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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노벨경제학상수상자]올린 Bertil (Gotthard) Ohlin

올린

Bertil (Gotthard) Ohlin

1899. 4. 23 스웨덴 클립판~1979. 8. 3 볼레달렌.

스웨덴의 경제학자·정치가.

무역의 역학적 원리에 관한 근대적 이론을 세운 것으로 유명하다. 1977년 제임스 미드와 함께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올린은 15세 때 대학에 입학하여 룬드대학교와 스톡홀름대학교의 엘리 헤크셰르 교수 밑에서 공부했다. 국제 무역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일찍부터 시작되어, 1922년에는 무역 이론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한 동안 옥스퍼드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에서 공부했는데 특히 하버드대학교 연구소에 있을 때는 프랭크 타우시그와 존 H. 윌리엄즈의 영향을 받았다. 스톡홀름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1924), 그의 나이 25세 되던 해에 코펜하겐대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1930년에는 헤크셰르 교수의 후임으로 스톡홀름대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이 당시 올린은 독일이 전쟁 배상금을 지불할 능력이 없다고 주장한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견해를 반박하면서 케인스와 논쟁을 벌였다. 배상금에 관한 이 논쟁은 일방적인 국제보상에 관한 근대적 이론 정립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1933년 〈국내 교역과 국제 무역 Interregional and International Trade〉이라는 책을 출간하여 올린은 세계적인 명성을 획득했다. 올린은 이 책을 저술하면서 국제무역의 토대에 관한 이론을 제시하기 위해 그의 책보다 먼저 발표된 헤크셰르 교수의 저서와 그 자신이 박사학위 논문에서 사용했던 접근방식을 발판으로 삼았다. 오늘날 이 이론은 헤크셰르-올린 이론이라 불리며, 이 분야에 있어 표준이론이 되었다.

또 이 책은 올린이 그 이후에 정립한 실질임금 보호효과에 관한 이론의 토대를 마련해주었다. 경제학의 여러 학파 중 스톡홀름 학파에 속해 있던 올린은 스톡홀름 학파의 학문적 토대를 세운 너트 윅셀의 뒤를 이어 이 학파를 이끌었는데, 이 학파에서는 주로 거시경제정책에 관한 이론들과 케인스의 경제이론을 능가하는 총수요의 중요성에 관한 이론들을 다루었다. 올린은 스웨덴의 자유당 총재(1944~67)로 일했으나, 공직에는 잠시 동안만 머물렀다. 1938~70년에는 의회 의원을 지냈고, 1944~45년에는 스웨덴 전시(戰時) 내각의 상무장관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