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글은 1997년 외환위기 발생당시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이었던 김인호씨의 정책간담회 강연 전문으로 "시장으로의 귀환: 우리경제의 구조개선방향" (1999, 국가경영전략 연구원)에 실린 글을 재수록했다...편집자
1. 외환위기의 도래와 그 구조적 원인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조찬 정책간담회 강연
(경제수석 퇴임 후 : 1998년 3월 18일)
소위 '환란책임론'이 연일 언론의 지면을 뒤덮고 외환위기에 대한 특감이 감사원에 의하여 진행되던 당시 이의 주요책임자의 하나로 지목되고 있던 필자가 국가경영전략연구원(NSI)의 초청 을 받고 외환위기의 배경과 원인 및 진행경과 등 당시 언론 등 에 의하여 제대로 조명되지 않은 내용을 설명한 강연이다. 경제 수석 퇴임 후 사실상 최초로 공개적으로 행한 강연이며 당시 매 우 중요한 질문이 많았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참석자들과의 질의 응답도 같이 게재한다.
요즘 저는 강경식 전부총리와 이경식 전한국은행총재와 함께 환란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잘못하면 오늘 저의 말이 변명으로 들릴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경위와 노력 여하를 떠나 경제가 어려워진 현재 의 상황에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있고, 또 한편으로는 깊은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다만 이 문제에 대한 우리사회의 접근방식이 과연 적절한지 여부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현재와 같은 접근방식을 통해 결론에 도달했을 때, 이 결론이 앞으로 우리가 이러한 경제위기를 다시 반복하지 않고, 우리경제가 발전할 수 있는 밑바탕으로 작용할 것인지에 대해 매우 우려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요즘 하나의 반문을 하고 있습니다. 'IMF는 반(反)기업주의자인가?' 입니다. IMF가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사항 중 중요한 하나는 우리기업의 구조를 전면적으로 개편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나라 특유의 재벌에 대 한 전면적인 수술 없이는 한국경제가 다시 회생할 수 없다는 처방을 내리 고 있습니다. 이 처방이 과연 전에는 우리에게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과거 그러한 처방을 내렸던 사람들에 대해 우리사회와 경제계가 어떠한 반응을 보였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그러한 처방을 내린 사람 에 대해 반기업주의자, 반재벌주의자라고 몰아붙였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이야기를 지금 IMF가 하고 있는데 아무 소리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것은 'IMF는 반기업주의자인가'라는 반문입니다.
한국경제가 매우 심한 중병에 걸려 있기 때문에 IMF라는 고명한 의사선 생을 모셔 와서 진단을 받고 응급조치를 취하고, 처방에 따라 회생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IMF 처방에 대해 다소간의 유력한 이견이 국내외적으로 있 음에도 불구하고 IMF 처방을 따르는 것이 우리가 회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고 우리 정부와 국민은 생각하고 이 처방에 따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사회는 한편으로 IMF의 진단과 관계없이 우리가 왜 병들 었는지에 대해 새삼스럽게 이유를 찾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른 면에서 는 앞으로 우리가 역사를 통해, 그리고 전문가들의 전문적인 노력을 통해 밝혀져야 할 고도의 정책결정과정의 정당성 여부를 비전문가들이, 그것도 사회 일반적 정서를 생각하면서 짧은 시간 내에 밝히려는 노력을 하고 있 다는 문제제기도 가능합니다. 이러한 생각을 토대로 외환위기의 배경과 원 인, 그리고 앞으로 우리의 대응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외환위기의 상황전개
97년 한 해는 어떤 의미에서는 연중 외환위기가 계속 되었다고 봅니다. 저와 강경식 전부총리가 책임을 맡게 된 것은 97년 2월 말과 3월 초였습니 다. 취임하여 경제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외환 위기가 이미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의 원인을 보면 경상수지 적 자의 지속이 우선 거론될 수 있었습니다. 96년에 237억 달러 적자, 95년에 89억 달러 적자, 94년에 45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우 리의 외채가 많은 것도 문제이지만, 외채 중 50% 이상이 단기채로 구성되 어 있는 외채구조의 문제점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업과 금융의 과다한 부 채구조도 문제가 되며, 특히 대기업들의 부채비율이 평균 400% 이상에 이 르고 있었습니다. 특히 한보 부도사태 이후 매월 한건 꼴로 대기업의 부실 화가 발생되었기 때문에 금융위기가 심화되었으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외환위기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IMF로 갈 수밖에 없었던 위기와 그 전단계의 위기는 구 분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를 4단계로 구분하여 분석 하고 있습니다. 1단계가 한보 부도의 영향으로 발생했던 위기로 97년 2월과 3월의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이미 환율이 오르고 있었으며 수출업자들은 달 러를 계속 보유하려고 했고 외환이 필요한 사람들은 당장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외환을 보유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보사태 이후 우리 기업의 부실화 정도가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에 이에 실망한 외국인 투자가들 이 한국으로부터 떠나려고 하는 상황이 이 시기에 이미 전개되고 있었습니 다.
2단계는 기아사태가 발생한 7월부터 9월에 걸친 상황입니다. 기아는 우리 나라에서 여덟 번째로 큰 대기업입니다. 기아는 전후방 연관 효과가 매우 큰 자동차 산업의 주력기업이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노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전문경영인이 상당히 성공적으로 경영하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던 기업이었습니다. 이 기업의 부실화가 우리경제에 미 친 영향은 매우 심대합니다.
12조 원 이상의 빚과 함께 수천 개의 하청기업을 안고 부실화된 이 사건 은 국내적 충격뿐만 아니라 한국기업과 금융, 그리고 그 처리과정을 통해 한국사회 경제 전체에 대한 총체적인 불신을 해외로부터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고 봅니다. 이것이 한국의 신뢰를 저하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이었 고, 이로 인해 제2단계 외환위기가 있었다고 봅니다.
3단계 외환위기는 97년 10월 말 홍콩사태로 인한 위기입니다. 홍콩증시가 10% 이상 폭락함에 따라 아시아의 경제위기가 실체로 드러났고, 아시아에 투자하고 있던 세계의 투자가들이 아시아에서 철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철수의 규모를 당초 15% 내지 20%로 추측했고 실제로 그 정도의 선에서 철수가 이루어졌습니다. 홍콩사태가 거의 모든 나라들에 엄청난 영향을 미 쳤고, 한국도 엄청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10월 말부터 11월 초에 일어났던 상황입니다.
마지막 외환위기, 즉 IMF 사태를 불러오지 않을 수 없었던, 오늘날 우리 가 이야기하는 외환위기는 11월 3일 내지 4일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때 우 리나라에 자금을 빌려 주었던 나라들이 특히 단기채를 중심으로 롤 오버 (roll over)를 전면적으로 중단했습니다. 신규금융을 못 얻는 것은 물론이고, 일본계 은행을 중심으로 단기채 상황연장이 전면 거부되는 사태가 발생했 습니다. 심지어 국가신용을 대변하는 한국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마저 외국 금융시장으로부터 돈을 빌려 오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또한 한국 기업 중 가장 신용도가 높은 포철과 한전, SK 텔레콤도 돈을 빌리지 못하 는 상황이 11월 3, 4일경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정부의 대책과 대응방안
이 단계별로 정부는 할 수 있는 여러가지 대책을 강구하여 대응했습니다. 예를 들어 1단계 외환위기가 온 97년 3월 말에 '외환시장 안정대책'을 마련 했습니다. 또 자본시장을 대폭 확대하고, 기업과 금융기관의 비외채성 자금 의 도입을 촉진하는, 즉 외채가 아닌 형태의 외자공급 촉진을 통한 근본적 인 외환시장 안정대책을 실시했습니다. 이 정책은 상당히 실효성을 발휘하 여 4월 들어 외환과 금융시장이 안정되기 시작했고 이 상황이 기아사태가 터진 7월까지 계속되었던 것입니다. 이때에도 매월 삼미, 진로, 미도파 등 부실기업의 문제가 계속 발생했음에도 지속적인 금융시장의 안정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3월에 제가 청와대에 들어갈 시점의 우리의 외환보유고는 약 290억 달러 정도였습니다. 물론 적정 외환보유고 수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의견이 있 을 수 있습니다. 만약 국제 금융시장에 특별한 문제나 이로 인한 심리적 불 안요인만 없다면 많은 외환을 보유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적절한지 여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290억 달러 수준의 외 환보유고는 너무 작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좀더 확충이 필요했고, 가능하면 500억 달러 정도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당장 외환보유고를 500억 달러로 확대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98년 목표를 370억 달러에서 380억 달러로 정하고 이 정도까지 늘리기로 부총리와 한은총재와 제가 합의했던 것입니다. 이후 한국은행이 서서히 외환을 사 모으기 시작했 고 7월까지 340억 달러 수준까지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언제 외환위기를 경험하게 될지 몰랐기 때문에 4 월 5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서 강경식 부총리가 IMF의 캉드쉬 총재, 미국의 루빈 재무장관, 일본의 미즈스카 대장상 등을 만나 우 리경제의 구조개혁정책을 설명하고 만약 이러한 과정에서 외환위기가 발생 하게 되면 도와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때 그들의 반응은 매우 호의적이었 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IMF의 캉드쉬 총재는 멕시코사태 때 하룻밤에 각 국 정부 및 중앙은행총재를 상대로 160억 달러를 동원했다는 경험을 이야 기하면서 한국은 그러한 사태가 오지는 않겠지만 만일 그러한 일이 발생하 게 되면 자신이 적극적으로 도와줄 것이므로 걱정하지 말라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루빈과 미즈스카의 경우도 호의적인 반응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시 강부총리가 돌아와 그 상황을 설명하면서 만일 우리가 어려 움을 당하게 되면 비빌 언덕이 생겼기 때문에 한 고비는 넘겼다는 말을 했 습니다. 그러한 상황은 김대통령에게도 충분히 보고가 되었고, 한국은행총 재도 일본은행총재와 유사시를 대비해 중앙은행 차원의 협력 노력들을 계 속하고 있었습니다.
기아사태로 인한 외환위기에 대해서는 8월 25일 '금융시장 안정 및 대외 신인도 제고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이 계획의 골자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이미 그때는 기아사태로 인해 무디스와 S&P 등 주요한 신용평가 기관들이 우리의 신용평가 등급을 크게 하향 조정했기 때문에 돈을 구하기도 힘들었 고 빌리더라도 과거보다 훨씬 높은 이율을 주어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매우 심각한 사태라고 보았습니다. 결국 정부가 대외 신인 도를 책임지겠다는 선언을 했습니다. 한국은 그 동안 정부나 기업이 대외적 으로 디폴트(default), 즉 채무불이행을 선언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에 정부를 믿고 금융기관에 대한 신인도를 계속 유지시켜 달라 는 메시지를 띄운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정부가 이러한 정도의 일까지 했 어야 했는지에 대해 상당한 논란이 일었을 정도로 중요한 정책결정이었다 고 봅니다. 두 번째 골자는 기아사태로 인해 가장 많은 채무가 걸린 제일은 행과 종합금융사들에 대해 유동성 지원 차원의 특융을 제공하여 급한 상태 로 우선 신용을 유지시키는 대책이었습니다.
3단계에 대한 정부 대책을 보면, 그 당시 홍콩사태로 인해 우리 증시가 폭락했습니다. 증시에서 외국자본이 빠져 나가면서 달러를 바꾸어 가는 과 정에서 환율이 또 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악순환 과정을 종결시키기 위해 취한 조치가 10월 29일의 '금융시장 안정대책'입니다. 외환유입 확대, 금리인하 유도, 주식시장 안정을 위한 수요기반 확충 등의 내용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조치를 내린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전개 속에서도 우리경제를 매크로하게 볼 때 경제기초여건, 소위 '펀더멘털'은 과히 나쁘지 않았다고 봅니다. 경제성장률은 연초에 비해 상당히 회복되어 6 6.5%의 수준이었고, 물가도 정부의 목표인 4.5% 정도 에서 안정될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국제수지도 전해의 240억 달러의 적자 에서 97년 10월 현재로는 연간 110억 달러 적자로 마감할 것으로 예상되었 지만 작년 경제의 위축 등으로 88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또 다른 나라의 외환위기는 재정에서 초래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만 우리의 재정은 비교적 건실했습니다. 이런 거시지표의 움직임은 비교적 건전하게 운영되었기 때문에 10월에 방한했던 IMF미션(mission)도 기자회견을 자청하여 한국이 많은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스스로 그 문제점을 인식하고 금융개혁을 추진하는 등 실효성 있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거시경제도 매우 건전하게 운용되고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이 많은 문제가 있지만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위기를 잘 극복해 나갈 것이라는 기자회견을 했고 비슷한 보고서가 IMF 내부에도 제출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97년 11월 초부터 한국계 금융기관이 빌렸던 외채에 대해 롤 오버가 전면적으로 중단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는 외채의 약 30%를 차지하는 일본계 은행으로부터 시작하여 전체 외국금 융기관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블룸버그와 월 스트리트 저널 등 세계적으로 매우 영향력 있는 통신과 신문이 지나치게 과장되고, 악의적이라고도 볼 수 있는 보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바닥이나 20억 달러 정도밖에 남 지 않았으며, 그 이하일 수도 있다는 보도를 하면서 한국으로부터 빨리 탈 출하라는 메시지를 전세계에 띄우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서 '한국으로부터 탈출'이라는 현상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를 통해 정부는 이러한 사태가 이제까지의 외환사태와는 전혀 성격이 다른 외환위기가 발생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고, 11월 7일 저의 주재하에 관련 기관의 책임자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때 처음 IMF의 자금지원에 대한 가능성이 논의되었습니다. 우리 스스로 의 힘을 통해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 다양한 노력들을 경주하면서 이러 한 노력이 성사되기 어려운 경우 부득이 IMF의 도움을 받는 방향으로 검 토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하여 11월 13일 부총리 주재로 한은총재, 저 그리고 실무자들이 충분 한 토론을 통해 우리의 독자적인 유동성확보 노력이 성공하기 어렵다는 판 단을 하게 되고 최종적으로 IMF의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부 총리와 한은총재 그리고 저 세 사람이 내리게 된 것입니다. 14일에는 대통 령의 재가를 받았습니다.
과거에는 IMF와의 자금지원 협의에 석달 정도가 소요되었습니다. 아무리 빨리 진행해도 한 달 이상이 걸립니다. 그러나 당시 사정이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었고 95년 IMF총회에서 신속처리절차(소위 Fast-Track)가 채택되었 기 때문에 IMF의 지원을 기정사실로 신속한 자금지원을 받기 위하여 실무 협의 보다도 고위 당국자간의 협의를 바로 시도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 동남아에 체류하고 있던 캉드쉬 IMF 총재를 초청하여 16일 밤에 부총리와 한은총재가 만나 IMF 지원 필요성과 규모, IMF 입장 등에 대해 협의하고 지원원칙에 합의하게 된 것입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저희가 생각했던 것은 당장 급하니까 IMF에서 돈을 빌리고자 하는 단순한 협조 메커니즘은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저희가 생각 했던 것은 한국으로부터 외국 투자가가 탈출하는 것은 한국의 기업과 금융 에 대한 신뢰의 결여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스 스로의 노력을 통해 국제사회의 신인도를 회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IMF와 협의를 시작할 때만 해도 국회에 금융개혁법이 계류되어 있었고, 매우 어려운 상황이지만 통과될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캉드 쉬 총재도 금융개혁법의 통과가 매우 중요하다는 지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금융개혁법의 국회통과를 통해 금융산업의 구조개혁 기반을 제도 적으로 갖추는 것과 동시에 금융산업의 본격적인 구조조정을 주내용으로 하는 종합대책을 수립하여 발표하려고 한 것입니다. 국제사회의 신인도를 근본적으로 회복시키고자 했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우리가 유동성 부족문제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에 IMF 로부터 이에 대한 도움을 받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구조조정 노력 이 보다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는 동시에 국제경제사회의 신인도가 빠르게 회복되리라고 보았고, IMF도 이러한 우리의 노력을 평가하고 이에 협조할 용의가 있다고 약속했습니다.
결과적으로 11월 18일 금융개혁법의 국회통과가 무산되었습니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금융산업의 개혁과 구조조정 노력은 계속 추진할 수밖에 없었 기 때문에 18일 밤에 최종대책을 마련했습니다. 물론 이 대책은 10여 일 동 안 계속 준비했던 것이지만 이날 밤 마무리됐습니다. 그리하여 이 대책을 발표함과 동시에 IMF의 유동성 지원요청 기자회견 과정에서 이를 정식으 로 발표하겠다는 것을 19일 아침에 부총리가 대통령에게 보고를 드린 후 강부총리와 제가 경질되었습니다. 그 종합대책은 후임 경제팀에 의해 발표 가 되었습니다만 우리 생각으로는 새로운 경제팀이 들어와서 전임 팀의 대 책을 그대로 발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 발표를 미루어 놓 고 퇴임을 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된 것인지 그대로 당일 발표가 되었습니다. 발표된 내용 중 우리가 작업한 것과 딱 글자 하나가 달라졌습니다. 애초 외환변동 폭을 아주 없앨 것을 생각하다가 흔적은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서 15%로 정했고, 이는 실질적으로 철폐와 다름이 없습니다. 이것을 10%로 줄인 것이 유일하 게 달라진 것입니다. 그리고 IMF에 간다는 사실이 그 날 발표되지 않았습 니다. 오히려 IMF로 가지 않겠다는 강력한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 뒤 이틀 간의 우여곡절 끝에 21일에 IMF행이 발표되었는데, 이것이 IMF와 미국 등 의 국가들과 갈등을 빚게 되는 이유로 작용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위기를 보는 두 가지 시각
IMF로 가게 된 위기의 배경은 대략 두 가지의 시각으로 집약되고 있습 니다. 하나는 한국경제의 구조적 위기로 보는 시각입니다. 우선 IMF가 그 러한 입장에 있습니다. IMF가 우리에게 자금을 주면서 맺었던 협약의 내용 과 보고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말하길 "현재의 금융, 외환위기의 발생까지 1997년 한국경제의 거시운용 실적은 비교적 양호했다. 성장, 국제수지, 물가, 재정운용, 통화관리 등 비교적 양호했다. 그러나 1997년 초부터 재벌의 연쇄 도산이 이어져, 30대 재벌 중 6개나 도산하면서 경제에 큰 충격을 끼쳤으나 한편으로는 경제의 시장원칙을 확립하려는 의지의 표시로도 이해된다. 그러나 이러한 도산은 금융시스템의 불안정을 촉진하고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GDP의 7.5% 수준인 약 32조(현재는 38조)로 증대시키고 증권가격의 폭락을 유발했다. 홍콩증시 폭락은 한국의 대외금융상황을 결정적으로 악화시키고 한국의 신용등급 하락으로 이어져 단기채 상환만기 연장을 불가능케 하는 현상으로 확산되었다. 한국정부가 정부 약속하에 대외 신인도를 유지하려는 노력(8월25일 '금융시장 안정 및 대외신인도 제고대책' 등)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이 과정에서 금융개혁관련 법안의 국회통과 좌절 등이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의 신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IMF는 한국의 경제위기를 구조적 위기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IMF가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크게 다섯 가지의 사항을 보면 더욱 명확합니다. 첫째 한국의 거시경제 운영방향에 있어 과거 의 고성장정책을 탈피하라는 것입니다. 제로 성장도 필요하다는 것이며, 국 제수지의 균형과 흑자를 최우선 정책목표로 삼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금융개혁, 금융산업 구조조정에 대한 요구입니다. 세 번째는 대기업, 특히 재벌 구조 및 행태를 개혁하라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무역 및 자본시 장을 추가적으로 개방하라는 것으로서, 국제화를 더욱 진전시키라는 것입니 다. 다섯 번째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입니다. 이 다섯가지가 한국의 병인이 고 또 처방이라는 것입니다. 이 다섯가지를 한국이 스스로 치유하지 못하면 한국경제는 국제사회로부터 다시는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부즈-알렌 헤밀턴(Booz-Allen & Hamilton)이 매일경제신문과 관련기관의 용역을 받아 한국경제의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진단하여 97년 10월 초에 발 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지적한 몇 가지에 대해 의미 있게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한국의 경제적 기적은 끝나가고 있다. 한국은 스스로 가 이룬 성공의 희생물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한국은 구조적 장 애와 경영 및 기술의 지식격차에 의해 더 이상의 발전이 불가능하다. 세 번 째는 말은 많으나 행동이 없다라는 지적입니다.
