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형설지공/경제경영

국민소득 만불 시대를 위한 經濟哲學

국민소득 만불 시대를 위한 經濟哲學
우석훈
I. 국민소득 만불 시대에는

1. 한국, 그 특수한 사회

예전부터 나는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특수성, 무엇인가 다른 사회와 다르면서 또한 묘하게, 그러니까 한국과 한민족을 규정하는 그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골똘히 하게 되었다. 확실히 공항 대기실에 모여있는 한국 사람들에게서는 일본이나 중국 사람과도 다르고, 그렇다고 런던 공항에서 흔히 보게되는 인도인들과도 다르고, 마찬가지로 파리 샤를르 드골 공항에서 만나게 되는 알제리 등의 북아프리카 사람들과도 다른, 무엇인가가 존재한다. 그것은 왠지 모를 획일성과도 같으면서 또한 묘한 촌스러움 혹은 번잡스러움같은 것들이 뒤섞인, 그러니까 나로서는 판단하기 어려운 그 무슨, 그러면서도 한국적인 것들이 존재한다. 이 특수성은 때로는 백화점 세일에서 벌어지는 북새통의 냄새를 풍기기도 하였고, 새마을 운동 때 모두가 쓰고는 했던 녹색과 노란색의 새마을 모자의 느낌을 주기도 하고, 혹은 추위를 막고자 껴입은 만주의 독립투사들의 투박한 겉옷의 느낌을 갖기도 하였다. 이 느낌의 뿌리가 무엇인가라는 궁금증은, 단순한 궁금증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수선스럽게 경제적 도약(take-off)를 취하던 박정희 시대의 유산물일 수도 있고, '광주를 잊었는가'라는 구호로 지나버린 80년대의 냄새를 풍기기도 하였다. 홍대나 연대 혹은 압구정의 거리에서도 그러한 한국 특유의 냄새는 여전히 흘러나오고 있었고 그 냄새의 기원은 무엇일까라는 작은 궁금증은 나의 20대 내내 머리 언저리에서 흐르고 있었다. 몇 년 만에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문득 바라본 '밭떼기'는 확실히 시베리아의 설원과도 다르고 길게 길게 뻗친 스칸디나비아나 프랑스의 느낌과도 다른, 그야말로 구수하면서도 촌스러운 냄새를 가지고 있었다. 전혀 다른 비유일 수도 있겠지만, 런던 올림픽에서 북한이 작은 반칙이라도 하면서 이길 수 있던 게임을 당황하면서 포르투칼의 유세비오에게 세 골을 허용하고 정말이지 축구시합, 국제 축구시합에서 보기 어려운 우리들만의 표정을 나타낸 것은 오랫동안 잔상에 남는다. "아휴!" 그 똑같은 표정을 나는 99년 청소년 축구 대표단의 예선 탈락이 거의 확정된 시점에서 상대편인 우르구라이가 남은 오 분간 1점을 지키기 위해 볼을 돌리는 것을 정신없이 쫓아다니면서 보여준 표정에서 읽게 되었다. 저건 확실히 한국 사람들만이 가지고 있는 표정이었다. 그 안타까움이 묘하게 섞여 있는 그 심정을 나는 한국 사람 외에서는 읽은 적이 없다. 그건 확실히 거리에서 구걸을 하는 아랍여인에게서 보았던, 마치 남편을 잃은 팔레스타인 여인의 절규에서 보았던 그런 안타까운 표정과는 다른 종류의 느낌이었다. 우리에게는 어쨌든 다른 민족과는 구분되는 그런 무언가 있다는 생각을, 이성적인 판단이라기 보다는 아주 감성적인 판단 기준에서 오래 전부터 하고 있었다.

예의 그 느낌을 다시 받게 된 것은 IMF 경제 위기가 터지자마자 한국이 신속하게(!) 대응하였던 금모으기 운동에서 였다. 도대체 이건 무슨 사건인가? 시장이 움직이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 고비용 저효율 경제가 왔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정부의 규제를 최소한으로 만들고, 국민 여러분도 각자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말, 그리고 구조조정을 통하여 세계적인 "절대경젱"이라는 시장의 신호에 맞추어 살아야 한다는 걸 IMF의 위기극복의 절대적 명제로 설정하던 시기 한국이라는 사회에 갑자기 튀어나온 금모으기 운동은 시기와 논리, 그리고 방식에 대하여 여러 사람을 혼동에 빠트리게 충분하였다. 한편으로는 경제성에 의한 시장 메카니즘을 움직이게 하는 길만이 위기극복의 방편이라는 논리를 제공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민초(民草)"의 애국심에 효과하는 금모으기 운동이 동시에 벌어질 수 있는 사회는 정신분열증적 사회가 아닌가? 실제적인 경제성평가에서 금모으기 운동이 아주 극단기적인 수지개선효과를 부분적으로만 발생시킬 수 있을 뿐, 장기적으로는 살 때 외국에 팔아서 오히려 비쌀 때 사야하는 문제를 낳는 것이 금모으기 운동일 뿐이라는 생각을 감추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수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아이들의 돌반지와 메달, 그리고 가락지들을 내어놓았다는 점이다 (물론 무상으로 국가에 바치라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또 다른 경제적 동인 분석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러한 움직임이 한국에 도움이 비록 부분적이나마 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집단적 현상은 사실은 '보이지 않는 손'의 비유를 들면서 시장적 자유주의를 주창하였던 아담 스미스가 가장 증오해마지 않았던 현상 중의 하나이다. 도대체 이건 무슨 사건일까?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유신시대의 망령이 '한국적 시장주의'라는 이름으로 다시 살아오는 것일까? 아니면 대중은 조작(造作)의 대상이라는 대중조작술의 저서 히틀러의 망령이 이 사회에 갑자기 뛰어들은 것일까? 어디로 갈 것인지만 가르켜주면 맹목적으로 달려갈 수 밖에 없는 것이 대중이라는 히틀러의 통치술이 IMF를 극복하기 위한 한국에서 움직이는 것인가? GNP 만불에서 GNP 5천불로의 격하를 도저히 참지못하여 금모으기 운동으로 이 나라가 떨쳐일어난 것일까? 이 아주 특별한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 것일까?

2. 국민소득 6천불의 슬픔

1998년 IMF 경제위기를 겪은 한국의 국민소득은 6천불대로 다시 떨어졌다. 문민정부 시절 억지로 맞추어놓은 만불이 국제경제시스템 즉 세계 시장이라는 거대한 벽에 부딛히며 다시 원상태로 회복된 것이라는 슬픈 진단에 대해서 아니라고 반박하기가 별로 쉽지 않을만큼 급박하면서도 그러나 예견된 변화가 한국이 그 해에 겪는 경제적 위기의 상황일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경제학자들은 더 이상 공황(恐慌)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공포(恐怖)스러운 상황을 굳이 민간인들에게 들여다보게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 때문일까? 불행히도 경제적 위기라고 표현하였든 혹은 경제공황이라고 표현하였든 영어로는 여전히 economic crisis라는 점이다. 유화된 표현이라고 해서 사태의 심각성과 공황의 두려움, 그리고 조정의 폭력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명확하다 (어쨌든 표현이 바뀌었다해서 실체가 변화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경제공황은 흔히 사회적 공황 - 여기에도 또한 사회적 위기(social crisis)라는 용어상의 혼용이 존재할 수 있다 -을 불러일으키는데,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와도 같은 "분노의 IMF"가 1년 동안 이 사회를 휩쓸었다는 데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공황이 경제학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거나 상상하는 것에 비하여 매우 특수하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특징은 경제학의 표준모델에는 공황에 대한 이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균형" 특히 장기균형이라는 용어로 특징지워지는 신고전학파 경제이론에서 공황은 불균형 상태일 뿐이며, "조화로운" 시장의 메카니즘에 의해서 언젠가는 균형으로 도달할 것이므로, 이론에서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시장의 조정이 이루어질 "장기"까지 불?형을 참고 기다리는 것밖에 없다 (물론 후에 등장하는 재정학이나 정책학 등 케인즈경제학의 영향을 받은 거시경제학에서는 불균형의 조정에 관한 단기적 처방들이 등장하기는 한다).

