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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한국 여성의 법률적 지위, 그 현실과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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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의 법률적 지위, 그 현실과 미래

박 원 순
변호사, 참여연대 사무처장

1. 서론

"직장여성들이 한때 직장의 꽃으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들어 사무실의 꽃이기를 거부하며 남자들과 당당히 어깨를 겨루면서 각 분야의 두각을 나타내는 여성들이 급속도로 늘고 있다. - - - 이들에게 가정은 더 이상 자아실현의 걸림돌이 아니다. '결혼=퇴직' 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과장, 부장등 고위간부직까지 승승장구, 우먼파워를 몰고 오는가 하면 현장소장, 외환딜러등 '금녀의 벽'을 허무는 맹렬파도 있다. 영어직, 연구직, 기술직등 과거 남자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분야는 이미 상당부분 '여성군단'에 의해 점령당했다."(THE WEEKLY ECONOMIST, 1995년 5월호)

한국의 여성들은 이렇게 눈부시게 사회진출을 꾀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매년 상승곡선을 그리며 의식과 제도, 관행의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여성은 남성의 종속물이거나 안방차지로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과장될 수는 없다. 기업들은 가사, 육아부담에 따른 모성보호비용이 많이 드는데다가 장기고용이 어렵다는 이유 때문에 여성채용을 꺼리는 것이 현실이다. 직장에 들어간다해도 온갖 차별과 장벽에 시달린다. 남성과의 경쟁은 단순히 실력으로 되지 않는다.
한국에서의 여성운동은 다른 나라에 못지않게 활력을 지니고 전개되어 왔다. 이들이 이룩한 법제개혁과 의식변혁의 성과는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민법등 신분법에서 유지되었던 많은 남녀불평등조항이 삭제되었고 근로기준법, 고용평등법이 강화되어 고용평등이 증진되었으며 '미완의 혁명'이기는 하지만 공직채용에서의 20%할당제 역시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제기하는데 성공하였다. 성폭력특별법과 가정폭력방지법등이 잇따라 제정되었고 이것은 여성의 보호에 큰 전기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와 개혁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한국 여성들이 당하고 있는 현실은 그리 희망적이지만은 않다. 제도적으로도 아직 쟁취하여야 할 부분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을 뿐만아니라 제도와 현실이 따로 놀고 있는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여성에 대한 경시는 이미 오랜 역사속에서 뿌리박은 편견에서 비롯되고 있다. 한국여성은 유교 이념과 전통 왕조 아래에서 천대와 멸시를 당해 왔다. 인육과 수난의 긴 시대를 살아온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여성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았고 유교가 지배한 조선에서는 낮았다. 이러한 시대적 차이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여성은 권리의 주체로 보다는 의무의 주체로 인식되었다. 일제의 해방은 동시에 여성의 해방도 가져왔다. 그러나 가난과 전쟁은 그 굴레를 쉽게 풀어주지 않았던 것이다.
근대화와 더불어 소득의 증대와 삶의 풍요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아실현의 욕구에 불을 당겼다. 특히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 수의 증대는 사회진출을 더 이상 장벽으로 막을 수 없게 만들었다. 권위주의 정부에 대항한 민주주의운동의 과정에서 여성의 역할은 특별히 주목할만한 것이었다. 이러한 여성의 민주화운동은 사회의 민주화와 더불어 여성해방, 여성권익쟁취, 남녀평등, 차별철폐등으로 지속적으로 이어져 구체적 성과들을 얻었다. 한국사회만클 빠르게 여성차별을 구조화하고 있던 제도의 철폐에 성공한 나라는 없을 것이다. 이제 그러한 제도의 변화와 함께 오랜 역사를 짓눌러온 편견과 오해를 불식시키고 진정한 남녀평등을 이루고, 여성의 동일한 사회적 역할을 주도록 한다면 한국사회는 분명 새로운 희망의 세기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다.