이들이 많은 돈을 받고 한국에 와서 한국경제의 문제점에 대해 용역을 시작할 때 처음에는 한국이 자신의 문제점을 모르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합 니다. 그러나 이들이 연구에 들어가 보니 이미 한국에 많은 보고서들이 나 와 있고 한국경제의 문제점과 처방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해놓은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실천에 옮겨지지 않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말은 많은데 행동이 없다는 것입니다. IMF가 지금 지적하고 있 는 내용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내용을 이미 10월에 던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국의 외환위기 후 세계의 주요 외신들 중에 한국문제를 다루지 않은 언론이 없습니다. 그 언론들의 주장을 종합하면 한국기업의 부실화, 금융문 제, 이것을 직시하고 고치려고 하는 정치적 리더십의 부재, 정경유착의 문 제점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루빈 미 재무장관, 피셔 IMF 부총재, 나이스 IMF 실무단장 등이 연설한 내용만을 보아도 대체로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제가 작년 경제수석으로 있으면서 '시장으로의 귀환'이라는 강연을 여기 에서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한국경제의 3대 신화에 대해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 3대 신화로부터 탈출하지 않으면 한국경제는 성공하지 못한다 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3대 신화는 첫째 고도성장의 신화이고, 둘째는 한국주식회사의 신화이며, 세 번째가 경제제일주의의 신화입니다. 이 신화 는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시작되어 오늘의 우리 경제를 있게 한 성공신화이 지만 변화되는 시장성격과 세계경제 여건하에서는 더 이상 유효할 수 없는 신화이기 때문에 이로부터 벗어나지 않는 한 한국은 더 이상의 발전이 어 려울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좀더 자세한 내용이 필요하신 분들은 작년 제가 이 자리에 와 서 발표한 내용과 96년 8월 26일자 동아일보를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러한 상황에 대해 IMF가 최종적으로 설명한 내용을 보면 "동남아시아로부 터 발생했던 금융위기가 한국에 엄청난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의 상황이 급속하게 악화된 것은 한국의 금융과 기업분야에 있어서의 구조적 취약성에 기인하고 있다(While the contagion effects of developments is Southeast Asia were a contributing factor, the magnitude and speed of the deterioration owed much to the fundamental weakness in Korea's financial and corporate sectors)"라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두 번째 시각은 현재의 문제를 투자가들의 심리변동과 환경적 측면에서 보는 것입니다. 첫째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동안 아시아 경제의 경영효율 성에 대한 전반적인 신뢰저하를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집중적으로 이야기한 대표적인 학자가 마이클 포터입니다. 96년 12월 [Far Eastern Economic Review]를 통해 이야기한 것 등이 바로 그러한 내용입니다. 또 파이낸셜 타임스가 금년 1월 5회 특집으로 꾸몄던 '위기의 아시아'를 보면 아시아 경제에 대한 서구 투자가들의 신뢰저하를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97년 태국과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외환위기가 우리나라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곳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일본에 영향을 미쳤고, 일본은 이 지역에서 회수하지 못하는 투자를 보전하 기 위해 한국의 단기채를 급격하게 회수하게 된 상황이 매우 중요한 것입 니다. 또한 홍콩사태 이후 국제금융 투자가들이 아시아 국가로부터 평균 15%에서 20%까지 채권을 회수해 간 것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블룸버그와 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 등과 같이 많은 영향력 있는 언론들 의 사실 이상의 과장 보도도 투자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내부적으로 보면 한국정부의 단기대책들에 대한 신뢰가 미흡했습니 다. 기아사태 등 주요 경제사태에 대한 처리방향과 관련하여 외국 투자가들 의 입장에서는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습니다. 채무 자가 큰 소리치는 상황, 그리고 그 채무자를 오히려 영웅시하는 분위기가 존재하는 한국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기 시작했고, 금융개혁법 통과의 실패 등이 한국의 문제해결 능력을 의심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책임 있는 자리에 있었던 사람으로 다 말하기 어려운 여러가지 요 인도 있었고, 투자가들의 비합리적 요인도 있었다고 봅니다.
본질적으로 한국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에 대한 부분적이며 단편적인 불신 감이 일시에 전염병처럼 번져 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IMF는, "근본적으로 외환위기는 예측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외환위기가 발생할 것인지 또 언제 발생할 것인지는 투자가들의 심리의 변화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Financial crises may be inherently nonforecastable, because their occurrence and especially their timing are intimately linked to sudden changes in investor confidence)"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심리의 변화 가 반드시 합리적인 방법으로 설명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점도 생각해야 됩니다.
이러한 입장을 뒷받침하는 것이 MIT 대학의 폴 크루그만 교수입니다. 그 가 말하길 "아시아의 위기와 관련하여 전통적 통화이론으로 설명하기는 불 가능하다. 특히 한국의 경우에 그러하다. 경제위기를 보여 주는 전통적인 지 표들이 최근의 아시아 위기를 전연 감지하지 못했다"라고 스스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영섭, 이종욱 교수가 '한국의 금융위기 - 그 원인과 대책' 이라는 세미나 자료를 통해 "외환위기의 예측과 관련한 각종 지표에는 특이 한 움직임이 없었다. 우리기업들의 높은 부채비율은 30년 전부터 누적되어 온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3 4주 만에 급격한 상황변화가 온 것은 '날 벼락'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외환위기는 결과로서 초래된 것이며, 축적된 한국경제의 구조 적 문제점과 이를 직시하고 정면으로 개선하려는 총체적인 국가 경영능력의 미흡 등에 배경이 있었고,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이 해결될 가능성이 희박하 다고 보는 투자가들의 급격한 심리 변화에 직접적인 발생 요인이 있는 것입 니다.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외환위기로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 다. 그러나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다면 항상 외환위기가 올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어차피 한 번 올 위기라 면 빨리 온 것이 오히려 더 다행일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드린 자료에 보면 대응방안이 적혀 있습니다. IMF가 우리보다 훨씬 탁월하여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대책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가 적어도 한국경제의 문제를 구조적 문제라고 생각하고 이미 알고 있 었고 그러나 실천을 못하고 있던 처방들을 그들이 와서 하도록 요구하고 있 는 것입니다. 즉 우리 사회의 총체적 경영능력의 결여를 IMF가 메워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현재의 김대중 대통령을 포함한 신정부 는 매우 행복한 입장에서 경제정책을 풀어 가고 있다고 봅니다.
경제구조 개혁이 본질적 해결방법
마지막으로 결론을 내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외환위기에의 대응차원이 아 닌 경제구조 개혁차원에서 문제에 접근해야만 문제가 근본적으로 풀릴 수 있다고 봅니다. 두 번째로 IMF 구조개혁 요구사항은 거의 전부 이미 국내 에서 논의되었던 사항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그러한 문제에 대해 우리의 해 결노력이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해결노력과 관련하여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것은 과연 논의가 있었는지의 여부와 그 구체성 그리고 대안은 제시되었으 며, 이러한 대안을 법제화하는 노력이 있었는지, 마지막으로 이 과정에서 어떤 이유에 의해 좌절되었는지를 분석하는 일입니다.
이러한 분석과정을 통해 누가 누구를 비판하자는 차원을 넘어 우리 스스로의 문제해결 능력에 대한 부족원인을 찾아가는 접근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IMF 체제에 의한 구조개혁은 우리 스스로의 힘에 의한 것보다는 못하지만 차선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개혁이라는 것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쉬웠던 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개혁의 주체가 제대로 평가를 받아 본 적도 없습니다.
현재 우리는 매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어렵고 재 미없는 세상이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금 많은 분들 이 어떻게 하면 IMF 체제로부터 조기 졸업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신바람나고, 활기찬 경제로 돌아갈 것인지에 대해 생각 합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신바람나고, 활기찬 경제는 더 이상 없다고 봅니 다. 그리고 있어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경제는 건전한 경제입 니다. 원칙에 충실하고 국제사회와 어울릴 수 있는 경제체제가 되어야 합니 다. 그러한 사회는 우리가 전에 경험한 신바람나고, 활기찬 경제는 아닙니 다.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각 분야의 사람들이 재미없는 세상을 살 각 오를 해야만 합니다.
저는 이번 사태를 보면서 우리사회가 문제의 원인과 결과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회인지에 대해 많은 회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OECD가 추구하고 있는 중요한 것은 지식기반사회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우리사회의 현실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특히 정보화사회 이후 지식사회의 도래에 따라 기존에 우리가 중시했던 생산요소의 중요성 은 상대적으로 작아지고 있고, 지식과 지혜의 가치가 경제의 모든 부분을 좌우하는 사회가 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접근도 이러한 사회의 흐름과 일치 되게 합리적으로 국제적 시각에 맞게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경제적 접근만으로는 가능하지 않 습니다. 문제를 풀어 가는 사회의 총체적 문제해결 능력, 그리고 이러한 능 력을 키워 가는 정치적 리더십이 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정치적 리더십이 확립되고, 사회의 각 계층이 지원해 나가는 사회적 변화가 오기 전에는 어 떤 주요한 경제적 문제도 해결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될 것이라는 점을 결론으로 말씀드리면서 제 말을 마칩니다.
질문: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의 경제문제는 이미 오랫동안 지적되어 온 것 이기 때문에 전혀 새로운 것은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국가경제를 이끌어 가는 중요한 입장에 계셨던 분으로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봅니다. 매스컴의 동원과 정치권을 움직이는 노력, 그리고 대책 강구가 부족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세 분이 대부분의 정책을 결정했는데 국 내의 유수한 연구기관의 의견도 깊이 청취하는 것이 필요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우리경제에 대한 구조적 문제점에 대한 처방방안은 가지고 있었 다고 하셨는데 왜 하지 못했는지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기 바라며, 3공 이 후 정부주도하의 경제체제 속에서 구조조정의 적절한 시기가 있었다고 봅 니다. 과연 어느 시점이 구조조정의 적기였는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변 사회 각 계층에 대한 설득노력이 부족했다고 지적하셨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솔직히 100% 잘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다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하나 생각해 주실 것 은 언론 등에 보면 저희가 그때 사실을 은폐하고, 보고하지 않았다는 보도 가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하실 것이 사실을 은폐할 이유가 무엇이 있었겠습 니까? 보고를 안 할 무슨 이유가 있으며, 그로 인해 무슨 이득이 있었겠습 니까? 최소한 그런 의문은 우리사회가 가져야 할 것입니다.
예컨대 각 부처의 모든 소관사항에 대해서는 장관이 최종적인 책임을 집 니다. 그렇다고 해서 장관이 그 부처의 모든 일을 다 알고, 다 보고받는 것 은 아닙니다. 그랬다가는 장관 일을 하나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장관이 직접 알아야 할 일만 보고를 받고 그에 대해 결정을 내립니다. 이것이 조직 입니다. 대통령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통령이 알아야 할 사항과 결정 해야 할 사항을 중심으로 보고드리는 것이지 전행정부의 100만 공무원이 올리는 모든 보고를 대통령이 듣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간단한 원리를 이 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외환위기의 성격상 대외적으로 공개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습 니다. 예를 들어 정확한 외환통계를 외부적으로 발표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국제적으로 서로 묻지 않는 것이 예의에 속합니다. 그래서 외환전문가들이 만났을 때 정확한 수치를 말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서로 묻고, 답하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닌 것입니다. 특히 IMF로 가는 문제의 경우도 IMF로 가는 것이 최종 결정될 때 발표하는 것이지 그 전에는 IMF로 간다는 논의 자체가 외환시장에 엄청난 교란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최종 결정 전까지는 극비로 처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캉드쉬 총재도 비밀리에 초청해 회담을 했습니다. 정부 내에서 이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사람 은 대통령, 대통령 비서실장, 부총리, 경제수석, 한국은행총재, 재경원의 금 융정책실장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논의과정에는 실무자들이 참석했지만 IMF로 가는 결정을 할 때는 다 퇴장시키고 필요한 사람들끼리만 남아서 논의해 결정한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가지 오해가 있을 수도 있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많은 연구기관들이 있는데 왜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는지에 대해 물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재경원 산하에는 KDI와 금융연구원, 조세연구원 등 첨단 연구기능을 가진 기관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한국은행 스스로도 자 체 연구기능을 가지고 있을 뿐더러 많은 전문가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모든 의견들이 종합된 것을 바탕으로 각 기관의 의견이 제출되고 그것을 놓고 의논하였기 때문에 필요한 수렴절차는 거쳤다고 봅니다. 또한 정치권과 매 스컴에 대한 설득 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하셨는데 나름대로 한다고 했 지만 과히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봅니다.
결과를 놓고 볼 때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구조개혁 노력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신인도를 회복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는 것을 누차 강조 했지만 우리의 설명이 부족했든지 아니면 다른 정치적인 득실의 계산이 있 었든지 금융개혁법이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이런 점을 아쉽게 생각하고, 당 사자로서 노력이 충분했는지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또한 제가 말한 4단계의 외환위기는 3단계까지의 외환위기와는 양상이 매우 다릅니다. 4단계의 외환위기에 대해 이영섭 교수와 이종욱 교수의 연 구보고서에 의하면 이렇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외환위기가 발생한 이후 외 환위기를 예측했다고 하는 학자, 관리, 전문가들이 속출하고 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전에 작금의 상황이 심각하다고 지적한 사람은 없었다. 특히 어 느 누구도 일본이 한국의 단기외채 상환연기를 거부함으로써 즉각적인 외 환위기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제가 서두에서 말했습니다만 우리나라 경제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97 년 초부터 외환위기를 발생시킬 수 있는 구조적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동안 외환위기의 발생을 예방하는 근본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 고 끊임없이 주장했습니다. 저도 그러한 주장을 했던 사람 중의 하나입니 다. 또 그렇기 때문에 대책도 세우고, 외국과 협의도 했으며, 김기환 박사를 순회대사로 선임하여 외국에 우리경제의 실상을 설명함으로써 문제를 사전 에 완화하려고 노력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11월 초에 발생한 외환위기가 그 때 그런 형태로 발생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았던 사람은 없습니다.
이에 대한 대책을 사전에 하지 못한 점은 매우 아쉽습니다. 그러나 설사 알았을지라도 무슨 대책이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특히 외채에 대한 전면 회수를 한두 달 전에 설사 알았을지라도 무슨 대책이 있을 수 있었겠습니 까? 우리의 부채구조를 고치고 단기채를 중장기채로 바꾸고, 기업경영을 건 실화하고, 금융의 부실을 거두어 내는 등 IMF가 지금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사항을 몇 년 전부터 실시하는 것 외에 무슨 대책이 있을 수 있었겠 습니까? 한국은행에서 23번에 걸친 보고를 했다고 하지만 보고내용을 보면 일반론적인 보고입니다. 10월 27일의 보고서에서 IMF를 언급했다고 하는 데, 그 내용을 보면 IMF에 가면 문제가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IMF에 가기 보다는 중앙은행간의 협조에 보다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즉 IMF에 가지 말자는 내용의 보고서였습니다. IMF로 가야 문제가 풀릴지도 모른다고 재 경원과 한은이 제기한 것은 11월 7일이고, 그 이전에 대한민국에서 어느 누 구도 한국의 외환위기가 IMF에 가야할 상황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말 한 사람은 없습니다.
구조적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지 못한 점을 지적해 주셨는데 저도 매우 아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문제의 인식능력과 그 처방에 따른 실천 역량이 우리 사회에 있느냐는 문제와 연결됩니다. 그 부분에 대해 아쉽다는 말을 다시 한번 반복하고 싶습니다. 적절한 구조조정의 시기를 물으셨는데 매우 중요한 질문이라고 봅니다. 최근 이면우 교수가 '신창조론'이라는 내용 으로 한국경제신문에 연재를 했습니다. 이분은 1975년부터 우리가 구조조정 에 들어가야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박대통령 시절에 현재의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구조로 정립 되었던 것이 70년대 중반입니다. 그러나 그때부터 우리의 구조적 문제가 축 적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79년에 강경식 전부총리가 신현확 부총 리 시절 경제기획원 차관보로 재직하고 있으면서 '안정화 종합대책'을 수립 했습니다. 그 동안 확대지향적인 경제정책으로 인해 흐트러졌던 경제의 안 정기조를 다시 다져야 한다는 내용의 우리경제사에 매우 중요한 정책입니 다. 그때부터 구조조정 노력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또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 제가 차관보로 있던 시절 토지공개념 정립, 안정화정책 실시, 금융실명제 도입 시도 등 실효성 있는 구조조정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김영삼 정부에 들어서도 일방적인 비난을 듣고 있지만 나름의 구조조정 노력을 한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기업의 구조조정 노력은 제가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있을 때와 그 이전에 몇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성공과 실패가 있었습니다.
