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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독후감상문

개발독재와 박정희 시대 : 우리 시대의 정치경제적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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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

박정희 시대를 규정짓는 두 가지는 경제 발전과 독재정치다. 그러나 급격한 경제발전의 뒤에는, 오늘날 우리 사회를 뒤틀리게 하는 온갖 모순이 숨어 있었다. 이 책은 그 시대의 긍정적인 시각과 부정적인 시각 간의 비판적 대화를 통해 개발독재 시대의 양면성을 살펴봄으로써 현재 우리 사회의 정치경제적 기원을 묻고 있다. 한때 논란이 됐던 '박정희 신드롬'에 관한 비판에서부터 유신체제로 인한 분단구조의 고착화와 '적대적 공생 관계'등의 내용이 흥미롭다.

[ 목차 ]

<총론> 개발독재의 정치경제학과 한국의 경험: 이병천

<제1부> 경제개발의 빛과 그늘
1. 한국 산업화의 발전양식: 서익진
2. 박정희시대의 산업정책: 이상철
3. 재벌체제와 발전지배연합: 조영철
4. 금융억압의 정치적?제도적 조건: 유철규
5. 박정희시대의 노동정책과 노사관계: 김삼수
6. 개발독재와 빈부격차: 이정우

<제2부> 개발독재의 정치사회학

7. 유신체제의 형성과 분단구조: 이종석
8. 베트남 파병과 병영국가의 길: 한홍구
9. 폭압적 근대화와 위험사회: 홍성태
10. 죽은 독재자의 사회: 진중권
11. 민주화시대의 ‘박정희’: 홍윤기

<참고문헌>
<연표>
<필자 소개>

[ 줄거리 ]
<총론> [개발독재의 정치경제학과 한국의 경험](이병천)은 '개발국가론'의 한계를 넘어서서 '개발독재론'에 대한 이론화를 시도하며, 한국의 박정희체제를 근현대 개발독재 역사 속의 하나의 특수 형태로 파악하는 가운데 그 기적과 위험의 양면성을 드러내 보인다. 개발독재는 독재권력 주도로 산업화를 최우선 목표로 삼아 시민사회와 민주주의 발전을 억압·통제하는, 국가주의적 근대화 수동혁명체제로 파악된다.한국의 개발독재 또한 이같은 이중성을 갖고 있지만 그것은 냉전-분단상황을 국민동원과 독재권력 축적에 활용한 준전시 개발독재 모델이자, 고도의 집권집중형의 파행적 특성을 갖는다.

<제1부> 1장 [한국 산업화의 발전양식](서익진)은 조절이론에 입각하여 발전양식의 차원에서 한국 산업화체제의 전체적 구도를 그려낸다. 발전양식은 축적체제와 조절양식의 총체인데, 한국 산업화의 발전양식은 차입수출 경제에 기반을 둔 축적체제와 개발독재적 국가조절 양식의 결합으로 규정된다. 이 글은 한국경제가 이같은 발전양식의 여러 구성요소들의 상호연관을 통해서 어떻게 국민적 생산체계를 구축하고 주변부에서 탈출할 수 있었는지를 분석한다.
2장 [박정희시대의 산업정책](이상철)은 한국 개발정책의 고유한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박정희시대의 산업정책 전반을 다룬다. 이 글은 주류 신고전파적 해석과는 달리 한국의 산업정책은 60년대와 70년대가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60년대 중엽의수출지향정책으로의 전환 이후에도 국가통제에 기반한 수입대체 공업화가 계속 추진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3장 [재벌체제와 발전지배연합](조영철)은 국가-재벌의 발전지배연합 체제가 성장체제로 작동했음을 말하면서도 그것의 구조적 한계에 대해 비판의 메스를 대고 있다. 국가자본이 금융특혜의 형태로 재벌에 투자되어 투자성과가 재벌에 귀속되고 재벌이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공고화되면서 한국경제가 재벌전횡 시장경제의 시대로 되었다고 분석한다. 97년 경제위기 이후 주주가치 중심의 재벌개혁론이 갖는 한계를 넘어 민주적 재벌개혁론의 역사적 근거를 제시하는 글이다.
4장 [금융억압의 정치적·제도적 조건](유철규)은 한국 발전지배연합 체제의 핵심 구성부분인 금융억압 문제를 다루고 있다. 70년대 중화학공업시기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정부의 금융억압은 중화학분야 전략산업의 우선육성을 위해 사기업의 투자를 유도하고 투자위험을 사회화하는 기제가 된다. 또한 금융씨스템 자체만으로 보면 이는 금융지주계급의 이해를 억압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한국형 개발체제에서 금융억압은 곧 재벌에 대한 금융특혜가 되고, 수익은 개인에게 손실은 사회로 귀속될 위험이 존재하는데, 이것이 어떻게 정당화되었는지 그 요인을 규명한다.
5장 [박정희시대의 노동정책과 노사관계](김삼수)는 70년대 유신체제하의 노동정책과 노동체제를 분석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하게 논의되는 것은 노동조합의 법적 승인, 무엇보다 파업권의 법인(法認) 문제다. 이 문제야말로 노동자를 시민으로 통합하는 단계의 국민국가체제 성립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글은 유신체제하에서 노동자는 단결권을 총체적으로 부인당하는 존재였고, 국민국가의 구성원 자격에서 배제되었다고 주장한다.
6장 [개발독재와 빈부격차](이정우)에서는 성장과 발전의 개념 구분에서 논의를 시작하며 박정희 모델이 양적 성장에는 성공했으나 이는 질적 발전, 자유로서의 발전을 희생하면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 글은 임금·소득분배·토지자산의 세 가지 측면에서 분배문제를 검토하는데, 이 가운데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토지자산의 분배 문제다. 지가폭등이야말로 가계자산 불평등, 빈익빈부익부의 최대 요인인 것이다.

