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형설지공/경제경영

노동의 참여 - 한국의 경험과 논점

자료 다운로드 : FunkooPark-paper.zip

노동의 참여 - 한국의 경험과 논점

박 훤 구
한국노동연구원 원장


1. '민주주의, 시장경제와 시민참여'라는 주제하의 시민사회토론회의 첫 번째 주제로 선택된 '구조조정과 성장에 있어서의 노동의 역할과 권익'에 관한 논의의 초점을 "참여"라는 키워드로 집중 시킨 것은 뜻있는 선택이라고 생각된다.
보다 큰 시각에서 "노동의 참여"는 산업사회의 발전과정에서 중요한 화두로 오랜동안 많은 나라에서 논의되었고 각 나라마다 상이하지만 나름대로 참여확대의 방향으로 진전되어왔다. 또한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최근의 외환위기와 관련하여 위기관리를 보다 사회통합적인 차원에서 접근한다는 시각에서 거시적인 정책운용방안으로서 노·사·정 삼자협의방식의 노동의 참여가 지난해 가시적으로 진전되었으며, 미시적인 차원에서도 기업내 산업민주주의의 발전의 한단초로서 노동의 참여가 다양한 형태로 논의되고 있다는 점에서 시민사회토론회의 한 Panel로서 "노동의 참여"가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2. 과거 귀위주의체제하에서 정부의 주요 경제·사회 정책의 결정과정에서 노동의 참여가 배제되어 온 결과 정부정책에 대한 노동계층의 불신이 증폭되었고 이에 따라 정책의 국민적 지지기반 확보에 어려움이 따랐으며, 아울러 정책집행의 효율성 차원에서도 많은 문제가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경제사회를 구성하는 각 행위주체들의 참여에 기초한 민주적 의사결정과 사회적 합의형성 메카니즘의 구축은 체제의 안정을 유지할 뿐 아니라 새로운 도약에 필요한 자율과 창의가 발현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3. 구조조정의 거센 소용돌이에 휘말려온 우리사회는 구조조정과정에서 발생하는 마찰과 분쟁을 최소화하고 관련당사자들 사이의 다양한 이해를 조정할 수 있는 정치적 메카니즘으로서 노사정위원회를 운용해 왔다. 지난 1년간의 구조조정과정에서 부분적으로 노·사 및 정부간의 갈등이 표출화 된 경우도 있었으나, 노사정위원회는 금융구조개편, 공공부문 구조개편과정에서 나타나는 고용문제를 중심으로 한 협의과정에서 상당한 기능을 하였을 뿐 아니라, 1기 노사정위원회에서 이루어진 합의사항의 이행점검에도 많은 진전을 이루어냄으로서 구조조정과정에서 노동계층의 고통을 완충시키는 방편으로 작용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4. 현 시점에서 노동계의 노사정위원회 운영에 관한 불만이 고조되어 노사정위원회 운영이 파행을 거듭하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삼자협의체제운영은 우리에게는 매우 생소한 경험으로 당사자들 사이에 삼자협의체제에 관한 시각과 기대수준 등에서 상당한 간극이 있을 뿐 아니라, 일천한 경험에서 빚어지는 단순한 오해 등도 당사자간의 불신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한 것으로 보인다. 보다 장기적인 국가발전전략의 일환으로 삼자협의체제의 운영에 대한 당사자간의 합의가 이루어질 때 초기단계에서 겪고 있는 노사정위원회의 여러 가지 어려움은 충분히 극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인다.

5. "참여"의 문제는 거시수준에서 뿐 아니라 기업단위에서도 광범위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과거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왜곡된 기업경영관행이 경제운영과정에서 책임의 실종과 비효율의 발원이 되었다는 시각에서 볼 때 기업단위에서의 노동의 참여확대는 기업경영에 있어 투명성과 책임성을 담보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논의될 수 있다. 또한 보상체제의 전환방편으로서의 성과참여방안이 갖는 기업경영 효율성제고의 의미와 아울러 한국적 현실에서 자본주의의 단계적 발전의 의미에서 소유참여의 방편으로 논의되고 있는 종업원 지주제도(Employee Stock Ownership Program: ESOP) 또는 보다 단기적인 시각으로 현 단계에서 위기관리방안으로 논의되고 있는 근로자기업인수(Employee Buyouts: EBO) 등도 노동의 참여의 광범위한 논의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6. 의사결정에 관한 노동의 참여에 대한 많은 논의과정을 볼 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이와 같은 종업원경영참여에 대한 중요성과 유익성에 대해서는 노사가 인식을 공유하고 있지만, 그 방법과 절차, 내용 등에 있어서는 큰 이견차를 보이고 있을 뿐 아니라, 이러한 논의가 노사협력으로 이어지기 보다 오히려 노사갈등과 생산성 저하의 배경으로 작용되고 있다. 경영계에서는 종업원들의 경영참여요구를 경영권의 침해라는 인식에서 거부하고 있고, 노동계에서는 합리적인 제도개발을 통한 참가관행의 정착보다는 강화된 조직력을 바탕으로 경영참여를 달성하려는 전략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경영에 대한 정부의 공유 및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노동을 배제한 채 단순히 작업장 수준에서의 생산성 제고와 성과 창출에 대한 참여만을 일방적으로 노동측에 요구해서는 진정한 협력의 실현을 기대하기 어렵다. 현재 우리나라 기업의 사용자들은 작업장 수준에서의 근로자 참여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나 의사결정참여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노동측 또한 의사결정참여는 적극적으로 요구하지만 작업장 수준에서의 참여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음.

