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노동자 경영 - 소유 참가의 전개 방향
김 금 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
1. 한국 사회의 위기 상황과 노동현실
한국 사회는 현재에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위기 상황을 겪고 있다.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할 정도로 급속하게 저하했고 기업·산업 구조조정은 폭넓게 진행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대량실업이 발생했다. 한국 자본주의는 위기 상황을 낳은 구조적 모순을 극복하여 새로운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은 김대중 정부가 내세운 발전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를 초래한 구조적 요인은 무엇인가. 1960년대 이래 전개된 경제개발은 자본, 기술, 원료, 시장 등의 측면에서 대외의존적 방식으로 추진되었으며, 한국 경제가 세계자본주의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대외종속성이 심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경제개발 과정에서 국가로부터 주어진 갖가지 특혜와 지원을 통해 재벌이라는 한국 특유의 독점자본이 빠르게 형성되어 노동자들에 대한 억압과 중소기업을 비롯한 비독점 부문에 대한 지배를 강화함으로써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게 되었다. 이런 재벌지배 구조는 대외종속적 경제구조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한편, 경제개발이 국가 주도로 이루어지고, 역대 정권이 장기에 걸쳐 군사집단에 의해 장악되어 온 터에 '정경유착'이라는 부정부패구조가 고착되다시피 유지되었다. 이런 대외종속과 재벌 중심의 독점구조 그리고 국가주도성에 기본 바탕을 둔 한국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가 국제자본의 경쟁압력이 강화되는 가운데 국제화와 개방화의 새로운 도전에 부닥치게 됨으로써 심각한 위기국면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60년대 이래 경제개발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노동자대중은 매우 열악한 상태와 조건 속에서 희생을 감내해야만 했다.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낮은 임금, 1주당 50시간 가까운 긴 노동시간, '산업재해 왕국'으로 불릴 정도로 높은 산재율, 빈번한 노동이동과 고용불안정, 노동기본권에 대한 제약과 억압적 상황, 노사관계의 전근대적 구조와 행태, 노동복지의 불충실 등이 장기적으로 지속되었다. 노동자들의 불만과 요구가 오랫동안 축적되었다가 19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노동자 대투쟁은 한국 노동운동의 발전을 촉진한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노사관계의 구도를 개편시키는 촉진제가 되었다.
한국 경제가 IMF 관리체제에 들면서 노동자들은 또다시 어려운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올해 실업률이 연평균 7.5%, 실업자수 163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는 가운데 고용불안정은 갈수록 증대되고 있다. 임금소득도 저하되고 있는데, 98년 3/4분기 전산업 평균 임금총액은 142만원으로 97년 동기에 비해 8.1% 저하되었으며, 실질임금은 142만원으로 14.2% 감소되었다. 그런가 하면 몇 년 동안에 걸쳐 개선되어 온 단체협약의 내용이 한꺼번에 악화되는 형편이고, 많은 사업장에서 불법·부당노동행위가 저질러지고 있다. 부가급부(fringe benefit)가 큰 폭으로 삭감되는 가운데 기업내 후생 복지도 크게 저하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사 갈등 요소가 점점 증대되는가 하면, 노정 대결이 갈수록 첨예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더욱이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극 펴고 있는 가운데 기업의 경영합리화와 구조조정이 강도 높게 진행됨으로써 노·사·정 사이의 갈등과 대결은 쉽사리 완화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정부가 내세우는 '신 노사문화'가 정책으로서 구체적인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고 노사정위원회의 위상과 기능도 확립되지 못한 채, 매우 불안정한 상태를 드러내고 있다. 현실적으로 노동개혁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따라서 노동관계 주체는 노사관계의 전근대적 요소와 불합리한 구조를 극복해 나감과 동시에, 이른바 '참여와 협력'을 위한 노동자 경영-소유 참여 확대를 위한 올바른 방향을 적극적인 자세로 모색해 나가야 할 것이다.
2. 구조조정과 노동자의 개입 및 역할
한국 경제가 위기국면에 놓이게 되면서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지난해부터 노동부문·금융부문·공공부문·재벌부문 등에 걸친 구조조정이 숨가쁘게 이어졌다. 협의의 구조조정(restructuring)이든 광의의 구조조정(structural adjustment)이든 간에, 그것은 노동자의 고용조건과 노동·생활조건에 대해 직접적인 관련을 갖게 되고, 그런 구조조정 과정에 노동자세력이 어떻게 주도적으로 개입하느냐에 따라 경제질서의 개편방향이 영향을 받게 된다.
국가가 주도하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동세력은 거기에 주도적으로 개입하기보다는 배제되는 경향을 보였다. 말하자면 노동배제적 구조조정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노사정위원회도 구조조정의 중심 역할을 하기보다는 사후처리 기능밖에 하지 못했다. 특히 재벌 구조조정의 경우 모든 것이 정·재계 간담회에서 결정되었고, 노동세력은 실질적인 논의 과정에 대해서는 참여하지 못했다.