2. 한국 여성의 법적 지위의 현실과 강화 방안

(1) 신분법적 지위

한국의 여성은 지난 50년동안 신분상의 족쇄와 불평등의 상태로부터 급속한 시간내에 상당한 정도의 해방을 맛보게 되었다. 그러나 워낙 그 구속이 오래되고 집요한 것이어서 아직도 봉건적인 신분의 제약으로부터 탈피되어 완전한 성의 평등을 누리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혼시 배우자의 재산분할청구권, 동성동본 결혼금지의 해제등이 이루어져 여성의 신분상의 지위는 현저하게 개선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특히 이혼시의 위자료 인용액수가 적고 남편의 재산에 대한 분할청구권이 인정되지 않았을 때는 사실상 이혼을 억제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혼 이후의 독립 가계를 꾸려갈 재산적 요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이혼을 엄두내기가 쉽지 않은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산분할청구권제도가 도입된 것은 여성의 경제적 독립과 혼인의 불합리하고 폭압적인 구속에서 해제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그러나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신분법상 개혁되어야 할 문제가 많다. 아직도 호주제도의 폐지, 입양제도의 개선, 사실혼관계에 대한 상속권 인정등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적지 않은 것이다. 법률혼만 인정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사실혼만 맺고 있는 적지 않은 여성은 법률의 무지 때문에 심각한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 (공무원연금법등에서는 사실상의 처에게도 법률상의 혼인에 준하는 효과를 인정하는등 사실혼 여성에게도 보호의 범위가 넓혀지는 추세에 있기는 하다)
특히 호주제는 친족집단이 농토와 결부되어 자급자족의 경제단위를 이루고 있을 때 유효했던 제도로서 이미 핵가족화하고 도시화가 진전되며 더 나아가 가족간의 평등화가 진전된 상태에서 그 의미를 상실하고 말았다. 호적상 호주제를 존치하는 것은 관념상의 '가'(家)를 유지하려는 봉건적 인식의 소산에 불과하므로 호주제도는 완전히 폐지되어야 한다.

(2) 고용상의 지위
① 고용법상의 평등과 여성의 지위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1980년의 42.8%에서 1995년 48.3%로 증가하였다. 양적으로 급격하게 성장하는 추세에 있는 것은 사실이나 아직도 선진국에 비해서는 낮은 수준이다. 1995년 말 현재 여성비경제활동인구 중 취업의사를 가진 자는 약 190만명에 이르렀다. 당시의 경제활동인구가 8백3십6만 명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여전히 많은 비율의 여성인구가 미취업상태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 즉 여성경제활동 참가율은 20-24세에 가장 높게 나타났다가 25-34세의 연령층에서 급락함으로써 노동시장의 경력단절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육아부담이라거나 결혼퇴직제의 강요등과 같은 주관적, 객관적 요건이 여성인력의 노동시장으로부터의 대량 퇴출을 강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기혼여성의 취업에 가장 큰 애로사항인 탁아, 보육시설은 지극히 부족하고 불충분하다. 1996년도 3월 현재 보육시설 중 10,125개소에서 33만7천명의 아동을 보육하고 있으나 직장보육시설은 91개소에 불과하다.
1987년 12월 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은 한국 여성의 고용평등에 획기적인 금자탑이라고 할만하다. 모집, 채용에 있어 평등고용의 기회를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법에는 당시 다음과 같은 사항들이 도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성에 의한 차별 및 모성보호의 개념을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정의한 규정의 신설
2)고용상 남녀차별 유형의 구체적 예시에서 남녀동일임금의 원칙 열거
3)특별법으로서의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상의 관련규정과 균형이 맞는 강행성과 법칙의 마련
4) 성차별감시를 위한 위원회의 구속력있는 권한 부여
5) 피해자 구제를 위해 사법구제를 조건으로 한 행정구제제도를 통한 원상회복 명령제의 신설

이 법은 1995년과 1998년에 각각 개정되어 여성의 취업확대와 근무조건 개선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1995년의 개정에서는 모집, 채용에 있어 직무수행에 불필요한 신체조건 제시의 금지, 가족수당 이외의 금품지급, 맞벌이 부부의 경우 남성근로자의 육아휴직제도등이 도입되었고 1998년의 개정에서는 성희롱금지등이 도입되었다. 근로복지기본계획에 의거 매년 10월을 남녀고용평등의 달로 선정하여 여성고용에 대한 전반적 검토와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
1997년말에 제정된 제대군인지원법에 의한 군경력가산제도는 결과적으로 여성에게 커다란 불이익이 되고 여성차별이 되었다. 제대군인이 일정한 국가 및 지방공무원 채용시험에 응시한 때에는 각 과목별 득점에 2년이상 복무하고 전역한 제대군인은 5%, 2년미만 복무하고 전역한 제대군인에게는 3% 가산점을 주도록 한 제도이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헌법상의 평등원칙의 위반이다.
2)IMF경제위기와 여성고용의 악화
IMF경제위기는 사회적으로 약자인 여성에게 가장 큰 희생을 강요하였다. IMF구제금융의 여파가 시작된 1998년 12월부터 여성노동자들이 1차적 해고의 대상으로 지목되어 대량해고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부당한 여성차별적 해고에 대한 진정이 정부기관과 여성단체들에 잇달았다. 여성민우회 고용평등본부의 여성우선해고반대운동과 그 방법으로서 5개 대기업(LG건설의 산전산후 휴가중인 2명의 대리 해고, 현대알류미늄의 성차별적 부당인사, 삼성에버랜드의 여성만을 대상으로 한 권고사직, 대우자동차의 여성만을 대상으로 한 대기발령, 두산건설의 결혼퇴직) 노동부의 고발등은 효과적인 저지책이었으나 거대한 여성해고의 흐름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3) 노동법과 여성의 지위
우리나라의 헌법은 다른 어떤 나라에 못지 않게 양성평등, 직업선택의 자유, 근로의 권리, 여성노동자의 보호에 관하여 관심과 배려를 보이고 있다.