어쨌든 경제학 내에서 공황을 설명할 수 있는 또 다른 이론은 결국 비주류일 수밖에 없는 맑스주의 전통에서 찾을 수 있는데, 여기에서 공황은 자본의 과잉축적에 대한 "폭력적" 조정 과정으로 이해된다. 즉 경제의 다른 요소에 비하여 자본이 지나치게 축적되었기 때문에 보다 효율적인 자본의 운영을 위해서는 비효율적인 자본을 파괴할 수밖에 없으며, 특히 이러한 조정이 급속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공황기라는 것이 맑스주의적 관점에서의 공황이론이다. 많은 기업이 도산을 하게 되며, 이는 물질적·비물질적인 과잉자본에 대한 조정과정일 뿐이다. 다만 그 속에서 실직을 하거나 혹은 평생토록 키어온 회사가 문을 닫거나 아니면 멀쩡한 기계가 파괴되거나 - 한겨울을 나면서 고철이 되어버린 한보철강의 기계들처럼 - 혹은 송두리채 고철로 팔려나가는 아픔을 벌어지는 것은 가슴아픈 일이긴 하지만, 그건 경제학에서 다룰만한 주제가 아니라고 많은 경제학자들은 기꺼이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황은 사회적 위기를 만들어내는 가장 큰 요소일뿐더러 정권의 위기, 혹은 민족의 위기를 야기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경제적 공황은 단순히 잉여 자본의 해소의 경우에 해당하는 불운한 사람들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문화현상 혹은 문화적 양상 자체를 바꿀 정도의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망각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전쟁이었던 2차 세계대전이 대공황의 여파, 특히 독일경제의 드라마틱한 몰락과 연관되어 있으며, 이 속에서 독일 중산층들의 심리적 공황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소위 사회-경제학자들이 주의깊게 분석하고 있는 바이다.

한국이 국민소득 6천불로 내려앉은 그 해에 말라리아가 휴전선지역을 중심으로 기승을 부리고 콜레라나 이질과 같은 전형적인 후진국병이 다시 발생하기 시작하였다는 점은 우연일런지도 몰라도, 어쩌면 우리가 국민소득 6천불의 나라가 되었다는 점을 세균과 바이러스가 먼저 알고 있다는 슬픈 징표일 수도 있다. 환란으로 인한 불황이후 발생한 사회적 불황, 그리고 문화적 불황은 불행히도 경제가 나아진 이후에도 한참이나 더욱 오래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지금까지의 역사적 경험이 알려주는 바이다. 일종의 시간격차 효과가 존재한다고 할까? 가난해진 한참 후에나 씀씀이를 줄일 수 있듯이, 먹고살게 된 한참 후에야 촌스러움을 벗어날 수 있는 게 세상의 법칙일 수도 있다 (그래서 졸부라는 말도 등장하는 게 아닐까?) 금모으기를 했던 손으로 실업자기금을 내고, 사람들은 내핍형 생활에 익숙해져 갔다. 삶을 줄이고 조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구조조정을 통한 경쟁력 강화(!)를 삶 속에 실천해나가기 시작한다. 3맹을 몰아내기 위한 - 컴맹, 언맹, 쯩맹 - 을 몰아내기 위한 취업운동(!)이 대학을 가득 채우고, 시나 소설을 읽던 시간은 증권분석서와 벤처창업을 위한 지첨서에 할당되기 시작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GNP 만불시대와 삶의 질(質)에 대해서 논하던 언론들은 내핍과 인내를 얘기하기 시작하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술만이 살길이다라는 기술입국론이 대세를 타던 나라에서 정작 기술자들이나 전문가들은 구조조정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고국에 대한 원망을 안고 외국으로 떠나갔다. 가정은 폭력에 휩싸이게 되고, 사랑과 화해대신 증오와 시기 그리고 책임전가가 그 빈자리를 채우게 되었다. 아테네가 스파르타 위기에서 벗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그들은 현인(賢人) 소크라테스에게 독배를 마시게 했다. 이 사회의 많은 사람은 소크라테스도 아닌데, 위기에 대한 희생양으로 몰릴 수밖에 없게 된 셈이다. 악법도 법이듯이, 시장은 철의 정의일 뿐인가?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다시 한국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을 읽을 수 밖에 없다. 공황은 순환론적으로 올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경험론적으로 우리는 알고 있고 (물론 현재 미국경제와 같이 10년이 넘는 장기호황이라는 특수한 상황도 가끔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리고 대부분 그러한 공황이 사회적 일관성의 철저한 붕괴라는 현재 우리의 상황만큼 슬픈 양식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있어서 경제적 공황은 사회의 불안한 모든 것들을 겉으로 내어놓고, 또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셤 제 2법칙처럼 좋은 것들마저 몰아내어놓는 비인격화와 소외현상만을 진행시키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무엇때문일까? 왜 우리에게 있어서 주기적 위기가 총체적 위기일 수밖에 없으며, 또한 그러한 위기의식은 또 어느날 갑자기 잊혀지고 다시 경제는 호황을 달리게 되는 것일까?

3. 국민소득 만불이 되면...

조만간 - 3∼4년 후에 - 한국이 다시 국민소득 만불을 회복할 것이라는 데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현재 거의 이견이 없다. 물론 21세기에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노스트라다무스적인 변화가 발생하거나 혹은 극단적인 국가몰락 현상이 나타나지 말라는 법이 없지만, 적어도 금모으기 운동을 아직도 하고 있고, 또한 기꺼이(!) 보너스반납을 할 수 있는 나라에서 드라마틱한 경제의 몰락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국민소득 만불 - 환율 조작이나 밀어내기 수출같은 방식이 아닌 방식으로 - 을 달성한 국가들이 가지게 될 변화에 대해서는 별로 깊이 생각하고 있지 못한 듯하다. 파리를 여행하는 많은 사람들은 지저분한 지하철이나 혹은 오래된 건물 귀퉁이에 붙어있는 Caf?의 촌스러움에 대해서 놀라면서 매우 경멸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한다. 혹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대륙의 규모에 비하여 올망졸망한 유럽의 작고 앙증맞음에 대해서 혐오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한다. 혹은 "성의 자유"라는 분방함에 대해서 기꺼이 분개하기도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국민소득 2만불을 넘어서는 순간의 파리에서 6년 간을 살았고, 그러한 생각들이 결국은 오해에 불과할 뿐이라고 평소에 믿고 있다. 국민소득 만 불을 넘어서는 나라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사는 나라들이다. 개인이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나라가 잘 사는 것이고, 개인이 강한 것이 아니라 국가가 강한 것이다 (물론 국민소득이 행복의 척도가 아니라는 것은 모든 경제학자들이 GNP의 신화에 대해서 지적하는 바이다). 그리고 만 불을 넘어선 나라의 경제시스템은 나름대로의 조화력과 자기복원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것은 자본축적과정에서 설명할 수도 있고 혹은 장기적 균형의 관점에서 설명할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설명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결국 경제시스템은 자기모순적이면서 복잡한(complexe) 진화체라는 점이라는 담론일 것이다. 완벽한 경제시스템은 존재할 수 없지만, 만 불 이상의 국민소득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경제시스템은 나름대로 이전의 모순을 극복 혹은 내재화하여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가지고 있는 시스템이라는 것이 포괄적으로 옳은 시각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이 억지로 만들어낸 만 불 시대의 후유증으로 6천불 시대까지 미끌어졌다는 것은 그럴듯한 설명력을 가질 수 있다. 시스템 자체가 뒷받침되지 않는 현상은 매우 단기적이며 예외적일 수밖에 없으며, 또한 그러한 불균형의 발생으로 인한 파국적 국면은 매우 충격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억지로 나사를 돌리다가 판 자체가 부러져버린 조립식 가구처럼).

국민 소득 만 불이 한 사회가 나아가야 할 종점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왜냐하면 모든 문명이 그러하고 모든 국가의 존재 이유가 그러하고 또한 개인의 삶이 그러하듯이 경제적 부가 목적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있어서 적법한 방법과 무리없이 달성된 국민소득 만 불 시대는 상당히 중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나는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만 불 수준을 지속적으로 재생산(!)하기 위해서는 그에 적당한 경제시스템 및 사회적 지원체계 그리고 문화가 이미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건 마치 부자는 부자이므로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부자가 되었으므로 존경하자는 것과 똑같은 논리적 형태를 가지고 있다.) 시장과 사회적인 것 혹은 전통 사이의 문제는 보다 복잡한 개념적이며 인식론적인 논쟁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경로의존성" 문제나 "고정점 이론"과 같이) 여기에서 깊이 논의될 대상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 불 정도의 국민소득을 계속해서 만들어낼 수 있는 경제의 재생산구조는 이미 자기완결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만약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을 양적인 성장만을 통하여 만들어내는 경제라면 한국이 맞닥거린 IMF 경제위기처럼 어떠한 방식으로든 질에 조응하는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으므로.)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만불이라는 국민소득에 매우 특별하고 독특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별로 없을 것이다. 9,999불과 만불의 차이는, 그리고 9,990불과 만불의 차이는이라는, 언제나 '최적화'의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할 때마다 벌어지는 논쟁을 여기에서 반복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 천불 사회와 만불 사회가 가지고 있는 특별히 다른 점들은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별로 과학적이거나 정량적인 얘기들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엄격하고 규범에 맞추어진 "학문하기"의 길을 따라가고픈 마음은 추호도 없다. 결국은 사람들이 먹고 사는 얘기에 불과한 경제적 현상을 자연과학이라는 경성(硬性)학문의 틀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마음은 더더욱 없다. 만약 가능하다면 소크라테스가 그리스 시민들에게 질문을 던지듯이 - 과연 진리가 뭐지? 옳은 것은 뭐지? 선한 것은 뭐지? - 또 다른 대화를 위한 질문을 던져보고 싶을 뿐이다. 만약 가능하다면 아직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사회를 보기 위한 가로등에 불을 한 번 켜보고 싶을 뿐이다.

