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절 복권 이야기
1. 판도라의 상자
공자님은 "여자와 소인은 다루기 힘들다"고 말씀하셨다. 기독교에서도 여자의 조상 이브가 아담을 꾀어서 금단의 열매를 따먹었기 때문에 낙원에서 붸겨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모두가 남성 중심의 사회구조에서 나온 악선전일 테지만, 희랍신화에서도 역시 여자가 남성의 지배를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희랍신화에서도 맨 먼저 만들어진 것은 남자였는데, 한 번 만들어진 인간은 죽지 않고 차츰 불어났으며, 그들은 나쁜 짓만 골라 하고 있었다. 이를 본 신들의 우두머리 제우스는 화가 나서 인간을 혼내 주려고 불을 빼앗아 버렸다.
그러자 인간을 동정하던 거인의 신 프로메테우스가 몰래 인간에게 불씨를 갖다 주었다. 그것은 문명의 탑을 세우는데 꼭 있어야 할 연장이었다. 쟁기를 만들어 밭을 갈고, 활자를 만들어 자식을 가르치며, 무기를 만들어 전쟁놀이를 할 수 있었다. 그것은 감자를 굽는 그릇이고, 집을 짓는 주춧돌이며, 물건을 사고 파는 화폐였다.
그러나 불을 도둑 맞은 제우스도 가만히 앉아서 당할 위인은 아니었다. 전략회의를 연 결과 미인계를 쓰기로 했다. 빼어난 미인과 넉넉한 혼수로 넋을 뺀 다음, 프로메티우스를 괴멸시켜 좌절과 허무의 감옥에 가두기로 했다.
먼저 제우스가 남자를 홀리고 휘어잡을 미인계의 주역 판도라를 만들었다. 이어서 다른 작은 신들이 판도라의 혼수감을 하나씩 마련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환심거리들을 함에 넣은 다음, 제우스가 봉인을 했다. 그리고 함쟁이도 동반함이 없이 지상으로 향하는 판도라에게 이르기를, "이 상자를 열지 마라. 그 속에는 온갖 몹쓸 것들이 가득 들어 있느니라."
미리 깨닫는 능력을 지닌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간계를 간파하고 선물상자는 물론 판도라조차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서낭당 고갯마루에서 판도라와 마주친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는 그녀를 집안에 들이고 말았다.
하늘에서 길들여진 판도라는 얼마 안되 땅위의 생활에 실증을 느낀 나머지 고향에 대한 깊은 향수에 빠져 들었다. "절대 열지 마라"는 제우스의 신신당부는 실은 자발맞은 판도라를 꼬드기는 계략이었다. 판도라는 남편이 일하러 나간 사이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그 상자를 열어 보고 싶은 생각에 견딜 수가 없었다. 마침내 참다 못해 뚜껑을 여니, 괴상한 연기와 함께 온갖 나쁜 것들이 다 쏟아져 나왔다. 판도라는 기겁을 하며 뚜껑을 닫았지만, 이미 때는 늦고 말았다.
제우스의 주도면밀한 전략은 정확히 과녁에 꽂혔다. 삶은 좌절과 허무로 점철되었다. 다행히 당황한 판도라가 급히 뚜껑을 닫았기에, 그나마 오직 한가지, '희망'만은 가둘 수 있었다. 잽싸게 뛰지 못하고 어슬렁 어슬렁 나타나곤 하는 희망. 그것은 단 하나 간직된 신의 선물이었다. 희망은 우리를 속이는 것이기도 하지만, 좌절을 달래주는 젖줄이자, 허무의 깊은 골을 메워주는 물줄기이다. 그래서 인간은 온갖 재앙을 겪으면서도 한 가닥 희망에 의지하여 살아간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2. 준비하시고 쏘세요
판도라의 상자는 오늘날 복권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이 담긴 상자로 다가 서고 있다. "도와주고 복받으세요!" 1969년 9월부터 발행되기 시작한 초기 주택복권 포스터에 써있던 캐치프레이즈이다. 복권을 사는 행위는 호주머니 푼돈으로 자기 자신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과 행운을 안겨주는 자선행위이니 많이 참여하라는 유혹이었다.
