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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제 1 절 경제정의의 실현

제 1 절 경제정의의 실현


1. 개미와 베짱이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우화이다. 이 이야기는 놀지 말고 열심히 일해야 잘 살 수 있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개미처럼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잘 사는 사람들이 많다. 베짱이처럼 노래만 부르고 살아도 돈을 주체하지 못해 오히려 걱정인 사람들이 있다. 우리의 현실은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다시 써야 할 지경이다.

개미와 베짱이가 살고 있었다. 개미는 삼복더위에 피서도 가지 않고 냉면 대신 라면 끓여 먹으며 한푼 두푼 틈틈히 저축을 했다. 베짱이는 시원한 나무 그늘에 누워 다양한 레퍼토리로 노래를 불렀다. 드디어 겨울이 왔다. 개미는 여름 내내 모아둔 돈을 가지고 콘서트에 갔다. "오늘의 명가수 베짱이를 소개합니다." 우뢰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여름 내내 노래만 불러서인지 베짱이는 잘도 불러댔다. 베짱이는 단번에 많은 돈을 벌었다. 공연장을 빠져 나오는 개미에게 '썰렁한' 겨울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2. 튤립 이야기


날아다니는 새가 아닌 이상 사람에게는 보금자리가 필요하다. 그것은 곧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휴식공간과 생활공간의 확보를 의미한다. 그러나 어느 사이 우리에겐 이처럼 중요한 땅과 집이 삶의 근본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지 오래다. 전인구의 4분의 1에 가까운 사람들이 집없는 사람의 설움을 안고 보리고개보다 더 무서운 '이사고개'를 넘지 않으면 안되는 실정이다.

지난 1980년대 후반부터 불기 시작한 부동산투기의 광풍(狂風)은 삽시간에 국토를 유린하고 지나갔다. 투기가 휩쓸고 지나간 땅엔 천정부지로 오른 땅값과 유일하게 살아 남은 투기꾼들만이 득실거린다. 외제차를 타고 골프를 즐기며 하루 저녁에 술값으로 수백만원을 탕진하는 땅부자들의 수입이 공장에서 땀흘리며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훨씬 초과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역사가 주는 교훈은 투기적 소동이 크면 클수록 뒤따르는 가격하락은 더욱 갑작스럽게 그리고 크게 오며, 투기의 소용돌이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손해를 보고 오직 극소수만이 이득을 본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현상 중 특히 그 영향이 컸던 사건들을 '매니아'(mania)라고 부르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1630년대 네덜란드에서 있었던 '튤립 매니아'(Tulip Mania)일 것이다. 이 사건은 1593년 네덜란드에 터키로부터 이국적인 화초가 소개되면서 시작되었다. 네덜란드인들은 이 화초가 소개되자 곧 누구나 관심을 갖게 되어 비싼 값에 거래되기 시작했다. 이 튤립의 가격상승에 결정적인 불을 당긴 것이 모자이크 바이러스인데,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튤립은 꽃잎에 여러가지 화려한 색깔의 무늬를 띠었다.

곧 이러한 무늬를 띤 튤립은 귀족, 평민을 가리지 않고 대유행하여, 마치 요즘의 패션쇼에서와 같이 튤립 제조업자들은 다음해에 유행할 종류를 예측하기도 하였다. 이에 따라 튤립을 매점매석하는 사태도 벌어져 그 값은 천정부지로 오르기 시작하였는데, 이러한 현상은 1634-38년 사이에 극에 달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하여 자신의 귀금속이나 부동산을 팔아 튤립에 투자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성을 되찾은 사람들은 튤립의 가격이 너무 비싸졌다는 것을 깨닫고 튤립을 팔기 시작하였으며 곧이어 다른 사람들이 이를 뒤따르게 되었다. 이에 따른 가격폭락을 막고자 네덜란드 정부는 튤립가격이 하락할 아무 이유가 없다는 공식발표까지 하였지만 대세를 되돌리지는 못하였으며 마침내 튤립의 가격은 다른 화초와 거의 다름없게 되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다.

유사한 경험은 우리나라에서도 있었다. 1988년 올림픽을 정점으로 한국의 주가는 폭락하기 시작하였다. 정부는 이를 막고자 온갖 수단을 동원하였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당시 국민 모두가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에 주식투자라는 열기에 휩싸였던 것이다. 집을 팔아 주식을 샀던 가정주부, 소를 팔아 투기에 열을 올렸던 농부, 퇴직금을 모두 증권에 쏟아 부었던 가장, 이런 이야기들이 값비싼 교훈이 되어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당시 증권시장에서 이익을 보았다는 사람은 별로 없으며, 손해를 본 사람들도 자신이 얼마나 많이 손해를 입었는가를 말하지 않고 있다.


3. 경제정의의 핵심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미래의 사회는 경제정의가 뿌리를 내리는 사회이다. 경제적 부정의가 설 땅을 잃는 사회이다. 여기서 경제정의는 일반적으로 '분배정의'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그만큼 분배의 정의가 경제정의의 핵심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분배란 결국 생산물을 나누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산에 많이 기여한 사람에게는 많이, 적게 기여한 사람에게는 적게 분배하는 것이 정의로운 분배원칙이다. 생산의 기여도에 따라 '차등분배'하는 것이 분배정의요, 공평분배인 것이다.