1) 대학은 고시원이 아니다

대학이라는 제도는 중세 사회에서 현대 사회로 넘어오면서 가장 특징적인 변환을 한 기구 중의 하나이다. 신을 영접하고 사람들을 신의 세계로 인도하는 '예수의 전사들(Militant J?juiste)'를 양성하던 대학은 중세의 몰락과 함께 철학과 문학 그리고 과학을 창출해내는 기구로 전환되었으며, 소르본 대학의 등장은 어쩌면 새로운 시대의 도래에 대한 가장 최초의 신호탄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면에서 대학은 한 사회의 주체의 재생산, 특히 엘리트와 지배 이데올로기의 재생산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참 대학이 사회적 문제의 핵심 - 특히 사회적 대변화의 핵심 - 에 놓여있던 68년은 월남전의 문제와 2차대전 이후 20년 간 지속된 장기 호황인 '영광의 20년'이 만들어놓은 형평성의 문제 - 즉 어떻게 케익을 나눌 것인가 - 와 연관된 후기 산업사회의 모순 등이 터져나오던 시기이다. 샤르뜨르와 같은 노철학자에서부터 루이 알뛰세르, 그리고 독일의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아도르노나 마르쿠제 등은 어느 쪽이든 입장을 선택하도록 학생들로부터 강요를 받았고, 적당한 면죄부나 혹은 강한 비판이 이들에게 떨어졌다. 파리 10대학 수영장에서는 농성 중인 학생과 대화하려던 교육부 장관이 풀 안으로 던져지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하였고 ("Minist?re ? la piscine" - 수영장의 장관), 일본에서는 적군파에 의한 보다 과격한 폭력사태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놀라운 것은 이런 와중에서도 대학의 존재 자체가 현대사회에서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는 좌파이든 혹은 우파이든 그 어느 쪽에서든 본격적으로 의심받은 적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어쩌면 대학은 필요한 인재에 대한 양산의 기능만이 아니라 "진리" 혹은 "지식" 자체를 만들어내는 또 다른 측면의 기능도 가지고 있기 때문일런지도 모른다 (실리콘밸리의 산학연계처럼).

어쨌든 대학이라는 아주 특별한 기관은 시장 속에서 일종의 섬처럼 독자적인 메카니즘을 상대적으로 확보하고 움직이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라는 것은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학의 기능과 위상은 국민소득 만불을 지나면서 오히려 더욱 강화되는 양상을 보이지 약화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국가별로 중요한 차이점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유럽의 대학과 미국의 대학은 그 기본 목표에서 중요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미국은 '건전한 시민 육성'을 대학 교육의 모토로 삼고 있다면 한국은 유럽은 인텔리 양성이라는 모다 실질적이며 귀족사회적인 특징을 담고 있는 모토를 목표로 삼고 있다. 아마도 귀족 사회라는 특수한 역사적 상황이 이 두 국가들의 현실적 차이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만불을 넘어선 국가의 대학들이 고시원이 되지는 않았다는 점은 명확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대학이 온통 시장의 이념을 전파하는 경영자 사관학교가 되지도 않았다는 점은 주목되어야 할 것이다. 어쩌면 6,000불의 나라에서 개인에게 있어서 합리적인 선택은 고시나 취직을 위한 준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개인에게 옳은 것이 반드시 전체에 있어서 옳다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개인에게 있어서의 선과 시스템의 선은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아무래도 특정 고시를 위하여 전 시스템이 움직인다면 여기에서는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모순을 거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선은 고시를 위한 과목들이 사회 전체의 지식의 아주 일부분만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만불을 넘어서기 위한 국가의 지식을 생산하는 곳으로서의 위상이 고시원일 수는 없다는 점, 그것만은 매우 명확하다.

2) 철학에 관심을 갖는 사회

만불이 넘어서는 사회에서 가장 특징적으로 지적할 수 있는 점은 아무래도 먹고 살만해서인지, 아니면 먹고 살려다보니까 그렇게 된 것인지 (!) 철학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사회 전체가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좋은 철학자를 배출하기 시작한다는 점일 것이다. 프랑스의 소위 후기구조주의자들 아니면 독일의 프랑크푸르트학파도 모두 경제적 번영 이후에 찾아온 사회적 문제점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의 프라그머티즘도 역시 과학철학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진리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왜일까? 아직까지도 이 사회에는 그 사회의 가장 우수한 젊은이들이 또 다른 질문 보따리를 들고 철학과의 문을 두드리고, 지나온 시간의 문제, 지금의 문제, 그리고 미래의 문제에 대해서 고민한다. 가장 진보된 형태의 기술을 만들어내고 또한 세계 산업을 선도하거나 혹은 금융대국이 된 국가에서 철학과 같이 형이상학적(!)이며 실질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지 못하는 학문이 사라질 것이라고 혹 생각한다면 이것이야말로 거대한 착각이다. 만불 이상이라는 거대한 덩치를 끌고 나아가는 사회는 보다 복잡하고 거대한 문제거리들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존재의 문제와 행위의 문제, 그리고 목표라는 질문을 전담해서 고민해줄 사람이 필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철학, 즉 지에 대한 사랑은 먹고 살만해야 생겨날 수있을 것이라고 쉽게 반박할 수 있다. 그러나 먹고 살게 되면 가장 먼저 중요해지는 것이 정신적 문제일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상대적 소외감, 세계 속에서의 자기 시스템이 차지하는 문제 등 해결해야할 정신적 과제가 더욱 늘어나게 마련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그냥 누르는 방식으로 지나가는 권위주의적 정치체계로는 만불 이상의 경제시스템을 지탱해나갈 수가 없다. 유럽 통합과 관련된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그야말로 당대의 과제이며, 가장 현실적인 철학적 질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의 철학은 전형적으로 6천불 국민소득의 국가에 어울리는 상황에 놓여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지금까지의 한국 철학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어쩌면 철학의 권위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지 못한 데에 있을 수도 있다. 흔히 하는 농담으로 칸트가 데카르트 전공자였고, 헤겔이 칸트 전공자였고, 혹은 니체가 헤겔 전공자였느냐는 지적이 있다.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모두 그 시대의 문제점, 혹은 그만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고민했던 사람들이다. 우리의 철학도들은 대개 전공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훈고학이 시대의 고민을 해결해주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거대한 철학자의 권위가 "철학하기"를 확보해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시대의 질문에 대하여 가장 충실하게 고민하는 철학만이 시대의 철학이 될 수 있는 것이며, 여기에는 권위나 있는 척과 같은 "척"은 설 자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뿐만 아니라 철학은 철학자가 하는 것이 아니다. 시대가 만들어내는 것이며, 수많은 분야의 게릴라들이 충실하게 수행해내는 한 사회의 지식창출의 총체적 결과일 것이다. 그렇기에 문학이나 사학, 경제학 혹은 인류학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철학자를 배출해내게 된 것이며, 풀어도 또 다른 문제가 생겨나는 열리지 않는 상자처럼 철학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으며 거대한 고민거리로 남게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에서의 철학은 "철학자 흉내내기"와 "원문 베끼기"에 다름 아닐 수도 있다. 우리에게서의 데리다는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 미국에서 유행한 데리다의 몇 개념들이 일본을 거쳐 한국까지 건너오면서 최초의 맥락과 질문의 깊이는 변형되고 변형되면서, 향기는 악취로 변하고 결론이 결절되어 있는 몇 가지 개념만이 유행하면서 오해는 새로운 오해를 낳고, 그 오해의 결과로 만들어진 데리다라는 환상은 그 자체로 거대한 신화가 되어버린 셈이 아닐까? 헤겔이나 맑스가 그러하였듯이 니체와 데리다, 혹은 푸코나 알뛰세 모두 신화 혹은 박제처럼 수입되었을 뿐이다. 원전을 깨고 전대의 편견을 버리자는 나체의 고독한 삶은 에펠탑에 대한 향수와 똑같이 미화되거나 왜곡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혹은 더 이상 권위를 만드는 철학을 해체시켜버리자는 데리다의 독백은 또 다른 권위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아닐까?

