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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선거 후 한국경제

선거라는 계절병이 지나갔다. 차라리 홍역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한국 사회는 매번 선거를 치르면서 엄청난 체력소모와 갈등을 반복하고 있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집단이기주의가 극성을 부리고, 정부의 중요한 의사결정들이 정치적 고려 때문에 왜곡되거나 지연되고, 어떤 때는 정략이 국익에 앞서는 경우도 있었다.

사실 1997년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우리경제가 붕괴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만약 그 해에 대통령 선거가 없었더라면 경제위기의 전개양상이 많이 달랐을 것이라는 추론도 아주 틀린 것만은 아니다.

지금 선거가 끝난 시점에서 그 동안 정부가 추진한 경제개혁조치들이 과연 정치적으로 왜곡되지 않은 올바른 개혁이었는지 다시 한 번 평가해볼 필요가 있다.

먼저 기업구조조정과 금융개혁을 생각해보자. 어느 경제에서나 부실기업, 부실은행은 생기게 마련이다. 정상적인 경제에서는 수시로 그리고 자동적으로 이런 기업과 은행은 퇴출되고 흡수합병되게 마련이다. 문제는 한국에서는 이런 자연스런 기능이 마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정부가 직접나서서 부실기업과 부실 금융기관들을 퇴출시키고, 반 강제적으로 대기업간 사업 교환을 시행하여 대기업들의 과잉투자와 부채를 해소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애당초 시장에서 저절로 이루어졌어야 하는 일이다. 정치인과 관료가 나서서 개입할 일이 아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의 직접 개입에 의한 기업과 금융기관의 강제적 구조조정이 계속 그 순수성과 동기가 의심을 받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 동안의 경제개혁을 평가하려면 이제 한국경제가 진정으로 위기에서 벗어났는가, 그리고 위기 재발의 가능성은 없는가를 확인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우리경제에 자율적인 구조조정 기능이 회복되었는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과연 시장의 이 자연스런 기능이 지금 우리경제에 회복되었는가?

가장 기초적인 문제부터 생각해보자. 은행자금이 지금 정부의 지시에 의해 회수되고 배분되는가, 아니면 은행의 자체 판단에 따라 배분되는가? 지금 한국에서 은행이 정책집행 기관인가, 아니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주식회사인가? 은행장 인사는 외풍 없이 투명하게 이루어 지고 있는가, 아니면 아직도 정부의 보이지 않는 개입이 존재하는가? 은행장이 감독당국에 대해 책임을 지는가, 아니면 주주들에게 책임을 지는가?

또한 지금 당장이라도 만약 어떤 금융기관이나 대기업이 도산위기에 직면한다면, 지금 우리는 그 은행이나 기업을 원칙대로 퇴출시킬 의지를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또다시 과거와 같이 정치사회적 파급효과를 우려하여 죽은 기업을 안죽었다고 우기면서 국민의 세금으로 연명시키려 하지 않을 것인가?

지금 은행 회계장부에 건전한 것으로 분류되어 있는 여신 채권 중에 사실상 죽어 있는 채권이 없는가? 아직도 과거 처럼 죽은 채권을 살아있다고 우기고 있지는 않은가? 어느 기업이라도 대출받은 돈을 갚을 능력이 없다고 판단될 때, 부실 채권으로 처리한 후 정리절차에 들어가도록 되어 있는가?

필자는 이런 모든 질문에 대해 확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실은 우리 정부와 은행, 기업에 과거의 잘못된 관행과 의식이 아직도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고 믿고 있다. 특히 정치인과 관료의 경제지배는 더욱 강화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경제회복은 위기의 종말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위기의 전주곡이 될 수도 있다. 지금의 반짝 경기에 정부, 은행, 기업, 근로자들이 다시 문제를 눈가림으로 덮어두고 남들과 우리 스스로를 속이던 과거의 나쁜 버릇으로 되돌아간다면, 우리 경제는 조만간 다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이제 선거가 끝났다. 정치인과 국민 모두가 다시 평상심으로 돌아가 당리당략이 아니라 전문성에 입각한 정도 개혁을 시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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