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경제학자로서 "확립론"의 연구에 몰두하다,알프레드마샬이 인퇴하던 1908년 켐브리지 대학의 특별 연구원이 되어,화폐론 강의를 시작한다.왕립 인도 통화금융 심의회(1913-1914),재경부(1915-1919)에도 관여하다 제1차대전후의 강화회담에 재경부 대표로 참가하여,강화조약 중 특히 배상안의 모순을 지적하였지만,받아들여지지않자 사퇴를하였으며,이후 "평화의 경제적 귀결(The Economic Consequences of the Peace,1919)"을 발표하여 일약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는 계기가 된다.
제2차 대전이 일어나자 즉시 재경부에 영입되어 인도 은행을 담당하게 되고,이 기간 중,국제 통화기금의 설립과 영미 금융 협정 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경제학자로서 처년작은 "인도의 통화와 금융(Indian Currency and Finance, 1913)"으로서 이후 몇몇 작품을 남기지만,뭐니뭐니해도 "케인즈 혁명"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그의 독창성이 빛나는 작품은 "고용,이자 그리고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 1936)"일 것이다.전체적으로 그는 시국적 감각이 강한 학자로서 이 저서에서도 그의 그러한 정신이 많이 반영되어,대공황(1929)후의 불황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는데 중점을 두는 한편,정책과의 관계를 보여주는데 노력하고 있다.
그의 공적은 점차적으로 현실과 동떨어져 가던 당시의 신고전파 경제학을 그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현실에 근접시켜 갔다는 점일 것이다.
그의 주요 저서
"The Recent Economic Events in India", 1909, EJ
"Principal Averages and Laws of Error which Lead to Them", 1911
"Influence of Parental Alcoholism", 1911, J of Royal Statis Soc
"The Foreign Trade of the UK at Prices of 1900", 1912, EJ
Indian Currency and Finance , 1913
"The Prospects of Money", 1914, EJ
"War and the Financial System", 1914, EJ
The Economic Consequences of the Peace , 1919
"The Inflation of Currency as a Method of Taxation", 1922, MGCRE
"A Reply to Sir William Beveridge's Population and Unemployment", 1923, EJ.
"Population and Unemployment", 1923, EJ
"Currency Policy and Unemployment", 1923, N&A
Laissez Faire and Communism, 1926
"The Industrial Crisis", 1930, N&A
"The Problem of Unemployment", 1931, The Listener
"The World's Economic Outlook" , 1932, Atlantic Monthly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 , 1936
"The General Theory of Empoyment", 1937, QJE
1929년에 시작된 세계공황에 의해 일기 시작한 자본주의 사회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학파로,케인즈의 경제 이론을 이어 받아,정책면에서는 국가에 의한 유효 수요의 증감 조절을 통해 대량 실업과 불황의 완화를 도모하고,자본주의의 수정을 추진하려 하였고,경제 이론상에서는 종래의 미크로 분석은 물론 그와 더불어 산출량의 변동을 다루는 마크로 분석을 위주로 현실 문제에 대응하려 하였다.
이러한 케인즈 주의는 점차로 흔히 말하는 좌파와 우파의 두 갈래로 나뉘어지기 시작한다.우선,우파(右派)의 경우,이자율을 중앙은행에서 조절하여 민간 투자를 자극할 것,동시에 정부가 유효 수요를 증가시키기 위해 군수(軍需)지출을 적극적으로 행하고,민간 기업에 토목 사업을 발주시키거나 민간 투자 증대를 위해 각종 보조금을 지원하는 등의 활동을 함으로 완전 고용 정책을 추진하려 하였다.이 입장은 당초 케인즈 정책에 반대했던 기업가 측에 받아들어져,영국에서는 보수당,미국에서는 2차 대전후의 공화당내에 많은 지지자를 확보하기도 하였다.
둘째로 케인즈 좌파의 경우는,유효수요를 증가 시키기 위해서 소득과 부의 평등화를 지향하는 한편 투자 내용을 계획화,사회화함과 동시에 정부 투자를 사람들의 사회복지 증대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행할 것을 주장하는 입장이었다.즉,국가 자본을 증대시켜 산업 국유화의 기초를 다질려고 하는 성향을 띄고 있었다.