이러한 권위에 대한 환상은 자기 사회에 대한 불신감 혹은 불안감 아니면 자기완결적이지 못한 사회가 만들 수밖에 없는 불안감의 또 다른 양상일 수 있다. 우리에게도 철학적으로 해결해야할 과제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언제나 상투적으로 등장하지만, 그러나 어려운 과제인 통일의 문제, 급격한 산업화를 통한 도시빈민의 문제나 도시화로 인한 각종 문제들, 이제 막 시작되기 시작한 실업의 문제, 그리고 경제성장이란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와 관련된 문제들... 결국 만불이 넘은 사회는 그 누구도 해결해줄 수 없고 내부적으로 대답을 찾아야만 하는 문제들을 산처럼 가지고 있는 사회라고 할 수 있고, 그 속에서 사회 전체는 거대한 철학자가 되어버릴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덩치만 큰 어린아이가 되어버릴 것이다. 세계 시스템은 매우 각박하게 움직이는 전장터와 같이 때문에 그런 덩치만 큰 어린아이가 장기적으로 그 자리를 점유하고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명확하다.

그렇다면 우리의 각박해진 철학풍토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아마도 전통사회에서 또 다른 형태의 시장사회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결여된 무언가가 만들어낸 기현상이라고 밖에 답할 수 없을 것이다. 500년을 끌어온 왕조가 철학적 질문없이 가능할 수 있었겠는가? 어쩌면 지나칠 정도로 문을 숭배해오고 죽어버린 학문만을 연마하여 결국은 나라를 잃었다고 쉽게 답할지 몰라도 500년을 버텨온 왕조에 대해서 그렇게 쉽게 폄하하는 것은 좋은 자세가 아닐 수 있다. 어쩌면 왜정시기나 격동의 30년을 지나면서도 그나마 철학과의 명맥이나마 유지해 온 것은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저력 덕분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우리는 조선왕조실록을 만들어낼 만큼의 현명함과 능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저력이 새로운 시장사회로의 전환 - 어쨌든 우리는 정글법칙이 움직이는 시장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 을 겪으며 많이 약화될 수 밖에 없었고, 그렇다고 시장사회에 걸맞는 또 다른 철학자 시스템은 아직 갖추고 있지 못한 상태이다. 구조조정(!)이 만들어낸 정신적 공황상태에서 철학자들이라고 예외이겠는가? 그들도 먹고 살아야하는 존재이며 가정도 꾸리고 일정한 행복을 누릴 권리를 가진 존재들이다. 학부제 시행 이후 우리의 철학과는 그나마 명맥이나마 유지하기가 곤란한 상태에 놓여있다. 헤겔은 "학(Science)의 起源"에 관한 논의에서 철학을 과학의 출발로 생각하였다. 이제 더 이상 철학은 다른 학문과의 연계를 모두 잃고 그 스스로 도태되어버린 죽은 담론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모든 학문은 또한 자기의 철학과 이론사, 그리고 인식론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며, 어느 학문이든 끝까지 밀고 가봤던 사람은 철학을 어느 시점에서인가 반드시 만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철학은 철학자가 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철학이 뒷받침되지 않는 사회에서 자기 학문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도 없으며, 또한 장기적인 재생력을 가질 수도 없다. 학문적 뒷받침이 없이 물산이 일어서고 산업이 번영하기를 꿈꾸는가? 먹고 살기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철학은 필요하고, 또 잘 사는 나라의 예는 철학이 가지는 이러한 기능적인 속성을 잘 보여준다 (물론 철학의 기능적 속성을 논하는 것처럼 철학을 서글프게 만드는 것도 또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철학자들의 삶은 어떻게 가능하도록 만들 것인가? 우선은 개인이 개인에 대한 가장 좋은 결정자라는 야박한 논리는 여기에서 피해가도록 하자. 왜냐하면 개인의 필요와 전체의 필요가 언제나 일치하지는 않기 때문에 시장의 실패는 발생하기 마련이고, 이러한 시장 실패에 대한 적절한 보전책을 가지고 있는 것이 또한 선진국들이 흔히 보여주는 양상이기 때문이다 (철학시장을 만들어서 상품을 개발시키는 편보다는 아마 철학적 소양을 가진 정책결정자의 정책적 지원을 기다리는 것이 훨씬 빠른 해결일 듯하다.) 안보나 치안, 행정, 환경 등 기본적인 국가 기능이 움직이는 것과 똑같은 논리로 철학의 문제를 풀어보자. 1급 철학자를 한 사회가 어느 정도 보유하면 될 것인가? 현재 대학에 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임금으로 접근하는 방식은 쉽지만 의미있는 접근이 될 것이다. 한 달에 150만원 정도를 지불한다고 계산하면 연간 1,800만원 정도가 될 것이다. 여기에 약간의 소득세를 포함시켜 계산하기 편한 2,000만원의 연봉을 지급한다고 계산하면 20억의 예산으로 100명의 철학자를 현재보다 추가로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50억 정도의 예산을 확보할 수 있다면 250명의 1류급 철학자를 확보할 수 있는 정도가 될 것이다. 50억이 국민소득 만불인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부담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 이 50억을 해결하는 데에 사회마다 나름대로의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일본같이 소위 '시다'라고 불리는 월급제 시간강사라는 제도를 통할 수도 있을 것이고, 프랑스같이 CNRS(Centre National de la Recherche Scientifique)과 같이 별도의 기구를 조성해서 지원하는 방식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문제는 50억이라는 연간 예산의 규모의 과다 문제가 아니라 결국 그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인식하고 있는가 그렇지 못한가에 관한 소위 경험의 지식화에 관련된 문제가 아닐까? 50억이면 도로 50km에 해당하는 돈일 수 있고, 작은 지방의 다리 하나 건설하는데 관련된 리베이트 비용 정도에 해당할 수 있겠다. 혹은 재벌 구조조정으로 밀려난 공신을 위해서 만들어준 협력회사의 자본금 정도에 해당한다고 비유할 수 있겠다. 그저 저만한 건물 하나 있으면 아무 생각없이 공부만 하고 살텐데 하고 사람들이 바라보는 작은 사무실 건물 하나의 재산적 가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한 사회가 만불로 넘어가기 위하여 치루어야 하는 비용치고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닌 돈일 뿐이다. 문제는 철학이 필요하다고 한 사회가 생각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선행적으로 철학이 필요하다는 데 있을 것이다. 어쨌든 국민소득 만불을 넘어선 나라는 철학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며, 우리는 아직, 그리고 더더욱 철학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거대한 벽으로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3) 인문학과 기초과학의 융성

방금 살펴본 철학의 문제는 결국 만불이라는 국민소득을 가지고 있는 덩치큰 체계가 나름대로의 조화를 만들고,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최소한의 장치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물론 철학자가 많다고 해서 좋은 철학이 생겨나고, 또 그 좋은 철학이 반드시 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때로는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는 배부른 돼지를 더욱 선호하는 나라가 있을 수도 있고, 그러한 이유로 그 사회가 반드시 천박하다고 배척할 귀족적 반응양상을 보일 필요는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 겨우 6천불 수준에서 다시 경제 회생의 전기를 맞은 한국이라는 나름대로의 경제-사회시스템은 흔히 선진국이 만불을 넘으면서 보여줬던 모습과는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 여기에서도 한국형 모델이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

경제성장이 지식창출과 관련이 있다는 지적은 80년대 후반부터 "내생성장론자"들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제시되어 왔다. 물론 미분방정식을 기본으로 하는 복잡한 내생성장의 모델을 풀어봐야만 지식과 경제성장이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느냐는 어느 선생님의 지적은 옳은 말이다. 누구든 알고 있는 얘기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알고 있는 바람직한 상태로 한 사회가 진행하여 나가고 있느냐는 것은 전혀 상관없는 또 다른 담론일 수 있다. IMF 이후 한국의 전문인력들은 예전에 겪어보지 못한, 그리고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내어몰림을 겪은 바 있다. 역사적으로 가장 극적으로 지식인이 몰락한 경우는 동구의 몰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회주의 경제이론 전문가들의 경우는 확실히 극적인 측면이 있다. 집단적이고 체계적으로 그들이 알고 있는 지식이 더 이상 지식이 아닌 상태가 되었고, 그 속에서 시스템이 뭔가 자신을 위해서 해줄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경제학자도 한 명도 없었다. 모스크바의 택시 운전수나 혹은 체코의 막노동꾼들 일부는 대학의 교수이기도 하고, 부유했던 사회주의 중산층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던 사람들이기도 했다. 이제는 마약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영국 유학씩이나 갔다왔던 남예멘의 어느 한 전직 경제관료의 삶에 대한 르뽀 프로를 보면서 흘렸던 눈물만큼은 아니더라도 딱한 사정에 빠진 사람들이 내 주위에는 많이 있다. 게중에는 조국을 원망하며 외국으로 가버린 사람들도 있고, 이젠 더 이상 명분 뿐인 연구는 싫다고 나이 제한을 코앞에 두고 고시공부를 시작한 사람도 있고, 아예 컨설팅 회사를 차려버린 사람들도 있다. 어쨌든 자신의 삶은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므로 체계나 시스템을 지나치게 원망할 필요는 없다는 야박한 얘기가 그들의 삶에 대한 정당한 평가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사회는 시장에 의해서 움직이기로 이미 결정을 하였으므로 말이다. 그러나 정작 심각한 문제는 이제 막 공부를 시작하기로 생각을 하거나 혹은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가끔씩 나에게 장래를 상담하는 학생이나 후배들이 있다. 아니면 유학에 대해서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누구도 인문학이나 혹은 기초과학 분야에 뜻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나 역시 타인의 삶을 책임질 수 없으므로, 아무런 얘기도 덧붙여주지 못한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우리의 지식기반이 흔들린 적은 없었다. 이론의 뒷받침 없는 설계가 존재할 수 있는가? 설계가 뒷받침 없는 제작이 존재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인문학의 뒷받침 없는 문화융성이 존재할 수 있는가? 과학입국이니, 기술입국이니, 혹은 심지어 문화입국 아니면 관광입국과 같은 구호들이 요즘처럼 공허하게 느껴질 때도 없다.