<제2부> 7장 [유신체제의 형성과 분단구조](이종석)는 적대적 의존관계와 거울영상효과라는 개념을 도입해서 70년대 초반 탈냉전 국면에서 박정희가 남북관계를 어떻게 종신집권체제 구축을 위해 정략적·기만적으로 활용했고, 또 어떻게 유신체제에 북한적 요소가 스며들게 되었는지를 파헤친다. 이 글에 따르면 유신체제와 유일체제는 분단상황과 남북대화를 장기집권과 억압적 국민동원을 위해 활용한 적대적 쌍생아 같은 존재다.
8장 [베트남 파병과 병영국가의 길](한홍구)은 베트남 파병이 미국의 압력보다는 박정권의 필요에 의해 적극적으로 추진된 사실을 강조한다. 파병의 영향을 본다면 경제적 면에서 한국이 얻은 이익은 희생에 비한다면 보잘것없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는 베트남 특수를 강조하는 통상적 견해와는 다른 것이다. 이 글이 주목하는 것은 베트남 파병을 통해 박정권이 미국과 군부의 확고한 지지를 바탕으로 사회를 병영국가화하고 남북긴장을 고조시키며 유신체제의 길을 닦았다는 것이다.
9장 [폭압적 근대화와 위험사회](홍성태)는 개발과 파괴, 고성장과 고위험이 동시에 일어난 한국의 모순적 근대화 현상을 주제화한다. 그는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론'의 관점을 수용하면서도 한국적 특수성을 중시하는데, 한국은 파괴적 개발이 진행된 '폭압적 근대화'의 결과로 서구사회보다 더 위험한, 복합 위험사회가 되었다고 본다. 파괴적 개발의 위험에 대한 분석은 자연과 사회 양면에 걸쳐 이루어진다.
10장 [죽은 독재자의 사회](진중권)에서는 박정희체제를 한국인의 몸과 정신세계에 깊이 새겨져 그 인성구조를 바꾸어놓은, 광의의 파시스트적 생체권력이라고 파악한다. 바로 이 생체권력적 성격 때문에 독재자는 죽었지만 그의 혼은 오늘의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살아있으며 그 기반 위에 박정희의 적자와 수구세력들이 기생한다는 점을 날카롭게 분석한다.
11장 [민주화시대의 박정희](홍윤기)는 박정희 담론을 권력담론과 비판담론으로 나누어 분석한다. 박정희 우상화 담론은 현실역사와는 거리가 먼 신화적 박정희를 가공해낸 이데올로기적 성격과 한국의 취약한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성을 띠고, 반민주적·반시민사회적·반인륜적 '패륜'을 범하고 있다. 이 글은 우상화 담론과 대척에 선 비판담론 성격의 '우리 안의 파시즘론'에 대해서도 이 담론이 박정희체제의 대중적 기반과 국민적 합의기반을 비현실적으로 과장하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한다.