케인즈 학파의 발전은 케인즈가 '일반이론'에서 밝힌 전제들을 확충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갔다.그것은 "자본 설비일정(資本設備 一定)"이란 단기적 전제를 버리고,케인즈 이론을 '장기화' 내지는 '동태화(動態化)'시키려는 움직임 이었다.이러한 케인즈 이론의 장기화는 통상 3가지 유형으로 나타나는데 그중 제1계보의 3가지 이론 체계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하고자 한다.
1.사뮤엘슨-힉스-굿맨 체계
이들의 체계는 케인즈적 승수 이론(乘數理論)에 의해 명백히 드러난 '투자->소득'의 관계에 새로이 투자 결정론으로써 소비 내지는 소득의 증가가 투자를 결정한다는 '가속도 원리(acceleration principle)'를 원용한 '소득증가->투자'의 관계를 도입해 이 양자에 의해 소득과 투자간의 상호 결정 관계를 밝히려 하는 것을 말한다.또한 이들의 이론은,투자를 유효수요의 창출이라는 일면으로 간주하는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
사뮤엘슨은 이 이론으로 경기 순환을 정책적으로 증명하려 하였고,힉스는 순환뿐만 아니라 성장의 문제까지 다루려 하였고,굿윈은 비선형 가속도계수를 도입해 이들을 형상화 시켜갔다.
2.카레츠키(Kalecki,Michal)-칼도(Karldor,Nicholas)체계
가속도 원리는 재고 투자에는 타당하지만,고정자본의 투자에는 타당하지 않다는 입장에서,투자는 이윤량의 증가에 비례해서 증가함과 동시에 자본 축적량의 증가에 비례해서 감소한다는 투자 결정론을 기존의 승수 이론과 결합시킴에 의해 경기 순환 모델을 만들려 한 것이 이들의 이론 체계이며, 투자가 유효수요의 원천이 될 뿐 만 아니라,자본 축적이 된다는 면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3.헤롯-도마 체계
헤롯의 체계는,'현실투자는 반드시 적정한 투자와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다' 라는 견제에서,양자의 괴리가 투자량의 증감을 결정해,더우기 그 괴리가 더해감에 따라 완전고용,자본의 완전 이용이라는 천정에 부딪히게 되어 경기 전환이 이루어진다는 체계로,'안티노미 이론(antinomy theory)' 이라고 알려져 있다.
도마의 체계는 헤롯의 체계와 거의 같지만,투자는 한편으로 생산 능력의 증가로 이어지지만,반면에 투자의 증가가 승수 이론에서 명백히 드러난 것 처럼 유효 수요의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들 양자가 동등한 경우에 비로소 적정 수준이 결정된다는 입장에서 '적정 경제 성잘률'을 구하려고 한 것을 말한다.헤롯 이론과 더불어 투자를 유효수요창출이란 일면뿐만 아니라 생산 능력의 부가라는 측면도 간과하지 않았던 이론 체계이다.
실업과 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케인즈적 정책은,제2차 세계대전중에는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이론으로서 이용되었고,전후에는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제 정책으로써 널리 정착 되었다.특히,적정한 경제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서 국가가 유효 수요량을 조절한다는 헤롯-도마의 이론이 그 중심이었다.
그 결과,전후 자본주의는 1930년대와 같은 불황을 겪는 일은 없었지만,그 대가로 점차적인 인플레이션(mild inflation)과 거기에 근원을 둔 국제 경쟁력의 약화를 가져오게 된다.특히,신투자에 의한 생산성의 향상을 실현하지만,국가에 의한 수요 창출 정책에 의해 물가는 내려가지 않고 오히려 상승하는 움직임이 보여,생산성이 향상된 대기업의 초과이윤의 고정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더우기,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성장 정책을 완화시키려 하면 불황조짐이 보이고,또 다시 불황대책에 나서면 인플레이션이 머리를 드러내는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이러한 경향은 때로 인플레와 디플레의 혼재(混在)를 낳고,불황속에서도 물가가 상승하는 스테그 플레이션(stagflation) 현상으로까지 발전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가 상승이 국제수지를 악화시켜,물가측면에서 케인즈 정책의 지속은 불가능하게 되고,국제 경쟁력의 강화를 위해서는 케인즈적 유효수요증대 정책을 취하지 말고,자유경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나타나게 되었고,케인즈 주의자들의 성장우위의 단순성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된다.