어디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엔지니어링은 흔히 기초 엔지니어링(basic engineering), 공정 디자인(Process design), 전면 엔지니어링(front-end engineering), 세부 엔지니어링(detailed engineering) 그리고 생산의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우리가 흔히 프렌치 프라이라고 불리는 감자튀김을 위해서 감자를 자르는 작업에 대해서 예를 들어 보자. 감자를 길고 가늘게 잘라는 것이 목표로 하고 있는 소위 생산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감자를 자르는 기계는 어떻게 만드는 것이 좋을까? 직관적으로 우리는 칼이 여러 개 붙어있는 판형 절단기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고, 이 절단기에 어떻게 감자를 밀어 넣을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발상을 했다면 이미 기초 엔지니어링 단계는 넘어간 셈이다. 그렇다면 감자를 어떤 식으로 고정시켜 절단기에 밀어 넣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래도 감자를 고정시키기 위한 장치가 필요할 것이고, 또한 옆으로 잘리지 않기 위해서는 위치 제어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감자를 고정시킨 고정기는 절단기를 어떻게 피해갈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몇 가지 가능한 방식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계산에 관한 부분이 공정 디자인이다. 마지막 단계의 세부 엔지니어링은 실제로 필요한 절단기의 각 부품에 대한, 즉 그대로 만들기만 하면 되는 마지막 단계의 설계도와 같다. 현재 우리 나라의 엔지니어링 회사의 수준은 세부 엔지니어링 단계를 넘지 못한다고 평가하면 아마 사실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멕도날드나 롯데리아에서 먹는 감자는 그렇게 자르지 않는다. 유압을 통해서 감자를 날리고 세워놓은 절단기 (칼이 여러개 붙어 있는 바둑판형 모양)로 감자를 날리기만 하면 감자는 최적의 상태로 절단이 된다. 왜냐하면 날라가는 유체는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서 가장 최적의 상태를 자신이 스스로 만들기 때문이다. 위치제어니 혹은 고정기 제거니 하는 복잡한 문제는 생각할 필요도 없고, 감자를 자르기 위해서 그런 고급 기술은 동원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어디에서 차이가 날까? 그건 바로 기초 엔지니어링에서 중요한 발상의 전환을 이루어낸 것이다. 우리가 이제 필요한 사람은 이러한 기초 엔지니어링을 할 사람들이고, 이 사람들은 반복재생산 체계가 아니라 인문학과 기초과학에 대한 풍부한 소양을 갖춘 사람일 것이다. 다르게 생각하는 업무가 일인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어쨌거나 만약 우리가 만불의 경제시스템을 무난히 만들어낸다면 그 시기에는 인문학과 기초과학이 적어도 지금보다는 융성한 상태일 것이다. 그것은 누군가 그렇게 시스템을 디자인해주기 때문에 되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 않으면 또 다른 경제의 질적 도약을 이루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 사이버서점인 아마존의 극적인 성공에 대해서 놀라움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만 아마존은 결국 서점일 뿐이다. 책을 읽고자 하는 사람에게 책을 배달해주는 일종의 주문형 배달서비스일 뿐이고, 그곳에서 상품화되는 것은 "인터넷"이 아니다. 그 성공의 뒷배경에는 인문학과 기초과학의 책을 읽는 시장이며, 그 시장은 사학과 소설, 천문학 등에 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에 다름 아니다. 시장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시장의 배경을 보라.

사학이나 인류학이 머지않아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나도 후학들에게 얘기해주고 싶다. 그렇지만 그럴만한 용기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렇지만 그들이 성인이 되어 살아갈 만불 이상의 국민소득을 가지고 있는 사회에서는 기초학문들이 지금같은 공황 상태에 놓여있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덩치 큰 사회는 그런 것들을 필요로 하고, 또 갈구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4) 손값이 비싼 나라

우리 나라에도 어느덧 외국인 노동자가 많이 늘었다. 도대체 실업률이 10%를 바라보고 있는 사회에서 또 외국인을 수입하다니 하고 가당치도 않다고 분개하는 어른들도 있지만, 이건 정말이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을 한다. 어쩌면 그렇게 선진국이 걸어간 길과 똑같이 가는지. 60년대의 경제성장기에 프랑스나 독일도 다들 우리같이 외국인 노동자를 수입하였다. 그후에도 지속적으로 외국인 유입현상이 진행되었고, 이제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아예 구조화된 셈이다. 르뼁(Le Pen)이라는 프랑스 극우 정치지도자는 이러한 사회적 문제에 편승하여 어느덧 의석수를 10%대를 넘게 확보하고 있다. 매우 간단한 주장이다. 외국인을 내보내자. 사회복지체계가 외국인 때문에 왜곡되고 있으며, 그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간단한 주장은 그러나 의외로 설득력을 가지고 한 사회를 순식간에 극우로 몰아가는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대통령이 된 쟉 시락이 파리 시장시절 이제는 프랑스 사람들도 청소부일도 하고, 막일도 해야한다고 얘기하였지만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다. 비록 적은 규모지만 그건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만 불 사회에서 5인 가족의 가장은 평균적으로 얼마를 벌어야 하나? 지금 환율로 계산하면 세후 계산으로 6,000만원은 되어야 할 것이다. 만약 부부가 같이 벌면 3,000만원... 물론 이 모든 소득을 전부 근로소득으로 확보할 이유는 없으므로, 2,000만원 정도의 금융소득이 있다면 4,000만원 정도의 소득으로도 평균의 삶은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국민소득 만불이라는 사회는 평균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평균정도의 일을 하는 아주 평범한 가장이 이 정도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는 것을 간단하게 역산해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장관 월급이 아마 그 정도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아주 평균적인 범부가 현재 장관 정도의 소득수준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노동의 대가, 즉 손값은 지금보다 상상할 수 없이 비싸지게 된다.

지금 우리는 아주 쉽게 다른 사람에게 일을 시킬 수 있고, 또 시키고 산다. 집의 벽지를 바르는 일에서부터 주유소의 주유까지, 그리고 수없이 많은 식당들의 종업원에 이르기까지 6,000불 국가답게 손값이 비싸지 않으므로 왠만하면 남한테 일을 시킬 수 있다. 그렇지만 만불이 되면 이런 편의는 이제 안녕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아니면 아주 고가의 특수서비스 - 즉 자기가 주유하지 않고 주유원이 존재하는 특수 주유소처럼 - 를 받는 수밖에 없다. 평균의 소득을 올리는 평범한 가장에게는 어림도 없는 소리이다.

실내 인테리어에 대한 백화점이 파리에는 여러 개 존재한다. 세면기와 관련된 조그만 악세사리에서 전기톱에 이르기까지 집안을 고쳐서 살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한 상품이 몇 층에 걸쳐서 전시되고 성황을 이루고 있다. 높아진 소득이 주거환경에 대한 관심을 더욱 높이는 이유도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그러한 일을 맡길 수 있을 만큼의 소득 수준을 올릴 수 있는 사람이 몇 명 안되기 때문이다. 소득이 높아진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소득도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일을 시켰을 때 지불해야하는 손값이 그만큼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조건 남에게 일을 시키는 데 익숙해져 있는 졸부나 혹은 소비에 더욱 익숙해져 있는 유한부인이라도 만불의 사회에서는 왠만한 건 자기가 손수하는 습관을 들일 수밖에 없다.