주말이면 TV 앞에서 "준비하시고 쏘세요"라는 사회자의 말을 들어가며 화면속의 숫자와 복권숫자를 비교해 보는 사람들이 많다. 복권 판매대 옆에서 동전으로 복권을 긁어대는 회사원이나 학생도 쉽게 눈에 띤다. 모두가 복권의 마력에 끌려든 사람들이다. 복권은 답답하고 찌든 서민들의 삶에 숨통을 터주는 '소박하고 건전한 생활 속의 오락'이라고 멋지게 이론화한 사람도 있다.
반면에 복권이란 가난한 사람들의 돈을 조직적으로 빼앗는 합법화된 수단이며, 우연한 승패에 돈을 걸고 행운을 다투는 사행심을 길러 국민정신을 황폐화시킨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복권을 사는 사람들은 심심풀이 반, 습관 반으로 푼돈을 던진다. 그 중에는 단칸 월세방을 면해보자는 리어카행상의 간절한 소망도 있고, 유흥비 한번 '왕창' 손에 쥐어보자는 빗나간 청소년의 꿈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꿈은 십중팔구 공허하게 사라진다.
우리 나라에는 지금 주택복권, 체육복권, 기술복권, 근로복지복권 등 4가지 복권이 발행되고 있다. 여기에다 이번에 보건사회부가 불우이웃돕기 자금마련을 위한 또 하나의 복권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 말고도 기금조성을 위해 복권을 발행하고자 하는 정부부처는 더 있다. 상공자원부는 중소기업진흥복권을, 교통부는 관광복권을, 내무부는 지방자치복권을, 문화체육부는 문화예술복권을, 환경처는 환경복권을 원하고 있다.
그들은 정부의 투자우선순위에 밀려 정책수행을 위한 기금을 마련할 길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볼 대목이 있다. 복지국가의 기본철학은 조세를 통해 있는 자의 것을 없는 자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없는 자의 것을, 그것도 사행심을 조장하면서까지 빼앗아 복지라는 이름으로 다시 없는 자에게 돌려주는 것이 과연 건전한 복지국가의 임무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3. 조지 오웰의 『1984년』
복권의 역사는 얼마나 될까. 복권에 관한 이야기는 구약성서에도 나온다. 본격적인 의미의 복권이 발행되기 시작한 것은 로마시대부터이다. 그러니 복권의 역사를 따지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짓인지도 모른다.
영국작가 조지 오웰(G. Owell)의 미래소설 『1984년』에는 복권에 관한 대목이 나온다. '매주 막대한 상금이 지급되는 복권은 무산계급이 진지한 주의를 기울이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아마 복권은 수백만의 무산계급에게는 그들이 살아남아 있는 주요한 이유일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즐거움이고, 어리석은 장난이고, 진통제고, 지적인 자극이었다. 복권에 관한 한 간신히 읽고 쓸줄 아는 사람들까지도 복잡한 계산을 할 수 있었고, 돈을 계산하는 솜씨가 있었다.'
이 작품이 발표된 1949년 무렵만 해도 복권은 지금처럼 대중화되지 못했으나, 오웰은 1980년대 '복권의 전성시대'를 30여년 전에 거의 정확하게 예견한 것이다. 우리나라 현대복권의 효시가 1947년 12월 한국올림픽위원회 발행의 '올림픽 후원권'이며, 1980년대에 들어선 이후부터 정착단계에 들어선 것과도 맥이 통한다.
오웰의 표현대로 복권이 현대인에게 즐거움인 동시에 진통제 역할을 하는 까닭은, 내던지는 기분으로 구입한 단 몇장의 복권이 엄청난 행운을 안겨다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4. 복권 백태
하지만 복권은 역시 즐거움이기보다는 '어리석은 장난'의 의미가 훨씬 크다. 가령 우리나라 복권의 경우 추첨식 주택복권 한장을 5백원에 구입해 1억 5천만원의 1등에 당첨되려면 3백 60만분의 1이나 되는 경쟁률을 뚫어야 하고, 1천만원의 2등(여섯장)만 해도 그 확률은 60만분의 1이나 되는 것이다. 금액 기준으로 따지더라도 당첨률은 대략 50%에 불과하다.
그래도 그 높은 확률을 뚫고 행운을 잡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니 복권에 대한 열기는 좀처럼 식을줄 모른다. 얼마전에는 국내 복권사상 최고 당첨금인 4억 2천 5백만원을 탄 억세게 운좋은 행운아가 탄생했는가 하면, 미국 LA의 한 교포대학생은 무려 8백만달러(약 64억원)의 횡재를 하기도 했다.