제2차 대전이 일어나자 즉시 재경부에 영입되어 인도 은행을 담당하게 되고,이 기간 중,국제 통화기금의 설립과 영미 금융 협정 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경제학자로서 처년작은 "인도의 통화와 금융(Indian Currency and Finance, 1913)"으로서 이후 몇몇 작품을 남기지만,뭐니뭐니해도 "케인즈 혁명"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그의 독창성이 빛나는 작품은 "고용,이자 그리고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 1936)"일 것이다.전체적으로 그는 시국적 감각이 강한 학자로서 이 저서에서도 그의 그러한 정신이 많이 반영되어,대공황(1929)후의 불황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는데 중점을 두는 한편,정책과의 관계를 보여주는데 노력하고 있다.
그의 공적은 점차적으로 현실과 동떨어져 가던 당시의 신고전파 경제학을 그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현실에 근접시켜 갔다는 점일 것이다.
그의 주요 저서
"The Recent Economic Events in India", 1909, EJ
"Principal Averages and Laws of Error which Lead to Them", 1911
"Influence of Parental Alcoholism", 1911, J of Royal Statis Soc
"The Foreign Trade of the UK at Prices of 1900", 1912, EJ
Indian Currency and Finance , 1913
"The Prospects of Money", 1914, EJ
"War and the Financial System", 1914, EJ
The Economic Consequences of the Peace , 1919
"The Inflation of Currency as a Method of Taxation", 1922, MGCRE
"A Reply to Sir William Beveridge's Population and Unemployment", 1923, EJ.
"Population and Unemployment", 1923, EJ
"Currency Policy and Unemployment", 1923, N&A
Laissez Faire and Communism, 1926
"The Industrial Crisis", 1930, N&A
"The Problem of Unemployment", 1931, The Listener
"The World's Economic Outlook" , 1932, Atlantic Monthly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 , 1936
"The General Theory of Empoyment", 1937, QJE
1929년에 시작된 세계공황에 의해 일기 시작한 자본주의 사회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학파로,케인즈의 경제 이론을 이어 받아,정책면에서는 국가에 의한 유효 수요의 증감 조절을 통해 대량 실업과 불황의 완화를 도모하고,자본주의의 수정을 추진하려 하였고,경제 이론상에서는 종래의 미크로 분석은 물론 그와 더불어 산출량의 변동을 다루는 마크로 분석을 위주로 현실 문제에 대응하려 하였다.
이러한 케인즈 주의는 점차로 흔히 말하는 좌파와 우파의 두 갈래로 나뉘어지기 시작한다.우선,우파(右派)의 경우,이자율을 중앙은행에서 조절하여 민간 투자를 자극할 것,동시에 정부가 유효 수요를 증가시키기 위해 군수(軍需)지출을 적극적으로 행하고,민간 기업에 토목 사업을 발주시키거나 민간 투자 증대를 위해 각종 보조금을 지원하는 등의 활동을 함으로 완전 고용 정책을 추진하려 하였다.이 입장은 당초 케인즈 정책에 반대했던 기업가 측에 받아들어져,영국에서는 보수당,미국에서는 2차 대전후의 공화당내에 많은 지지자를 확보하기도 하였다.
둘째로 케인즈 좌파의 경우는,유효수요를 증가 시키기 위해서 소득과 부의 평등화를 지향하는 한편 투자 내용을 계획화,사회화함과 동시에 정부 투자를 사람들의 사회복지 증대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행할 것을 주장하는 입장이었다.즉,국가 자본을 증대시켜 산업 국유화의 기초를 다질려고 하는 성향을 띄고 있었다.