물론 이렇게 균등하게 소득이 높아지지 않는 모델도 상정해볼 수 있을 것이다. 소위 경제의 양극화라는, 가진 사람은 더욱 잘 살게 되고 못사는 사람은 더욱 못살게 되는 식의 성장양식 말이다. 국민의 5%가 전체국부의 90%를 가지고 있다는 남미의 어느 나라와 같은 극단적인 경제모델에서는 어쩌면 손값이 유럽과 같이 비싸져서 남에게 도저히 일을 시킬 수 없는 상황은 오지 않을 수도 있다. IMF 시절 "이대로"를 외쳤다던 금융소득자들이 바라는 경제는 그런 경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소득 만불은 미안하게도 그런 식으로는 절대 달성되지 않는다. 상대적 소외감이라는 사회통합적 요소를 거론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국민소득 만불은 고부가가치화를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는 또 다른 이유가 보다 근본적일 것이다. 인구대다수의 전반적 소득 향상 없이 경제 엘리트 혹은 중산층의 경제적 풍요만을 가지고는 만불 경제는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모든 노동의 동반하여 고부가가치화가 될 때 비로서 지속적인 만불 경제의 재생산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이 과연 가능할까? 남미의 경제학자들은 선진국의 노동자를 두고 "노동귀족"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는데, 그 기조에는 중심부와 주변부(즉 후진국 경제) 사이에 일종의 부등가교환이라는 착취구조가 존재한다는 비난이 깔려있다. 즉 후진국 노동자들이 생산한 가치가 국제무역이라는 불평등한 관계를 통해 선진국 노동자에게 부당하게 이전되기 때문에 노동귀족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제 주변부자본주의론은 20년 전의 경제학으로 퇴색해버렸지만, 어쨌든 "귀족"이라는 표현을 동원해야 실상에 접근할 수 있을만큼 소득이 높아진 사람들을 지금처럼 쉽게 부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소득이 아주 높아지면 용역 전문회사 등 시장화된 대리노동을 제공하는 문화가 다시 생겨나기도 한다. 생태경제학자인 앙드레 고르츠(A. Gorz)는 독일 사회를 분석하면서 "서비스 사회(soci?t? servi?tale)"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적이 있다. 여가를 만들기 위하여 타인에게 지불하는 소위 서비스 시장 자체가 지나치게 커져서 통제할 수 없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게 되는 현상을 지칭하는 일이다. 아마도 비싸진 손값에 비해서 소득이 훨씬 더 높게 되는 시점은 국민소득이 2만불이나 되는 시기일 것이다. 만불수준에서는 손값을 지불하기에는 소득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보다 부지런해질 수 밖에 없다. 유럽의 남편들이 잔디를 손질하고 집안 구석구석을 손보는 가정적인 사람으로 만화에서 자주 그려지는 것은, 사람이 특별히 더 가정적이라기 보다는 지나치게 비싸진 손값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으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5) 개성 사회와 문화적 융성

근대 이후의 한국은 매우 어려운 시기를 지난 것만은 확실하다. 구한말로부터 왜정시대와 한국전, 그리고 내핍으로 부를 축적해야만 하던 유신시대에 이르기까지 불행한 역사는 계속해서 진행되었고, 그간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이 사회의 무엇인가는 끊임없이 단절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분단이라는 상황이 한국을 섬 아닌 섬으로 만들었듯이 단절된 역사는 이 시기의 사람들을 역사와 세계에서 단절된 일종의 역사적 섬에 빠뜨렸다고 얘기해도 너무 심하지 않을 것이다. 기록에 관한 문제가 그렇다. 일본과 비교하며 한국은 기록하는 습관이 너무 없다고 하는데, 이건 역사에 대한 오해이다. 어느 민족도 우리처럼 융성한 출판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바가 별로 없으며, 한 사람이 (물론 양반을 대상으로 하겠지만) 세상에 태어났던 증거로 문집 한 권은 반드시 내고자 했던 사회가 바로 조선 사회이다. 시를 가지고 유희를 즐겼던 나라이며, 철학이 입신의 유일한 방법이었던 나라가 조선 사회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역사를 지나치게 폄하할 이유는 없을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 100년은 온갖 곳에서 단절의 역사를 만들어내었으며, 역사적·문화적 풍성함의 배경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곧잘 조악한 모방에 근거한 획일성에 빠지게 마련이다. 왜정시대 내내 사람들은 말과 글, 그리고 생각을 바꾸도록 요구받았고, 해방 공간에 형성된 좌우 대립은 어느 한 쪽임을 적극적으로 보여주어야 할 필요를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은 길게 이어진 게릴라전의 양상을 띄었던 한국전 말기에 극명하게 드러났다. 낮에는 국군, 밤에는 북한 게릴라에 의하여 점령된 마을 사람들은 두 가지의 상반된 문화 패턴을 행위하도록 강요받았고, 집단적인 자아분열증적인 증상을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이 속에서 두 가지의 다른 코드는 획일화되고 표상화된 두 가지 상징에 의해서 지휘되었는데, 어느 쪽이든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행동양식은 획일성, 즉 상황과 구조의 지휘에 맞추어 몰개성적이며 무사고적인 행위만이 삶을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던 셈이다.

이런 식의 몰개성은 개발독재에 의해서 움직여나간 권위주의 사회인 유신사회를 거치면서 더욱 강력해질 수밖에 없었다. 유신체계는 대부분의 권위주의 체계가 그렇듯이 상징을 매우 사랑한 시기이다. 선글라스와 짧은 머리라는 상징이 그렇고, 군화와 흰색 와이셔츠라는 상징이 그러하였다. 새마을로 대표되는 녹색기가 농촌을 지배하고 있었고, 청바지와 통기타라는 또 다른 상징체는 권위주의적 상징에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었다. 어느 편이든 개인은 사고할 필요가 없다. 각자의 지위와 경제적 부, 그리고 세대에 맞추어 사회는 디자인되어 있는 상징을 제공하였고, 각 상징은 문화와 함께 행동패턴, 그리고 사유의 양상마저도 팩키지처럼 제공하였다. 이렇게 획일성을 만들어내는 문화는 결국 국민소득 5,000불 대를 넘어서기 위한 이를테면 한국식의 경제발전체계의 한 양상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압축성장"으로 대변되는 한국경제가 가지고 있던 극단적인 역동성은 이러한 방식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러나 90년대 이후의 문화적 폭발은 획일성에 대한 염증의 거대한 발현일 수 있다. 사람들은 획일성을 거부하기 시작하고 자신만의 것들에 대한 사랑을 가지기 시작한다. 물론 이러한 90년대 내내의 획일성에 대한 거부가 또 다른 획일성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고 판단하기에는 또한 어려운 점들이 있다. 유니폼을 거부한 청소년들은 또 다시 청바지라는 획일성에 사라잡혔고, 그것이 힙합으로 표현이 되든 아니면 또 다른 어느 무엇이 되었든간에, 사람들은 쉽사리 획일성이 군상들을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었고, 세계 어느 나라의 공항에서든 한국 여성들은 동일한 화장술과 비슷한 화장톤으로 쉽게 구분이 되었다. 서울에 온 많은 외국인들은 거의 동일한 스타일의 여성들을 구분하는데 상당한 곤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이러한 획일성과도 같은, 소위 80년대가 보여준 집단광기 - 혹은 푸코식의 사회적 광기 - 들은 90년대가 되어도 청산과는 거리가 멀게 여전히 재생산되고 있었다. 획일성의 한 구석으로 마녀사냥과도 같은 희생자만들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고, 특히나 이러한 희생자에 대한 강요는 비단 사회적인 규모에서만이 아니라 작은 공동체에서도 '왕따만들기'라는 새로운 형태로 오히려 확대재생산되는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국민소득의 향상은 역설적으로 획일성문화를 해체시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일정한 국민소득이 지속적으로 축적되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공동체의 상부상조적 전통에서부터 벗어나 자신만의 공간과 자신만의 삶의 영역을 갖기를 원하게 될 것이며, 이는 새로운 형태의 개성문화의 시대를 여는 한 작은 계기를 형성시켜 줄 수가 있을 수도 있다. 물론 국민소득의 상승이 반드시 개성시대와 연결될 것이라는 근본적인 보장은 없다. 오히려 천민자본주의적 모방주의적 속성을 더욱 강조하는 세속적이며 타락한 사회가 열릴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박한 기대를 걸어보게 되는 것은, 일본의 오타쿠족이나 혹은 서구의 일종의 '해방지구' 혹은 자유허용지대(marge de libert?)는 결국 일정한 국민소득의 담보하에서만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사회의 직접적 생산을 담당하지 않고 무엇인가 극단적인 문화를 찾을 수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어쨌든 그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富의 축적이 이루어진 다음에야 비로서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사회가 보여준 소피스트 문화, 원하는 자의 외침이 진리가 되게하라는 그 시대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비극성은 노예제 경제위에 경제적으로 해방된 자유인들이 존재를 전재로 펼쳐진 문화이기 때문이다.