특히 가장 중요한 금융의 근본적 개혁을 위해 총체적 노력을 기울였던 것은 작년이었다고 봅니다. 지금에 와서 경제가 무너지는 판인데 금융개혁 노력만 하고 있었느냐는 비판을 하는 분들이었지만 저는 백 번 그러한 비 난을 하더라도 그렇게 했어야 했다고 봅니다. IMF가 들어와 우리가 국회에 통과시키지 못한 법안들을 12월 29일 통과시켰습니다. 만약 그때 우리가 엄 청난 비난 속에서 싸움을 하면서 금융개혁 프로그램을 만들어 놓지 않았다 면 IMF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그 짧은 시간에 방대한 금융개혁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한 의미에서 구조개혁에 대한 상당한 노력이 있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것이 결국 의도했던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했거나, 적절 한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에 남의 힘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기억나는 것 중의 하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금융개혁법 추진을 위해 여 러 연구기관의 책임자들에게 협조요청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대우경제 연구소의 이한구 소장이 과거의 역사를 통해 볼 때 이번에도 결코 통과되 지 않을 것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저는 절대로 통과된다고 말을 했습니다. 결과는 통과되고야 말았습니다. 마지막 못을 박은 것이 우리가 아니어서 그 렇지 통과는 된 것입니다. IMF 선생이 와서 마지막 못을 박은 것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노력을 하고, 축적된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지 IMF가 처음부터 와서 못을 박은 것은 아닙니다.
질문: 서두에서 혹시 변명으로 들릴까 염려가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제가 다 들어보니까 변명은 없고, 아주 객관적이고 정론에 입각하여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것 중에 외환위기의 4단계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저는 첫단계에 앞서 노동법 파동이 첫 단추를 잘못 채운 것이라고 봅니다. 노동법 파동이 적절하게 처리되었다면 이어지는 경제위기를 적절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이것은 IMF가 지적했던 노동시장의 경직성 문제와 직결된다고 봅 니다. 이것은 정치적인 리더십과 관련이 되는데 정치적 리더십이 제로가 아 니라 마이너스가 되는 상황에서는 문제가 더욱 악화된다고 봅니다.
그리고 결론에서 비경제적 접근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설명을 들으니 이해는 되지만 잘못하면 정치적 접근으로 오해할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보 다 적절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또한 이러한 사태에 대해 앞으로 우리가 교훈을 삼기 위해서는 정치적 리더십의 문제에 대해 많은 연구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이것을 정리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봅니다.
답변: 노동법 파동에 대한 지적은 저의 재임 중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제 외한 것이지 중요한 사건이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리고 비경제적 접근이라는 표현이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말씀도 하셨는 데 다음에 원고를 쓸 때 지적을 감안하여 보다 적절한 표현을 찾도록 하겠 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매우 중요한 지적을 하셨는데 제가 30년 간 정부의 책임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경제가 잘된 것에도 저의 일부 공이 있고, 우리경제가 잘못된 데에도 일정 정도의 과가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책임의식을 전제로 말씀을 드리면 한두 사람의 잘못에 의해 우리경제가 과 연 달라질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한두 사람이 잘 하면 우리 경제가 달라져야 할 것 아닙니까? IMF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100 일이 넘었는데 우리 경제가 좋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안고 있던 구조적 경제문제가 본격적으로 노출된 것이고, 그것은 하루아침에 치 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반증이라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갈 주요 세력인 정치지도자들, 관료, 대기업 지도자, 금융, 언론, 노조, 지식인들이 과연 우리의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행동을 해왔 으며, 이것이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적 리더십과 어떻게 연결되고 있 었는지에 대해서 비교적 가까이에서 지켜볼 기회가 있었던 사람으로써 책 이라도 쓰면서 정리하고 싶은 개인적인 욕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제가 관찰한 관점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습니다.
질문: 조금 거북한 질문이지만 이러한 환란 발생과정에서 김영삼 대통령께서 하신 역할이 과연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가장 측근에서 모신 분으로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외환위기는 예측불능이라는 말을 하셨는데 저도 동감입니다. 그런데 일본의 컨설턴트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다분히 미국사람들에 의한 한국 버릇 고쳐 주기의 의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본의 단기외채 연기 결정에도 미국의 작용이 있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과연 미국의 의도가 무엇인지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변: 대통령의 역할에 대해서는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고 봅니다. 역사에는 거짓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다 밝혀지게 될 것입니다. 제가 측근에서 모셨던 사람으로서 이분을 필요 이상으로 격상시키는 것도 또 격하시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으며 사실대로 역사에 나타날 것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우리경제에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우 리가 이 점은 전제로 해야 할 것입니다. 그분이 해야 할 역할과 관련하여 어느 언론에서 보도한 바와 같이 대통령의 역할이 전혀 없었다고 보는 시 각도 있고, 그렇지 않았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것은 역사가 평가할 문제 입니다.
다만 외환위기와 관련하여 대통령에 대한 보고는 적절히 이루어졌음은 분명합니다. 또 대통령도 그에 대한 적절한 관심을 보였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상황을 몰랐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어 떻게 모를 수 있었겠습니까? 그 당시의 상황이 언더 테이블로 진행되는 것 도 아니고 우리사회가 들끓고 있는 상황인데 국정의 최종 책임자가 그 상 황을 모를 수 있겠습니까? 청와대 내용을 아시는 분들이라면 수석비서관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잘 아실 것입니다. 대통령에 대한 보고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수석비서관 사이에서 서로 대통 령에게 한 번이라도 더 보고를 하려고 경쟁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 다. 특히 10월 홍콩사태 이후 저는 거의 무상출입으로 대통령을 뵈었고, 대 통령이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로 상황을 물어 왔습니다. 그 외의 역할에 대 해서는 오늘 말씀드리기에는 적절치 않다는 점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음모설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 적어도 대외관계에 있어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지난주에 나왔던 시사저널에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믿기도 어렵고, 안 믿기도 어려운 기사가 나왔습니 다. 저 개인적으로는 우리 국민들의 초점이 그러한 방향으로 흐트러지는 것 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구조적 문제에 대한 적절한 준비를 해왔다고 한다면 설사 그러한 문제가 있더라도 이에 충분한 대응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그 동안 96년부터 경상수지 적자가 현격하게 늘어나는 모습을 보고 외환위기가 올 것이라는 짐작을 했고, 누차 이러한 지적을 했지만 구체적인 대책이 없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신정부 들어서도 대책이 없기는 마찬가지 라고 봅니다. 우리가 이러한 사태를 탈출하기 위해서는 국제경쟁력을 회복 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고 봅니다. 또한 가격과 품질 면에서 중국과 일본에 뒤져 있는데 특히 중국에 비해 몇십 배가 높은 임금의 경우 우리상품의 경 쟁력을 잃게 만드는 결정적 요인이라고 봅니다. 보다 실효성 있는 정책을 가지고 경제회복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할 시기라고 봅니다.
답변: 96년의 경상수지 적자가 우리의 현재 경제문제 발생의 원인이 되었 다는 지적에 동감합니다. 경상수지 적자가 계속되면 버틸 수 있는 경제는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희 경제팀은 우리가 성장에 집착하는 한 경상수 지 적자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노사문제를 풀어 가는 데 있어서도 우리가 성장목표에 집착하는 한 이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 했습니다. 우리가 성장목표를 희생하더라도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해야 하 며, 거시경제운용에 있어서는 국제수지 개선에 정책적 초점을 두어야 한다 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240억 달러 가까운 적자 를 그 다음해에 바로 없애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100억 달러대 이하로 낮추 는 것으로 정책의 기조를 끌고 나아갔던 것입니다.
국제경쟁력의 회복이 우리의 살 길이라는 지적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다만 어떻게 국제경쟁력이 살아날 것인지에 대한 방법론이 문제가 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 취약성을 고치는 것을 통해 우리의 경쟁력을 회복시킬 것인가, 아니면 3공, 4공 시절에 했던 방식으로 단기적인 대책을 통해 개선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의 문제입니다.
또한 임금 동결의 경우도 정부가 임금을 동결한다고 동결할 수 있으면 아무 걱정할 것도 없습니다. 대기업 하시는 분들이 끊임없이 요구하는 것이 임금동결과 한 자리 수의 금리입니다. 그러나 400%의 부채비율을 가진 기 업의 부채 구조하에서 다시 말하면 기업이 끊임없이 무한정의 자금을 수요 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리가 낮아질 수 없는 것입니다. 금리는 금융서비스 시장에서 결정되는 하나의 가격입니다. 기본적으로 수급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노동문제의 경우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우리나라에 투 자할 나라가 없습니다. 가령 과도한 노동력을 정리할 힘이 없다고 할 때 투 자할 사람은 없습니다. 작년 10월에 공식통계에 의한 실업률은 2.2%였습니 다. 그런데 부즈 -알렌 보고서는 우리나라가 실질적으로 11.2%의 실업률을 가지고 있는 나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직장에 10명 중 한 명 의 한계생산성이 제로인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생산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노동력이 10명 중 한 명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 다. 이것이 우리의 노동구조이며, 이러한 구조에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 습니다.
지적하신 점에는 동감하지만 문제는 방법론입니다. 이것을 시장에서 풀어 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노동시장의 활성화를 통해 다양한 구조조정이 가 능해야 합니다. 다만 실업자의 생활을 위해 고용보험제도도 만들고, 재훈련 제도를 늘리고 고용정보도 제공하고, 실업자에 대한 수용이 가능하도록 신 산업의 탄생이 용이한 산업구조를 만드는 것이 정부의 역할입니다. 이러한 점에 대한 준비가 그 동안 부족했다고 봅니다.
질문: 정책결정과정에서의 우선 순위는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외환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귀중한 외환을 100억 달 러 이상 사용했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기아사태의 경우도 처리과정 에서 마찰이 많았고, 이로 인해 위기를 가속화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 대해 언급이 없으셨는데 보충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변: 우리가 했던 정책이 우선 순위 면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말씀 드릴 자신은 없습니다. 또한 환율방어와 관련하여 과연 적절한 선택이었는지 에 대한 비판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한보사태 발생시 외환시장이 매우 어 려웠는데 외환방어를 위해 68억 달러를 사용했습니다. 작년 11월 1일부터 18 일까지 시장개입을 위해 56억 달러를 사용했습니다. 우리는 시장의 수급에 의해 자유스럽게 결정되는 환율정책을 고수하려고 했습니다. 즉 수요 공급에 의해 자연스럽게 외환의 수급이 조절되고, 이 수급조절에 의해 환율이 변동 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시장에 교란요인이 있을 때가 문제가 됩니다. 정상적으로 움직일 때 는 시장에 맡기는 것이 좋은데 시장에 엄청난 교란요인이 왔을 때 이를 방 치할 경우 새로운 교란요인이 생기게 됩니다. 즉 외환에 대한 투기요인이 생 기고, 외환당국의 환율안정의지를 테스트하는 힘이 시장에 접근합니다. 이러 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매우 고민스럽게 됩니다. 특히 작년 10월 말에서 11 월 초까지 하루하루가 전쟁을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한국은행 과 재경원의 실무자들은 그 분야에서 수십 년 간 일한 실무자지만 그 사람 들도 어떠한 결정을 내릴지에 대해 매우 판단하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IMF에 대한 공식지원을 검토하는 시점에서는 만약 IMF의 지원이 결정되면 바로 상업베이스의 금융이 재개되고 그러면 외환위기로부터 벗어 날 수 있다고 보고, IMF에 가는 것을 공식화하기까지는 외환시장을 너무 교 란상태로 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최소한의 환율방어 노력을 했던 것입니다. 외환시장의 교란요인이 발생했을 때 과연 어느 정도까지 개 입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매우 어려웠던 점이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기아사태는 처리가 늦어진 것 때문에 신인도가 하락된 것은 아닙니다. 기 아처리는 어차피 부도유예협약이 이미 만들어진 상태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두 달 간의 기간을 통해 처리방안을 논의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진로의 경 우 매우 성공적으로 이 제도가 작동했습니다만, 기아의 경우는 기아가 이 제도를 이용하여 문제를 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기아의 김선홍 회장이 채권은행단을 찾아가 협의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그 당시 그분이 어떻게 행동을 했고, 언론과 정치권이 어떠한 반응을 보였 는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모터 쇼에 참석했고, 국민기업 운운하며 언론의 지원을 끌어들이고, 정치권에서는 자금을 지원하 여 하청기업에 문제가 없도록 하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금융기관이 돈을 주지 않겠다고 하는데 정부가 어떻게 돈을 주라고 요구할 수 있으며 해서 되겠습니까? 오히려 외국 투자가들은 시장원리에 의해 기아를 처리하 지 못한, 즉 부도를 내고 기업정리를 하지 않은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도를 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으며, 만일 그렇게 했다면 정부 가 무너졌을 것입니다. 만약 강부총리가 그렇게 했다면 그 당시 그만두었을 것입니다. 그 상황하에서는 정부가 취한 방안 이외에는 우리사회의 여건상 가능한 다른 대안은 없었다고 봅니다. 그때 기아문제로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안을 제시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유용한 대안이 있다면 정부가 채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아무도 대안을 제시 한 사람이 없습니다.
질문: 제가 보기에는 경제팀이 거시지표를 너무 과신하였다고 봅니다. 또 반도체에 대해 너무 과신하여 우리경제가 엉망이 되었다고 봅니다. 결국 과 거 경제팀이 우리경제에 대한 안목이 부족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외환위기 에 대해 대통령에게 너무 늦게 이야기하여 타이밍을 놓쳤다는 느낌도 있는 데 이에 대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변: 과신했다는 지적을 하셨는데 과신보다는 상황을 상황대로 인식했다 고 봅니다. 다만 우리경제가 거시지표로 나타난 것보다는 구조적으로는 심 각한 문제가 많다는 것을 강부총리나 저보다 더 절실하게 느낀 사람은 없 다고 봅니다. 적어도 기본적으로 강부총리와 저는 우리경제의 문제점에 대 해 평소 구조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경제에 구조적 문제가 많이 축적되어 있고, 이것을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우리보다 더 심각하게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만 거시지표상의 밝은 면에 대해 강부총리가 국회와 여러 자리에서 발 표한 것을 가지고 경제를 너무 오도했다고 지적합니다. 그런데 우리경제가 어려워졌고, 외국의 투자가들이 우리나라로부터 철수하려는 상황에서 경제 의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이 한국경제가 곧 망할 지경이니 돈을 빌려 달라 고 하면 아마 정신이 나간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 식의 접근은 있을 수 없 습니다. 어느 회사가 어려울 때 부도나기 직전이라며 돈을 빌려 달라고 하 면 아마 아무도 빌려주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경제의 기초는 괜찮은데 다만 유동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빌려 달라고 해야지 도와주는 것입니다.
다른 예를 하나 들면 김대중 당선자가 97년 12월에 '내가 곳간 문을 열어 보니 달러가 하나도 없더라'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 1,700원대이던 환율이 하룻밤 사이에 거의 2,000원 수준으로 뛰었습니다. 그때 한국계 신 용카드를 가지고 해외에서 사용을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었습니다. 그래서 김당선자가 신년사를 할 때 '우리경제의 기초는 아직 튼튼하고'라고 말을 했습니다. 똑같은 분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적어도 경제의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고 봅 니다. 좋은 점이 강조되어야 할 때는 좋은 점을 강조하고, 나쁜 점이 강조 되어야 할 때는 나쁜 점이 강조되어야 합니다. 경제가 이렇게 되고 나니까 그때의 경제 기초여건이 엉터리였다고 하는 것은 무리라고 봅니다. 그렇다 면 IMF가 와서 왜 경제 기초여건은 건전하다고 평가했겠느냐는 것입니다. 반도체에 대한 과신은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제가 공정거래위원장 시절에 강연하고 다닐 때 우리의 5대 주력품목에 대해 경쟁력이 한계에 도달했고, 특히 반도체 이후의 유력 상품이 없는 것이 우리경제의 위기라고 말했습니 다. 메모리형 반도체가 세계시장을 석권할 때 그러한 성과에 너무 매몰되었 던 점에 대해 깊이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에 대한 적절한 조언의 경우도 전에 거론되었지만 도대체 말을 하 지 않아서 이득을 볼 것이 과연 무엇이 있겠습니까?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 을 했고, 11월 초에 있었던 단기채 중심의 전면적 롤 오버의 중단사태는 설 상 우리가 한두 달 전에 알았더라도 다른 대안은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다 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2000년 3월 28일 - 한양대 강의 녹취전문
[ 세계경제의 흐름과 21세기 한국 경제의 선택 ]
여러분들 매우 반갑습니다.
이렇게 많은 학생들 뵙고 또 여러분들에게 우리 경제가 어떻게 걸어왔고 또 어떻게 가야 될 것인가에 대해서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얘기할 수 있게 되어서 제 개인적으로 매 우 기쁘고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다만 이 짧은 시간에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들 을 전부 소화시킬 수 있을지 좀 걱정이 됩니다. 제목에 대해서 충분히 여러분에게 주지가 되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은 제가 오늘 정한 제목은 '세계 경제의 흐름과 21세기 한국 경제의 선택'이라고 정했습니다. 이것은 '21세기 세계와 한국'이라고 하는 큰 프로그램의 한시간을 맡았기 때문에 그 제목에 적합하게 정했습니다.
지금부터 꼭 10년 전 1990년 7월경으로 기억하는데 저는 그때 소련과 우리나라의 수교를 트기 위해서 수교사절단 즉 민간사절단의 사실상 실질적인 책임자로 모스크바에 갔습니 다. 여러분도 기억하시겠지만 지금은 우리가 러시아가 된 모스크바에 왔다갔다 하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때만 해도 소련과 우리는 수교가 없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또 소 위 적성국가의 대표적인 나라인 소련에 발을 들인다는 그 자체가 매우 흥분되고 한쪽으 로 두렵기도 한 시절이었습니다.