대중음식점 등 고객을 접대하는 곳에서는 사은품으로 복권을 주기도 한다. 서울의 어떤 왕족발집에서는 수백장의 복권을 산다고 한다. 가정집에서 주문을 하면 배달시 사은품으로 복권 한 장씩을 건네주며 "1억 5천만원입니다"라고 말하면 그렇게 즐거워 할 수 없다고 한다. 기발한 아이디어의 상술에 복권이 이용된 셈이다.
복권구매행태를 보면 흥미로운 사실들이 많다. 1994년에 주택은행이 고액당첨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주택복권 1등에 많이 당첨되는 사람들은 고졸의 회사원 남자로 소득수준이 그리 높지 않은 사람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1등 행운을 차지한 사람들의 상당수가 복권을 사기전 꿈을 꾸는 등 꿈과 복권당첨 간에 상관관계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꿈의 내용은 백발의 할아버지, 용, 구렁이, 고향풍경, 구슬 등이었으며, 주택복권에 연속 1등으로 당첨돼 확률적으로 거의 기적에 가까운 행운을 거머쥔 아무개씨 형제는 모두 꿈에서 대통령을 보고 복권을 구입했다고 한다.
1등 당첨자들의 특성을 보면, 학력별로는 고졸(51.1%), 직업별로는 회사원(33.3%), 성별로는 남자(82.2%), 종교가 없는 사람(46.7%)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고액당첨자의 소득수준은 월 50만-80만원이 전체응답자의 42.2%를 차지했다.
1995년 들어 전국에서 하루 평균 팔리는 복권수는 184만 장, 금액으로 따져 9억 2천만원에 상당한다. 횡재를 바라는 사람이 이렇게도 많을 줄이야.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의 복권 판매액은 세계 34위에 머무르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자극이라도 받아서인지 지방화시대가 열리는 1995년 7월부터 지방마다 자치단체 재원조달이라는 명목의 자치복권을 새로 발행해 전국적으로 최소한 아홉 종류의 복권이 나돌게 된다는 소식이다. 사행심을 부추기는 결과로 작용하지나 않을는지 지켜볼 일이다.
1. 판도라의 상자
공자님은 "여자와 소인은 다루기 힘들다"고 말씀하셨다. 기독교에서도 여자의 조상 이브가 아담을 꾀어서 금단의 열매를 따먹었기 때문에 낙원에서 붸겨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모두가 남성 중심의 사회구조에서 나온 악선전일 테지만, 희랍신화에서도 역시 여자가 남성의 지배를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희랍신화에서도 맨 먼저 만들어진 것은 남자였는데, 한 번 만들어진 인간은 죽지 않고 차츰 불어났으며, 그들은 나쁜 짓만 골라 하고 있었다. 이를 본 신들의 우두머리 제우스는 화가 나서 인간을 혼내 주려고 불을 빼앗아 버렸다.
그러자 인간을 동정하던 거인의 신 프로메테우스가 몰래 인간에게 불씨를 갖다 주었다. 그것은 문명의 탑을 세우는데 꼭 있어야 할 연장이었다. 쟁기를 만들어 밭을 갈고, 활자를 만들어 자식을 가르치며, 무기를 만들어 전쟁놀이를 할 수 있었다. 그것은 감자를 굽는 그릇이고, 집을 짓는 주춧돌이며, 물건을 사고 파는 화폐였다.
그러나 불을 도둑 맞은 제우스도 가만히 앉아서 당할 위인은 아니었다. 전략회의를 연 결과 미인계를 쓰기로 했다. 빼어난 미인과 넉넉한 혼수로 넋을 뺀 다음, 프로메티우스를 괴멸시켜 좌절과 허무의 감옥에 가두기로 했다.
먼저 제우스가 남자를 홀리고 휘어잡을 미인계의 주역 판도라를 만들었다. 이어서 다른 작은 신들이 판도라의 혼수감을 하나씩 마련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환심거리들을 함에 넣은 다음, 제우스가 봉인을 했다. 그리고 함쟁이도 동반함이 없이 지상으로 향하는 판도라에게 이르기를, "이 상자를 열지 마라. 그 속에는 온갖 몹쓸 것들이 가득 들어 있느니라."