국민소득을 만불이상으로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은 단순히 임금상승의 억제만이 아니라 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자본집약적이며 지식집약적인 상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어쨌든 발전되고 세련된(!) 문화적 성숙의 배경을 가지지 않으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그러한 필요들은 오히려 이전에는 표준에서 다르다고 배격했던 새로운 발상들을 끊임없이 필요로 하며, 그러한 시스템 하에서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한계적인 문화와 몰개성을 배격하는 새로운 형태의 자발적 '반항'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굳이 문화주의라든가 혹은 문화적 숭상이라든가 하는 인문학적이며 고상한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1차적 욕구 자본주의를 뛰어넘은 경제는 개성을 존중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창조적 발상의 전환을 통하여 소위 슘페터식의 '창조적 파괴'를 끊임없이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만불의 국민소득을 지탱하기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시스템이 가지게 되는 개성과 개인이 가지게 되는 개성 사이에 끊임없는 갈등이 벌어질 수밖에 없으며 (스위스의 개성과 스위스 국민이 가지는 개성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를 적절히 혼합하고 화해시켜주는 발달된 문화적 융성을 전재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천민자본주의적 생산의 기계로 전락한 사회는 안에서부터의 붕괴를 언젠가 만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에 국민소득이 만들어준 문화적 융성이 가질 수밖에 없는 태생적 비극이 존재할 수 있다. 문화가 경제를 융성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경제가 오히려 융성한 문하를 조장한다는 것은, 결국 이러한 문화적 융성이 내면적 해방이 아니라 외형적 풍성에 다름 아닐 수 있다는 것은, 결국은 이러한 문화가 종국에는 시장의 노예일 뿐이라는 점을 역으로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문화가 가지는 기능적 속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것일 수 있으나, 어쨌든 경제는 필요만을 인식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4. 국민소득 만불시대를 위한 경제철학

만불이라는 국민소득에 얼마나 많은 허상적 가치와 수치적 허구,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슬로건같은 것들이 붙어있는가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라고 외치며 죽어간 어느 불행한 소녀의 독백처럼 '후생은 소득순이 아니다'라고 얘기한다면 그 경제학자는 개인적으로 매우 불운한 삶을 살다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적어도 내가 읽을 수 있었던 경제학 고전 중에서 부가 모든 것의 척도가 아니라고 자신의 경제학 서적에서 과감하게 주장할 수 있을 수 있었던 사람은 천재 반항아인 죤 스튜아트 밀 정도일 것이다. 그런만큼 富는 경제학에 있어서 알파이고 오메가인 셈이다. 근대경제학이 공식적으로 출발하게 된 것이 아담 스미스의 '國富論'의 탄생이었다는 것은 상당히 많은 점을 아직도 시사하고 있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경제학은 '선택의 과학(Science of choice)'라고 주장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해서 최적점을 찾아가는 적절한 선택이라는 방법론적 근류에는 '부는 좋은 것'이라는 근본적인 판단과 합의가 존재한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상식이라는 것이 과학이나 학문에서 아직도 엄연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경제학자들에게 있어서는 많은 문제를 부를 축적하면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은 오히려 상식에 속하는 것일 뿐이며, 이를 부정한다면 이는 경제학자로서 자신의 입지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실 환경이나 에너지같이 부의 축적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는 특수분과에 속하는 경제학자들도 90년대를 지나면서 결국은 경제성장과 발전을 통해서 밖에 환경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실정이다. '유한계급론'을 썼던 매우 시니칼한 필체의 톨스타인 베블렌도 부의 축적이 필요하다는 점을 정면으로 공격하지는 못했다. 다만 그 부의 축적이라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과시적 소비와 자기 표현욕구를 만들어내는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일 외에는 더는 그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와 사회적 관계, 혹은 사회적 통합과 경제적 요소라는, 즉 보다 성숙한 사회를 위한 경제학의 기여는 거의 한국에서는 연구되거나 제시된 바가 없다. 아직까지도 한국 사회에 대해서 마치 "졸부"에 대한 경멸조의 비판이 의미하는 것과 같은 정도의 "천민자본주의"라는 지적 외에는 경제학이 제시할 수 있는 것들이 거의 없다. 유신시대라는 아주 특별한 경제운영 방식을 지나면서 한국은 비단 한국의 연구자만이 아니라 외국의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동의하는 정책적 개입에 의한 경제운영이라는 틀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 정책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정부와 경제의 관계, 그리고 세계 속에서의 시장과 정부 등 다양한 문제의식에 관해서는 적절하게 제시된 적이 거의 없다. 이러한 문제점들이 발생할 수 밖에 없던 것은 "철학적 사유"가 존재하지 않았다거나 혹은 경제성장의 역사가 너무 짧다는 다소 빈곤한 변명으로 밖에는 설명되지 않는 보다 깊숙한 이유들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 경제성장과 국부에 관해서 제기할 수 있는 담론이 얼마나 될 것인가? 보다 사회정의에 적합한 방식의 성장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론적인 제시 외에 실체에 보다 가까운 형태의 경제적 담론이 제시된 적은 거의 없다. 존재하는 것은 매우 극단적인 형태의 시장화에 대한 찬양과 내용없는 정의론들, 혹은 효용(utility)에 근거한 행동과 판단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심 뿐이다. 경제의 실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실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이런 끊임없는 질문들은 단순한 몇 개의 명제에 환원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전혀 아니다. 특히나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질문은 더욱 더 복잡한 양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세상이 너무도 복잡해졌다. 누구나 쉽게 동의하듯이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을 쓰던 1776년이나 혹은 맑스가 자본론을 정리하던 19세기 후반, 혹은 케인즈가 공황중인 세상의 탈출에 대해서 고민하던 20세기 초반에 비하여 세상은 비할 나위없이 복잡해졌다. 세상을 일순간에 재로 만들어낼 수 있는 핵폭탄의 위험은 경제라는 피상의 세계 너머로 이제는 상존하는 하나의 잠재적 神과 같은 위상을 가지고 존재하며, 조금씩 현실성을 가지기 시작하는 환경적 재앙과 자원, 에너지의 고갈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해져있는 상황이다. 거기에다 냉전 이후로 동서의 극단적 이데올로기 대립이 사라진 대신에 민족주의와 인종주의들의 잠재적 위협은 점점 더 현실화되며 잦은 국지적의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 시장과 경쟁에 의거하여 설명할 수 있는 순수자본주의는 - 그렇지만 순수 자본주의가 개념 외에 실체로 존재한 적이 있었느냐고 여전히 질문할 수 있다 - 더 이상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생산자와 보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소비자, 그리고 여전히 정책이라는 수단을 확보하고 있는 국가, 그리고 이러한 국가들의 연맹이며 동시에 자신의 고유한 신화를 확보하고 기능을 점점 강화시켜 나가는 초국가와도 같은 UN 등의 각종 국제기구들, 이런 것들은 일반 균형을 만들어낸 왈라스가 생각했듯이 일반균형에 의한 세상에 대한 이해를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다.

비단 바깥의 상황만이 이렇게 복잡해진 것은 아니다. 정의와 불의라는 유신시대와 80년대의 기준은 2000년대라는 새로운 상황에 더 이상 기계적으로 적용시키기에는 여기저기 버걱거리는 곳이 많다. 지역과 지역의 갈등, 세대와 세대의 갈등, 그리고 경제와 정치의 갈등은 점점 더 복잡한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

사실 만불 이상의 국민소득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국가들 중 우리만큼 복잡한 상황 속에 놓여있지 않는 나라는 거의 없다. 프랑스나 독일과 같은 유럽국가들은 제국 시절의 번영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묘한 문화가 흐르고 있는데, 그들은 50년대 이후 경제재건을 하던 소위 "영광의 30년" 시절에 생산비를 낮추고 부족한 노동력을 매우기 위하여 제3세계의 노동력을 수입하였는데, 이들은 이제 그 사회 내에서 이방인인 소수인종을 지나 쉽게 해결되기 어려운 사회 내부의 통합의 문제를 겪고 있다. 지역감정의 문제로 따지지만 코르시카섬이라는 정말로 인종 등의 이유로 통합되기 어려운 지역이나, 마르세이유같이 경제적으로 낙후한 지역 등 프랑스의 경우도 보다 쉽다고 하기에는 결코 어려운 상황이다. 통독 이후의 내부 통합 문제를 고민하는 독일의 문제가 결코 우리나라보다 간단하다고 믿을 이유는 없으며, 미국의 겪고 있는 유색인종의 문제 역시 간단과는 거리가 멀기만 하다.

