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벨트 제도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일 뿐
환경과 생명, 제 20호, 1999 여름
1. 개발제한구역 제도개선 추진 경위
지정목적이 상실된 일부 지방도시의 개발제한구역을 도시권 평가를 거쳐 전면 해제하고 나머지 지역의 개발제한구역에 대해 환경평가 결과를 토대로 구역을 조정하는 것을 골자로 한 개발제한구역 제도개선안이 지난 해 11월 25일에 발표되자 다양한 반응이 표출되었다. 한쪽에서는 지난 27년간 지켜져 온 개발제한구역제도가 무너져 도시환경은 엉망이 될 것이라는 환경운동단체들이 '그린벨트 살리기 국민행동' 창립대회를 갖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제도개선안에 대한 일부 지역 공청회가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환경단체들은 특히 중소도시권 개발제한구역 전면 해제에 대해 강한 반대를 피력하고 환경평가 없이 일부 권역 전면해제를 결정하려는 정부의 방침은 대통령 공약에도 어긋난다고 주장하였다. 언론은 대부분 개발제한구역 조정을 최소화해야 하며 기본골격은 유지되어야 한다는 종전의 주장을 반복하였다. 환경부 역시 전면해제 도시권 선정에 신중을 기할 것을 건교부에 요청하였다. 이 와중에 지난 9년 동안 결정을 미루어오던 헌법재판소가 1998년 12월 24일, 개발제한구역 제도 자체는 합헌이지만 토지소유자들에 대한 보상을 규정하지 않은 도시계획법 제21조는 위헌이라는 결정을 발표하였다.
이에 따라 1998년말까지 제도개선안을 확정, 발표하기로 하였던 정부는 일정을 조정하여 제도개선안 확정을 1999년 7월로 미룬다는 방침을 금년 2월 5일에 발표하였다. 보완 내용을 보면 12개 도시지표 분석결과를 토대로 전면해제도시를 선정하려던 방식을 수정하여 대상 도시권 평가방법을 보완하고, 구역해제 후 보전녹지 등을 지정하기로 하려던 방침을 바꾸어 환경평가 결과를 참고하여 보전 대상 지역에 대해 해제와 동시에 보전녹지를 지정하기로 하였다. 또한 영국의 도시농촌계획학회(TCPA)에 개발제한구역 제도개선안의 평가결과를 참고하여 정책결정의 객관성을 높이도록 하였다.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른 보상대상토지 및 보상방법에 대한 보완과 헌법불일치 상태를 제거하기 위한 '개발제한구역관리에관한법률'을 제정하기로 하였다.
이 시점에서 개발제한구역제도개선안이 어떤 식으로 결정될지 전망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어차피 제도개선협의회를 통해 만들어진 안에 대한 반대의견과 보완요구를 수용하여 정치적으로 '안전한' 안을 만드는 것이 현실적 과제인 만큼 앞으로 환경단체나 언론, 주민들의 상반된 요구를 어떤 식으로 조화시킬 수 있을지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금년 들어 국민연금 확대실시, 의약분업제 실시, 한일 어업협상 등을 둘러싼 정책혼선으로 비난을 받아온 정부가 그린벨트로 알려진 개발제한구역제도 개선을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을지 하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쪽에서는 합리적인 개발제한구역 제도개선을 모색하는 동시에 다른 한쪽에서는 수도권 집중억제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라는 대통령의 주문을 종합하면 제도개선의 핵심인 수도권 개발제한구역의 근본적인 변화는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2. 개발제한구역 제도개선의 환경적 측면
개발제한구역 제도개선에 대해 가장 강력한 이의를 제기해온 집단은 언론과 환경단체였다. 이들은 개발제한구역이 '도시의 허파'이며 '생명벨트'라는 매우 호소력 있는 구호로 여론의 지지를 도출하려 했으며 개발제한구역의 환경정책적 공헌을 강조하였다.