미리 깨닫는 능력을 지닌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간계를 간파하고 선물상자는 물론 판도라조차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서낭당 고갯마루에서 판도라와 마주친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는 그녀를 집안에 들이고 말았다.
하늘에서 길들여진 판도라는 얼마 안되 땅위의 생활에 실증을 느낀 나머지 고향에 대한 깊은 향수에 빠져 들었다. "절대 열지 마라"는 제우스의 신신당부는 실은 자발맞은 판도라를 꼬드기는 계략이었다. 판도라는 남편이 일하러 나간 사이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그 상자를 열어 보고 싶은 생각에 견딜 수가 없었다. 마침내 참다 못해 뚜껑을 여니, 괴상한 연기와 함께 온갖 나쁜 것들이 다 쏟아져 나왔다. 판도라는 기겁을 하며 뚜껑을 닫았지만, 이미 때는 늦고 말았다.
제우스의 주도면밀한 전략은 정확히 과녁에 꽂혔다. 삶은 좌절과 허무로 점철되었다. 다행히 당황한 판도라가 급히 뚜껑을 닫았기에, 그나마 오직 한가지, '희망'만은 가둘 수 있었다. 잽싸게 뛰지 못하고 어슬렁 어슬렁 나타나곤 하는 희망. 그것은 단 하나 간직된 신의 선물이었다. 희망은 우리를 속이는 것이기도 하지만, 좌절을 달래주는 젖줄이자, 허무의 깊은 골을 메워주는 물줄기이다. 그래서 인간은 온갖 재앙을 겪으면서도 한 가닥 희망에 의지하여 살아간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2. 준비하시고 쏘세요
판도라의 상자는 오늘날 복권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이 담긴 상자로 다가 서고 있다. "도와주고 복받으세요!" 1969년 9월부터 발행되기 시작한 초기 주택복권 포스터에 써있던 캐치프레이즈이다. 복권을 사는 행위는 호주머니 푼돈으로 자기 자신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과 행운을 안겨주는 자선행위이니 많이 참여하라는 유혹이었다.
주말이면 TV 앞에서 "준비하시고 쏘세요"라는 사회자의 말을 들어가며 화면속의 숫자와 복권숫자를 비교해 보는 사람들이 많다. 복권 판매대 옆에서 동전으로 복권을 긁어대는 회사원이나 학생도 쉽게 눈에 띤다. 모두가 복권의 마력에 끌려든 사람들이다. 복권은 답답하고 찌든 서민들의 삶에 숨통을 터주는 '소박하고 건전한 생활 속의 오락'이라고 멋지게 이론화한 사람도 있다.
반면에 복권이란 가난한 사람들의 돈을 조직적으로 빼앗는 합법화된 수단이며, 우연한 승패에 돈을 걸고 행운을 다투는 사행심을 길러 국민정신을 황폐화시킨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복권을 사는 사람들은 심심풀이 반, 습관 반으로 푼돈을 던진다. 그 중에는 단칸 월세방을 면해보자는 리어카행상의 간절한 소망도 있고, 유흥비 한번 '왕창' 손에 쥐어보자는 빗나간 청소년의 꿈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꿈은 십중팔구 공허하게 사라진다.
우리 나라에는 지금 주택복권, 체육복권, 기술복권, 근로복지복권 등 4가지 복권이 발행되고 있다. 여기에다 이번에 보건사회부가 불우이웃돕기 자금마련을 위한 또 하나의 복권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 말고도 기금조성을 위해 복권을 발행하고자 하는 정부부처는 더 있다. 상공자원부는 중소기업진흥복권을, 교통부는 관광복권을, 내무부는 지방자치복권을, 문화체육부는 문화예술복권을, 환경처는 환경복권을 원하고 있다.
그들은 정부의 투자우선순위에 밀려 정책수행을 위한 기금을 마련할 길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볼 대목이 있다. 복지국가의 기본철학은 조세를 통해 있는 자의 것을 없는 자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없는 자의 것을, 그것도 사행심을 조장하면서까지 빼앗아 복지라는 이름으로 다시 없는 자에게 돌려주는 것이 과연 건전한 복지국가의 임무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3. 조지 오웰의 『1984년』
복권의 역사는 얼마나 될까. 복권에 관한 이야기는 구약성서에도 나온다. 본격적인 의미의 복권이 발행되기 시작한 것은 로마시대부터이다. 그러니 복권의 역사를 따지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짓인지도 모른다.