이를 이어받아 근로기준법은 보다 상세하게 노동자의 권리와 여성노동자의 보호에 관한 규정들을 두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 있어서는 이러한 여성노동자에 대한 특별한 보호나 평등이 제대호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남성중심의 사회, 특히 고급관리, 고급상위자가 남성으로 채워져 있는 행정기관, 기업체에서 여성노동자에 대한 실질적인 불이익은 끊임없이 가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이익과 보호의무위반등에 대해서 강력한 제재가 아쉬운 실정이다.

3) 성폭력과 여성 보호
-범죄피해의 배상권과 보호권
성폭력범조가 흉포화, 집단화되면서 이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고조되었고 1994년 1월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이 제정되었다. 이 법에 따라 성폭력피해상담소가 전국적으로 설치되어 피해자보호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현실적으로 성폭력범죄가 이러한 형벌규정과 상담사업에 의해 크게 단기적으로 줄어드는 경향은 보이지 않고 있다.
성폭력범죄의 피해자로서의 여성에 대한 소송법과 행형상의 대우는 대단히 원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성폭행피해자에 대한 전문여성수사관에 의한 심문, 폐쇄회로에 의한 증언가능성은 아직 배려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배려는커녕 다시 신고할 마음이 들지 않도록 무지막지한 대우를 받는 것이 오늘날 성폭력피해자들의 현실이다.
서울대우조교사건을 계기로 한국사회에 처음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성희롱개념은 이제 법제도로 도입되어 보편화되었다. 1998년 10월 대법원에서 원고 승소로 귀결된 이 사건은 한국사회에서 강간, 성추행 외의 보다 경미한 성폭행의 양식 (그러나 이 성희롱은 직무의 상하관계를 이용하여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인간의 심성을 파괴하고 직무의욕을 감퇴시킨다는 점에서 반드시 경미한 것만은 아니다)을 제재하는데 의식의 변화와 제도의 도입을 추동하였다.
최근 활발해지기 시작한 PC통신상의 성폭행등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런 법적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지 못하다.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 유니텔등 통신사에서도 PC통신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폭력에 대해 효과적인 방지책을 내놓고 있지 못하다. 언어에 의한 성폭력의 처벌규정과 제재규정 마련, 신규가입자와 이용자에 대한 피해방지책과 처벌내용 게시등이 필요하다.
4)여성의 정치영역 진출
-피선거권과 공무담임권의 실질화
1995.12.31 현재 우리나라 여성공무원 숫자는 전체공무원 903,823면 중 246,468으로 27.3%의 비율을 차지하였다. 이것은 지난 87년의 21.4%, 91년의 24.5%에 비하면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내용을 살펴보면 여성공무원은 주로 교육공무원, 일반직 공무원, 기능직공무원에 높이 분포하고 있어 (특히 교육공무원은 52,082명으로서 전체 여성공무원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다른 영역에서의 비율은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뿐만아니라 고위직으로 가면 여성공무원의 숫자는 대단히 희소해진다. 서기관, 총경등으로 승진하면 그 자체가 뉴스가 될 정도로 아직 고급공무원으로의 승진은 힘든 관문인 것이 틀림없다. (1996년도 여성백서는 첫 여군 연대장 탄생을 큰 항목으로 다루고 있을 정도이다)
국회의원이나 지방의회 의원등 정치인으로의 진출은 더욱 힘든 것이 현실이다. 국민회의는 20%할당제를 약속하였으나 실제 이는 지켜지지 않았다. 정치현실이 남성중심적이고 권위주의적이어서 아직 여성이 뚫고 들어갈 여지는 적다. 역설적으로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여성의 대거 정치진출은 낙후된 한국의 정치현실을 개혁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