예컨대 개발제한구역이 해제되면 녹지가 감소되고 이로 인해 지구온난화효과 완화기능과 대기정화기능이 저하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이동근 1998). 이러한 주장은 개발제한구역이 아닌 녹지에 대해서도 같은 논리가 성립할 것이며 개발제한구역 내의 녹지 이외의 토지를 구역에서 해제하자는 주장과 상치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1970년부터 1997년 사이에 우리 나라 임야 면적은 66,115 km2에서 64,413 km2로 줄었지만 임목축적은 68.8 백만m3에서 340.8 백만 m3으로 거의 5배로 늘었는데(산림청, 임업통계연보 28호, 1998, p. 21) 개발제한구역 임야 전체 면적은 전국 임목면적의 5%에 불과하고 임야는 대부분 개발제한구역 구역조정에서 제외될 것이므로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김정호 1998). 현재 개발제한구역 안에 있는 임야가 특별히 산소를 많이 생산하는 특별한 나무이거나 개발제한구역 밖에 있는 나무가 '무늬만 나무'가 아니라면 말이다.
이에 반해 '나무가 있다고 해서 그린이 되는 것이 아니고 녹지는 큰 덩어리로 연결되어서 온갖 동식물을 한꺼번에 담을 수 있어야 그린 본연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며 그린을 지키기 위해서는 현재의 벨트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이정전 1998a: p 3).
일부 학자들은 도시 규모가 커지면 환경이 악화되므로 도시성장을 억제하는 것이 환경을 보전하는 방법이며 개발제한구역이 도시인구 집중을 막는데 효과적이기 때문에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개발제한구역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러한 주장의 연장선에서 수도권 개발제한구역이 풀리면 인구가 1,000만 명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예측은 개발제한구역을 풀면 토지가 xxx 늘 것이고 여기에 현재의 개발밀도를 적용하면 yyy 만큼의 인구를 수용할 수 있다는 기계적인 계산에 입각한 것이다. 그러나 수도권인구가 1,000만 명이 증가한다면 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약 300만 개의 일자리가 추가로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 사람들이 주택을 구입하고 수도권에서 생활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경제적 측면을 고려하면 위의 계산은 매우 비현실적이다.
또한 도시가 커진다고 해서 반드시 환경의 질이 나빠지지 않으며 인구가 비슷한 도시들 간에도 환경오염의 정도가 크게 다르다. 1980년대에 들어 서울의 대기오염이 줄어든 것은 인구가 줄어서가 아니라 청정연료의 사용을 의무화한 덕택이었다. 그러나 도시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교통혼잡이 심해지고 공해가 심해진다 하더라도 개발제한구역을 친다고 문제가 풀리는 것은 아니다. 오염원이 대도시에 있든 다른 곳에 있든 어디선가 오염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나라 대도시 대기오염의 주범은 자동차-그 중에서도 경유를 사용하는 버스와 트럭-이므로 자동차의 사용을 억제하는 구체적인 정책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개발제한구역과 같은 토지이용 규제는 외부효과를 내부화시키는 환경정책수단의 기능이 있다. 그러나 효과적인 환경정책은 환경오염 행위자체를 예방, 통제, 시정하는 것이며 먼 원인이 되는 개발행위 자체를 전반적으로 억제하는 것이 아니다. 환경의 질이 경제발전 단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소득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환경보전에 대한 인식이 증진되고 환경개선을 위한 시설에 대한 지불의사와 지불능력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발제한구역처럼 이용가치가 높은 토지의 개발을 전적으로 억제하는 것은 경제적 부의 생산을 저해할 뿐 아니라 주택가격의 상승을 가져와 환경개선에 대한 지불여력을 제한한다. 경제주체들의 행동방식을 환경친화적으로 바꾸려면 친환경적 행동이 경제주체들에게도 이익이 되고 반환경적 행동이 이들에게 비용을 안겨주도록 하는 유인체계가 필요한 것이다.