모스크바의 밤에 내려서 호텔에 가서 하룻밤을 자고 그 다음날 아침에 호텔 카운터에 가 서 보니까 내 눈에 탁 들어오는 문구를 써 부쳐 놓았습니다. 'US dollar only' 또 조금 옆에 보면 'hard currency only' 란 글이 써 있습니다. 무슨 말이겠습니까? 그 당시 소련 의 대표적인 일류호텔에서 소련 또는 즉 루블화는 받지 않습니다. 오로지 미국의 달러만 받습니다. 아니면 달러하고 언제든지 외환시장에서 환전이 가능한 소위 경제학에서 얘기 하는 경화(hard currency) - 영국의 파운드, 독일의 마르크, 일본의 엔, 프랑스의 프랑 등 이러한 경화만 받습니다. 미안하지만 소련의 루블화는 사절합니다. 제가 그걸 보는 순간, 이십 여 년의 경제 관료로서 당시의 정부의 대외경제정책 실무책임을 지고 있었던 저의 모든 경제적 경험과 지식을 동원해서 머리에 탁 떠오르는 것이 '아, 소련은 끝났구나, 이 경제는 며칠 못 가겠구나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이후에 여러분 기억하시겠지만, 제가 정확한 날짜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아마 1990년 말쯤 국제 정치적으로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동서 냉전이 종식되고, 경제적으로는 사 회주의 경제, 동구경제가 소련을 비롯하여 몰락하고 시장경제로의 전환이 시작되는 그러 한 대시대적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여러분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소위 금년 들어오면서 또는 작년 재작년부터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를 맞아 우리가 어떻게 무엇이 달라지고 어떠한 적응을 해야 하는가 하는 것으로 국가적으로 엄 청난 논의와 준비를 하고 언론에서도 하루도 빠짐없이 그와 같은 이야기가 있었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라는 것이 달력을 넘겨서 1999년 달력을 떼어내 고 2000년 달력을 다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인가요? 그렇다면 그까짓 시대의 변화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21세기의 시작이 2000년 1월 1일이냐, 2001년 1월 1일이냐 라는 별 로 중요하지 않은 논쟁을 하는 것 이외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시대의 변화는 그러한 달력을 떼어내고 붙이는데 있는 것이 아니고 이미 10년 전에 베를 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으로 어떤 의미에서 완성되고 전개되고 있었다고 보아집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시대의 변화를 어떻게, 무엇을 통해, 언제부터 느끼기 시작했습니까? 아마 요새 여러분들은 시대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특히 디지털 경제, 디지털 네트워크가 보편화 되면서부터 아마 여러분보다 우리같은 나이든 세대가 절 감을 하겠지만 '아, 지금까지 살아온 세대하고는 너무도 다르구나, 도대체 뭐가 이렇게 바 뀌냐, 바뀌는 과정에 내가 과연 적응하고 살아갈 수 있겠는가, digital or die! 내가 여기 서 순응하면 살 것이고 아니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을 나이든 세대들은 느끼고 있 습니다. 우리 세대보다는 덜하겠지만 여러분들도 몇 년 전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다른 것 을 아마 피부로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러한 변화의 본질적 시작은 엊그 저께 혹은 이삼년전의 일이 아니고 10년 전에 이미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다만 오늘의 변 화는 그러한 시대적 변화의 연장선상에서 나타나고 있는 하나의 특이한 현상에 불과하다 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사람들이 시대의 변화에 얼마나 둔감하냐, 하는 것에 대해 재미있게 얘기한 사람이 있습 니다. 현재 일본에서 경제기획청 장관을 하고 있는 사까야마 다이치라고 하는 유명한 경 제평론가이고 미래학자이며 저술가이자 강연가인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원래 관료 가 아니고 -일본은 원래 의원내각제이기 때문에 국회의원이 되어야 장관이 되는 것이 원 칙인데- 지금 일본내각에서 국회의원이 아니면서도 장관을 하고 있는 극히 예외적인 사 람입니다. 이 분의 90년 초에 어떤 책에서 쓴 글을 읽어보니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시대의 변화를 사람이 인식하는데 얼마나 둔감하고 느리냐, 시대의 변화에 가장 먼저 깨 닫는 사람은 기업가다. 그러나 대개 5년 걸린다. 5년쯤 지나야 '아, 시대가 변했구나'하고 느낀다. 그 다음은 정치가인데 이러한 변화를 느끼는데 10년이 걸린다. 가장 느린게 누군 가 하면 관료들 소위 공무원들인데 -저도 관료 출신인이지만- 15년 걸린다"는 말이 나옵 니다. 그래서 15년 걸려서 시대가 바꿔 다음 시대로 넘어갈 때쯤 되어야 그것을 인식한다 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로 일본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한 애기입니다. 그만큼 시대의 변 화를 정확히 인식하고 그것을 timely하게 깨닫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요즘 디지털 시대의 특징중 하나는 속도의 시대이기 때문에 옛날보다는 빨라진 것 같습 니다. 그래서 여러분 중에 아무리 느린 사람도 시대가 바뀌었구나 하는 것을 다 느끼고 있을테고, 우리나라의 정치가들이나 관료들이나 기업가들도 이제쯤은 다 느끼고 있습니 다. 그런데 몇 년 전만 해도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매우 많 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통해서 어쩌면 매듭지어지고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우리 가 뉴밀레니엄이라고 밤낮 말하는 21세기의 흐름 특히 경제적 흐름을 좌우하고 있는 주 요한 특징은 무엇인가?
첫째로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완전한 승리로 일단 보아집니다. 즉, 사회주의 경제체제 내 지는 계획 경제체제와 시장경제체제 내지는 사회주의 경제체제와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몇 십년 간의 걸친 싸움이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완전한 승리로 일단 매듭지어진 것이 아 닌가 합니다.
두 번째로 소위 Global economy 혹은 Interlinked economy 하는 온 세계가 통합된 하나 의 경제로 재구성되는 이러한 흐름이 두 번째 흐름이 아니겠습니까?
세 번째는 정보통신입니다. 소위 정보화사회가 시작되면서 기업가정신을 가진 개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집니다. 과거에는 정보라는 것이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에 있어서 생산자는 주로 우월한 정보를 갖고있고 소비자들은 주로 정보의 부족에 직면해 있고, 여기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매우 비대칭적인 관계가 형성되고(problem of asymmetric information), 여기서 소비자가 항상 열등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는 우리 시장경제체제가 갖고 있는 중요한 문제점의 하나가 어느 의미에서는 완전히 해소되는 시장경제의 본질에 적합한 그러한 형태로 경제흐름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 세 번째의 흐름이 아닌가 봅니다.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한 걸음 더 나간 것이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사회 변화의 특징이라고 얘기하고 있는 소위 지식사회의 전개, 또는 디지털경제 사회의 전개라고 하는 흐름이 아닌가 하고 보아집니다.
이러한 시대 변화의 흐름, 세계 경제 여건의 변화의 흐름을 제대로 빨리 인식하고 여기에 대응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90년대 이후 세계경제에 차지하는 각 국민 경제의 역할은 크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지금 현재까지 나타난 최고의 승리자는 말할 것도 없이 미국입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의 경제가 세계에서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 아니 었나 싶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미국의 많은 학자들이 일본경제를 배우자. 일본이 미국을 따라잡는 것은 시간문제다 해서 많은 미국 사람들이 좌절감에 빠져 있었던 때가 있었지 만 미국은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빨리 국가적으로 혹은 정부가, 기업가들이 혹은 소비자 들이 이것을 인식하고 여기에 대응을 하고 대응하는 과정에서 구조조정 노력을 기울여서 오늘의 미국 경제를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오늘의 미국 경제를 한 마디로 얘기하면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위원회 의장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경제적 영향력이 큰 사람이 누구냐 하면 여러분 누굴 것 같습니까? 아마 도 첫 번째는 김대중 대통령이 되겠고, 두 번째는 재경부 장관쯤 되겠고 세 번째는 경제 수석쯤 될 것입니다. 한국은행 총재는 아마도 우리나라 경제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친 다고는 본인 스스로도 그렇고 남들도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미국경 제에 가장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누구냐 하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연방준비위원회 이 사장. 우리나라와는 제도가 다르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한국은행 총재입니다. 이렇게 얘기 하는데 아무도 의의가 없을 것입니다.
이 그린스펀이 삼십몇 년 동안 자리를 맡아서 사실상 오늘의 미국 경제를 이끌고 가는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 사람이 최근에 미국 경제를 한 마디로 표현해서 'oasis of prosperity', '번영의 오아시스다' 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이것이 결코 과장된 이야기가 아 닌 것은 오늘날 미국의 실정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선 미국 경제는 90년 대 들어와서 무려 9년째 호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불황을 모르는 경제. 여러분도 거의 다 경제학을 공부한 분들일테고 하다못해 교양과목으로 경제원론정도는 공부할텐데, 시장 경제에서 자본주의 경제에서 불황이 없다는 것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냐, 가능하지 않으나 미국은 현재 불황이 없는 경제를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작년도 경제 성장 실적이 무려 6.9%, 우리나라가 6.9%정도면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만 미 국에서는 3%정도만 성장하면 고성장이라고 보고 그 이상이 되면 물가가 오르지 않나 하 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 미국경제입니다. 작년도 4/4 분기 실질 성장률이 6.9%, 소비 자물가가 금년1월 현재 전년대비 2.7% 상승, 1965년 이래 최저의 소비자물가, 6%의 노동 생산성의 증가, 연방 정부의 실업수당을 받는 사람이 28만명인데 이것이 26년만에 최저의 숫자입니다. 실업률에 있어서는 30년 만에 최저의 실업률입니다. 그런가하면 금리는 그린 스펀이 자꾸 올리려 함에도 불구하고 6%대의 금리, 이런 경제라면 거의 환상적인 경제 란 말입니다.
종래의 경제학에는 성장을 많이 하면 고용이 증가하면 물가가 오른다. 이것을 trade-off 관계에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장을 택할 것인가, 물가 안정을 택할 것인가에 대해 정 책을 하는 사람들은 이 두 가지를 가지고 항상 고민해야 하고, 경제이론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고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90년대 중반부터 어제 오늘 단기간의 문제가 아니라 몇 년째 역사적으로 가장 높은 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업은 선진 국에서 제일 낮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물가는 지극히 안정적인 경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일컬어 소위 new economy라고 합니다. 종래의 경제 이론으로 는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경제, 신경제, 제가 모신 김영삼 대통령의 초기에 신경제를 만들어보자고 한 적이 있습니다만 별로 성공은 못했는데 미국은 정말 신경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비해서 항상 대조적으로 생각하고 bench-marking의 대상이 되었던 일본은 80년 대 세계경제의 모델케이스로 각국이 칭송을 마지않던 일본의 경제가 90년대 들어와서 경 제가 계속 바닥을 기고 있는 상황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장기적인 침체, 그래서 작년 에도 마이너스, 금년도에도 잘 하면 1.몇 % 성장을 할 것이라고 보는데 그것도 낙관적인 전망이며 확신할 수 없고 2010년까지를 놓고 봐도 잘 해야 1.5%에서 2% 내의 성장 수준 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고 보아집니다. 일본사람들도 그렇게 보고 있고 외국 사람들도 그렇게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럽은 미국을 따라가기 위해서 최근까지도 미국과는 다른 형태의 어떤 모델, 사회민주주 의 이것을 다른 말로 라인모델이라고도 하는데, 유럽식 모델을 가지고 한 번 미국을 흉내 내지 않는 경제를 해 보겠다는 것이 유럽사람들의 생각이고 자존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결과는 어떠한가 하면, 지금 유럽경제는 미국을 따라가기 위해서 매우 노력을 함에 도 불구함에도 그 성과가 신통치 않다. 유럽의 정치 경제 지도자들은 유럽이 미래의 첨단 산업부문에 있어서 미국에 비해 갈수록 뒤지고 있다고 이렇게 우려를 표명하고 있고, 과 거 십년간 즉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변화된 시대 변화의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고 여기에 상응하는 정책을 세워 나가는데 실패했다고 유럽사람 스스로가 인정을 하고 있습 니다. 그래서 이제는 디지털 경제하에서는 그래서는 안되겠다. 디지털 경제하에서는 이제 미국과 경쟁을 하는 그래서 오히려 미국을 능가하는 경제를 만들어 봐야겠다고 지금 유 럽사람들이 매우 분발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결과가 어떠할 지는 두고 봐야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떻냐. 90년대를 통틀어서 우리나라가 이러한 문제에 접해서 가진 국가적 인식, 대응을 한 마디로 말해서 시대의 변화에 대한 인식이 국가 전체적으로 미흡했고, 다소 인식이 있는 경우에도 거기에 대응하는데 타이밍을 제대로 잡지 못했고 또 문제인 식을 갖더라도 그것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 그것을 추진해 나가는데 있어서 그것을 스 스로 자기자각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능력이 매우 취약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상황이 계 속 축적되어 오다가 여기에 외부여건이 악화되고 우리 국내에서는 정치적 상황이 매우 어렵게 전개되는 것에 결부되면서부터 우리 나라에서는 97년도에 소위 외환위기라고 하 는 언론적 표현으로 하면 환란위기라고 하는 소위 국가경제적인 위기를 경험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여러분은 학문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미래를 내다보고 바로 나가기 위해서는 지나간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합니다. 가령 외환위기가 97년도에 발생을 했는데 이것이 왜 발생을 했느냐. 여기서 얘기하는 김인호라고 하는 사람, 또는 그 외 몇 사람이 잘못해서 그런 것인가. 이렇게 해서 저는 개인적으로 그동안 환란의 주범이다고 해서 매 우 어려운 과정을 겪었고 국가가 경영하는 구치소에도 갔다오고 여러 가지 과정을 겪었 습니다만 그런 것이냐. 아니면 우리나라의 외환위기가 어떠한 배경하에서 어떻게 일어나 고 또 그러한 외환위기를 통해 우리가 앞으로 가야될 적절한 교훈을 선택 받았는가. 그리 고 우리가 최근에 와서 외환위기가 극복되었다고 얘기하고 있는데, 특히 정부에 의해 그 러하다고 얘기하고 있는데, 과연 그러한가. 어떤 사람은 6.25이후의 최대의 국란이라고 얘 기하는데 저 개인적으로는 그 견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만 사회 전반적인 인식이 그러합 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어려운 문제에 부딪쳤을 때 우리 사회가 그 문제에 대응하는 대응 방식은 적절했던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얘기하려면 제가 볼 때 한 세시간 정도 여러분과 토론해야 대체적으로 전모에 접근할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만 제가 한 오분 내지 십분 정도만 얘기 할 것이기 때문에 깊은 얘기를 할 수 없습니다만 몇 가지 메시지만 여러분께 전달하고 싶은 것은, 적어도 세계에서 열째 내지 열한번째 가는 규모의 경제, 한국의 경제가 그렇게 97년 11월 하루아침에 침몰할 때 어떠한 배경을 가지고 그럴 수 있었는가. 어떠한 일시적인 상황을 통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는 사건인가. 그렇지 않으면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보다 복 합적으로 축적되어 있는 과정에서 어떤 계기에 의해서 그것이 촉발되었는가.
예를 들어 지금 미국의 재무장관인 래리 서머스라고 하는 사람이 우리나라 외환위기가 발생하고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잘 나가고 있는 아시아 각국들이 태국을 시작 으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한국 이렇게 외환위기를 경험하고 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동차가 하나 밤에 사고가 생겼을 때 그 사고 원인은 수십가지가 될 수 있다. 자동차 운전수가 잘못해서 그럴 수 있다, 자동차 정비가 잘못될 수도 있다. 그 때 밤이라 길이 미끄러울 수 있다. 그 때 안개가 끼어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가드레일이 제대로 쳐있지 않을 수도 있다. 가드레일만 쳐 있어도 그렇게 사고가 나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등등의 무한히 많은 문제를 검증해야 그 때 그 사고가 왜 났고 사고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판 명될 수 있는데 하물며 일국의 경제가 갑자기 추락할 때 어떤 이유에 의해서 이루어졌는 지가 매우 복합적으로 검토되어지지 않으면 안된다.
두 번째로 우리가 외환위기에 부딪쳐서 우리가 이 문제에 접근하는 문제 접근 방식에 대 해 한 번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가령 외환위기가 왔을 때 이러한 복합적 요인을 편 견없고 감정없이 가능한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 전문가들이 모여 모든 문제를 역사 적인 상황부터 차근차근 분석하고 우리 내부의 문제는 무엇이고 우리 외부의 문제는 무 엇인지, 우리 문제에 있어서 구조적인 문제는 무엇이고 상황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심리적 측면은 무엇인가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국가적 차원의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밝히고, 그래서 그러한 원인과 배경에 상응하는 대책을 이러한 방향으로 가야겠다 라고 하는 국 가적· 사회적 합의된 결과가 한국사회에 나온 적이 있는가 하면 전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로지 나라 경제가 어려워졌으니까 우리 국민들의 감정이 매우 격앙되 어 있고 그래서 격앙된 감정을 달래기 위해서 뭔가 피를 보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고에 입각한 흐름이 우리 사회를 지배했고, 그것을 정치하는 사람들은 이용했고 언론은 침묵하 거나 방조했고, 우리나라의 그러한 문제를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지식인들은 입을 닫고 있고, 이러한 상황이 최근까지 되어 있던 것이 우리나라의 상황입니다.
여기에서 아시아 외환위기 초래의 빌미를 제공한 태국, 여러분 태국하고 우리나라를 생각 해 보면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태국이 우리나라 보다 훨씬 못한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습 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태국하고 우리나라는 다릅니다. 그러나 태국은 우리보다 몇 달 전에 외환위기를 경험했지만 그 이후 이 문제에 대응하는 태국사회 총체적인 대응 방식을 보면 우리보다 매우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종합적인 방법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오래 전 태국 중앙은행 총재를 역임한 누클이라는 사람이 위원장이 되어 각 분야의 사회 에 존경을 받고, 누구라도 존경할만한 위치에 있고, 전문적인 역량을 갖춘 일곱 사람과 함께 '누클커미티'라는 것을 만들어서 이 문제에 대해 종합적 검토를 하였고, 그래서 이미 98년 5월초에 '누클보고서'라는 초안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보고서에서는 매우 감정이 배제된 채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모든 문제를 분석하여 내어놓았기 때문에 국내외적으 로 모두 태국이라는 나라에 어떻게 외환위기가 오게 되었는지, 또한 그 과정에서 무슨 문 제가 있었는지 그리고 누가 잘못을 하였는지 하는 문제가 명백히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거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국내외적으로 거의 없습니다.
거기 비해 우리나라는 2년 반 가까이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도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그러한 합리적인 보고서 하나가 만들어져 있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재의 실정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문제에 부딪치는 것은 어떤 사회나 어떤 시스템이나 어떤 국가나 경우에 따라서는 개인이나 항상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문제가 있다는데 있는 것이 아니고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느냐, 두 번째는 그러한 문제의 인식에 따라 어떻게 처방하느냐, 대응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시스템은 발전하고, 예를 들어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 시장경제시스템이 문제가 없는 시스템이 아닙니다. 오히려 문제 투성이입니다.
그러나 사회주의 경제를 하는 사람들이 자본주의 경제는 스스로 가지고 있는 문제 때문 에 얼마 못 가서 붕괴될 것이라고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를 끊임없이 수정하고 보 완하고 교정하면서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는데 반하여, 이론적으로는 상당한 정밀성을 갖 추고, 훨씬 머리 좋은 사람들이 만든 사회주의 경제체제는 여러분이 보시는 바와 같이 지 구상에서 쿠바나 북한이나 몇 몇을 제외하고는 손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느 냐하면 시스템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그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어떠한 문제인식 을 갖고,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학생들도 대개 많이 읽으리라 생각되는 '로마인 이야기'의 처음에 보면 로마가 천 몇 백년을 걸쳐 계속 부강할 수 있었던 요인을 '시오노 나나미' 라는 여자 저자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로마는 시스템으로 성공한 나라다. 그러나 이 시스템으로 성공한 로마는 처음부터 시스템이 완벽했기 때문이 아니고, 그 시스템이 시대가 흘러가면서 계속적인 도 전과 저항의 순간 속에서 그것을 유연하게 받아들여서 시스템이 거기에 적응하고 대응해 나가는 쪽으로 나아갔기 때문에 로마는 발전할 수 있었다"고 쓰여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우리에게 매우 큰 교훈이 되지 않는가 보아집니다. IMF 사태를 거치면서 우 리 사회가 적절한 교훈을 받았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 좀 더 적절한 해설을 덧붙이고 싶 지만 우리 나라가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의 외환위기가 극복되었는가. 여러분 외환위기가 극복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정부는 외환위
1. 외환위기의 도래와 그 구조적 원인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조찬 정책간담회 강연
(경제수석 퇴임 후 : 1998년 3월 18일)
소위 '환란책임론'이 연일 언론의 지면을 뒤덮고 외환위기에 대한 특감이 감사원에 의하여 진행되던 당시 이의 주요책임자의 하나로 지목되고 있던 필자가 국가경영전략연구원(NSI)의 초청 을 받고 외환위기의 배경과 원인 및 진행경과 등 당시 언론 등 에 의하여 제대로 조명되지 않은 내용을 설명한 강연이다. 경제 수석 퇴임 후 사실상 최초로 공개적으로 행한 강연이며 당시 매 우 중요한 질문이 많았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참석자들과의 질의 응답도 같이 게재한다.
