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형설지공/경제경영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중에서

경제학자란 힘든 직업이다. 기업 이사진들은 경제학자들이 비용이나 이익을 정확하게 계산해 내지 못한다고 공격한다. 박애주의자들은 경제학자들이 비용이나 이익을 너무 꼼꼼히 따진다고 비난한다. 정치가들에게 있어 경제학자들은 희생 없는 번영이라는 공약을 좌절시키는 걸림돌이다....

우리는 더 이상 에덴동산에 살고 있지 않다. 이 세상은 젖과 꿀이 넘쳐 흐르는 곳이 아니다. 더 맑은 공기와 더 빠른 자동차, 더 큰 저택과 더 넓은 공원, 더 많은 일과 더 많은 휴식 사이에서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경제학자들은 이 중에서 어느 것이 나쁘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우리가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을 알려 줄 뿐이다. 경제학은 선택의 학문이다. 하지만 경제학은 우리에게 무엇을 선택하라고 지시하지는 않는다. 선택의 결과를 예측하고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뿐이다.

마샬은 경제학을 빈틈없는 논리로 짜여진 과학과 인류에게 헌신하는 정신이 조화를 이룬 전문직으로 보았다. 의학, 법학, 신학을 각각 육체적 건강, 정치적 건강, 정신적 건강을 겨냥한 세가지 신성한 전문직으로 본 중세인들의 전통에서 한발 더 나아가 마샬은 경제학을 인류의 물질적 건강을 위한 네번째 성직으로 만들고자 했다.

가장 위대한 경제학자들에게서 우리는 과학적 관심사의 불꽃 뿐 아니라 굽이치는 열정의 파도를 발견한다. 그들이 남긴 미적분과 통계학의 난해한 기호들의 숲에서 우리는 이따금씩 굵직한 느낌표들을 발견한다.

선거운동 기간은 경제학자들에게는 시련의 기간이다. 정치가들이 국민들에게 더 풍요한 밥상과 더 든든한 국방을 동시에 약속할 때마다 경제학자들은 불을 보듯 뻔하게 초래될 재난들을 경고해야 한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의 그 어떤 냉철한 논리도 선거 후보자들의 달콤한 약속들과 책임 못질 호언들이 일순간에 휩쓸어 버린다.

... 누구나 다 알아 들을 수 있게 경제를 설명해야지 주말 연속극에 나오는 동네 아저씨 수준보다 더 높은 언어나 개념들을 구사해서는 안 된다. ... 왜 정치가들과 경제정책 고문들 사이에는 서로의 오해의 소지가 많을까? 아마도 이는 경제학자들이 독특한 그들만의 언어로 소통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언어의 이름은 모형(model)이다. 복잡한 세상을 설명하기 위해 경제학자들은 어느 경제현상의 수만 가지 가능요인들 중 가장 주된 것들을 추출, 그 현상의 간략한 축소판을 만들어 내어야 한다.

그 모형은 간단하면서도 포괄적이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실제현상들을 설명하고 전망할 수 있어야 한다. 최상의 경제학자란 가장 영속성 있고 가장 견고한 모형의 설계사를 뜻한다.

순수과학 분야들보다 경제학이 유독 더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신장수술을 집도하는 외과의사를 상상해 보자. 엑스레이 결과, 그 의사는 신장의 위치가 결장으로부터 1인치 아래쯤에 위치한다는 것을 파악한다. 그러나 의사가 막 절개하기 시작한 순간 신장이 슬거머니 위치를 바꾸었다고 상상해 보라. 경제학의 고충이 바로 여기에 있다. 경제학자가 갖가지 원인들을 분리시킨 후 그 영향력들의 평가를 시도할 때면 이미 그 영향력들은 변해 있다. 경제학은 '순수'과학이 아니다. 하지만 '쉬운' 과학 역시 아니다. 너무나 유동적인 과학이기에 자료들을 꽉 붙들고 연구해 볼 수 없다는 데에 경제학의 어려움이 있다. 경제학의 대가란 무릇 기사작위나 나아가 성인(聖人)의 자격에 요구되는 능력보다 더 대단한 능력들을 갖춘 인물이라고 언젠가 케인즈는 역설한 바 있다.

그는 수학자이자 사학자인 동시에 정치가이며 청학자이어야 한다. ... 그는 기호들만으로 이해한 것들을 평이한 말로써 설명해야 한다. 특수한 경우들을 일반적인 시각에서 고찰할 수 있어야 하며, 추상과 구상을 동일한 사고의 지평 위에서 다룰 수 있어야 한다. 과거의 경험 아래 미래를 목표로 현재를 연구해야 하고, 인간의 본성이나 사회 규범 중 미세한 일부라 할지라도 관심의 대상에서 빠뜨려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그는 공평무사함과 과단성을 겸비해야 한다. 예술가처럼 초연하고 청렴하면서도 가끔씩 저ㅊ치가처럼 치열하게 세속적이어야 한다. (J. M. Keyn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