3. 개발제한구역제도와 대도시 성장억제
개발제한구역의 본질은 '그린'이 아니라 '벨트'에 있다. 개발제한구역의 목적이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을 억제하고 연담화를 방지하는데 있고 이를 위해서는 맨땅이든 논밭이든 도시 주변을 띠 모양으로 둘러싸야 하기 때문이다. 지정당시부터 공식 명칭이 개발제한구역이 아니라 개발제한구역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이 무엇인지, 연담화는 왜 나쁜지에 대한 실증적 근거가 제시되지 않고 있으며 도시의 확산을 왜 막아야하는지가 분명치 않다는 데 있다.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이 기반시설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의 난개발이라면 그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하겠다. 그러나 기반시설을 갖춘 개발을 위해 반드시 벨트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개발의 수혜자들이 기반시설 설치 및 사용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부담토록 하면 되기 때문이다. 연담화의 방지, 즉 도시와 도시가 공간적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도시계획에서 증명 없이 받아들이는 하나의 공리인 것으로 보인다. 개발제한구역이 종주국인 영국에서는 일부 지역에서 인접 도시 주민들의 정치적 성향이 달라서 연담화를 싫어한다고 하는데 평균 거주기간이 5년도 안 될 정도로 이사 빈도가 높은 우리 나라에서는 의미가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도시의 공간적 확산을 막기 위해 벨트 모양이 필수적이라는 도시계획가들의 견해는 '행정구역'으로의 도시에 대해서는 적용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질문은 도시의 성장을 억제하는 것이 왜 바람직하며 개발제한구역 같은 정책수단이 도시성장 관리에 효과적인가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서울, 부산 등 대도시는 이미 적정한 규모를 넘어섰으며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해서는 더 이상의 도시확대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구도완 1998, p.77-78). 그러나 이른바 유일한 '적정 도시규모'는 존재하지 않으며 개발제한구역 같은 도시성장 억제수단이 실제로 대도시 집중 억제에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은 도시 및 지역 관련 문헌을 공부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밀즈-김경환 1998). 실제로 손재영(1993)의 연구에 따르면 개발제한구역을 포함한 수도권 정책의 변화가 서울 및 수도권 인구 및 그 증가율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주변에 개발제한구역을 친 결과 행정구역으로서의 서울의 성장은 억제되었지만 경제권, 생활권으로서의 서울은 광역화되었다.
뿐만 아니라 설령 도시 성장억제 자체가 바람직한 목적이라고 해도 그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서 치러야 하는 대가를 알고도 그런 주장을 할 수 있을 지 궁금하다. 위에서 지적한 대도시 광역화는 통근거리의 증가와 그에 따른 연료소비 및 교통정체로 인한 대기오염 등 환경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또한 개발제한구역은 가용택지의 공급을 제한하여 땅값, 집값의 상승을 가져오고 그 결과 특히 저소득층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우리 나라 도시의 1인당 공원 면적이 외국에 비해 턱없이 작다는 사실을 지적하지만(구도완 1998, p.73) 우리 나라의 1인당 대지면적이 외국에 비해 훨씬 작다는 사실이나 집값이 소득에 비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축에 들고 개발제한구역이 그 중요한 원인이라는 외국 전문가들의 분석(Renaud 1993, Kain 1992)은 외면한다. 우리나라는 국토가 좁고 산이 많아서 좁은 집에 살아야 하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거나 심지어 토지의 과소비를 막아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도 도시계획이 도시인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목적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200만호 건설 이후 우리나라 도시 주택사정이 획기적으로 개선된 것을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다.
개발제한구역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사회가 지불하고 있는 이러한 비용을 인정한다면 개발제한구역 제도개선이 지역주민이나 토지소유자들의 민원해소를 위한 것만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개발제한구역제도에 관한 수많은 사설과 신문기사들은 거의 예외 없이 이 문제를 구역주민 대 환경단체 혹은 일반시민 간의 대립구도로 이해하고 있다. 물론 개발제한구역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주민들의 강력한 요구와 대통령의 선거공약이 제도개선의 발단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개발제한구역제도는 모든 도시주민들의 이해가 걸려있는 중요한 문제이다.