[ 출판사 리뷰 ]

한국현대사에서 박정희시대만큼 논란이 많은 연대는 없을 것이다. 한편에서는 기적적인 경제발전을 통해 과거의 빈곤과 후진성을 극복하고 오늘의 풍요로운 한국을 있게 만든 황금기로 묘사되며, 한편에서는 파쇼적 통치와 민주주의의 압살을 통해 오늘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갖가지 모순과 병폐가 싹튼 암흑기로 묘사된다. 이들 관점을 각각 '동아시아 기적'의 시각과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시각으로 이름할 수 있다면 이 책의 엮은이 이병천 교수(강원대, 경제학)는 접점을 마련하기 어려웠던 이 두 시각 간의 비판적인 대화와 상호대질을 통해 박정희 개발독재시대의 양면성을 고찰함으로써 오늘 우리 사회의 정치경제적 기원을 탐문한다.
엮은이는 박정희시대의 개발과 독재, 경제기적과 정치억압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 나아가 한국의 개발독재와 민주화운동은 각기 어떻게 자리매김되어야 하는지 등의 기본문제에 천착하는 가운데, 이 시대의 경제적 성취를 애써 외면하는 '근본주의적 비판'과 냉전적 국가주의와 성장제일주의의 위험성을 망각하는 '무반성적 승리주의'를 비판한다. 물론 비판의 무게중심은 후자에 놓여 있으며 특히나 한국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성장에 찬물을 끼얹는 박정희 우상화 담론이야말로 탈냉전 민주화시대 박정희 바로보기의 최대의 장애물로 규정하고 있다.
해외학자들이 박정희시대를 평가하는 주류적인 관점은 동아시아 성장론에 입각한 '개발국가론'이란 이론적 견지에서 경제발전의 성과를 강조하는 것이다. 박정희 모델은 고도성장 모델이며 분배 또한 상대적으로 양호했다는 평가인데, 이러한 시각은 한국의 학계에도 일정정도 수용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그 시대를 몸으로 겪어온 한국인들로서는 이러한 견해의 일면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으며, 성장의 이면에 감추어진 문제점들이 제대로 규명될 때 비로소 이 시대에 대한 올바른 역사상을 정립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경제성장이라는 문제를 해명할 필요가 제기되는데, 개발과 독재가 공생하면서 발전하는 '반동적 근대화' 체제로서의 '개발독재론'의 시각은 문제 해결의 단서를 제공해준다. 그간 두 가지 관점 사이에서 종합을 시도하는 연구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종합의 지점을 정확히 짚어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며 종종 개발과 성장의 측면으로 경도되기도 했다. 이 책은 한국사회과학계의 쟁쟁한 중견·소장 연구자들이 참여하여 다양한 시각과 관점으로 박정희시대를 분석하며 현재의 관점에서 박정희시대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 책의 부제 '우리 시대의 정치경제적 기원'이 말해주듯, 박정희시대는 한국의 근대가 파행적으로 형성된 시기로서 오늘 우리의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의 밑바탕을 이루며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요즘 다시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라크전 파병문제를 옳게 보기 위해서는 박정희시대의 베트남전 파병문제의 교훈을 되새길 필요가 있으며(8장 [베트남 파병과 병영국가의 길: 한홍구] 참조), 최근한 통계조사에서 발표되었듯이 서울 강남 거주자들이 다른 지역 주민들에 비해 부동산은 2배, 금융자산은 최대 4배 가량 가지고 있는 등 우리 사회의 심각한 빈부격차 문제 또한 그 시대에 기원을 두고 있다(6장 [개발독재와 빈부격차: 이정우] 참조).
박정희시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적지 않은 전문적 연구성과가 나와 있지만 이 주제에 대해 대학 캠퍼스나 시민 공론장에서 적절한 안내서를 찾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이 책은 이런 갈증을 해소하려는 의도에서 박정희시대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민강좌 성격의 대중학술서를 집필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책은 총론에 이어 두 개의 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1-6장)에서는 박정희시대 경제개발의 성공 요인과 개발체제의 특징을 해명하면서 한국의 산업화 성공이 신기루가 아니라 뚜렷한 정책적·제도적 바탕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것의 파행성과 불균형성을 주목한다. 제2부(7-11장)는 정치적·사회적 측면에서 개발독재의 야만과 위험에 대해 살펴보고, 민주화시대에도 유령처럼 출몰하곤 하는 박정희 신드롬과 박정희 담론을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 미디어 리뷰 ]
“박정희 신드롬, 성장하는 시민사회 능멸”

최근 10·26사건 스물네돌을 맞아 학계 일부에서 박정희 시대를 이른바 `대중독재’ 패러다임으로 재조명하는 학술회의가 있었다(<한겨레> 10월25일치 27면). 박정희 정권을 비롯한 20세기 근대독재체제는 대중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동의와 참여가 뒷받침됐다는 점에서 전근대적 전제정치와 구별된다는 주장이었다.