요즘 저는 강경식 전부총리와 이경식 전한국은행총재와 함께 환란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잘못하면 오늘 저의 말이 변명으로 들릴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경위와 노력 여하를 떠나 경제가 어려워진 현재 의 상황에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있고, 또 한편으로는 깊은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다만 이 문제에 대한 우리사회의 접근방식이 과연 적절한지 여부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현재와 같은 접근방식을 통해 결론에 도달했을 때, 이 결론이 앞으로 우리가 이러한 경제위기를 다시 반복하지 않고, 우리경제가 발전할 수 있는 밑바탕으로 작용할 것인지에 대해 매우 우려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요즘 하나의 반문을 하고 있습니다. 'IMF는 반(反)기업주의자인가?' 입니다. IMF가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사항 중 중요한 하나는 우리기업의 구조를 전면적으로 개편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나라 특유의 재벌에 대 한 전면적인 수술 없이는 한국경제가 다시 회생할 수 없다는 처방을 내리 고 있습니다. 이 처방이 과연 전에는 우리에게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과거 그러한 처방을 내렸던 사람들에 대해 우리사회와 경제계가 어떠한 반응을 보였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그러한 처방을 내린 사람 에 대해 반기업주의자, 반재벌주의자라고 몰아붙였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이야기를 지금 IMF가 하고 있는데 아무 소리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것은 'IMF는 반기업주의자인가'라는 반문입니다.
한국경제가 매우 심한 중병에 걸려 있기 때문에 IMF라는 고명한 의사선 생을 모셔 와서 진단을 받고 응급조치를 취하고, 처방에 따라 회생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IMF 처방에 대해 다소간의 유력한 이견이 국내외적으로 있 음에도 불구하고 IMF 처방을 따르는 것이 우리가 회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고 우리 정부와 국민은 생각하고 이 처방에 따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사회는 한편으로 IMF의 진단과 관계없이 우리가 왜 병들 었는지에 대해 새삼스럽게 이유를 찾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른 면에서 는 앞으로 우리가 역사를 통해, 그리고 전문가들의 전문적인 노력을 통해 밝혀져야 할 고도의 정책결정과정의 정당성 여부를 비전문가들이, 그것도 사회 일반적 정서를 생각하면서 짧은 시간 내에 밝히려는 노력을 하고 있 다는 문제제기도 가능합니다. 이러한 생각을 토대로 외환위기의 배경과 원 인, 그리고 앞으로 우리의 대응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외환위기의 상황전개
97년 한 해는 어떤 의미에서는 연중 외환위기가 계속 되었다고 봅니다. 저와 강경식 전부총리가 책임을 맡게 된 것은 97년 2월 말과 3월 초였습니 다. 취임하여 경제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외환 위기가 이미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의 원인을 보면 경상수지 적 자의 지속이 우선 거론될 수 있었습니다. 96년에 237억 달러 적자, 95년에 89억 달러 적자, 94년에 45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우 리의 외채가 많은 것도 문제이지만, 외채 중 50% 이상이 단기채로 구성되 어 있는 외채구조의 문제점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업과 금융의 과다한 부 채구조도 문제가 되며, 특히 대기업들의 부채비율이 평균 400% 이상에 이 르고 있었습니다. 특히 한보 부도사태 이후 매월 한건 꼴로 대기업의 부실 화가 발생되었기 때문에 금융위기가 심화되었으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외환위기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IMF로 갈 수밖에 없었던 위기와 그 전단계의 위기는 구 분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를 4단계로 구분하여 분석 하고 있습니다. 1단계가 한보 부도의 영향으로 발생했던 위기로 97년 2월과 3월의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이미 환율이 오르고 있었으며 수출업자들은 달 러를 계속 보유하려고 했고 외환이 필요한 사람들은 당장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외환을 보유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보사태 이후 우리 기업의 부실화 정도가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에 이에 실망한 외국인 투자가들 이 한국으로부터 떠나려고 하는 상황이 이 시기에 이미 전개되고 있었습니 다.
2단계는 기아사태가 발생한 7월부터 9월에 걸친 상황입니다. 기아는 우리 나라에서 여덟 번째로 큰 대기업입니다. 기아는 전후방 연관 효과가 매우 큰 자동차 산업의 주력기업이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노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전문경영인이 상당히 성공적으로 경영하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던 기업이었습니다. 이 기업의 부실화가 우리경제에 미 친 영향은 매우 심대합니다.
12조 원 이상의 빚과 함께 수천 개의 하청기업을 안고 부실화된 이 사건 은 국내적 충격뿐만 아니라 한국기업과 금융, 그리고 그 처리과정을 통해 한국사회 경제 전체에 대한 총체적인 불신을 해외로부터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고 봅니다. 이것이 한국의 신뢰를 저하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이었 고, 이로 인해 제2단계 외환위기가 있었다고 봅니다.
3단계 외환위기는 97년 10월 말 홍콩사태로 인한 위기입니다. 홍콩증시가 10% 이상 폭락함에 따라 아시아의 경제위기가 실체로 드러났고, 아시아에 투자하고 있던 세계의 투자가들이 아시아에서 철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철수의 규모를 당초 15% 내지 20%로 추측했고 실제로 그 정도의 선에서 철수가 이루어졌습니다. 홍콩사태가 거의 모든 나라들에 엄청난 영향을 미 쳤고, 한국도 엄청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10월 말부터 11월 초에 일어났던 상황입니다.
마지막 외환위기, 즉 IMF 사태를 불러오지 않을 수 없었던, 오늘날 우리 가 이야기하는 외환위기는 11월 3일 내지 4일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때 우 리나라에 자금을 빌려 주었던 나라들이 특히 단기채를 중심으로 롤 오버 (roll over)를 전면적으로 중단했습니다. 신규금융을 못 얻는 것은 물론이고, 일본계 은행을 중심으로 단기채 상황연장이 전면 거부되는 사태가 발생했 습니다. 심지어 국가신용을 대변하는 한국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마저 외국 금융시장으로부터 돈을 빌려 오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또한 한국 기업 중 가장 신용도가 높은 포철과 한전, SK 텔레콤도 돈을 빌리지 못하 는 상황이 11월 3, 4일경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정부의 대책과 대응방안
이 단계별로 정부는 할 수 있는 여러가지 대책을 강구하여 대응했습니다. 예를 들어 1단계 외환위기가 온 97년 3월 말에 '외환시장 안정대책'을 마련 했습니다. 또 자본시장을 대폭 확대하고, 기업과 금융기관의 비외채성 자금 의 도입을 촉진하는, 즉 외채가 아닌 형태의 외자공급 촉진을 통한 근본적 인 외환시장 안정대책을 실시했습니다. 이 정책은 상당히 실효성을 발휘하 여 4월 들어 외환과 금융시장이 안정되기 시작했고 이 상황이 기아사태가 터진 7월까지 계속되었던 것입니다. 이때에도 매월 삼미, 진로, 미도파 등 부실기업의 문제가 계속 발생했음에도 지속적인 금융시장의 안정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3월에 제가 청와대에 들어갈 시점의 우리의 외환보유고는 약 290억 달러 정도였습니다. 물론 적정 외환보유고 수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의견이 있 을 수 있습니다. 만약 국제 금융시장에 특별한 문제나 이로 인한 심리적 불 안요인만 없다면 많은 외환을 보유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적절한지 여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290억 달러 수준의 외 환보유고는 너무 작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좀더 확충이 필요했고, 가능하면 500억 달러 정도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당장 외환보유고를 500억 달러로 확대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98년 목표를 370억 달러에서 380억 달러로 정하고 이 정도까지 늘리기로 부총리와 한은총재와 제가 합의했던 것입니다. 이후 한국은행이 서서히 외환을 사 모으기 시작했 고 7월까지 340억 달러 수준까지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언제 외환위기를 경험하게 될지 몰랐기 때문에 4 월 5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서 강경식 부총리가 IMF의 캉드쉬 총재, 미국의 루빈 재무장관, 일본의 미즈스카 대장상 등을 만나 우 리경제의 구조개혁정책을 설명하고 만약 이러한 과정에서 외환위기가 발생 하게 되면 도와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때 그들의 반응은 매우 호의적이었 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IMF의 캉드쉬 총재는 멕시코사태 때 하룻밤에 각 국 정부 및 중앙은행총재를 상대로 160억 달러를 동원했다는 경험을 이야 기하면서 한국은 그러한 사태가 오지는 않겠지만 만일 그러한 일이 발생하 게 되면 자신이 적극적으로 도와줄 것이므로 걱정하지 말라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루빈과 미즈스카의 경우도 호의적인 반응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시 강부총리가 돌아와 그 상황을 설명하면서 만일 우리가 어려 움을 당하게 되면 비빌 언덕이 생겼기 때문에 한 고비는 넘겼다는 말을 했 습니다. 그러한 상황은 김대통령에게도 충분히 보고가 되었고, 한국은행총 재도 일본은행총재와 유사시를 대비해 중앙은행 차원의 협력 노력들을 계 속하고 있었습니다.
기아사태로 인한 외환위기에 대해서는 8월 25일 '금융시장 안정 및 대외 신인도 제고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이 계획의 골자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이미 그때는 기아사태로 인해 무디스와 S&P 등 주요한 신용평가 기관들이 우리의 신용평가 등급을 크게 하향 조정했기 때문에 돈을 구하기도 힘들었 고 빌리더라도 과거보다 훨씬 높은 이율을 주어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매우 심각한 사태라고 보았습니다. 결국 정부가 대외 신인 도를 책임지겠다는 선언을 했습니다. 한국은 그 동안 정부나 기업이 대외적 으로 디폴트(default), 즉 채무불이행을 선언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에 정부를 믿고 금융기관에 대한 신인도를 계속 유지시켜 달라 는 메시지를 띄운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정부가 이러한 정도의 일까지 했 어야 했는지에 대해 상당한 논란이 일었을 정도로 중요한 정책결정이었다 고 봅니다. 두 번째 골자는 기아사태로 인해 가장 많은 채무가 걸린 제일은 행과 종합금융사들에 대해 유동성 지원 차원의 특융을 제공하여 급한 상태 로 우선 신용을 유지시키는 대책이었습니다.
3단계에 대한 정부 대책을 보면, 그 당시 홍콩사태로 인해 우리 증시가 폭락했습니다. 증시에서 외국자본이 빠져 나가면서 달러를 바꾸어 가는 과 정에서 환율이 또 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악순환 과정을 종결시키기 위해 취한 조치가 10월 29일의 '금융시장 안정대책'입니다. 외환유입 확대, 금리인하 유도, 주식시장 안정을 위한 수요기반 확충 등의 내용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조치를 내린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전개 속에서도 우리경제를 매크로하게 볼 때 경제기초여건, 소위 '펀더멘털'은 과히 나쁘지 않았다고 봅니다. 경제성장률은 연초에 비해 상당히 회복되어 6 6.5%의 수준이었고, 물가도 정부의 목표인 4.5% 정도 에서 안정될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국제수지도 전해의 240억 달러의 적자 에서 97년 10월 현재로는 연간 110억 달러 적자로 마감할 것으로 예상되었 지만 작년 경제의 위축 등으로 88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또 다른 나라의 외환위기는 재정에서 초래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만 우리의 재정은 비교적 건실했습니다. 이런 거시지표의 움직임은 비교적 건전하게 운영되었기 때문에 10월에 방한했던 IMF미션(mission)도 기자회견을 자청하여 한국이 많은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스스로 그 문제점을 인식하고 금융개혁을 추진하는 등 실효성 있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거시경제도 매우 건전하게 운용되고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이 많은 문제가 있지만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위기를 잘 극복해 나갈 것이라는 기자회견을 했고 비슷한 보고서가 IMF 내부에도 제출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97년 11월 초부터 한국계 금융기관이 빌렸던 외채에 대해 롤 오버가 전면적으로 중단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는 외채의 약 30%를 차지하는 일본계 은행으로부터 시작하여 전체 외국금 융기관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블룸버그와 월 스트리트 저널 등 세계적으로 매우 영향력 있는 통신과 신문이 지나치게 과장되고, 악의적이라고도 볼 수 있는 보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바닥이나 20억 달러 정도밖에 남 지 않았으며, 그 이하일 수도 있다는 보도를 하면서 한국으로부터 빨리 탈 출하라는 메시지를 전세계에 띄우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서 '한국으로부터 탈출'이라는 현상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를 통해 정부는 이러한 사태가 이제까지의 외환사태와는 전혀 성격이 다른 외환위기가 발생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고, 11월 7일 저의 주재하에 관련 기관의 책임자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때 처음 IMF의 자금지원에 대한 가능성이 논의되었습니다. 우리 스스로 의 힘을 통해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 다양한 노력들을 경주하면서 이러 한 노력이 성사되기 어려운 경우 부득이 IMF의 도움을 받는 방향으로 검 토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하여 11월 13일 부총리 주재로 한은총재, 저 그리고 실무자들이 충분 한 토론을 통해 우리의 독자적인 유동성확보 노력이 성공하기 어렵다는 판 단을 하게 되고 최종적으로 IMF의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부 총리와 한은총재 그리고 저 세 사람이 내리게 된 것입니다. 14일에는 대통 령의 재가를 받았습니다.
과거에는 IMF와의 자금지원 협의에 석달 정도가 소요되었습니다. 아무리 빨리 진행해도 한 달 이상이 걸립니다. 그러나 당시 사정이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었고 95년 IMF총회에서 신속처리절차(소위 Fast-Track)가 채택되었 기 때문에 IMF의 지원을 기정사실로 신속한 자금지원을 받기 위하여 실무 협의 보다도 고위 당국자간의 협의를 바로 시도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 동남아에 체류하고 있던 캉드쉬 IMF 총재를 초청하여 16일 밤에 부총리와 한은총재가 만나 IMF 지원 필요성과 규모, IMF 입장 등에 대해 협의하고 지원원칙에 합의하게 된 것입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저희가 생각했던 것은 당장 급하니까 IMF에서 돈을 빌리고자 하는 단순한 협조 메커니즘은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저희가 생각 했던 것은 한국으로부터 외국 투자가가 탈출하는 것은 한국의 기업과 금융 에 대한 신뢰의 결여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스 스로의 노력을 통해 국제사회의 신인도를 회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IMF와 협의를 시작할 때만 해도 국회에 금융개혁법이 계류되어 있었고, 매우 어려운 상황이지만 통과될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캉드 쉬 총재도 금융개혁법의 통과가 매우 중요하다는 지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금융개혁법의 국회통과를 통해 금융산업의 구조개혁 기반을 제도 적으로 갖추는 것과 동시에 금융산업의 본격적인 구조조정을 주내용으로 하는 종합대책을 수립하여 발표하려고 한 것입니다. 국제사회의 신인도를 근본적으로 회복시키고자 했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우리가 유동성 부족문제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에 IMF 로부터 이에 대한 도움을 받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구조조정 노력 이 보다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는 동시에 국제경제사회의 신인도가 빠르게 회복되리라고 보았고, IMF도 이러한 우리의 노력을 평가하고 이에 협조할 용의가 있다고 약속했습니다.
결과적으로 11월 18일 금융개혁법의 국회통과가 무산되었습니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금융산업의 개혁과 구조조정 노력은 계속 추진할 수밖에 없었 기 때문에 18일 밤에 최종대책을 마련했습니다. 물론 이 대책은 10여 일 동 안 계속 준비했던 것이지만 이날 밤 마무리됐습니다. 그리하여 이 대책을 발표함과 동시에 IMF의 유동성 지원요청 기자회견 과정에서 이를 정식으 로 발표하겠다는 것을 19일 아침에 부총리가 대통령에게 보고를 드린 후 강부총리와 제가 경질되었습니다. 그 종합대책은 후임 경제팀에 의해 발표 가 되었습니다만 우리 생각으로는 새로운 경제팀이 들어와서 전임 팀의 대 책을 그대로 발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 발표를 미루어 놓 고 퇴임을 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된 것인지 그대로 당일 발표가 되었습니다. 발표된 내용 중 우리가 작업한 것과 딱 글자 하나가 달라졌습니다. 애초 외환변동 폭을 아주 없앨 것을 생각하다가 흔적은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서 15%로 정했고, 이는 실질적으로 철폐와 다름이 없습니다. 이것을 10%로 줄인 것이 유일하 게 달라진 것입니다. 그리고 IMF에 간다는 사실이 그 날 발표되지 않았습 니다. 오히려 IMF로 가지 않겠다는 강력한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 뒤 이틀 간의 우여곡절 끝에 21일에 IMF행이 발표되었는데, 이것이 IMF와 미국 등 의 국가들과 갈등을 빚게 되는 이유로 작용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위기를 보는 두 가지 시각
IMF로 가게 된 위기의 배경은 대략 두 가지의 시각으로 집약되고 있습 니다. 하나는 한국경제의 구조적 위기로 보는 시각입니다. 우선 IMF가 그 러한 입장에 있습니다. IMF가 우리에게 자금을 주면서 맺었던 협약의 내용 과 보고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말하길 "현재의 금융, 외환위기의 발생까지 1997년 한국경제의 거시운용 실적은 비교적 양호했다. 성장, 국제수지, 물가, 재정운용, 통화관리 등 비교적 양호했다. 그러나 1997년 초부터 재벌의 연쇄 도산이 이어져, 30대 재벌 중 6개나 도산하면서 경제에 큰 충격을 끼쳤으나 한편으로는 경제의 시장원칙을 확립하려는 의지의 표시로도 이해된다. 그러나 이러한 도산은 금융시스템의 불안정을 촉진하고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GDP의 7.5% 수준인 약 32조(현재는 38조)로 증대시키고 증권가격의 폭락을 유발했다. 홍콩증시 폭락은 한국의 대외금융상황을 결정적으로 악화시키고 한국의 신용등급 하락으로 이어져 단기채 상환만기 연장을 불가능케 하는 현상으로 확산되었다. 한국정부가 정부 약속하에 대외 신인도를 유지하려는 노력(8월25일 '금융시장 안정 및 대외신인도 제고대책' 등)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이 과정에서 금융개혁관련 법안의 국회통과 좌절 등이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의 신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IMF는 한국의 경제위기를 구조적 위기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IMF가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크게 다섯 가지의 사항을 보면 더욱 명확합니다. 첫째 한국의 거시경제 운영방향에 있어 과거 의 고성장정책을 탈피하라는 것입니다. 제로 성장도 필요하다는 것이며, 국 제수지의 균형과 흑자를 최우선 정책목표로 삼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금융개혁, 금융산업 구조조정에 대한 요구입니다. 세 번째는 대기업, 특히 재벌 구조 및 행태를 개혁하라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무역 및 자본시 장을 추가적으로 개방하라는 것으로서, 국제화를 더욱 진전시키라는 것입니 다. 다섯 번째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입니다. 이 다섯가지가 한국의 병인이 고 또 처방이라는 것입니다. 이 다섯가지를 한국이 스스로 치유하지 못하면 한국경제는 국제사회로부터 다시는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부즈-알렌 헤밀턴(Booz-Allen & Hamilton)이 매일경제신문과 관련기관의 용역을 받아 한국경제의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진단하여 97년 10월 초에 발 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지적한 몇 가지에 대해 의미 있게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한국의 경제적 기적은 끝나가고 있다. 한국은 스스로 가 이룬 성공의 희생물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한국은 구조적 장 애와 경영 및 기술의 지식격차에 의해 더 이상의 발전이 불가능하다. 세 번 째는 말은 많으나 행동이 없다라는 지적입니다.