영국작가 조지 오웰(G. Owell)의 미래소설 『1984년』에는 복권에 관한 대목이 나온다. '매주 막대한 상금이 지급되는 복권은 무산계급이 진지한 주의를 기울이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아마 복권은 수백만의 무산계급에게는 그들이 살아남아 있는 주요한 이유일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즐거움이고, 어리석은 장난이고, 진통제고, 지적인 자극이었다. 복권에 관한 한 간신히 읽고 쓸줄 아는 사람들까지도 복잡한 계산을 할 수 있었고, 돈을 계산하는 솜씨가 있었다.'
이 작품이 발표된 1949년 무렵만 해도 복권은 지금처럼 대중화되지 못했으나, 오웰은 1980년대 '복권의 전성시대'를 30여년 전에 거의 정확하게 예견한 것이다. 우리나라 현대복권의 효시가 1947년 12월 한국올림픽위원회 발행의 '올림픽 후원권'이며, 1980년대에 들어선 이후부터 정착단계에 들어선 것과도 맥이 통한다.
오웰의 표현대로 복권이 현대인에게 즐거움인 동시에 진통제 역할을 하는 까닭은, 내던지는 기분으로 구입한 단 몇장의 복권이 엄청난 행운을 안겨다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4. 복권 백태
하지만 복권은 역시 즐거움이기보다는 '어리석은 장난'의 의미가 훨씬 크다. 가령 우리나라 복권의 경우 추첨식 주택복권 한장을 5백원에 구입해 1억 5천만원의 1등에 당첨되려면 3백 60만분의 1이나 되는 경쟁률을 뚫어야 하고, 1천만원의 2등(여섯장)만 해도 그 확률은 60만분의 1이나 되는 것이다. 금액 기준으로 따지더라도 당첨률은 대략 50%에 불과하다.
그래도 그 높은 확률을 뚫고 행운을 잡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니 복권에 대한 열기는 좀처럼 식을줄 모른다. 얼마전에는 국내 복권사상 최고 당첨금인 4억 2천 5백만원을 탄 억세게 운좋은 행운아가 탄생했는가 하면, 미국 LA의 한 교포대학생은 무려 8백만달러(약 64억원)의 횡재를 하기도 했다.
대중음식점 등 고객을 접대하는 곳에서는 사은품으로 복권을 주기도 한다. 서울의 어떤 왕족발집에서는 수백장의 복권을 산다고 한다. 가정집에서 주문을 하면 배달시 사은품으로 복권 한 장씩을 건네주며 "1억 5천만원입니다"라고 말하면 그렇게 즐거워 할 수 없다고 한다. 기발한 아이디어의 상술에 복권이 이용된 셈이다.
복권구매행태를 보면 흥미로운 사실들이 많다. 1994년에 주택은행이 고액당첨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주택복권 1등에 많이 당첨되는 사람들은 고졸의 회사원 남자로 소득수준이 그리 높지 않은 사람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1등 행운을 차지한 사람들의 상당수가 복권을 사기전 꿈을 꾸는 등 꿈과 복권당첨 간에 상관관계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꿈의 내용은 백발의 할아버지, 용, 구렁이, 고향풍경, 구슬 등이었으며, 주택복권에 연속 1등으로 당첨돼 확률적으로 거의 기적에 가까운 행운을 거머쥔 아무개씨 형제는 모두 꿈에서 대통령을 보고 복권을 구입했다고 한다.
1등 당첨자들의 특성을 보면, 학력별로는 고졸(51.1%), 직업별로는 회사원(33.3%), 성별로는 남자(82.2%), 종교가 없는 사람(46.7%)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고액당첨자의 소득수준은 월 50만-80만원이 전체응답자의 42.2%를 차지했다.
1995년 들어 전국에서 하루 평균 팔리는 복권수는 184만 장, 금액으로 따져 9억 2천만원에 상당한다. 횡재를 바라는 사람이 이렇게도 많을 줄이야.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의 복권 판매액은 세계 34위에 머무르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자극이라도 받아서인지 지방화시대가 열리는 1995년 7월부터 지방마다 자치단체 재원조달이라는 명목의 자치복권을 새로 발행해 전국적으로 최소한 아홉 종류의 복권이 나돌게 된다는 소식이다. 사행심을 부추기는 결과로 작용하지나 않을는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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