7. 향후 우리나라에서 기업단위에서의 노동참여는 소모적인 논쟁과, 대립과 갈등을 지양하고 신뢰와 협력에 바탕을 둔 진정한 참여모델을 시켜나가야 할 것이다. 노사가 모두 한발씩 양보하여, 노동측은 현실적인 접근방식을 제시하고 경영측은 노동참여를 경영권의 침해라는 방어적이고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보다 건설적이고 적극적인 시각에서 우리나라 토양에서 성숙 가능한 참여의 제도와 관행을 이루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기업단위의 노동참여가 발전되기 위해서는 자산참여와 의사결정참여 모든 측면에서 노사간의 노력과 정부의 지원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의사결정참여 측면에서는 새로이 의결사항이 신설되고 협의사항이 강화된 개정된 노사협의회를 활성화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노사협의회 제도는 진일보한 제도로서 노사의 협력여하에 따라 매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기업단위에서 단체교섭과 노사협의가 양립될 수 있는 인식과 관행의 개편도 동시에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8. 종업원지주제도의 한 형태로 우리나라에서는 우리사주조합제도가 나름대로 틀을 잡아왔다. 1998년 9월말 현재 우리사주조합을 결성한 기업은 총 1,012개 기업에 달하며, 상장기업의 경우는 전체 상장기업 757개 기업 가운데 3개 기업만을 제외한 753개 기업(99.6%)이 우리사주조합을 결성하고 있다. 우리사주를 보유하여 우리사주조합에 가입한 종업원은 1백만명 이상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우리사주조합제도는 한편으로는 제도 그 자체에 내재한 여러 가지 결함으로 인한 운영상의 문제점과 다른 한편으로는 90년대 들어와 한국증권시장이 장기침체로 들어가면서 제도 출범 당시의 도입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최근까지 종업원들이 우리사주를 취득하기 위해 지불한 총금액은 2.3조원에 이르고 있으나 1998년 5월말 현재의 주식시장가치로 평가한 주식가격은 1조5천억원에 불과하여 주식을 보유한 종업원들은 평균 50%이상의 금전적인 손실을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주식가격이 더욱 하락한 기업의 우리사주나 도산한 기업의 우리사주는 휴지조각으로 변해버린 경우도 드물지 않다.

9. 이같이 유명무실화 되어있고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는 우리사주제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여 새로운 형태의 종업원지주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종업원 지주제도가 금융시장의 활성화와 종업원의 재산형성에 주목표를 두었다면, 새로운 종업원지주제도는 종업원들이 기업의 자본에 참여하는 자본참여, 기업의 성과와 책임을 공유하는 수익참여, 그리고 기업의 의사결정과 집행과정에 참여하는 의사결정참여를 포괄하는 제도로 개편되어야 한다. 즉 종업원지주제의 기본취지인 종업원으로 하여금 회사지분을 나누어 갖게하고 기업의 의사결정과정에 참여케 하여 종업원들로 하여금 주인의식을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주인의식으로 무장된 종업원들은 자신이 소속된 직장인 동시에 주인으로 있는 기업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며, 기업의 자산을 자신의 자산으로 인식하여 이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이다.

10. 종업원지주제와는 다른 형태로 최근 거론되고 있는 근로자자산참여로 노동자기업인수를 들 수 있다. 이는 i) 부도 또는 부도위기의 기업을 근로자 또는 노동조합이 인수하는 방식, ii) 구조조정에 의한 그룹내 개별 기업의 청산, 기업의 일부사업부서의 폐쇄된 후 이를 근로자소유로 독립법인화하는 방식 iii) 부도기업을 경영주와 근로자 또는 노동조합이 공동소유로 전환하는 방식등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의 종업원기업인수방식은 아직까지 소수의 케이스에 국한되고 운영기간도 짧아 성과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이들 기업의 경우 담보능력이나 신용평가의 근거가 취약하여 당장에 필요한 운영자금마저도 부족하는 등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경영능력이 부족하고 전문적인 경영인을 영입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것 또한 기업이 정상화하는데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인수에 따라 단기적으로 고용유지의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도산에 따른 유휴시설이 활용됨으로써 경제회복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