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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화폐적 환상과 주식액면 분할

화폐적 환상과 주식 액면 분할

최근 증권시장에서 고가주식의 액면분할 뉴스가 등장하고 그것이 호재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것과 관련된 경제개념이 실질가치와 명목가치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을 뜻하는 '화폐적 환상(money illusion)'이다. 예를 들면 어느 노동자의 명목월급 즉 매월 돈으로 받는 월급이 100% 인상되고, 그 월급으로 구입하는 상품가격도 100% 즉 2배 올랐다면 그 노동자의 실질임금, 즉 상품의 구입량으로 측정한 임금에는 변동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노동자가 평소와는 다르게 친구들에게 월급이 올랐다며 한턱을 낸다면 그는 '화폐적 환상'에 빠져 있다고 말한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화폐적 환상에 빠져서는 안된 다고 말하는 까닭은 우리가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현상을 현실경제에서 볼 수 있으니 바로 주식의 액면분할이다. 주식가격의 액면가격은 5천원이지만, 증권시장에 상장되거나 코스닥시장에 등록되면 시장에서 사고자 하는 힘과 팔고자 하는 힘의 세력크기에 따라 매일 변동한다. 그래서 매일 매일의 주식가격은 매일 시장에서 평가한 회사자산의 가치라고 말한다.

세월이 흘러 어느 회사의 자산가치가 처음 창업할 때 보다 20배 이상 증가했다면 그 회사의 주식가격은 5천원에서 10만원으로 상승해 있을 것이다. 만약 그 회사 이사회에서 액면가격을 20분의 1로 인하하기로 한다면, 그 회사의 주식 10만원짜리는 다시 5천원짜리가 될 것이다. 이 때 기존투자가의 재산가치는 하나도 변동한 것이 없다. 10만원짜리로 평가되는 주식을 1장 가지고 있는 것이나 액면분할 이후 5천원짜리로 평가되는 주식을 20장 가지고 있는 것과 재산 면에서 아무런 변동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만원짜리 지폐를 한 장 가지고 있는 것이나 천원짜리 지폐 10장을 갖는 것이나 소지하고 있는 현금가치는 마찬가지인 것과 같다.

만약 그 회사의 어떤 주주가 액면분할을 한 이후 그 회사 주식 10만원짜리를 한 장 가지고 있던 때와는 달리 5천원짜리 주식을 20장 갖고 있을 때 행동이 달라진다면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되어, 그는 '화폐적 환상'에 빠져있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주주가 가지고 있는 재산의 실질가치, 즉 회사의 자산가치는 10만원짜리 주식으로 평가하든 5천원짜리 주식으로 평가하든 변동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식시장에서 회사의 액면분할 뉴스는 호재로 평가받고 있다. 물론 10만원짜리 주식 1장과 5천원짜리 주식 20장이 전혀 똑같은 것은 아니다. 마치 만원짜리 1장 보다는 천원짜리 10장을 가지고 있으면 소액단위로 지출이 가능해져 편리하듯, 주식가격도 하락하면 고가일 때보다 거래가 편리한 측면이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차이 때문에 액면분할 뉴스가 호재로 작용하는 것 같지는 않고, 액면분할을 하면 실제로 재산이 증가하는 것으로 평가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를 보면 우리나라 증권투자가들이 항상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만은 아니고, '화폐적 환상'에 빠지기도 하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