이런 가운데 최근의 `박정희 신드롬’ 등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책이 나왔다. 창비가 펴낸 『개발독재와 박정희 시대』는 이병천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가 11명의 소장학자들의 최근 논문과 글을 한데 엮은 것이다.

이 책에서 홍윤기 동국대 철학과 교수는 최근 몇 년 사이 학계에 쟁점이 되고 있는 `대중독재’ 패러다임과 `우리 안의 파시즘’론을 정면으로 논박했다. 지난 2001년 <사회와 철학> 제2집에 실린 글 가운데 90년대 민주화시대 이후의 박정희 담론들을 중점부각해 전면수정한 글이다.

홍 교수는 1997년 김영삼 정부가 총체적 취약성을 드러내면서 대중적 감성도가 높은 문화계(이인화)와 언론계(조선일보) 일부를 시작으로 `박정희 신드롬’이 다시 고개를 들었으며, 이는 대중과 일부 정치인들에게까지 `감염’됐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이 때의 박정희가 `역사적 인물’이 아닌 `신격화된 인물’로 가공되는 양상을 띠면서 대중의 열광적 숭배를 얻게 됐다는 점이다.

그는 “최근의 파시스트적 박정희 담론이 우리가 역사적으로 경험하지 못한 `가공의 개인’을 만들어냄과 동시에 `가공의 대중’을 만들어냈”으며, 이는 “이제 막 현대적 의미의 `자율적 주체’로 성장하려는 시민사회에 대한 능멸”이라고 비판한다. 박정희 사후 20년이 지나서야 우리 사회가 그를 파시스트로 알아보게 된 현실에서, ‘박정희 시대 당시에 한국사회의 파시즘을 지지한 대중세력이 형성돼 있었다’는 주장은 허구라는 것이다.

그는 박정희 신격화 담론이 최근의 `우리 안의 파시즘(일상적 파시즘)’ 담론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봤다. 계간지 <당대비평>이 99년 후반에 제기한 `우리 안의 파시즘’론은 애초 “진보진영 내부의 실천적 퇴행성에 대한 자기반성’의 준거 개념”이었다. 그런데 <당대비평>의 일부 편집위원들이 `박정희 신격화’ 담론을 주도한 <조선일보> 지면에 글을 쓰면서, 자신들의 행태에 대한 비판자들을 파시스트라고 역비판하면서도 “조선일보의 파시스트적 속성에 대한 비판은 삼가는” 이중성을 보였다는 것이다.

홍성태 상지대 사회학과 교수는 `폭압적 근대화와 위험사회’란 글에서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론’개념을 빌려 개발과 파괴, 고성장과 고위험이 동시에 일어난 한국 근대화의 모순을 파헤쳤다. 그는 박정희 시대의 `폭압적’ 근대화의 결과 우리 사회는 서구보다 `복합위험사회’가 됐다고 지적하고 시민정치의 활성화를 통한 `성찰적 근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문화평론가 진중권씨는 `죽은 독재자의 사회’란 글에서 “한국의 정치지형에서 `박정희 신드롬’은 보수적인 영남 유권자들을 결집시켜 지역대결구도를 유지하고, 반공이념이 약화한 한국사회를 우경화·수구화하는 데 필요한 대체이념으로 활용되고 있다”며, “어느 경우든, 우리 사회의 정치·사회적 의사소통을 왜곡해 기득권 세력의 헤게모니를 유지하는 데 기여할 뿐”이라고 혹평했다.