케인즈 학파의 발전은 케인즈가 '일반이론'에서 밝힌 전제들을 확충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갔다.그것은 "자본 설비일정(資本設備 一定)"이란 단기적 전제를 버리고,케인즈 이론을 '장기화' 내지는 '동태화(動態化)'시키려는 움직임 이었다.이러한 케인즈 이론의 장기화는 통상 3가지 유형으로 나타나는데 그중 제1계보의 3가지 이론 체계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하고자 한다.
1.사뮤엘슨-힉스-굿맨 체계
이들의 체계는 케인즈적 승수 이론(乘數理論)에 의해 명백히 드러난 '투자->소득'의 관계에 새로이 투자 결정론으로써 소비 내지는 소득의 증가가 투자를 결정한다는 '가속도 원리(acceleration principle)'를 원용한 '소득증가->투자'의 관계를 도입해 이 양자에 의해 소득과 투자간의 상호 결정 관계를 밝히려 하는 것을 말한다.또한 이들의 이론은,투자를 유효수요의 창출이라는 일면으로 간주하는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
사뮤엘슨은 이 이론으로 경기 순환을 정책적으로 증명하려 하였고,힉스는 순환뿐만 아니라 성장의 문제까지 다루려 하였고,굿윈은 비선형 가속도계수를 도입해 이들을 형상화 시켜갔다.
2.카레츠키(Kalecki,Michal)-칼도(Karldor,Nicholas)체계
가속도 원리는 재고 투자에는 타당하지만,고정자본의 투자에는 타당하지 않다는 입장에서,투자는 이윤량의 증가에 비례해서 증가함과 동시에 자본 축적량의 증가에 비례해서 감소한다는 투자 결정론을 기존의 승수 이론과 결합시킴에 의해 경기 순환 모델을 만들려 한 것이 이들의 이론 체계이며, 투자가 유효수요의 원천이 될 뿐 만 아니라,자본 축적이 된다는 면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3.헤롯-도마 체계
헤롯의 체계는,'현실투자는 반드시 적정한 투자와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다' 라는 견제에서,양자의 괴리가 투자량의 증감을 결정해,더우기 그 괴리가 더해감에 따라 완전고용,자본의 완전 이용이라는 천정에 부딪히게 되어 경기 전환이 이루어진다는 체계로,'안티노미 이론(antinomy theory)' 이라고 알려져 있다.
도마의 체계는 헤롯의 체계와 거의 같지만,투자는 한편으로 생산 능력의 증가로 이어지지만,반면에 투자의 증가가 승수 이론에서 명백히 드러난 것 처럼 유효 수요의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들 양자가 동등한 경우에 비로소 적정 수준이 결정된다는 입장에서 '적정 경제 성잘률'을 구하려고 한 것을 말한다.헤롯 이론과 더불어 투자를 유효수요창출이란 일면뿐만 아니라 생산 능력의 부가라는 측면도 간과하지 않았던 이론 체계이다.
실업과 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케인즈적 정책은,제2차 세계대전중에는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이론으로서 이용되었고,전후에는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제 정책으로써 널리 정착 되었다.특히,적정한 경제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서 국가가 유효 수요량을 조절한다는 헤롯-도마의 이론이 그 중심이었다.
그 결과,전후 자본주의는 1930년대와 같은 불황을 겪는 일은 없었지만,그 대가로 점차적인 인플레이션(mild inflation)과 거기에 근원을 둔 국제 경쟁력의 약화를 가져오게 된다.특히,신투자에 의한 생산성의 향상을 실현하지만,국가에 의한 수요 창출 정책에 의해 물가는 내려가지 않고 오히려 상승하는 움직임이 보여,생산성이 향상된 대기업의 초과이윤의 고정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더우기,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성장 정책을 완화시키려 하면 불황조짐이 보이고,또 다시 불황대책에 나서면 인플레이션이 머리를 드러내는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이러한 경향은 때로 인플레와 디플레의 혼재(混在)를 낳고,불황속에서도 물가가 상승하는 스테그 플레이션(stagflation) 현상으로까지 발전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가 상승이 국제수지를 악화시켜,물가측면에서 케인즈 정책의 지속은 불가능하게 되고,국제 경쟁력의 강화를 위해서는 케인즈적 유효수요증대 정책을 취하지 말고,자유경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나타나게 되었고,케인즈 주의자들의 성장우위의 단순성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