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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우리 경제 위기의 본질

1997. 9. 24.

요즈음 우리 경제는 위기에 처해 있다고들 합니다. 많은 중소기업들이 부도가 나고 도산을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굴지의 재벌기업들도 한순간에 무너져 버리는 위기에 쳐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뿐만 아니라 감원, 명퇴, 조퇴 등의 말들로 많은 근로자들도 편안히 자기 일에만 충실하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고, 좌절과 시련 속에서 초조하게 나날을 살아 가야만 하는 형편입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우리는 어떠했습니까? 다가오는 새로운 세기에는 우리도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 갈 것이고 남북통일 도 머지 않아 올 것이라는 희망에 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런 번영의 대열에 참여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갖고 있었 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희망이나 자부심은 사회의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대신 우리는 모두가 불안해 하고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무엇에 대해서 불안해 하고 왜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요? 늘어나고 있는 무역적자 때문인가요 ? 기업들의 부도와 도산 때문일까요? 지금까지 일해 오던 직장에서 해고될 것에 대해 초조해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계속해서 치솟는 환률 때문일까요? 거래처에서 받은 어음이 부도가 날까 봐서 그럴까요?

사람들은 요새 우리 경제를 "환률 비상", "외환 보유고 위기" 또는 "금융 대란" 같은 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런 말들이 때로는 우리들의 심리를 필요 이상으로 불안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물론 상품의 수출이 잘 안 되는 것도 문제이고 과잉생산 설비도 큰 문제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위기라고 느껴야 하는 부분은 이와 같은 표면에 나타난 현상들 때문이 아니고 이들 문제를 해결할 주체가 분 명하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우리 경제는 지금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구조조정이 시급한 때입니다. 그런데 이런 구조조정을 강력 하게 이끌어 나갈 주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경제를 시장기능에 맡기기 위해서 기업을 도산시키고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게 하고, 임금을 삭감하는 일 등 은 정치인들에게는 인기가 없는 일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그 무거운 짐을 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특정의 정치인이나 관료에게 의존하지 않고 바로 시장의 원칙이란 제도에 의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시장의 원리란 바로 "경쟁에서 도퇴되는 기업은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이나를 막론하고 반드시 망한다"라는 원칙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데 우리는 이러한 원칙 대신에 "부도유예 협약"이라고 하는 아주 어정쩡한 정부에 의한 조정의 길을 택하고 있습니다. 이는 바로 어려운 결정을 하는 대신에 현실과 타협하는 쉬운 길을 택하자는 것입니다.

어려운 길을 피하려고 하는 것은 정부만이 아닙니다. 평소에는 시장경제에 의존해야 한다고 항상 강조하던 전경련도 기업 의 어려움을 호소할 때는 정부의 개입이 불가피하다고 다른 소리를 내고는 합니다. 이런 것들이 바로 우리 경제 위기의 본질입 니다. 원칙과 제도 대신에 상황논리나 정치논리가 지배하고, 그때 그때 마다 편리한 결정에 의존하다 보면 실수를 되풀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려운 결정을 하려는 주체가 아무도 없기 때문에 시장경제의 원칙은 정립되지 못하고 정부의 규제와 간섭이 계 속되며 결국 도전을 기회로 이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바로 이런 어려운 결정을 떠맡아 줄 지도자를 골라야 할 것입니다. 표를 얻기 위해 당장 듣기 좋은 소리를, 그것도 자리를 바꿔 가며 말을 바꾸는 지도자를 이제는 더 이상 뽑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