4. 도시민을 위한 개발제한구역제도의 모색
만일 앞에서 지적한 사실들을 알고도 개발제한구역 사수론을 편다면 개발제한구역을 수단이 아닌 목표로 본다고 밖에 달리 이해할 도리가 없다. 실제로 그린벨트밖에 있는 토지들에 대한 규제 강화와 영국식 개발허가제의 도입, 그린벨트를 유지하고 수혜자인 국민들에게 환경세를 징수하거나 서울의 건축밀도를 낮추고 개발제한구역 토지 소유자들에게 개발권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재산권 피해를 보상하자는 제안(이정전 1998b) 들을 보면 개발제한구역을 지키고 확대하는 것이 사회적 목표인 것처럼 여겨진다. 영국의 개발허가제는 제2차대전 직후 국가의 통제가 당연시되는 분위기에서 도입된 것이며 이 제도를 우리 나라에 당장 도입할 경우 토지 시장과 국민경제 전체에 미칠 파급효과는 상상하기도 힘들다. 개발제한구역 주민들에 대한 보상 재원을 환경세를 통해 마련한다는 발상은 대다수 주민들이 개발제한구역의 수혜자이고 지불의사를 지니고 있을 때 논의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개발제한구역의 수혜자는 개발제한구역 인근에 사는 지극히 소수의 시민들뿐이며 나머지 시민들은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간접적인 피해자이다. 실제로 1998년 8월에 실시된 토지공사의 설문조사에서는 개발제한구역 토지를 매수하거나 손실을 보상하는데 소요되는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세금을 올릴 경우 부담하지 않겠다는 응답자가 36.8%에 달하였으며 부담할 용의가 있는 경우 1만원 이하가 31.4%로 나타났다. 또한 주민들에 대한 보상을 위해 서울 시내 용적율을 낮추고 개발제한구역 주민들에게 개발권을 주자는 제안은 개발제한구역을 유지하기 위해서 앞으로 서울에 집을 사려는 사람들의 부담을 높이는 불공평한 대안이다.
개발제한구역은 도시계획의 한 가지 수단이지만 유일한 수단은 아니다. 도시계획의 궁극적인 목표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삶의 질을 보장해 주는 데 있을 것이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환경의 질뿐 아니라 주거공간과 휴식공간도 중요하다. 앞으로 땅을 전혀 개발하지 않는다면 모르겠거니와 앞으로 2005년까지 전국적으로 4,250만 평의 택지가 공급되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선택은 분명해진다. 환경가치가 낮은 땅을 활용하고 나머지 땅은 잘 지키되 가능하면 도시민의 휴식공간으로 일부 활용하자는 제도개선 기본방향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린'에 대한 수요는 소득이 상승함에 따라 증가하고 사람들이 보다 중요하게 느끼는 것은 가까이 있는 '그린'이지 멀리 두고 보기만 하는 '그린'이 아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과제인 그린벨트 제도개선의 향방은 여론의 지지도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개발제한구역 제도개선협의회 시안이 발표된 후 언론 매체를 통해 많은 토론이 이루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찬성, 반대의 입장이 많은 일반 시민들에게 전달될 수 있었으며 제도개선안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이해가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제도 개선 발표 직후에 '그린벨트 살리기 국민행동'이 한국갤럽을 통해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는 그린벨트의 '현재상태 유지'가 37.9%, '지금보다 확대'가 24.9%로 '지금보다 축소'가 37.2%로 나타났다. 그러나 1998년 11월 30일에 EBS(교육방송)가 코리아 리서치센터에 의뢰해 실시한 조사에서는 개발제한구역 이외 지역 응답자의 7.8%가 전면해제, 29.8%가 상당부분 해제, 53.1%가 일부분 해제, 그리고 9.4%가 해제불가에 답하여 어떤 식으로든 개발제한구역이 해제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90.6%에 달하였다. 찬성 이유는 대부분이 주민생활불편 해소(39.6%)와 주민 재산권 회복(27.0%)이었고 토지이용률 향상은 23.0%에 불과하였다. 반면에 반대 이유는 69.6%가 자연환경보전을 들었다. 이것은 개발제한구역을 어떤 식으로든 손대기 시작하면 환경보전이 어려워진다는 대부분의 신문 사설 논조와 비슷하다. 따라서 앞으로 제도개선안을 확정하기까지 환경 측면에 대한 논리적 설득노력을 강화하고 제도개선이 궁극적으로 70여만 개발제한구역 주민들 뿐 아니라 도시 주민전체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부각시켜 공감대를 넓혀 가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보인다.
