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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경제난국의 극복: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때

1997. 12. 3.

몇일 전 IMF 와의 협상에서 내년도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율을 2.5%로 낮추겠다는 합의를 했습니다. 우리 경제는 이제 지금까지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저성장 시대로 들어가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저성장이 우리에 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그 동안 우리는 고도성장의 신화에 사로잡혀 경제성장을 왜 하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달려만 왔 었습니다. 국가 경제도 그렇고 기업도 마찬가지로 성장의 내용과는 상관이 없이 무조건 외형적으로만 '몇 퍼센트 컸다'라는 식 의 외형주의에 길들여져 왔던 것이 아닌가요?

그러나 이제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가 왜 성장해야 하는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때입니다. 아무 런 내용이 없는, 또는 실질적인 이익을 동반하지 않는 성장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며 오히려 엄청나게 위험한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제서야 최근 우리 경제의 위기에 직면해서 배우고 있습니다. 한보와 기아가 그러했고, 많은 기업들이 도산하는 것을 보고 나서 이제서야 우리는 그 값진 교훈을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자본비용에 대한 심각한 고민도 없이, 또는 치밀한 사업성의 평가도 없이 일단 외형만 키우고 보자는 식의 경영 방식이 기업을 망하게 했고, 그리고 우리 경제를 멍들게 했던 것입니다. 이 제 우리는 고속성장 보다는 조금 늦더라도 알차고 내실있는 성장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이제 내년부터 우리 경제의 성장율을 2.5%로 낮추면 당장 상당한 정도의 실업율을 감수해야 하고, 기업의 연쇄도산 등으로 사회적 혼란이 올 수 있습니다. 어떤 연구기관의 예측에 의하면 내년에 실업자가 1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금만 더 일찍 구조조정,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수술을 시작했더라면 약간의 고 통은 있었겠지만 지금과 같은 지경에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구조조정과 개혁을 늦춘 대가를 이제 한꺼번에 치를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뚜렷한 비전과 이를 실천할 국가의 리더쉽이 절실히 필요할 때 입니다. 그런데 지금 정치권은 어떻습니까?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 보다는 서로 그 책임을 상대방에게 떠 넘기기에 급급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또한 정치권과 재계에서는 입을 모아서 우리 경제의 이 난국이 마치 금융실명제 탓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고, 급기야는 정말로 힘 들여서 만들어 놓았던 금융실명제를 없애 버리고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감수해야 할 고통이라면 이 것을 감추거나 회피하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문제를 노출시켜서 같이 고민하고, 같이 고통을 나누고 해서 정면으로 대응하는 것이 옳은 방법일 것입니다.

우리 경제는 왜 이 지경에까지 와 있는 걸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경제를 운용하는데 있어서 시장의 원리를 무시하거나 이에 따르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봅니다.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싫든 좋든 개방화된 사회 에서 시장의 원리에 의해서 굴러 가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시장의 원리에 충실하기 보다는 이를 통제하고 규제해 서 경제를 관리하겠다고 하다가 결국은 더 큰 화를 입게 된 것입니다. 경제란 원래 인위적으로 통제하고 조작해서 관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 가듯이, 경제는 시장의 원리에 의해서 굴러 가는 것입니다. 해외시장 의 환경은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는데, 우리는 모든 것을 국 내에서의 잣대 만으로 문제를 보호하고 통제하고 조작하려고 했던 면 이 없지 않습니다. 우리가 결코 시장의 원리에 반항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시장에 잘 순응하고 이를 활용하여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어 나가야 합니다.

우리 경제가 아무리 위기 상황에 와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여기서 이대로 주저 앉고 말 수는 없습니다. 우리 국민은 한 강의 기적을 이룩했던 잠재력이 아주 많은 위대한 민족입니다. 다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제는 더 이상 덩치만 키우고 보자는 식의 또는 무엇인지도 모르고 거품만을 쫓는 어리석은 성장제일주의에서 벗어나서 비록 조금은 늦더라도 더욱 알차고 내 실이 있는 경제의 발전을 추구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반시장주의, 규제, 관리, 통제의 경제에서 벗어나 시장의 원리에 순응하고 따르며 시장을 활용하는 지혜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