--- 한겨레신문 책과사람 조일준 기자 (2003년 11월 1일 토요일)
‘超人박정희’ 바로보기

인간에게 향수는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의 발로이며 암울한 현실을 위무해 주는 피난처이기도 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집권한 기간만큼의 시간이 흘러간 시점에서 그에 대한 향수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이는 한국사회 특유의 사자(死者)에 대한 온정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민주화시대에 독재자에 대한 향수는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박정희에 대한 ‘신격화 담론’을 철저히 경계하고 있다. 신격화 담론은 박정희를 경제건설의 신화적 존재로 끌어올림으로써 부정적 측면을 ‘만족희생’쯤으로 상대화시킨 ‘정당화 담론’과는 그 성격이 판이하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신격화 담론은 ‘역사적’ 박정희가 아닌 ‘초인(超人)으로 미화된’ 박정희를 통해 지도자와 대중의 일체화를 꾀하는 파시스트적 담론이라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파시스트적 담론은 대중을 독재 권력에 영합한 공범으로 치부함으로써 반민주적 반시민사회적 성격을 띠게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박정희 바로보기’를 시도하고 있다. 이병천 교수(강원대·경제학)는 박정희 시대의 경제적 성취를 애써 외면하는 ‘근본주의적 초비판’과 냉전체제하의 국가주의적 근대화의 위험성을 망각한 ‘무반성적 승리주의’, 그리고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에 냉소를 보내는 박정희 ‘우상화 담론’을 박정희 바로보기의 최대 장애물로 인식한다. 그의 의도는 박정희 개발독재 시대의 빛과 그늘, 기적과 위험, 성과와 파행을 경제는 물론 정치 사회적 측면에서 반성함으로써 탈냉전 민주화시대의 역사성을 정립하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르티아 센의 ‘자유로서의 발전’ 개념에 비춰볼 때 박정희 모델은 양적인 성장에는 성공했지만 경제발전으로 귀결되지 못했으며, 개발독재로 인해 노동자에 대한 경제성과의 분배율이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박정희 신드롬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에 대한 분석이 결여됐다는 것이다. 박정희 신드롬은 분명 작위적인 일부 세론(世論)에 의해 만들어진 측면이 있다. 그러나 박정희 신드롬의 저변에는 현실에 대한 ‘울분’이 깔려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개발독재 시대의 관치경제 패러다임을 대체할 패러다임이 구축되지 않은 채 민간부문의 활력이 저하된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다.

또한 이 교수의 주장대로 경제발전의 관건은 경제자유의 신장이다. 하지만 우리는 관치경제의 청산을 외치면서도 시장규율에 대한 노파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노동 배제적인 성장이 이루어진 개발의 시대를 보낸 이상, 분배는 ‘시장의 몫’이라는 정책인식을 가져야 한다. 약자는 보호돼야 하지만 노동자가 약자라는 인식은 예단(豫斷)에 가깝다. 그리고 민주화와 경제성장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냉정한 성찰이 필요하다.

로버트 배로 교수(미국 하버드대·경제학)는 민주주의와 경제성장간의 상관관계가 높지 않음을 밝힌 바 있다. 법치가 확립되고 재산권이 존중되며 경제참여의 의욕이 훼손되지 않을 때 그리고 정부의 재량적 시장개입이 자제될 때, 시장 참가자 모두 승자가 될 수 있다. 결국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굳건한 믿음만이 박정희 신드롬을 해체시킬 수 있다.

--- 동아일보 책의향기 조동근(명지대 교수) (2003년 11월 1일 토요일)
박정희는 '우상'인가 '망령' 인가

여전히 우리 시대의 허공을 떠도는 박정희 망령의 실체는 무언가. 97년 국제구제금융(IMF) 이후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박정희 신드롬은 한때 ‘가장 복제하고 싶은 사람’ 1위를 박정희가 차지할 정도로 대중들에게 파급력이 작지 않았다. 최근엔, 우리 사회에서 실체조차 불분명하게 대립하고 있는 ‘보수’와 ‘진보’를 규정하는 기준이 박정희와 그 시대에 대한 ‘평가’로 가름되는 것처럼 돼 있다.

그러나 조갑제의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에 대해 진중권이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로 대응했던 데서 보듯, 그 논의가 극단적 우상화와 정신분석을 요하는 반인륜적 ‘패륜’으로 극명하게 나뉘어 소모적 공방을 벌여 왔다. 그 지점에서 박정희는 계속해서 신화나 망령일 수밖에 없는데, 이는 우리 경제·사회학계의 박정희 시대에 대한 연구가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상화담론’과 ‘비판담론’으로 양분돼 상호침투하는 합리적 논점을 찾진 못했다는 걸 보여줄 뿐이다.