기업의 경쟁력 향상을 위한 생산력의 투입 활용방식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나 거시적 차원의 경제질서 재구축 과정에서 노동자의 참여가 배제된다면, 구조조정 과정은 갈등과 파행을 수반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구조조정과 성장에서 노동자의 책임과 권한이 제대로 이행되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경경-소유 참여가 구체적으로 실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3. 노동자 경영-소유 참가 방향
노동자 경영참가는 크게는 민주주의의 확장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경영참가는 노동자의 권익 향상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산업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경영참가는 작업장 민주주의를 신장하고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를 통합하는 기능도 아울러 발휘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 사회의 민주적 개혁 과정에 대한 노동자대중의 역할 증대를 위해서도 경영참가의 확대가 절실하게 요구된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 있어서 노동자 경영참가의 발전 정도는 제도 면에서나 실제적인 면에서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노동자 경영참가와 관련해서는 「근로자 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이 있으나 실제적인 제도적 장치는 설치되어 있지 못하고, 또 정부와 사용자쪽에서는 경영참가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미온적일 뿐만 아니라 노조도 경영참가를 실현할만한 역량을 충분히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국의 노조형태가 기업별 체제를 유지하고 있고 단체교섭이 기업 차원에서 행해지고 있어 교섭과 참가의 기능이 중첩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현실적인 조건을 바탕으로 한 노동자 경영참가는 어떤 방향에서 전개되어야 할 것인가를 검토하기로 한다.
첫째, 경영참가의 레벨 문제이다. 노동자 경영참가는 주요한 노동조건과 직결되는 사항에 대한 참가와 높은 차원의 경영사항에 대한 참가로 나눌 수 있다. 물론 이 두 가지가 명확한 형태로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후자의 예로 독일의 감독위원회 및 노동자 이사제 등을 들 수 있고, 그 외에 제도적 형태는 다르더라도 기업의 투자계획이나 장기 경영계획에 참가하는 관행이 있다면, 여기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경우는 전자를 당면 과제로 하고, 후자는 중·장기 과제로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기업·산업의 구조조정이 급속하게 진행되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경영혁신계획이나 고용조정계획 등에 관해서는 노사 공동협의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둘째, 참가 통로에 관한 문제이다. 노동자 경영참가의 통로로는 크게 보아 단체협약과 노동자평의회로 구분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는 단체협약이나 노사협정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의 경우 공동결정권을 전제로 하는 노동자평의회 제도가 단기적으로 도입될 가능성이 낮고, 노조로서도 이 제도 도입에 대한 방침과 입장을 세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평의회 방식은 대체로 산업별 노조를 보완하기 위한 기업 내 기구로 도입되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의 경우는 노조의 대부분이 기업별형태를 취하고 있어 노동자평의회 제도를 도입할 경우 노조 활동과 중첩될 수도 있다. 단체협약을 통한 참가 방식을 취할 경우, 노조가 조직되지 않은 사업장은 경영참가의 영역 밖에 있게 되는데, 노조 조직 확대와 노사협의제의 보완이 요구된다.
셋째, 참가의 내용에 관련된 문제이다. 노동자 경영참가는 경영결과에 대한 참가와 경영과정에 대한 참가로 나눌 수 있는데, 현재의 한국 상황에 비추어서는 경영 결과에 대한 참가를 충실히 하면서 경영과정에 대한 참가도 빠르게 진전시킬 필요가 있겠다. 경영결과에 대한 참가만으로는 새로운 대안을 창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생산체계나 숙련 문제 그리고 노동의 인간화 문제 등에 대한 장기적 대안 모색과 관련해서도 경영과정에 대한 참가 확대가 중요하다.
넷째, 경영참가의 주요 추진영역에 관한 문제이다. 경영참가의 영역은 매우 광범위하다고 할 수 있으나, 한국의 경우 그 주요 추진영역은 다음과 같이 설정될 수 있을 것이다. 고용조정, 임금체계 및 직제개편, 신기술 및 설비 도입, 기업인수 합병·분할 등 기업형태 변경, 작업조직의 구성과 개편, 교육훈련, 복지 및 산업안전·보건, 이사회와 감사 기능에 대한 참여, 정보공개 등이 그것이다.
다섯째, 소유참가 문제이다. IMF 관리체제이후 소액 주주권이 크게 강화되면서 우리사주조합을 통한 노동자의 소유참가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소유참가가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우리사주조합이 민주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우리사주조합의 임원은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선임되어야 하고 규약은 민주적으로 표준화되어야 하며, 조합원들이 주주로서 자기권리를 제대로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섯째, 경영참가의 제도화 문제이다. 현행 「근로자 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은 노사협의의 대상을 협의사항, 의결사항, 보고사항으로 구분하고 있다. 주요 경영이나 인사 관련 사항은 협의·보고 사항으로 규정하고 있고, 의결사항으로는 교육훈련과 능력개발 기본계획 수립, 복지시설의 설치·관리, 사내근로복지기금의 설치, 고충처리위원회에서 해결되지 아니한 사항, 각종 노사공동위원회의 설치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현행 법률은 노사협의제를 규정하고 있을 뿐 노동자 경영참가의 실질적인 제도를 도입하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경영참가를 제도화하기 위한 법률의 제정이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법 제정 이전에라도 현행 「근로자 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경영참가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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