이들이 많은 돈을 받고 한국에 와서 한국경제의 문제점에 대해 용역을 시작할 때 처음에는 한국이 자신의 문제점을 모르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합 니다. 그러나 이들이 연구에 들어가 보니 이미 한국에 많은 보고서들이 나 와 있고 한국경제의 문제점과 처방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해놓은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실천에 옮겨지지 않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말은 많은데 행동이 없다는 것입니다. IMF가 지금 지적하고 있 는 내용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내용을 이미 10월에 던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국의 외환위기 후 세계의 주요 외신들 중에 한국문제를 다루지 않은 언론이 없습니다. 그 언론들의 주장을 종합하면 한국기업의 부실화, 금융문 제, 이것을 직시하고 고치려고 하는 정치적 리더십의 부재, 정경유착의 문 제점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루빈 미 재무장관, 피셔 IMF 부총재, 나이스 IMF 실무단장 등이 연설한 내용만을 보아도 대체로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제가 작년 경제수석으로 있으면서 '시장으로의 귀환'이라는 강연을 여기 에서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한국경제의 3대 신화에 대해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 3대 신화로부터 탈출하지 않으면 한국경제는 성공하지 못한다 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3대 신화는 첫째 고도성장의 신화이고, 둘째는 한국주식회사의 신화이며, 세 번째가 경제제일주의의 신화입니다. 이 신화 는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시작되어 오늘의 우리 경제를 있게 한 성공신화이 지만 변화되는 시장성격과 세계경제 여건하에서는 더 이상 유효할 수 없는 신화이기 때문에 이로부터 벗어나지 않는 한 한국은 더 이상의 발전이 어 려울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좀더 자세한 내용이 필요하신 분들은 작년 제가 이 자리에 와 서 발표한 내용과 96년 8월 26일자 동아일보를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러한 상황에 대해 IMF가 최종적으로 설명한 내용을 보면 "동남아시아로부 터 발생했던 금융위기가 한국에 엄청난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의 상황이 급속하게 악화된 것은 한국의 금융과 기업분야에 있어서의 구조적 취약성에 기인하고 있다(While the contagion effects of developments is Southeast Asia were a contributing factor, the magnitude and speed of the deterioration owed much to the fundamental weakness in Korea's financial and corporate sectors)"라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두 번째 시각은 현재의 문제를 투자가들의 심리변동과 환경적 측면에서 보는 것입니다. 첫째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동안 아시아 경제의 경영효율 성에 대한 전반적인 신뢰저하를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집중적으로 이야기한 대표적인 학자가 마이클 포터입니다. 96년 12월 [Far Eastern Economic Review]를 통해 이야기한 것 등이 바로 그러한 내용입니다. 또 파이낸셜 타임스가 금년 1월 5회 특집으로 꾸몄던 '위기의 아시아'를 보면 아시아 경제에 대한 서구 투자가들의 신뢰저하를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97년 태국과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외환위기가 우리나라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곳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일본에 영향을 미쳤고, 일본은 이 지역에서 회수하지 못하는 투자를 보전하 기 위해 한국의 단기채를 급격하게 회수하게 된 상황이 매우 중요한 것입 니다. 또한 홍콩사태 이후 국제금융 투자가들이 아시아 국가로부터 평균 15%에서 20%까지 채권을 회수해 간 것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블룸버그와 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 등과 같이 많은 영향력 있는 언론들 의 사실 이상의 과장 보도도 투자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내부적으로 보면 한국정부의 단기대책들에 대한 신뢰가 미흡했습니 다. 기아사태 등 주요 경제사태에 대한 처리방향과 관련하여 외국 투자가들 의 입장에서는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습니다. 채무 자가 큰 소리치는 상황, 그리고 그 채무자를 오히려 영웅시하는 분위기가 존재하는 한국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기 시작했고, 금융개혁법 통과의 실패 등이 한국의 문제해결 능력을 의심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책임 있는 자리에 있었던 사람으로 다 말하기 어려운 여러가지 요 인도 있었고, 투자가들의 비합리적 요인도 있었다고 봅니다.
본질적으로 한국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에 대한 부분적이며 단편적인 불신 감이 일시에 전염병처럼 번져 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IMF는, "근본적으로 외환위기는 예측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외환위기가 발생할 것인지 또 언제 발생할 것인지는 투자가들의 심리의 변화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Financial crises may be inherently nonforecastable, because their occurrence and especially their timing are intimately linked to sudden changes in investor confidence)"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심리의 변화 가 반드시 합리적인 방법으로 설명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점도 생각해야 됩니다.
이러한 입장을 뒷받침하는 것이 MIT 대학의 폴 크루그만 교수입니다. 그 가 말하길 "아시아의 위기와 관련하여 전통적 통화이론으로 설명하기는 불 가능하다. 특히 한국의 경우에 그러하다. 경제위기를 보여 주는 전통적인 지 표들이 최근의 아시아 위기를 전연 감지하지 못했다"라고 스스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영섭, 이종욱 교수가 '한국의 금융위기 - 그 원인과 대책' 이라는 세미나 자료를 통해 "외환위기의 예측과 관련한 각종 지표에는 특이 한 움직임이 없었다. 우리기업들의 높은 부채비율은 30년 전부터 누적되어 온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3 4주 만에 급격한 상황변화가 온 것은 '날 벼락'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외환위기는 결과로서 초래된 것이며, 축적된 한국경제의 구조 적 문제점과 이를 직시하고 정면으로 개선하려는 총체적인 국가 경영능력의 미흡 등에 배경이 있었고,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이 해결될 가능성이 희박하 다고 보는 투자가들의 급격한 심리 변화에 직접적인 발생 요인이 있는 것입 니다.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외환위기로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 다. 그러나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다면 항상 외환위기가 올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어차피 한 번 올 위기라 면 빨리 온 것이 오히려 더 다행일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드린 자료에 보면 대응방안이 적혀 있습니다. IMF가 우리보다 훨씬 탁월하여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대책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가 적어도 한국경제의 문제를 구조적 문제라고 생각하고 이미 알고 있 었고 그러나 실천을 못하고 있던 처방들을 그들이 와서 하도록 요구하고 있 는 것입니다. 즉 우리 사회의 총체적 경영능력의 결여를 IMF가 메워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현재의 김대중 대통령을 포함한 신정부 는 매우 행복한 입장에서 경제정책을 풀어 가고 있다고 봅니다.
경제구조 개혁이 본질적 해결방법
마지막으로 결론을 내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외환위기에의 대응차원이 아 닌 경제구조 개혁차원에서 문제에 접근해야만 문제가 근본적으로 풀릴 수 있다고 봅니다. 두 번째로 IMF 구조개혁 요구사항은 거의 전부 이미 국내 에서 논의되었던 사항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그러한 문제에 대해 우리의 해 결노력이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해결노력과 관련하여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것은 과연 논의가 있었는지의 여부와 그 구체성 그리고 대안은 제시되었으 며, 이러한 대안을 법제화하는 노력이 있었는지, 마지막으로 이 과정에서 어떤 이유에 의해 좌절되었는지를 분석하는 일입니다.
이러한 분석과정을 통해 누가 누구를 비판하자는 차원을 넘어 우리 스스로의 문제해결 능력에 대한 부족원인을 찾아가는 접근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IMF 체제에 의한 구조개혁은 우리 스스로의 힘에 의한 것보다는 못하지만 차선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개혁이라는 것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쉬웠던 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개혁의 주체가 제대로 평가를 받아 본 적도 없습니다.
현재 우리는 매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어렵고 재 미없는 세상이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금 많은 분들 이 어떻게 하면 IMF 체제로부터 조기 졸업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신바람나고, 활기찬 경제로 돌아갈 것인지에 대해 생각 합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신바람나고, 활기찬 경제는 더 이상 없다고 봅니 다. 그리고 있어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경제는 건전한 경제입 니다. 원칙에 충실하고 국제사회와 어울릴 수 있는 경제체제가 되어야 합니 다. 그러한 사회는 우리가 전에 경험한 신바람나고, 활기찬 경제는 아닙니 다.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각 분야의 사람들이 재미없는 세상을 살 각 오를 해야만 합니다.
저는 이번 사태를 보면서 우리사회가 문제의 원인과 결과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회인지에 대해 많은 회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OECD가 추구하고 있는 중요한 것은 지식기반사회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우리사회의 현실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특히 정보화사회 이후 지식사회의 도래에 따라 기존에 우리가 중시했던 생산요소의 중요성 은 상대적으로 작아지고 있고, 지식과 지혜의 가치가 경제의 모든 부분을 좌우하는 사회가 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접근도 이러한 사회의 흐름과 일치 되게 합리적으로 국제적 시각에 맞게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경제적 접근만으로는 가능하지 않 습니다. 문제를 풀어 가는 사회의 총체적 문제해결 능력, 그리고 이러한 능 력을 키워 가는 정치적 리더십이 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정치적 리더십이 확립되고, 사회의 각 계층이 지원해 나가는 사회적 변화가 오기 전에는 어 떤 주요한 경제적 문제도 해결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될 것이라는 점을 결론으로 말씀드리면서 제 말을 마칩니다.
질문: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의 경제문제는 이미 오랫동안 지적되어 온 것 이기 때문에 전혀 새로운 것은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국가경제를 이끌어 가는 중요한 입장에 계셨던 분으로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봅니다. 매스컴의 동원과 정치권을 움직이는 노력, 그리고 대책 강구가 부족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세 분이 대부분의 정책을 결정했는데 국 내의 유수한 연구기관의 의견도 깊이 청취하는 것이 필요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우리경제에 대한 구조적 문제점에 대한 처방방안은 가지고 있었 다고 하셨는데 왜 하지 못했는지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기 바라며, 3공 이 후 정부주도하의 경제체제 속에서 구조조정의 적절한 시기가 있었다고 봅 니다. 과연 어느 시점이 구조조정의 적기였는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변 사회 각 계층에 대한 설득노력이 부족했다고 지적하셨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솔직히 100% 잘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다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하나 생각해 주실 것 은 언론 등에 보면 저희가 그때 사실을 은폐하고, 보고하지 않았다는 보도 가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하실 것이 사실을 은폐할 이유가 무엇이 있었겠습 니까? 보고를 안 할 무슨 이유가 있으며, 그로 인해 무슨 이득이 있었겠습 니까? 최소한 그런 의문은 우리사회가 가져야 할 것입니다.
예컨대 각 부처의 모든 소관사항에 대해서는 장관이 최종적인 책임을 집 니다. 그렇다고 해서 장관이 그 부처의 모든 일을 다 알고, 다 보고받는 것 은 아닙니다. 그랬다가는 장관 일을 하나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장관이 직접 알아야 할 일만 보고를 받고 그에 대해 결정을 내립니다. 이것이 조직 입니다. 대통령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통령이 알아야 할 사항과 결정 해야 할 사항을 중심으로 보고드리는 것이지 전행정부의 100만 공무원이 올리는 모든 보고를 대통령이 듣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간단한 원리를 이 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외환위기의 성격상 대외적으로 공개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습 니다. 예를 들어 정확한 외환통계를 외부적으로 발표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국제적으로 서로 묻지 않는 것이 예의에 속합니다. 그래서 외환전문가들이 만났을 때 정확한 수치를 말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서로 묻고, 답하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닌 것입니다. 특히 IMF로 가는 문제의 경우도 IMF로 가는 것이 최종 결정될 때 발표하는 것이지 그 전에는 IMF로 간다는 논의 자체가 외환시장에 엄청난 교란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최종 결정 전까지는 극비로 처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캉드쉬 총재도 비밀리에 초청해 회담을 했습니다. 정부 내에서 이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사람 은 대통령, 대통령 비서실장, 부총리, 경제수석, 한국은행총재, 재경원의 금 융정책실장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논의과정에는 실무자들이 참석했지만 IMF로 가는 결정을 할 때는 다 퇴장시키고 필요한 사람들끼리만 남아서 논의해 결정한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가지 오해가 있을 수도 있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많은 연구기관들이 있는데 왜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는지에 대해 물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재경원 산하에는 KDI와 금융연구원, 조세연구원 등 첨단 연구기능을 가진 기관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한국은행 스스로도 자 체 연구기능을 가지고 있을 뿐더러 많은 전문가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모든 의견들이 종합된 것을 바탕으로 각 기관의 의견이 제출되고 그것을 놓고 의논하였기 때문에 필요한 수렴절차는 거쳤다고 봅니다. 또한 정치권과 매 스컴에 대한 설득 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하셨는데 나름대로 한다고 했 지만 과히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봅니다.
결과를 놓고 볼 때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구조개혁 노력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신인도를 회복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는 것을 누차 강조 했지만 우리의 설명이 부족했든지 아니면 다른 정치적인 득실의 계산이 있 었든지 금융개혁법이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이런 점을 아쉽게 생각하고, 당 사자로서 노력이 충분했는지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또한 제가 말한 4단계의 외환위기는 3단계까지의 외환위기와는 양상이 매우 다릅니다. 4단계의 외환위기에 대해 이영섭 교수와 이종욱 교수의 연 구보고서에 의하면 이렇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외환위기가 발생한 이후 외 환위기를 예측했다고 하는 학자, 관리, 전문가들이 속출하고 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전에 작금의 상황이 심각하다고 지적한 사람은 없었다. 특히 어 느 누구도 일본이 한국의 단기외채 상환연기를 거부함으로써 즉각적인 외 환위기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제가 서두에서 말했습니다만 우리나라 경제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97 년 초부터 외환위기를 발생시킬 수 있는 구조적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동안 외환위기의 발생을 예방하는 근본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 고 끊임없이 주장했습니다. 저도 그러한 주장을 했던 사람 중의 하나입니 다. 또 그렇기 때문에 대책도 세우고, 외국과 협의도 했으며, 김기환 박사를 순회대사로 선임하여 외국에 우리경제의 실상을 설명함으로써 문제를 사전 에 완화하려고 노력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11월 초에 발생한 외환위기가 그 때 그런 형태로 발생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았던 사람은 없습니다.
이에 대한 대책을 사전에 하지 못한 점은 매우 아쉽습니다. 그러나 설사 알았을지라도 무슨 대책이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특히 외채에 대한 전면 회수를 한두 달 전에 설사 알았을지라도 무슨 대책이 있을 수 있었겠습니 까? 우리의 부채구조를 고치고 단기채를 중장기채로 바꾸고, 기업경영을 건 실화하고, 금융의 부실을 거두어 내는 등 IMF가 지금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사항을 몇 년 전부터 실시하는 것 외에 무슨 대책이 있을 수 있었겠 습니까? 한국은행에서 23번에 걸친 보고를 했다고 하지만 보고내용을 보면 일반론적인 보고입니다. 10월 27일의 보고서에서 IMF를 언급했다고 하는 데, 그 내용을 보면 IMF에 가면 문제가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IMF에 가기 보다는 중앙은행간의 협조에 보다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즉 IMF에 가지 말자는 내용의 보고서였습니다. IMF로 가야 문제가 풀릴지도 모른다고 재 경원과 한은이 제기한 것은 11월 7일이고, 그 이전에 대한민국에서 어느 누 구도 한국의 외환위기가 IMF에 가야할 상황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말 한 사람은 없습니다.
구조적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지 못한 점을 지적해 주셨는데 저도 매우 아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문제의 인식능력과 그 처방에 따른 실천 역량이 우리 사회에 있느냐는 문제와 연결됩니다. 그 부분에 대해 아쉽다는 말을 다시 한번 반복하고 싶습니다. 적절한 구조조정의 시기를 물으셨는데 매우 중요한 질문이라고 봅니다. 최근 이면우 교수가 '신창조론'이라는 내용 으로 한국경제신문에 연재를 했습니다. 이분은 1975년부터 우리가 구조조정 에 들어가야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박대통령 시절에 현재의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구조로 정립 되었던 것이 70년대 중반입니다. 그러나 그때부터 우리의 구조적 문제가 축 적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79년에 강경식 전부총리가 신현확 부총 리 시절 경제기획원 차관보로 재직하고 있으면서 '안정화 종합대책'을 수립 했습니다. 그 동안 확대지향적인 경제정책으로 인해 흐트러졌던 경제의 안 정기조를 다시 다져야 한다는 내용의 우리경제사에 매우 중요한 정책입니 다. 그때부터 구조조정 노력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또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 제가 차관보로 있던 시절 토지공개념 정립, 안정화정책 실시, 금융실명제 도입 시도 등 실효성 있는 구조조정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김영삼 정부에 들어서도 일방적인 비난을 듣고 있지만 나름의 구조조정 노력을 한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기업의 구조조정 노력은 제가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있을 때와 그 이전에 몇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성공과 실패가 있었습니다.
특히 가장 중요한 금융의 근본적 개혁을 위해 총체적 노력을 기울였던 것은 작년이었다고 봅니다. 지금에 와서 경제가 무너지는 판인데 금융개혁 노력만 하고 있었느냐는 비판을 하는 분들이었지만 저는 백 번 그러한 비 난을 하더라도 그렇게 했어야 했다고 봅니다. IMF가 들어와 우리가 국회에 통과시키지 못한 법안들을 12월 29일 통과시켰습니다. 만약 그때 우리가 엄 청난 비난 속에서 싸움을 하면서 금융개혁 프로그램을 만들어 놓지 않았다 면 IMF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그 짧은 시간에 방대한 금융개혁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한 의미에서 구조개혁에 대한 상당한 노력이 있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것이 결국 의도했던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했거나, 적절 한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에 남의 힘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기억나는 것 중의 하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금융개혁법 추진을 위해 여 러 연구기관의 책임자들에게 협조요청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대우경제 연구소의 이한구 소장이 과거의 역사를 통해 볼 때 이번에도 결코 통과되 지 않을 것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저는 절대로 통과된다고 말을 했습니다. 결과는 통과되고야 말았습니다. 마지막 못을 박은 것이 우리가 아니어서 그 렇지 통과는 된 것입니다. IMF 선생이 와서 마지막 못을 박은 것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노력을 하고, 축적된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지 IMF가 처음부터 와서 못을 박은 것은 아닙니다.