필자는 지금까지 개발제한구역의 순기능은 과장될 정도로 깊이 인식된 반면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잘 인식되지 않았기 때문에 개발제한구역이 지금까지 소중하게 지켜져 왔다고 생각한다. 개발제한구역이 '도시의 허파'이며 '생명벨트'라면, 그리고 사회에 아무런 비용도 끼치지 않는다면, 당연히 자손만대에 보전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개발제한구역이 환경보전을 위한 최선의 정책수단이 아니며 그 사회적 비용이 막대하다는데 있다. 특히 개발제한구역의 사회적 비용이 가장 큰 곳은 수도권과 부산 등 대도시권이다. 따라서 민원해소 차원이 아니라 토지자원의 효율적 이용을 목표로 하는 개발제한구역 제도개선을 위해서는 수도권집중억제 논리를 극복해야 한다. 필자가 걱정하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토지부족 문제의 본질이 입지에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을 건드리는 것은 정치적으로 안전한 길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개발제한구역 제도개선과 관련하여 토지이용규제권의 지방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토지이용은 국지적 현상이므로 그 내용이 국지적인 환경의 특성에 따라 달라야 하며 중앙정부에 의한 획일적인 규제는 바람직하지 않다. 선진국 도시들에서 규제의 주체는 지역주민들의 의사를 반영한 지방정부이다. 지방정부나 주민들은 그 지역의 개발의 이득의 직접적 수혜자이며 환경오염의 직접적 피해자이다. 이러한 이득과 피해는 재산가치에 반영되므로 주민들이나 지방자치단체들에게는 그 지역의 재산가치 총액을 극대화할 분명한 유인이 있다. 지방자치단체에 맡기면 환경이 파괴될 것이라는 우려는 단기적으로 일리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토지이용규제의 중앙집권화의 명분이 되어서는 안된다. 지방정부의 계획수립 및 관리능력을 배양토록 지원하고 중앙에 있는 환경단체 본부들보다 더 현장에 가까이 있는 이른바 풀뿌리 시민집단의 감시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장기적인 해법일 것이다.
참고문헌
구도완, 환경친화적인 개발제한구역정책의 방향", 도시연구, 제4호, 1998.11
김경환, "개발제한구역제도의 평가와 제도개선 쟁점", 주택연구, 1998.12
김정호, "그린벨트, 환경, 재산권", 자유기업센터, 1998.12
밀즈 (E. S. Mills), 김경환, "대도시 성장 및 외연적 확산 방지정책의 국제적 경험과 한국에의 시사점", 수도권 정책에 관한 국제 세미나, 경제5단체, 경기개발연구원, 1998.11
손재영, "수도권분산정책의 평가와 정책전환을 위한 제언", [주택연구] 1(2), 1993.10
이동근, "그린벨트해제로 인해 발생하는 환경문제", 1998.9
이정전, "그린벨트, 꼭 해제해야만 하는가?", 국회세계화포럼 발표논문, 1998.8.6(a)
이정전, "그린벨트 제도개선의 과제-새로운 토지제도의 모색-", 1998.12.11 흥사단 금요토론회 발제논문(b)
Cheshire, P. Evidence to Environment, Transport and Regional Committee Housing Inquiry", 1997
Kain, J. "Greenbelts for Cities or Greenbelts for People?", KDI, May 1992
Renaud, B. "Confronting a Distorted Housing Market: Can Korean Policies Break with the Past?", in Social Issues in Korea: Korean and American Perspectives, ed. by L.B. Krause and F-k Park, KDI, 1993