그러나 차등적인 분배가 모든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기 위해서는 생산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누구에게나 균등하게 제공되어져야 한다. 결국 공평한 분배란 '결과의 평등'이 아닌 '과정의 평등'이 보장되는 분배방식이다.

개미와 베짱이에게 똑같이 일할 기회를 주었지만, 개미는 열심히 일했고 베짱이는 게으름만 피웠다. 그 결과 겨울이 되자 베짱이는 배가 고파 개미에게 먹을 것을 얻으러 찾아간다. 풍족한 개미는 가난한 베짱이에게 따끔한 훈계를 하고는 먹을 것을 주어 돌려 보낸다. 그것이 바로 이솝우화가 그린 정의로운 사회의 모습이다.


4. 불로소득의 퇴치


그런데 사유재산제도가 인정되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생산에 기여하는 것이 노동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돈이나 땅과 같은 재산을 생산하는데 제공하는 것도 생산에 기여하는 일이다. 따라서 임금과 같은 근로소득 뿐만 아니라 이자나 지대와 같은 재산소득도 생산에 기여한 몫이다.

그러나 땅투기나 탈세 또는 부정부패와 같이 생산에 전혀 기여하지 않고서 생기는 소득은 정의로운 소득이 아니다. 이와 같이 반(反)생산적인 소득은 분배의 정의를 헤친다. 그리고 이러한 불건전한 소득이 많으면 많을수록 분배는 불평등해진다. 우리나라의 분배구조가 매우 불평등하다고 말해지는 것은 이들 반생산적 소득이 그만큼 많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소위 '불로소득'이라고 불리워지는 이들 생산에 기여하지 못하는 소득은 일하지 않고서 생긴 소득이다. 땅투기나 부정부패를 통하여 거저 굴러 들어온 돈이다. 따라서 불로소득이 독버섯처럼 번지게 되면 경제가 큰 위험에 빠진다. 사람들은 일할 의욕을 상실하며, 돈과 사람이 투기적인 부문으로 빠져 나간다. 생산적인 부문은 날로 허약해지고 퇴폐·향락산업 등 비생산적인 부문은 날로 비대해진다. 결국 경제는 만신창이가 되고 만다. 이것이 불로소득의 방치가 가져 오는 치명적인 해악이다.

땅투기만 해도 그렇다. 땅투기는 모든 경제문제의 근원이자 경제악의 주범이다. 각종 불로소득이 발생하는 온상이다. 근로소득은 일한 대가로 얻는 소득이지만, 불로소득은 일하지 않고서 생긴 소득이다. 그런데 한 해 동안 발생한 불로소득의 규모가 그 해에 국민 모두가 땀흘려 번 근로소득총액과 맞먹을 정도라면, 누가 열심히 땀흘리며 일하겠는가. 불로소득의 방치는 경제에 암세포가 번지도록 내버려 두는 것과 같다.


5. 터널효과


어떤 사회에 불로소득이 만연하게 되면 국민들은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경제·사회적으로 불평등이 심한 나라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그 자체로서도 매우 중대한 문제거니와, 국민적 일체감을 형성하고 국력을 신장시키는 데에도 결정적인 장애가 될 수 있다.

경제학자 허쉬만(A. O. Hirschman)은 개발도상국이 저개발상태에서 선진국에 이르는 과정을 긴 터널을 빠져 나가는 것에 비유했다. 2차선 일방통행으로 되어 있는 긴 터널 안에서 차가 막혀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이때 두 차선 중의 어느 한 차선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다른 차선에서 기다리던 사람들도 자기 차선이 곧 움직이리라는 기대감에 부풀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다른 차선만 계속해서 움직이고 자기 차선은 움직임이 부진하게 되면 부풀었던 기대감이 오히려 좌절감으로 변하여 상대방 차선의 움직임에 대하여 불만이 쌓이게 된다. 그러다가 급기야는 불만에 찬 어떤 운전자가 중앙선을 무시하고 차선위반을 불사하게 되면, 걷잡을 수 없는 교통사고가 일어나 모든 차가 터널을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경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불로소득은 발생하게 마련이다. 성장의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불로소득의 규모도 커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문제는 발생한 불로소득을 조기에 환수하고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차단하는 일이다. 이 일을 확고부동하게 하지 않는 한 국민적 불신감과 위화감은 커질 수 밖에 없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불신과 갈등은 불로소득을 적절히 퇴치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은행(IBRD)은 1994년에 발표한 『한국경제보고서』에서 "한국은 중하위 소득계층 사이에 상대적 상실감이 확산돼 부의 분배가 잘못되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다"고 지적했다. 또 그 원인을 부동산가격의 상승으로 인한 불로소득과 이를 포착하지 못하는 조세제도의 미비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몸에 병이 나면 약을 써야 한다. 약으로도 안되면 병원에 가서 수술을 해야 한다. 병은 방치할수록 치료가 어려우며, 심하면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다. 경제의 병도 마찬가지이다. 경제의 곪은 부위는 빨리 치료할수록 좋다. 치료가 늦어지면 살을 도려내야 하는 고통이 따른다. 그렇더라도 곪은 부위는 도려내야 한다. 고름이 살이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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