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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국가와 시장의 딜레마 : 기후변화협약

< 국가와 시장의 딜레마 : 기후변화협약 >
우석훈(에너지관리공단, 기후변화협약대책반, 경제학 박사)
1. 들어가는 말
현대 사회학자의 태두격이라고 할 수 있는 탈콧 파슨스가 사회를 일종의 시스템으로 보는 견해를 50∼60년대에 제시할 때 많은 사람들은 탈콧의 구조주의적 편향과 기능주의적 사회관이 가져올 문제점에 대해서 종종 지적하고는 하였다. 각 부문별로 사회의 영역을 나누고 그 영역들이 일종의 구조의 구성자로서 사회를 만들어나간다는 파슨스의 이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쾌한 방식으로 각 부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또 어떤 식으로 진행되어 나가야할지를 설명해준다는 측면에서 상당히 성공적인 이론틀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슨스의 이론이 봉착하는 여러 가지 한계 중의 하나가 사회와 국가의 관계, 그리고 국가를 뛰어넘는 실체와의 관계에 대한 부분일 것이다. 과연 한 사회는 그 사회를 외부적으로 혹은 표상적으로 형성하는 국가라는 단위와 일치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구성원과 국가의 이익은? 그리고 과연 국가는 어떠한 권리로 그 개인을 통제할 수 있는 권능을 확보하게 되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들은 어쩌면 근대성이 출발점으로 상정할 수 있는 사회계약이론의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일관된 대답으로 제시된 적이 없는 질문일 수도 있다. 이러한 많은 질문 중에서 국가와 시장 사이의 관계는 현대사회가 대답하여야 하는 질문 중에서 특히 사상사적인 근원을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실천적이며 실질적인 대답을 요구하는 질문 중의 하나일 것이다. 현대정치사 특히 미국의 현대정치사의 흐름은 결국은 시장주의와 비시장주의 사이의 대립에 다름아니라고 할 수 있으며, 영국의 대처주의에서 토니 블레어에 이르는 일련의 좌우파 대립도 실제로는 시장과 국가개입이라는 두 가지 양상의 충돌의 한 일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근대경제사에서 시장과 국가의 개입은 사실상 경제학의 탄생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 그러니까 세계화 등의 최근의 흐름에 의하여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닌 - 오래된 논쟁의 하나이며,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시장에 대한 환상도 혹은 시장에 대한 즉각적인 거부도 모두 사태의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90년대 세계경제의 특징을 '세계화(globalisation)'라고 경제학자들이 표현하는 일련의 통합화 과정으로 지칭한다면, 여기에서 국가와 시장의 갈등은 보다 첨예해질 수 밖에 없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지적하듯이 국적과 관계없이 자신의 사업영역을 확보하는 많은 다국적기업 혹은 通國籍기업들(Trans-national Corporations)은 국가의 권능에 기꺼이 도전하며, 또 많은 개발도상국에서는 실제로 국가보다 더 많은 권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지역화(localization)과 탈지역화(de-localization)의 일련의 지역선정에서부터 각 지역에서의 활동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생산자본의 권능에서보다 보다 실제적이며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는 금융자본의 움직임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영역과 권능은 그 어느 때보다도 축소되어 있고, 심지어는 국가의 존립근거 자체가 때로 의심받기도 한다. 특히 동구권 국가의 극적인 몰락과 함께 시장에 대한 칭송은 세계적으로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내었고, 그 속에서 시장에 의한 사회적 문제의 해법은 때로는 '선진화'와 동의어로, 때로는 '합리화(rationalization)'와 동의어로, 심지어는 보편타당적인 일반적 발전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반적인 흐름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측면들이 또한 새로이 등장하고 점점 더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는데, 환경과 에너지, 혹은 자원들과 관련된, 소위 시장실패가 발생하는 영역에서 공익 즉 사회적 이익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시장과 국가 사이의 선택이라는 일반적인 논리가 잘 움직이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도대체 시장이 무엇인가'라는 시장의 정의를 경제학은 물론 그 어느 학문도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러한 논의를 더욱 더 모호하게 만들어주는 속성이 있다. '시장의 실패'라고 간단하게 표상되는 공공재의 문제, 인권, 자원-환경-에너지에 관한 문제 등 개인의 이익의 집합적 산술에 의하여 전체를 쉽게 표상할 수 없는 부분들에서 이러한 모호성은 더욱 강해지게 된다. 인식론적으로는 '방법론적 개인주의(methodological individualism)'와 '방법론적 전체주의(methodological holism)' 사이의 문제로 잘 알려져 있는 '다리의 不在'와 관련된 문제가 여기에서 다시 발생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시스템으로 인식된 하나의 경제체계가 자신의 유지 혹은 재생산을 위하여 필요한 요소와 개별적 판단의 결과로 나타날 수 있는 결과가 일치하지 않거나 혹은 때로는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면에서 시장의 실패 혹은 '또 다른 요소'의 개입을 필요로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기후변화협약은 1992년 브라질 리우에서의 환경정상회담에 의한 '리우환경선언' 이후 가시화되기 시작한 환경협약의 일종이다. 그런데 이 환경협약은 UN이 직접적인 논의틀을 제공하였다는 측면만이 아니라 전세계의 거의 대부분의 국가, 그리고 대부분의 경제적·사회적 주체의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기존의 환경협약들, 즉 오존층 파괴와 관련된 몬트리올 의정서, 습지 보전과 관련된 람사협약, 폐기물의 국가간 이동과 관련된 바젤협약 등이 그것이다. 기후변화협약은 그 파급효과가 단순한 환경적 활동에만 국한되지 않고 에너지 즉 화석연료의 사용 혹은 그 활용과 관련된 대부분의 영역으로 그 범위가 넓혀지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특수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기후변화협약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국가 그리고 경제적 주체로서의 기업 사이의 역학 구도관계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고, 또 현실적으로 구체적인 '권능'과 '권한' 사이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들을 종종 야기시킨다. 환경과 같은 시스템적인 문제들에 있어서 국가라는 매우 특수한 존재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얘기되었지만, 언제나 이러한 논쟁은 해답이 제시되지 않는 상태에서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점은 기후변화협약에서도 동일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반복되는데, 여기에는 국가와 기업, 혹은 국민들과 같이 전통적으로 등장하는 정책적 주체 및 연관된 주체들의 범주와 함께 지방정부, 다국적기업 혹은 통국적기업 등과 같이 보다 복잡하고 비체계적 관계의 주체들이 같이 등장하게 된다. 이 속에서 기후변화협약은 국가주의와 탈국가주의, 그리고 생태주의(Deep Ecology)에 근거한 세계주의 혹은 보편주의와 함께 동시에 보호주의적 색채를 강하게 띄고 있는 민족주의(Nationalism) 혹은 자국이기주의 등이 동시에 개입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