환경과 생명, 제 20호, 1999 여름
1. 개발제한구역 제도개선 추진 경위
지정목적이 상실된 일부 지방도시의 개발제한구역을 도시권 평가를 거쳐 전면 해제하고 나머지 지역의 개발제한구역에 대해 환경평가 결과를 토대로 구역을 조정하는 것을 골자로 한 개발제한구역 제도개선안이 지난 해 11월 25일에 발표되자 다양한 반응이 표출되었다. 한쪽에서는 지난 27년간 지켜져 온 개발제한구역제도가 무너져 도시환경은 엉망이 될 것이라는 환경운동단체들이 '그린벨트 살리기 국민행동' 창립대회를 갖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제도개선안에 대한 일부 지역 공청회가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환경단체들은 특히 중소도시권 개발제한구역 전면 해제에 대해 강한 반대를 피력하고 환경평가 없이 일부 권역 전면해제를 결정하려는 정부의 방침은 대통령 공약에도 어긋난다고 주장하였다. 언론은 대부분 개발제한구역 조정을 최소화해야 하며 기본골격은 유지되어야 한다는 종전의 주장을 반복하였다. 환경부 역시 전면해제 도시권 선정에 신중을 기할 것을 건교부에 요청하였다. 이 와중에 지난 9년 동안 결정을 미루어오던 헌법재판소가 1998년 12월 24일, 개발제한구역 제도 자체는 합헌이지만 토지소유자들에 대한 보상을 규정하지 않은 도시계획법 제21조는 위헌이라는 결정을 발표하였다.
이에 따라 1998년말까지 제도개선안을 확정, 발표하기로 하였던 정부는 일정을 조정하여 제도개선안 확정을 1999년 7월로 미룬다는 방침을 금년 2월 5일에 발표하였다. 보완 내용을 보면 12개 도시지표 분석결과를 토대로 전면해제도시를 선정하려던 방식을 수정하여 대상 도시권 평가방법을 보완하고, 구역해제 후 보전녹지 등을 지정하기로 하려던 방침을 바꾸어 환경평가 결과를 참고하여 보전 대상 지역에 대해 해제와 동시에 보전녹지를 지정하기로 하였다. 또한 영국의 도시농촌계획학회(TCPA)에 개발제한구역 제도개선안의 평가결과를 참고하여 정책결정의 객관성을 높이도록 하였다.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른 보상대상토지 및 보상방법에 대한 보완과 헌법불일치 상태를 제거하기 위한 '개발제한구역관리에관한법률'을 제정하기로 하였다.
이 시점에서 개발제한구역제도개선안이 어떤 식으로 결정될지 전망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어차피 제도개선협의회를 통해 만들어진 안에 대한 반대의견과 보완요구를 수용하여 정치적으로 '안전한' 안을 만드는 것이 현실적 과제인 만큼 앞으로 환경단체나 언론, 주민들의 상반된 요구를 어떤 식으로 조화시킬 수 있을지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금년 들어 국민연금 확대실시, 의약분업제 실시, 한일 어업협상 등을 둘러싼 정책혼선으로 비난을 받아온 정부가 그린벨트로 알려진 개발제한구역제도 개선을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을지 하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쪽에서는 합리적인 개발제한구역 제도개선을 모색하는 동시에 다른 한쪽에서는 수도권 집중억제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라는 대통령의 주문을 종합하면 제도개선의 핵심인 수도권 개발제한구역의 근본적인 변화는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2. 개발제한구역 제도개선의 환경적 측면
개발제한구역 제도개선에 대해 가장 강력한 이의를 제기해온 집단은 언론과 환경단체였다. 이들은 개발제한구역이 '도시의 허파'이며 '생명벨트'라는 매우 호소력 있는 구호로 여론의 지지를 도출하려 했으며 개발제한구역의 환경정책적 공헌을 강조하였다.
