키는 것이다. 시장경제체제의 제일 중요한 룰 가운데 하나는 개별 경제주체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유선택권은 다른 사람에게 손실을 끼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래서 자유선택의 원칙만큼이나 또 하나의 중요한 게임의 룰은 '자기책임(accountability) 원칙'이다.
그것은 민간 개별경제주체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되, 그 의사결정에 대한 보상과 책임은 의사결정 당사자에게 귀속되도록 해야 한다는 법칙이다. 이득 또는 손실이 발생하면 그 이득이나 손실이 의사결정을 한 당사자가 귀속되도록 해야지, 의사결정에 개입하지 않은 제3자가 부담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그렇지 않으면 시장경제에서 가장 금기시하는 사적(私的) 위험의 사회화(社會化)라는 도의적 해이문제를 초래한다. 시장경제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이 두 가지 시장게임의 룰이 뿌리 내리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한 바람직한 정부의 역할은 '감독'이 아니라 민간 경제주체들에게 자기책임 원칙을 적용하는 '공정한 심판'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최근 대우그룹 사태로 인해 여러 금융기관들과 수많은 금융투자가들이 피해를 입게 되었다. 그 피해는 단순히 당사자의 손실로 끝나지 않고, 금융시스템 자체가 붕괴될 수 있는 시스템 위험(systemic risk)을 야기했다. 그러다 보니 정부는 대우채권을 대량 편입한 금융기관 펀드에 투자한 경제주체들의 손실을 직 간접 방법을 동원해서 보상해 줄 수 밖에 없었다. 즉 개별경제주체들이 사적 이득을 얻기 위해 부담한 위험의 결과로 발생한 손실을 정부가 공적자금으로 보상해 주기로 한 것이다. 그 이유는 지난날 수익증권제도를 도입하면서 금융기관들과 투자가들에게 각각 자기책임의 원칙을 적용할 수 있도록 시장경제 게임의 룰을 분명하게 인식시켜 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민간금융기관인 투자신탁회사를 구제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시스템 위험뿐만 아니라 80년대 후반에 증권시장의 붕괴가 우려되었던 시절 가격폭락을 정책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정부가 투신사에 한은특융을 시행하고 그 과정에서 장기간 매도금지원칙 등을 강요한 까닭으로 투신사에게 막대한 손실을 입혔던 원죄에 대한 업보였다.
이러한 경험은 우리에게 두 가지 교훈을 시사한다. 첫째는 원인이 무엇이든 금융시장에 시스템 위험이 발생하면 정부가 볼모가 되어 공적자금을 지원해서 해결해주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몰린다는 것이다. 둘째, 정부가 민간경제주체들에게 보상을 회피할 수 없는 빌미를 주면 역시 정부가 볼모가 된다는 사실이다.
최근 정부는 '고수익 펀드'라는 이름으로 명명된 금융신상품을 허용했다. 그것이 고수익상품이 될 것인지 아니면 원금도 찾지 못할 고손실 상품이 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고수익을 얻을 확률보다는 그렇지 못할 확률이 더 큰 금융상품이다. '고위험 펀드', 또는 '정크펀드'라고 해야 마땅하다. 정크 즉 쓰레기 같은 불량채권에 투자해서 성공하면 고수익을 얻을 수 있지만, 비록 손실을 어느 정도는 만회할 수 있도록 세제지원책이 담겨져 있기는 하지만, 실패하면 원칙적으로 원금도 날릴 수 있는 고위험 펀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고수익 펀드' 또는 보통 사람들은 무엇인지 짐작하기도 어려운 '하이일드 펀드'라고 이름지어 놓고, 대우채 편입 수익증권을 환매하는 사람들에게 정부가 각종 세제혜택까지 주면서 이 펀드에 투자를 유인하고 있는 인상을 주는 것은 매우 걱정스러운 일이다. 훗날 그 펀드들이 대량 실패하는 사태라도 발생하면, 아마도 투자가들은 "고수익 펀드라며 정부가 투자를 유도하고 나서 이제 와 원금도 건질 수 없게 되다니 말이나 되는가" 항의할 것이고, 그러면 정부가 또다시 볼모가 되어 그 손실을 보상해 줘야 하는 구석에 몰리지 않을 지 걱정된다.
정부는 '고수익 펀드'들이 몽땅 저수익 펀드가 된다해도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구석에 몰리지 않도록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개별 투자가들에게 투자내역을 항상 투명하게 밝히도록 하고 또 그것을 감시하며, 개별 투자가들로 하여금 자기가 부담하는 위험을 정확히 인식하게 해서 그 결과에 대해 책임도 부담하도록 명명백백하게 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더 이상 특정 민간 경제집단에게 볼모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
자료: 손정식, '공적자금은 공짜가 아니다'
(매일경제 1999. 11. 24)
'형설지공 > 경제경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이버 화폐시대 예감 (0) | 2001.03.03 |
---|---|
상호신용금고의 생존포지셔닝 (0) | 2001.03.03 |
예금보험제도와 예금보험공사 (LG 주간경제) (0) | 2001.03.03 |
The Case Against Currency Boards System (0) | 2001.03.03 |
통안증권 증발과 본원통화 및 국가채무 영향 (0) | 2001.0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