이러한 나라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불 이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출 수 있게 된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 보다 오랫동안 "사회"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구성원을 통합시켜 하나의 - 혹은 다중의 목표 - 를 만들어내는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보다 심각한 내란과 혼란 속에서 암묵적인 동의를 몇 가지 만들어내었으며, 그 과정 속에서 "연대(solidarit?)라는 매우 복합적인 덕목들을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만불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그 전에는 필요없는 일이라고 생각되었던 것들이 더욱 중요하게 되는 일종의 대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니까 단순히 경제적 거래량 - 특히 대외거래 - 의 확대를 통하여 조금씩 덩치를 불려서 큰 덩치를 만들어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이제는 보다 명확한 상태가 아닌가한다. 소위 5대 재벌이 더욱 커지는 형태가 우리에게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일까? 오히려 보다 작은 결정자들의 결정권과 "경제적 권능"의 증가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닐까?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요구되는 것은 "거대한 돈버는 기계"로서는 장기적으로는 만불아니라 이만불까지도 도달해야 하는 장기적 성장기저를 유지할 수 없다는 점이다. 철학은 기술과 통하는 면이 있고, 문화는 부가가치와 통하는 면이 있다. 우리가 60년대 이후 경제발전을 하면서 모종의 혜택을 입었던 국제적 분업이 더 이상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결국은 보다 복잡한 상황과 보다 복잡한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노력과 함께 그러한 사유와 담론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보다 복합적이며 유연한 방식의 철학이 필요하다. 물론 경제에 있어서도 그러한 방식의 변환이 필요하다는 것은 당연하다. 이미 근대에 유효하였던 "거대 이론(Grand th?orie)"는 어디에도 없다. 간단한 몇 가지의 공리와 직관적인 법칙에 의해서 세상을 설명하고 또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그러한 거대이론은 68년 학생운동의 실패와 동구의 몰락이라는 두 가지 사건으로 인하여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모든 철학은 복잡해졌으며 - 그와 함께 불가지론과 비관론은 그 어느 때보다도 팽배하여 있다 - 또한 비판적인 양상을 띄고 있다. 굳이 쟉크 데리다의 "해체이론"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근대의 이론이 기계적으로 지금 시대를 해석하고 이해하고, 또한 적용하는데 유효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추론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학문과 철학은 자신의 시대의 문제에 대한 고민과 그에 대한 해결과정에서 발생하기 마련이다. 소위 최초의 "절대진리" 즉 절대진리의 탄생이라고 얘기되는 소크라테스 시절에도 2차에 걸친 페르시아 전쟁과 스파르타와의 패권전쟁, 그리고 그 패배 후의 상처투성이의 그리스 사회에 대한 재건이라는 대명제가 존재하고 있었다. 물론 사회가 가지고 있는 실천적 명제와 그 사회가 만들어내는 철학적 사유가 반드시 기계적으로 일치하라는 보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이에는 상당히 밀접한 내적 관계들이 존재할 개연성은 충분히 있으며, 그리고 그러한 내면적 운동은 외양적 관계 즉 부와 권력만큼이나 현실적인 실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만불 시대로 실질적으로 진입하기 위한 길목에 놓여있다. 기계적으로 달러로 표시된 國富만을 잣대로 모든 나라를 도열시킨다면, 이제 비로서 우리는 개발국가(developed countries) 즉 선진국가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만불 ? 4,200만의 덩치를 매년 재생산하고 유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대가 통일후를 고려한다면 이만한 덩치가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정의로운" 체계로 작동한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를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현재 한국이 가지고 있는 의사결정 구조와 사업개발 체계, 부의 창출과 환원과정, 개인에 대한 보장과 개인적 문제에 대한 처리, 지역 사이의 분배와 조화과정, 환경과 자원 문제에 대한 대응 방식, 그리고 지식 그 자체에 대한 이해방식을 생각한다면, 결국 만불 시대에 성공적으로 진입하게 된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많은 문제들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일정하게는 해결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으니까 만불 사회가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만불 사회로 진입한다는 것은 일정하게는 해결할 수 있는 장치와 기저를 확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부의 축적에 모든 것을 환원시키는 효용주의적 시각을 주장하는 극단적 환원론의 입장을 취하는 원초적 낙관론을 제시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만불 사이로 성공적으로 진입하게 된다면 지금의 모습에서 무엇이 변할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함이다.

나는 여기에서 경제철학의 역할을 제안하고 싶다. 그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훌륭하고 잘 작동하는 경제철학이라는 일종의 사유체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앞으로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은 시장과 정부, 개인과 전체, 국민경제시스템과 세계경제시스템이 상충하는 여러 경계선 사이에 존재하는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주도해서 나아갈 수 있는 경제시스템은 우리에게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고 또한 번영을 줄 수 있다는 교과서적인 담론은 세계 어디에서도 유효하지 않을 뿐더러 우리에게도 유효하지 않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의 문제를 우리의 시각과 우리의 상황에서 풀고자 하는 문제의식이고, 좀 더 차분하게 사물을 바라보고자 하는 작은 시작일 수도 있다. 실상 경제철학이 되었든 혹은 또 다른 "輕世家"의 학문이 되었든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일을 우리가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급조된 경제발전 만큼이나 급조하여 수입된 학문들 외에는 가지고 있는 것이 없다. 물론 여기에서 보편론과 상대주의 사이의 불안한 경계를 타야한다는 문제점은 여전히 존재한다. 만약 신고전학파 즉 경제학의 표준모델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경제학을 포함한 일련의 사회과학이 마치 자연과학에 존재하는 것과 같은 보편적인 법칙을 사회 현상에서도 찾아내는 것이라면 이론은 하나의 절대진리로 수렴하는 양상을 가지게 될 것이다. 어쨌든 인간이라는 보편적 존재가 만들어내는 사회적 현상은 하나의 법칙에 의하여 지배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보편주의는 또 다른 문제점에 종종 부딪히게 마련이다. 그것은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법칙이 그 의미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곤란 때문에 헤겔이 고안해낸 소위 "본질"과 "현상" 사이의 갈등에 대한 특별한 설명틀이 등장하게 되기도 한다. 어쨌든 시간과 공간의 문제라는 것은 흔히 지역성과 역사성을 이론에 개입시키는 문제로 종종 이해된다. 우리에게 있어 지역성과 역사성을 개입시키는 이론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직도 여기에 대해서 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실제로 사회과학에서의 논쟁이라는 것은 흔히 답 자체보다는 답을 제기하고 논의하게 되는 담론화 과정이 보다 실체적인 내용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더욱 많다.) 제도와 법에 대해서 보다 많은 고민을 할당하는 제도주의 경제학의 모습이 될 수도 있고, 규율 자체의 변화와 행동 루틴의 변화를 전제로 하는 진화주의 경제학일 수도 있고, 이미 예전에 사라진 학파이지만 아직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독일 역사학파의 모습에 보다 비슷한 형태의 이론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로서는 여기에 대해서 준비된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물론 그게 문제될 것은 없다. 어차피 사회과학이라는 것 자체가 열린 논의의 장에 불과한 것이며, 많은 경제학자들이 믿듯이 경제학 역시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진리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 더욱 가까웠던 것이 아닐까? 이런 면에서 경제학의 특징 중의 하나인 많은 논쟁들은 실제로 경제학의 발전에 가장 중요하게 기여한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논쟁이 있을까? 마치 국민소득 만불에 이르기까지 남의 이론을 차용하고 변형시키는 일 외에는 우리가 새로이 한 일이 있을까?

여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역사가 가진 단절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가 만불 이상의 국민소득을 달성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그것은 우리가 조선왕조 500년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역사성으로부터 단절하여 전혀 새로운 사회로 나아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면 다시 우리의 전통을 만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길고 긴 질문들이 있겠지만 나는 여기에서 모든 경제학자들이 그리고 모든 사회과학자들이, 그리고 모든 한국의 의사결정자들이 조금씩은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제안하고 싶다. 왜냐하면 어려운 것은 어려운대로 내버려두라는 것이 어쩌면 지금까지 우리의 덕목이 아니었나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세가 지나친 환원론 즉 어려운 것을 어려운 대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쉬운 걸로 환원하여 이해하는 조급한 자세를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이렇게 복잡하고 또한 학문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현 상황에서 철학은 공통의 언어가 될 수 있다. 수학만이, 그리고 영어만이 공통의 언어 노릇을 하는 것은 아니다. 사유에서의 공통언어라면 오히려 철학이 아닐까? 왜냐하면 철학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사유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과학 자체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과학의 시녀 노릇을 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우상을 만들어내는 별스런 양식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철학은 아주 광의의 공통의 언어일 수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그러한 노력이 다시 필요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