예컨대 개발제한구역이 해제되면 녹지가 감소되고 이로 인해 지구온난화효과 완화기능과 대기정화기능이 저하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이동근 1998). 이러한 주장은 개발제한구역이 아닌 녹지에 대해서도 같은 논리가 성립할 것이며 개발제한구역 내의 녹지 이외의 토지를 구역에서 해제하자는 주장과 상치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1970년부터 1997년 사이에 우리 나라 임야 면적은 66,115 km2에서 64,413 km2로 줄었지만 임목축적은 68.8 백만m3에서 340.8 백만 m3으로 거의 5배로 늘었는데(산림청, 임업통계연보 28호, 1998, p. 21) 개발제한구역 임야 전체 면적은 전국 임목면적의 5%에 불과하고 임야는 대부분 개발제한구역 구역조정에서 제외될 것이므로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김정호 1998). 현재 개발제한구역 안에 있는 임야가 특별히 산소를 많이 생산하는 특별한 나무이거나 개발제한구역 밖에 있는 나무가 '무늬만 나무'가 아니라면 말이다.
이에 반해 '나무가 있다고 해서 그린이 되는 것이 아니고 녹지는 큰 덩어리로 연결되어서 온갖 동식물을 한꺼번에 담을 수 있어야 그린 본연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며 그린을 지키기 위해서는 현재의 벨트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이정전 1998a: p 3).
일부 학자들은 도시 규모가 커지면 환경이 악화되므로 도시성장을 억제하는 것이 환경을 보전하는 방법이며 개발제한구역이 도시인구 집중을 막는데 효과적이기 때문에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개발제한구역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러한 주장의 연장선에서 수도권 개발제한구역이 풀리면 인구가 1,000만 명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예측은 개발제한구역을 풀면 토지가 xxx 늘 것이고 여기에 현재의 개발밀도를 적용하면 yyy 만큼의 인구를 수용할 수 있다는 기계적인 계산에 입각한 것이다. 그러나 수도권인구가 1,000만 명이 증가한다면 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약 300만 개의 일자리가 추가로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 사람들이 주택을 구입하고 수도권에서 생활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경제적 측면을 고려하면 위의 계산은 매우 비현실적이다.
또한 도시가 커진다고 해서 반드시 환경의 질이 나빠지지 않으며 인구가 비슷한 도시들 간에도 환경오염의 정도가 크게 다르다. 1980년대에 들어 서울의 대기오염이 줄어든 것은 인구가 줄어서가 아니라 청정연료의 사용을 의무화한 덕택이었다. 그러나 도시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교통혼잡이 심해지고 공해가 심해진다 하더라도 개발제한구역을 친다고 문제가 풀리는 것은 아니다. 오염원이 대도시에 있든 다른 곳에 있든 어디선가 오염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나라 대도시 대기오염의 주범은 자동차-그 중에서도 경유를 사용하는 버스와 트럭-이므로 자동차의 사용을 억제하는 구체적인 정책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개발제한구역과 같은 토지이용 규제는 외부효과를 내부화시키는 환경정책수단의 기능이 있다. 그러나 효과적인 환경정책은 환경오염 행위자체를 예방, 통제, 시정하는 것이며 먼 원인이 되는 개발행위 자체를 전반적으로 억제하는 것이 아니다. 환경의 질이 경제발전 단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소득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환경보전에 대한 인식이 증진되고 환경개선을 위한 시설에 대한 지불의사와 지불능력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발제한구역처럼 이용가치가 높은 토지의 개발을 전적으로 억제하는 것은 경제적 부의 생산을 저해할 뿐 아니라 주택가격의 상승을 가져와 환경개선에 대한 지불여력을 제한한다. 경제주체들의 행동방식을 환경친화적으로 바꾸려면 친환경적 행동이 경제주체들에게도 이익이 되고 반환경적 행동이 이들에게 비용을 안겨주도록 하는 유인체계가 필요한 것이다.