질문: 서두에서 혹시 변명으로 들릴까 염려가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제가 다 들어보니까 변명은 없고, 아주 객관적이고 정론에 입각하여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것 중에 외환위기의 4단계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저는 첫단계에 앞서 노동법 파동이 첫 단추를 잘못 채운 것이라고 봅니다. 노동법 파동이 적절하게 처리되었다면 이어지는 경제위기를 적절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이것은 IMF가 지적했던 노동시장의 경직성 문제와 직결된다고 봅 니다. 이것은 정치적인 리더십과 관련이 되는데 정치적 리더십이 제로가 아 니라 마이너스가 되는 상황에서는 문제가 더욱 악화된다고 봅니다.
그리고 결론에서 비경제적 접근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설명을 들으니 이해는 되지만 잘못하면 정치적 접근으로 오해할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보 다 적절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또한 이러한 사태에 대해 앞으로 우리가 교훈을 삼기 위해서는 정치적 리더십의 문제에 대해 많은 연구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이것을 정리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봅니다.
답변: 노동법 파동에 대한 지적은 저의 재임 중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제 외한 것이지 중요한 사건이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리고 비경제적 접근이라는 표현이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말씀도 하셨는 데 다음에 원고를 쓸 때 지적을 감안하여 보다 적절한 표현을 찾도록 하겠 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매우 중요한 지적을 하셨는데 제가 30년 간 정부의 책임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경제가 잘된 것에도 저의 일부 공이 있고, 우리경제가 잘못된 데에도 일정 정도의 과가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책임의식을 전제로 말씀을 드리면 한두 사람의 잘못에 의해 우리경제가 과 연 달라질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한두 사람이 잘 하면 우리 경제가 달라져야 할 것 아닙니까? IMF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100 일이 넘었는데 우리 경제가 좋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안고 있던 구조적 경제문제가 본격적으로 노출된 것이고, 그것은 하루아침에 치 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반증이라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갈 주요 세력인 정치지도자들, 관료, 대기업 지도자, 금융, 언론, 노조, 지식인들이 과연 우리의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행동을 해왔 으며, 이것이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적 리더십과 어떻게 연결되고 있 었는지에 대해서 비교적 가까이에서 지켜볼 기회가 있었던 사람으로써 책 이라도 쓰면서 정리하고 싶은 개인적인 욕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제가 관찰한 관점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습니다.
질문: 조금 거북한 질문이지만 이러한 환란 발생과정에서 김영삼 대통령께서 하신 역할이 과연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가장 측근에서 모신 분으로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외환위기는 예측불능이라는 말을 하셨는데 저도 동감입니다. 그런데 일본의 컨설턴트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다분히 미국사람들에 의한 한국 버릇 고쳐 주기의 의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본의 단기외채 연기 결정에도 미국의 작용이 있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과연 미국의 의도가 무엇인지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변: 대통령의 역할에 대해서는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고 봅니다. 역사에는 거짓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다 밝혀지게 될 것입니다. 제가 측근에서 모셨던 사람으로서 이분을 필요 이상으로 격상시키는 것도 또 격하시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으며 사실대로 역사에 나타날 것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우리경제에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우 리가 이 점은 전제로 해야 할 것입니다. 그분이 해야 할 역할과 관련하여 어느 언론에서 보도한 바와 같이 대통령의 역할이 전혀 없었다고 보는 시 각도 있고, 그렇지 않았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것은 역사가 평가할 문제 입니다.
다만 외환위기와 관련하여 대통령에 대한 보고는 적절히 이루어졌음은 분명합니다. 또 대통령도 그에 대한 적절한 관심을 보였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상황을 몰랐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어 떻게 모를 수 있었겠습니까? 그 당시의 상황이 언더 테이블로 진행되는 것 도 아니고 우리사회가 들끓고 있는 상황인데 국정의 최종 책임자가 그 상 황을 모를 수 있겠습니까? 청와대 내용을 아시는 분들이라면 수석비서관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잘 아실 것입니다. 대통령에 대한 보고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수석비서관 사이에서 서로 대통 령에게 한 번이라도 더 보고를 하려고 경쟁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 다. 특히 10월 홍콩사태 이후 저는 거의 무상출입으로 대통령을 뵈었고, 대 통령이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로 상황을 물어 왔습니다. 그 외의 역할에 대 해서는 오늘 말씀드리기에는 적절치 않다는 점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음모설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 적어도 대외관계에 있어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지난주에 나왔던 시사저널에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믿기도 어렵고, 안 믿기도 어려운 기사가 나왔습니 다. 저 개인적으로는 우리 국민들의 초점이 그러한 방향으로 흐트러지는 것 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구조적 문제에 대한 적절한 준비를 해왔다고 한다면 설사 그러한 문제가 있더라도 이에 충분한 대응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그 동안 96년부터 경상수지 적자가 현격하게 늘어나는 모습을 보고 외환위기가 올 것이라는 짐작을 했고, 누차 이러한 지적을 했지만 구체적인 대책이 없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신정부 들어서도 대책이 없기는 마찬가지 라고 봅니다. 우리가 이러한 사태를 탈출하기 위해서는 국제경쟁력을 회복 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고 봅니다. 또한 가격과 품질 면에서 중국과 일본에 뒤져 있는데 특히 중국에 비해 몇십 배가 높은 임금의 경우 우리상품의 경 쟁력을 잃게 만드는 결정적 요인이라고 봅니다. 보다 실효성 있는 정책을 가지고 경제회복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할 시기라고 봅니다.
답변: 96년의 경상수지 적자가 우리의 현재 경제문제 발생의 원인이 되었 다는 지적에 동감합니다. 경상수지 적자가 계속되면 버틸 수 있는 경제는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희 경제팀은 우리가 성장에 집착하는 한 경상수 지 적자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노사문제를 풀어 가는 데 있어서도 우리가 성장목표에 집착하는 한 이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 했습니다. 우리가 성장목표를 희생하더라도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해야 하 며, 거시경제운용에 있어서는 국제수지 개선에 정책적 초점을 두어야 한다 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240억 달러 가까운 적자 를 그 다음해에 바로 없애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100억 달러대 이하로 낮추 는 것으로 정책의 기조를 끌고 나아갔던 것입니다.
국제경쟁력의 회복이 우리의 살 길이라는 지적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다만 어떻게 국제경쟁력이 살아날 것인지에 대한 방법론이 문제가 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 취약성을 고치는 것을 통해 우리의 경쟁력을 회복시킬 것인가, 아니면 3공, 4공 시절에 했던 방식으로 단기적인 대책을 통해 개선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의 문제입니다.
또한 임금 동결의 경우도 정부가 임금을 동결한다고 동결할 수 있으면 아무 걱정할 것도 없습니다. 대기업 하시는 분들이 끊임없이 요구하는 것이 임금동결과 한 자리 수의 금리입니다. 그러나 400%의 부채비율을 가진 기 업의 부채 구조하에서 다시 말하면 기업이 끊임없이 무한정의 자금을 수요 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리가 낮아질 수 없는 것입니다. 금리는 금융서비스 시장에서 결정되는 하나의 가격입니다. 기본적으로 수급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노동문제의 경우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우리나라에 투 자할 나라가 없습니다. 가령 과도한 노동력을 정리할 힘이 없다고 할 때 투 자할 사람은 없습니다. 작년 10월에 공식통계에 의한 실업률은 2.2%였습니 다. 그런데 부즈 -알렌 보고서는 우리나라가 실질적으로 11.2%의 실업률을 가지고 있는 나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직장에 10명 중 한 명 의 한계생산성이 제로인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생산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노동력이 10명 중 한 명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 다. 이것이 우리의 노동구조이며, 이러한 구조에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 습니다.
지적하신 점에는 동감하지만 문제는 방법론입니다. 이것을 시장에서 풀어 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노동시장의 활성화를 통해 다양한 구조조정이 가 능해야 합니다. 다만 실업자의 생활을 위해 고용보험제도도 만들고, 재훈련 제도를 늘리고 고용정보도 제공하고, 실업자에 대한 수용이 가능하도록 신 산업의 탄생이 용이한 산업구조를 만드는 것이 정부의 역할입니다. 이러한 점에 대한 준비가 그 동안 부족했다고 봅니다.
질문: 정책결정과정에서의 우선 순위는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외환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귀중한 외환을 100억 달 러 이상 사용했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기아사태의 경우도 처리과정 에서 마찰이 많았고, 이로 인해 위기를 가속화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 대해 언급이 없으셨는데 보충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변: 우리가 했던 정책이 우선 순위 면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말씀 드릴 자신은 없습니다. 또한 환율방어와 관련하여 과연 적절한 선택이었는지 에 대한 비판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한보사태 발생시 외환시장이 매우 어 려웠는데 외환방어를 위해 68억 달러를 사용했습니다. 작년 11월 1일부터 18 일까지 시장개입을 위해 56억 달러를 사용했습니다. 우리는 시장의 수급에 의해 자유스럽게 결정되는 환율정책을 고수하려고 했습니다. 즉 수요 공급에 의해 자연스럽게 외환의 수급이 조절되고, 이 수급조절에 의해 환율이 변동 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시장에 교란요인이 있을 때가 문제가 됩니다. 정상적으로 움직일 때 는 시장에 맡기는 것이 좋은데 시장에 엄청난 교란요인이 왔을 때 이를 방 치할 경우 새로운 교란요인이 생기게 됩니다. 즉 외환에 대한 투기요인이 생 기고, 외환당국의 환율안정의지를 테스트하는 힘이 시장에 접근합니다. 이러 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매우 고민스럽게 됩니다. 특히 작년 10월 말에서 11 월 초까지 하루하루가 전쟁을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한국은행 과 재경원의 실무자들은 그 분야에서 수십 년 간 일한 실무자지만 그 사람 들도 어떠한 결정을 내릴지에 대해 매우 판단하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IMF에 대한 공식지원을 검토하는 시점에서는 만약 IMF의 지원이 결정되면 바로 상업베이스의 금융이 재개되고 그러면 외환위기로부터 벗어 날 수 있다고 보고, IMF에 가는 것을 공식화하기까지는 외환시장을 너무 교 란상태로 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최소한의 환율방어 노력을 했던 것입니다. 외환시장의 교란요인이 발생했을 때 과연 어느 정도까지 개 입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매우 어려웠던 점이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기아사태는 처리가 늦어진 것 때문에 신인도가 하락된 것은 아닙니다. 기 아처리는 어차피 부도유예협약이 이미 만들어진 상태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두 달 간의 기간을 통해 처리방안을 논의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진로의 경 우 매우 성공적으로 이 제도가 작동했습니다만, 기아의 경우는 기아가 이 제도를 이용하여 문제를 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기아의 김선홍 회장이 채권은행단을 찾아가 협의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그 당시 그분이 어떻게 행동을 했고, 언론과 정치권이 어떠한 반응을 보였 는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모터 쇼에 참석했고, 국민기업 운운하며 언론의 지원을 끌어들이고, 정치권에서는 자금을 지원하 여 하청기업에 문제가 없도록 하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금융기관이 돈을 주지 않겠다고 하는데 정부가 어떻게 돈을 주라고 요구할 수 있으며 해서 되겠습니까? 오히려 외국 투자가들은 시장원리에 의해 기아를 처리하 지 못한, 즉 부도를 내고 기업정리를 하지 않은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도를 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으며, 만일 그렇게 했다면 정부 가 무너졌을 것입니다. 만약 강부총리가 그렇게 했다면 그 당시 그만두었을 것입니다. 그 상황하에서는 정부가 취한 방안 이외에는 우리사회의 여건상 가능한 다른 대안은 없었다고 봅니다. 그때 기아문제로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안을 제시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유용한 대안이 있다면 정부가 채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아무도 대안을 제시 한 사람이 없습니다.
질문: 제가 보기에는 경제팀이 거시지표를 너무 과신하였다고 봅니다. 또 반도체에 대해 너무 과신하여 우리경제가 엉망이 되었다고 봅니다. 결국 과 거 경제팀이 우리경제에 대한 안목이 부족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외환위기 에 대해 대통령에게 너무 늦게 이야기하여 타이밍을 놓쳤다는 느낌도 있는 데 이에 대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변: 과신했다는 지적을 하셨는데 과신보다는 상황을 상황대로 인식했다 고 봅니다. 다만 우리경제가 거시지표로 나타난 것보다는 구조적으로는 심 각한 문제가 많다는 것을 강부총리나 저보다 더 절실하게 느낀 사람은 없 다고 봅니다. 적어도 기본적으로 강부총리와 저는 우리경제의 문제점에 대 해 평소 구조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경제에 구조적 문제가 많이 축적되어 있고, 이것을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우리보다 더 심각하게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만 거시지표상의 밝은 면에 대해 강부총리가 국회와 여러 자리에서 발 표한 것을 가지고 경제를 너무 오도했다고 지적합니다. 그런데 우리경제가 어려워졌고, 외국의 투자가들이 우리나라로부터 철수하려는 상황에서 경제 의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이 한국경제가 곧 망할 지경이니 돈을 빌려 달라 고 하면 아마 정신이 나간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 식의 접근은 있을 수 없 습니다. 어느 회사가 어려울 때 부도나기 직전이라며 돈을 빌려 달라고 하 면 아마 아무도 빌려주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경제의 기초는 괜찮은데 다만 유동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빌려 달라고 해야지 도와주는 것입니다.
다른 예를 하나 들면 김대중 당선자가 97년 12월에 '내가 곳간 문을 열어 보니 달러가 하나도 없더라'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 1,700원대이던 환율이 하룻밤 사이에 거의 2,000원 수준으로 뛰었습니다. 그때 한국계 신 용카드를 가지고 해외에서 사용을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었습니다. 그래서 김당선자가 신년사를 할 때 '우리경제의 기초는 아직 튼튼하고'라고 말을 했습니다. 똑같은 분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적어도 경제의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고 봅 니다. 좋은 점이 강조되어야 할 때는 좋은 점을 강조하고, 나쁜 점이 강조 되어야 할 때는 나쁜 점이 강조되어야 합니다. 경제가 이렇게 되고 나니까 그때의 경제 기초여건이 엉터리였다고 하는 것은 무리라고 봅니다. 그렇다 면 IMF가 와서 왜 경제 기초여건은 건전하다고 평가했겠느냐는 것입니다. 반도체에 대한 과신은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제가 공정거래위원장 시절에 강연하고 다닐 때 우리의 5대 주력품목에 대해 경쟁력이 한계에 도달했고, 특히 반도체 이후의 유력 상품이 없는 것이 우리경제의 위기라고 말했습니 다. 메모리형 반도체가 세계시장을 석권할 때 그러한 성과에 너무 매몰되었 던 점에 대해 깊이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에 대한 적절한 조언의 경우도 전에 거론되었지만 도대체 말을 하 지 않아서 이득을 볼 것이 과연 무엇이 있겠습니까?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 을 했고, 11월 초에 있었던 단기채 중심의 전면적 롤 오버의 중단사태는 설 상 우리가 한두 달 전에 알았더라도 다른 대안은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다 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2000년 3월 28일 - 한양대 강의 녹취전문
[ 세계경제의 흐름과 21세기 한국 경제의 선택 ]
여러분들 매우 반갑습니다.
이렇게 많은 학생들 뵙고 또 여러분들에게 우리 경제가 어떻게 걸어왔고 또 어떻게 가야 될 것인가에 대해서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얘기할 수 있게 되어서 제 개인적으로 매 우 기쁘고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다만 이 짧은 시간에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들 을 전부 소화시킬 수 있을지 좀 걱정이 됩니다. 제목에 대해서 충분히 여러분에게 주지가 되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은 제가 오늘 정한 제목은 '세계 경제의 흐름과 21세기 한국 경제의 선택'이라고 정했습니다. 이것은 '21세기 세계와 한국'이라고 하는 큰 프로그램의 한시간을 맡았기 때문에 그 제목에 적합하게 정했습니다.
지금부터 꼭 10년 전 1990년 7월경으로 기억하는데 저는 그때 소련과 우리나라의 수교를 트기 위해서 수교사절단 즉 민간사절단의 사실상 실질적인 책임자로 모스크바에 갔습니 다. 여러분도 기억하시겠지만 지금은 우리가 러시아가 된 모스크바에 왔다갔다 하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때만 해도 소련과 우리는 수교가 없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또 소 위 적성국가의 대표적인 나라인 소련에 발을 들인다는 그 자체가 매우 흥분되고 한쪽으 로 두렵기도 한 시절이었습니다.