이 책은 바로 이 지점에 대한 반성을 깔고 있다. 어쨌든 5·16 군사쿠데타 이후 40년 동안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근대로 가는 이중혁명의 관문을 세계가 주목할 만큼 성공리에 통과했고, 그 중에서도 박정희 시대는 “한국 모더니티 형성의 역사적 전환점이었으며 그 기본틀이 짜여진 시대”(이병천·강원대 교수)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시대에 대한 인식은 ‘반독재 민주화운동’으로 바라보는 연구와 ‘동아시아의 기적’으로 평가하는 연구 사이의 불협화음으로 더욱 혼란해졌으며, “이제 상호대질과 생산적 토론을 통한 두 역사인식에 대한 극복의 필요”로 이 책이 엮어졌다. ‘우리시대의 정치경제적 기원’이란 부제는 그 빛과 그늘을 ‘틀’없이 바라보자는 취지를 함축하고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해, 이 책이 ‘성찰적 극복’을 내세우지만 참여 학자들의 면모에서 드러나듯 ‘비판담론’에 기울어 있다. 12명의 중견·소장학자들이 참여한 이 책은 총론과 두 개의 부로 구성돼 있다. 한국의 산업화 과정은 소위 동아시아 성장론의 맥락에서 ‘개발국가론’으로 설명돼 왔는데, 이는 주로 해외 학자들이 성장에만 초점을 맞췄던 관점이다. 일부 국내학자에게도 수용된 이 이론은 그러나 국가만이 공익을 대변한다는 인식과 계급·국제관계 등의 문제를 도외시하는 한계를 지녔다.

총론에서 이병천은 ‘개발국가론’을 비판하고, “독재권력의 주도 아래 경제개발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시민사회와 민주주의 발전을 억압하는 국가주의적 산업화의 수동혁명체제로 정의되는 개발독재”가 박정희 시대를 해석하는 가장 적합한 분석도구라고 밝힌다.

제1부에서는 한국의 산업화가 제3세계와 견주어 분명히 성공적이었다는 전제 하에 그 성공의 정책적·제도적 토대와 그것이 가져온 파행성을 조망하고 있다. 한국산업화의 발전양식은 차입수출경제에 기반을 둔 축적체계와 개발독재적 국가조절양식의 결합(서익진·경남대교수)이며 그것을 주도한 것은 국가와 재벌의 ‘발전지배연합’으로 국가자본이 부채(〓금융특혜)형식으로 재벌에 투자돼 성과는 재벌에 귀속(이상철·경제학자)됐다.

제2부에선 개발독재가 이 사회에 끼친 정치·사회적 그늘을 살펴보고 최근의 박정희 담론에 대해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최근 우리 사회의 쟁점인 ‘이라크 파병’과 관련해 주목되는 내용은 ‘월남전 참전’에 대한 평가. 한홍구(성공회대 교수)는 제8장 ‘베트남 파병과 병영국가의 길’에서 베트남 파병은 미국의 압력 때문이 아니라 박정희가 요청한 것임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박정희는 파병을 통해 미국과 군부의 확고한 지지를 획득하고 한국사회 전체를 병영국가 체제로 만들어 장기집권의 토대를 구축했다는 것이다.

개발국가론자들은 박정희 시대를 그 양적 성공과 함께 분배에서도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한다. 이에 대해 이정우(전 경북대교수)는 제6장 ‘개발독재와 빈부격차’에서 “1963년부터 1979년 박정희 집권기에 우리나라의 땅값은 180배로 폭등했고 그 과정에서 소수의 부유층만 횡재를 했다”며 ‘강남 집값’으로 상징되는 현재 빈부격차의 뿌리가 박정희 시대에 있다고 분석한다.

이 책에 참여한 학자들이 하나의 일관된 논리를 가지고 있진 않지만 관점은 공통적으로 좌편향적이다. 그러나 이병천의 말처럼 산업화가 “문명인지, 감옥인지는 논란거리”며 “문명과 야만의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게 21세기 인문·사회학의 주요 담론이란 점에서 박정희 시대는 더 깊이 있게 문명사적 평가를 과제로 남겨두고 있는 것 같다.

--- 문화일보 북리뷰 엄주엽기자 (2003년 10월 30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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