모스크바의 밤에 내려서 호텔에 가서 하룻밤을 자고 그 다음날 아침에 호텔 카운터에 가 서 보니까 내 눈에 탁 들어오는 문구를 써 부쳐 놓았습니다. 'US dollar only' 또 조금 옆에 보면 'hard currency only' 란 글이 써 있습니다. 무슨 말이겠습니까? 그 당시 소련 의 대표적인 일류호텔에서 소련 또는 즉 루블화는 받지 않습니다. 오로지 미국의 달러만 받습니다. 아니면 달러하고 언제든지 외환시장에서 환전이 가능한 소위 경제학에서 얘기 하는 경화(hard currency) - 영국의 파운드, 독일의 마르크, 일본의 엔, 프랑스의 프랑 등 이러한 경화만 받습니다. 미안하지만 소련의 루블화는 사절합니다. 제가 그걸 보는 순간, 이십 여 년의 경제 관료로서 당시의 정부의 대외경제정책 실무책임을 지고 있었던 저의 모든 경제적 경험과 지식을 동원해서 머리에 탁 떠오르는 것이 '아, 소련은 끝났구나, 이 경제는 며칠 못 가겠구나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이후에 여러분 기억하시겠지만, 제가 정확한 날짜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아마 1990년 말쯤 국제 정치적으로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동서 냉전이 종식되고, 경제적으로는 사 회주의 경제, 동구경제가 소련을 비롯하여 몰락하고 시장경제로의 전환이 시작되는 그러 한 대시대적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여러분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소위 금년 들어오면서 또는 작년 재작년부터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를 맞아 우리가 어떻게 무엇이 달라지고 어떠한 적응을 해야 하는가 하는 것으로 국가적으로 엄 청난 논의와 준비를 하고 언론에서도 하루도 빠짐없이 그와 같은 이야기가 있었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라는 것이 달력을 넘겨서 1999년 달력을 떼어내 고 2000년 달력을 다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인가요? 그렇다면 그까짓 시대의 변화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21세기의 시작이 2000년 1월 1일이냐, 2001년 1월 1일이냐 라는 별 로 중요하지 않은 논쟁을 하는 것 이외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시대의 변화는 그러한 달력을 떼어내고 붙이는데 있는 것이 아니고 이미 10년 전에 베를 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으로 어떤 의미에서 완성되고 전개되고 있었다고 보아집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시대의 변화를 어떻게, 무엇을 통해, 언제부터 느끼기 시작했습니까? 아마 요새 여러분들은 시대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특히 디지털 경제, 디지털 네트워크가 보편화 되면서부터 아마 여러분보다 우리같은 나이든 세대가 절 감을 하겠지만 '아, 지금까지 살아온 세대하고는 너무도 다르구나, 도대체 뭐가 이렇게 바 뀌냐, 바뀌는 과정에 내가 과연 적응하고 살아갈 수 있겠는가, digital or die! 내가 여기 서 순응하면 살 것이고 아니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을 나이든 세대들은 느끼고 있 습니다. 우리 세대보다는 덜하겠지만 여러분들도 몇 년 전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다른 것 을 아마 피부로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러한 변화의 본질적 시작은 엊그 저께 혹은 이삼년전의 일이 아니고 10년 전에 이미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다만 오늘의 변 화는 그러한 시대적 변화의 연장선상에서 나타나고 있는 하나의 특이한 현상에 불과하다 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사람들이 시대의 변화에 얼마나 둔감하냐, 하는 것에 대해 재미있게 얘기한 사람이 있습 니다. 현재 일본에서 경제기획청 장관을 하고 있는 사까야마 다이치라고 하는 유명한 경 제평론가이고 미래학자이며 저술가이자 강연가인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원래 관료 가 아니고 -일본은 원래 의원내각제이기 때문에 국회의원이 되어야 장관이 되는 것이 원 칙인데- 지금 일본내각에서 국회의원이 아니면서도 장관을 하고 있는 극히 예외적인 사 람입니다. 이 분의 90년 초에 어떤 책에서 쓴 글을 읽어보니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시대의 변화를 사람이 인식하는데 얼마나 둔감하고 느리냐, 시대의 변화에 가장 먼저 깨 닫는 사람은 기업가다. 그러나 대개 5년 걸린다. 5년쯤 지나야 '아, 시대가 변했구나'하고 느낀다. 그 다음은 정치가인데 이러한 변화를 느끼는데 10년이 걸린다. 가장 느린게 누군 가 하면 관료들 소위 공무원들인데 -저도 관료 출신인이지만- 15년 걸린다"는 말이 나옵 니다. 그래서 15년 걸려서 시대가 바꿔 다음 시대로 넘어갈 때쯤 되어야 그것을 인식한다 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로 일본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한 애기입니다. 그만큼 시대의 변 화를 정확히 인식하고 그것을 timely하게 깨닫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요즘 디지털 시대의 특징중 하나는 속도의 시대이기 때문에 옛날보다는 빨라진 것 같습 니다. 그래서 여러분 중에 아무리 느린 사람도 시대가 바뀌었구나 하는 것을 다 느끼고 있을테고, 우리나라의 정치가들이나 관료들이나 기업가들도 이제쯤은 다 느끼고 있습니 다. 그런데 몇 년 전만 해도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매우 많 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통해서 어쩌면 매듭지어지고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우리 가 뉴밀레니엄이라고 밤낮 말하는 21세기의 흐름 특히 경제적 흐름을 좌우하고 있는 주 요한 특징은 무엇인가?
첫째로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완전한 승리로 일단 보아집니다. 즉, 사회주의 경제체제 내 지는 계획 경제체제와 시장경제체제 내지는 사회주의 경제체제와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몇 십년 간의 걸친 싸움이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완전한 승리로 일단 매듭지어진 것이 아 닌가 합니다.
두 번째로 소위 Global economy 혹은 Interlinked economy 하는 온 세계가 통합된 하나 의 경제로 재구성되는 이러한 흐름이 두 번째 흐름이 아니겠습니까?
세 번째는 정보통신입니다. 소위 정보화사회가 시작되면서 기업가정신을 가진 개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집니다. 과거에는 정보라는 것이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에 있어서 생산자는 주로 우월한 정보를 갖고있고 소비자들은 주로 정보의 부족에 직면해 있고, 여기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매우 비대칭적인 관계가 형성되고(problem of asymmetric information), 여기서 소비자가 항상 열등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는 우리 시장경제체제가 갖고 있는 중요한 문제점의 하나가 어느 의미에서는 완전히 해소되는 시장경제의 본질에 적합한 그러한 형태로 경제흐름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 세 번째의 흐름이 아닌가 봅니다.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한 걸음 더 나간 것이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사회 변화의 특징이라고 얘기하고 있는 소위 지식사회의 전개, 또는 디지털경제 사회의 전개라고 하는 흐름이 아닌가 하고 보아집니다.
이러한 시대 변화의 흐름, 세계 경제 여건의 변화의 흐름을 제대로 빨리 인식하고 여기에 대응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90년대 이후 세계경제에 차지하는 각 국민 경제의 역할은 크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지금 현재까지 나타난 최고의 승리자는 말할 것도 없이 미국입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의 경제가 세계에서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 아니 었나 싶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미국의 많은 학자들이 일본경제를 배우자. 일본이 미국을 따라잡는 것은 시간문제다 해서 많은 미국 사람들이 좌절감에 빠져 있었던 때가 있었지 만 미국은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빨리 국가적으로 혹은 정부가, 기업가들이 혹은 소비자 들이 이것을 인식하고 여기에 대응을 하고 대응하는 과정에서 구조조정 노력을 기울여서 오늘의 미국 경제를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오늘의 미국 경제를 한 마디로 얘기하면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위원회 의장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경제적 영향력이 큰 사람이 누구냐 하면 여러분 누굴 것 같습니까? 아마 도 첫 번째는 김대중 대통령이 되겠고, 두 번째는 재경부 장관쯤 되겠고 세 번째는 경제 수석쯤 될 것입니다. 한국은행 총재는 아마도 우리나라 경제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친 다고는 본인 스스로도 그렇고 남들도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미국경 제에 가장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누구냐 하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연방준비위원회 이 사장. 우리나라와는 제도가 다르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한국은행 총재입니다. 이렇게 얘기 하는데 아무도 의의가 없을 것입니다.
이 그린스펀이 삼십몇 년 동안 자리를 맡아서 사실상 오늘의 미국 경제를 이끌고 가는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 사람이 최근에 미국 경제를 한 마디로 표현해서 'oasis of prosperity', '번영의 오아시스다' 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이것이 결코 과장된 이야기가 아 닌 것은 오늘날 미국의 실정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선 미국 경제는 90년 대 들어와서 무려 9년째 호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불황을 모르는 경제. 여러분도 거의 다 경제학을 공부한 분들일테고 하다못해 교양과목으로 경제원론정도는 공부할텐데, 시장 경제에서 자본주의 경제에서 불황이 없다는 것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냐, 가능하지 않으나 미국은 현재 불황이 없는 경제를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작년도 경제 성장 실적이 무려 6.9%, 우리나라가 6.9%정도면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만 미 국에서는 3%정도만 성장하면 고성장이라고 보고 그 이상이 되면 물가가 오르지 않나 하 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 미국경제입니다. 작년도 4/4 분기 실질 성장률이 6.9%, 소비 자물가가 금년1월 현재 전년대비 2.7% 상승, 1965년 이래 최저의 소비자물가, 6%의 노동 생산성의 증가, 연방 정부의 실업수당을 받는 사람이 28만명인데 이것이 26년만에 최저의 숫자입니다. 실업률에 있어서는 30년 만에 최저의 실업률입니다. 그런가하면 금리는 그린 스펀이 자꾸 올리려 함에도 불구하고 6%대의 금리, 이런 경제라면 거의 환상적인 경제 란 말입니다.
종래의 경제학에는 성장을 많이 하면 고용이 증가하면 물가가 오른다. 이것을 trade-off 관계에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장을 택할 것인가, 물가 안정을 택할 것인가에 대해 정 책을 하는 사람들은 이 두 가지를 가지고 항상 고민해야 하고, 경제이론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고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90년대 중반부터 어제 오늘 단기간의 문제가 아니라 몇 년째 역사적으로 가장 높은 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업은 선진 국에서 제일 낮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물가는 지극히 안정적인 경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일컬어 소위 new economy라고 합니다. 종래의 경제 이론으로 는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경제, 신경제, 제가 모신 김영삼 대통령의 초기에 신경제를 만들어보자고 한 적이 있습니다만 별로 성공은 못했는데 미국은 정말 신경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비해서 항상 대조적으로 생각하고 bench-marking의 대상이 되었던 일본은 80년 대 세계경제의 모델케이스로 각국이 칭송을 마지않던 일본의 경제가 90년대 들어와서 경 제가 계속 바닥을 기고 있는 상황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장기적인 침체, 그래서 작년 에도 마이너스, 금년도에도 잘 하면 1.몇 % 성장을 할 것이라고 보는데 그것도 낙관적인 전망이며 확신할 수 없고 2010년까지를 놓고 봐도 잘 해야 1.5%에서 2% 내의 성장 수준 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고 보아집니다. 일본사람들도 그렇게 보고 있고 외국 사람들도 그렇게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럽은 미국을 따라가기 위해서 최근까지도 미국과는 다른 형태의 어떤 모델, 사회민주주 의 이것을 다른 말로 라인모델이라고도 하는데, 유럽식 모델을 가지고 한 번 미국을 흉내 내지 않는 경제를 해 보겠다는 것이 유럽사람들의 생각이고 자존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결과는 어떠한가 하면, 지금 유럽경제는 미국을 따라가기 위해서 매우 노력을 함에 도 불구함에도 그 성과가 신통치 않다. 유럽의 정치 경제 지도자들은 유럽이 미래의 첨단 산업부문에 있어서 미국에 비해 갈수록 뒤지고 있다고 이렇게 우려를 표명하고 있고, 과 거 십년간 즉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변화된 시대 변화의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고 여기에 상응하는 정책을 세워 나가는데 실패했다고 유럽사람 스스로가 인정을 하고 있습 니다. 그래서 이제는 디지털 경제하에서는 그래서는 안되겠다. 디지털 경제하에서는 이제 미국과 경쟁을 하는 그래서 오히려 미국을 능가하는 경제를 만들어 봐야겠다고 지금 유 럽사람들이 매우 분발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결과가 어떠할 지는 두고 봐야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떻냐. 90년대를 통틀어서 우리나라가 이러한 문제에 접해서 가진 국가적 인식, 대응을 한 마디로 말해서 시대의 변화에 대한 인식이 국가 전체적으로 미흡했고, 다소 인식이 있는 경우에도 거기에 대응하는데 타이밍을 제대로 잡지 못했고 또 문제인 식을 갖더라도 그것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 그것을 추진해 나가는데 있어서 그것을 스 스로 자기자각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능력이 매우 취약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상황이 계 속 축적되어 오다가 여기에 외부여건이 악화되고 우리 국내에서는 정치적 상황이 매우 어렵게 전개되는 것에 결부되면서부터 우리 나라에서는 97년도에 소위 외환위기라고 하 는 언론적 표현으로 하면 환란위기라고 하는 소위 국가경제적인 위기를 경험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여러분은 학문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미래를 내다보고 바로 나가기 위해서는 지나간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합니다. 가령 외환위기가 97년도에 발생을 했는데 이것이 왜 발생을 했느냐. 여기서 얘기하는 김인호라고 하는 사람, 또는 그 외 몇 사람이 잘못해서 그런 것인가. 이렇게 해서 저는 개인적으로 그동안 환란의 주범이다고 해서 매 우 어려운 과정을 겪었고 국가가 경영하는 구치소에도 갔다오고 여러 가지 과정을 겪었 습니다만 그런 것이냐. 아니면 우리나라의 외환위기가 어떠한 배경하에서 어떻게 일어나 고 또 그러한 외환위기를 통해 우리가 앞으로 가야될 적절한 교훈을 선택 받았는가. 그리 고 우리가 최근에 와서 외환위기가 극복되었다고 얘기하고 있는데, 특히 정부에 의해 그 러하다고 얘기하고 있는데, 과연 그러한가. 어떤 사람은 6.25이후의 최대의 국란이라고 얘 기하는데 저 개인적으로는 그 견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만 사회 전반적인 인식이 그러합 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어려운 문제에 부딪쳤을 때 우리 사회가 그 문제에 대응하는 대응 방식은 적절했던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얘기하려면 제가 볼 때 한 세시간 정도 여러분과 토론해야 대체적으로 전모에 접근할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만 제가 한 오분 내지 십분 정도만 얘기 할 것이기 때문에 깊은 얘기를 할 수 없습니다만 몇 가지 메시지만 여러분께 전달하고 싶은 것은, 적어도 세계에서 열째 내지 열한번째 가는 규모의 경제, 한국의 경제가 그렇게 97년 11월 하루아침에 침몰할 때 어떠한 배경을 가지고 그럴 수 있었는가. 어떠한 일시적인 상황을 통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는 사건인가. 그렇지 않으면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보다 복 합적으로 축적되어 있는 과정에서 어떤 계기에 의해서 그것이 촉발되었는가.
예를 들어 지금 미국의 재무장관인 래리 서머스라고 하는 사람이 우리나라 외환위기가 발생하고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잘 나가고 있는 아시아 각국들이 태국을 시작 으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한국 이렇게 외환위기를 경험하고 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동차가 하나 밤에 사고가 생겼을 때 그 사고 원인은 수십가지가 될 수 있다. 자동차 운전수가 잘못해서 그럴 수 있다, 자동차 정비가 잘못될 수도 있다. 그 때 밤이라 길이 미끄러울 수 있다. 그 때 안개가 끼어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가드레일이 제대로 쳐있지 않을 수도 있다. 가드레일만 쳐 있어도 그렇게 사고가 나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등등의 무한히 많은 문제를 검증해야 그 때 그 사고가 왜 났고 사고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판 명될 수 있는데 하물며 일국의 경제가 갑자기 추락할 때 어떤 이유에 의해서 이루어졌는 지가 매우 복합적으로 검토되어지지 않으면 안된다.
두 번째로 우리가 외환위기에 부딪쳐서 우리가 이 문제에 접근하는 문제 접근 방식에 대 해 한 번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가령 외환위기가 왔을 때 이러한 복합적 요인을 편 견없고 감정없이 가능한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 전문가들이 모여 모든 문제를 역사 적인 상황부터 차근차근 분석하고 우리 내부의 문제는 무엇이고 우리 외부의 문제는 무 엇인지, 우리 문제에 있어서 구조적인 문제는 무엇이고 상황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심리적 측면은 무엇인가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국가적 차원의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밝히고, 그래서 그러한 원인과 배경에 상응하는 대책을 이러한 방향으로 가야겠다 라고 하는 국 가적· 사회적 합의된 결과가 한국사회에 나온 적이 있는가 하면 전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로지 나라 경제가 어려워졌으니까 우리 국민들의 감정이 매우 격앙되 어 있고 그래서 격앙된 감정을 달래기 위해서 뭔가 피를 보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고에 입각한 흐름이 우리 사회를 지배했고, 그것을 정치하는 사람들은 이용했고 언론은 침묵하 거나 방조했고, 우리나라의 그러한 문제를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지식인들은 입을 닫고 있고, 이러한 상황이 최근까지 되어 있던 것이 우리나라의 상황입니다.
여기에서 아시아 외환위기 초래의 빌미를 제공한 태국, 여러분 태국하고 우리나라를 생각 해 보면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태국이 우리나라 보다 훨씬 못한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습 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태국하고 우리나라는 다릅니다. 그러나 태국은 우리보다 몇 달 전에 외환위기를 경험했지만 그 이후 이 문제에 대응하는 태국사회 총체적인 대응 방식을 보면 우리보다 매우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종합적인 방법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오래 전 태국 중앙은행 총재를 역임한 누클이라는 사람이 위원장이 되어 각 분야의 사회 에 존경을 받고, 누구라도 존경할만한 위치에 있고, 전문적인 역량을 갖춘 일곱 사람과 함께 '누클커미티'라는 것을 만들어서 이 문제에 대해 종합적 검토를 하였고, 그래서 이미 98년 5월초에 '누클보고서'라는 초안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보고서에서는 매우 감정이 배제된 채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모든 문제를 분석하여 내어놓았기 때문에 국내외적으 로 모두 태국이라는 나라에 어떻게 외환위기가 오게 되었는지, 또한 그 과정에서 무슨 문 제가 있었는지 그리고 누가 잘못을 하였는지 하는 문제가 명백히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거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국내외적으로 거의 없습니다.
거기 비해 우리나라는 2년 반 가까이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도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그러한 합리적인 보고서 하나가 만들어져 있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재의 실정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문제에 부딪치는 것은 어떤 사회나 어떤 시스템이나 어떤 국가나 경우에 따라서는 개인이나 항상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문제가 있다는데 있는 것이 아니고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느냐, 두 번째는 그러한 문제의 인식에 따라 어떻게 처방하느냐, 대응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시스템은 발전하고, 예를 들어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 시장경제시스템이 문제가 없는 시스템이 아닙니다. 오히려 문제 투성이입니다.
그러나 사회주의 경제를 하는 사람들이 자본주의 경제는 스스로 가지고 있는 문제 때문 에 얼마 못 가서 붕괴될 것이라고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를 끊임없이 수정하고 보 완하고 교정하면서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는데 반하여, 이론적으로는 상당한 정밀성을 갖 추고, 훨씬 머리 좋은 사람들이 만든 사회주의 경제체제는 여러분이 보시는 바와 같이 지 구상에서 쿠바나 북한이나 몇 몇을 제외하고는 손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느 냐하면 시스템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그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어떠한 문제인식 을 갖고,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학생들도 대개 많이 읽으리라 생각되는 '로마인 이야기'의 처음에 보면 로마가 천 몇 백년을 걸쳐 계속 부강할 수 있었던 요인을 '시오노 나나미' 라는 여자 저자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로마는 시스템으로 성공한 나라다. 그러나 이 시스템으로 성공한 로마는 처음부터 시스템이 완벽했기 때문이 아니고, 그 시스템이 시대가 흘러가면서 계속적인 도 전과 저항의 순간 속에서 그것을 유연하게 받아들여서 시스템이 거기에 적응하고 대응해 나가는 쪽으로 나아갔기 때문에 로마는 발전할 수 있었다"고 쓰여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우리에게 매우 큰 교훈이 되지 않는가 보아집니다. IMF 사태를 거치면서 우 리 사회가 적절한 교훈을 받았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 좀 더 적절한 해설을 덧붙이고 싶 지만 우리 나라가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의 외환위기가 극복되었는가. 여러분 외환위기가 극복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정부는 외환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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