3. 개발제한구역제도와 대도시 성장억제
개발제한구역의 본질은 '그린'이 아니라 '벨트'에 있다. 개발제한구역의 목적이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을 억제하고 연담화를 방지하는데 있고 이를 위해서는 맨땅이든 논밭이든 도시 주변을 띠 모양으로 둘러싸야 하기 때문이다. 지정당시부터 공식 명칭이 개발제한구역이 아니라 개발제한구역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이 무엇인지, 연담화는 왜 나쁜지에 대한 실증적 근거가 제시되지 않고 있으며 도시의 확산을 왜 막아야하는지가 분명치 않다는 데 있다.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이 기반시설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의 난개발이라면 그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하겠다. 그러나 기반시설을 갖춘 개발을 위해 반드시 벨트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개발의 수혜자들이 기반시설 설치 및 사용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부담토록 하면 되기 때문이다. 연담화의 방지, 즉 도시와 도시가 공간적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도시계획에서 증명 없이 받아들이는 하나의 공리인 것으로 보인다. 개발제한구역이 종주국인 영국에서는 일부 지역에서 인접 도시 주민들의 정치적 성향이 달라서 연담화를 싫어한다고 하는데 평균 거주기간이 5년도 안 될 정도로 이사 빈도가 높은 우리 나라에서는 의미가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도시의 공간적 확산을 막기 위해 벨트 모양이 필수적이라는 도시계획가들의 견해는 '행정구역'으로의 도시에 대해서는 적용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질문은 도시의 성장을 억제하는 것이 왜 바람직하며 개발제한구역 같은 정책수단이 도시성장 관리에 효과적인가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서울, 부산 등 대도시는 이미 적정한 규모를 넘어섰으며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해서는 더 이상의 도시확대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구도완 1998, p.77-78). 그러나 이른바 유일한 '적정 도시규모'는 존재하지 않으며 개발제한구역 같은 도시성장 억제수단이 실제로 대도시 집중 억제에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은 도시 및 지역 관련 문헌을 공부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밀즈-김경환 1998). 실제로 손재영(1993)의 연구에 따르면 개발제한구역을 포함한 수도권 정책의 변화가 서울 및 수도권 인구 및 그 증가율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주변에 개발제한구역을 친 결과 행정구역으로서의 서울의 성장은 억제되었지만 경제권, 생활권으로서의 서울은 광역화되었다.
뿐만 아니라 설령 도시 성장억제 자체가 바람직한 목적이라고 해도 그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서 치러야 하는 대가를 알고도 그런 주장을 할 수 있을 지 궁금하다. 위에서 지적한 대도시 광역화는 통근거리의 증가와 그에 따른 연료소비 및 교통정체로 인한 대기오염 등 환경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또한 개발제한구역은 가용택지의 공급을 제한하여 땅값, 집값의 상승을 가져오고 그 결과 특히 저소득층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우리 나라 도시의 1인당 공원 면적이 외국에 비해 턱없이 작다는 사실을 지적하지만(구도완 1998, p.73) 우리 나라의 1인당 대지면적이 외국에 비해 훨씬 작다는 사실이나 집값이 소득에 비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축에 들고 개발제한구역이 그 중요한 원인이라는 외국 전문가들의 분석(Renaud 1993, Kain 1992)은 외면한다. 우리나라는 국토가 좁고 산이 많아서 좁은 집에 살아야 하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거나 심지어 토지의 과소비를 막아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도 도시계획이 도시인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목적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200만호 건설 이후 우리나라 도시 주택사정이 획기적으로 개선된 것을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다.
개발제한구역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사회가 지불하고 있는 이러한 비용을 인정한다면 개발제한구역 제도개선이 지역주민이나 토지소유자들의 민원해소를 위한 것만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개발제한구역제도에 관한 수많은 사설과 신문기사들은 거의 예외 없이 이 문제를 구역주민 대 환경단체 혹은 일반시민 간의 대립구도로 이해하고 있다. 물론 개발제한구역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주민들의 강력한 요구와 대통령의 선거공약이 제도개선의 발단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개발제한구역제도는 모든 도시주민들의 이해가 걸려있는 중요한 문제이다.
4. 도시민을 위한 개발제한구역제도의 모색
만일 앞에서 지적한 사실들을 알고도 개발제한구역 사수론을 편다면 개발제한구역을 수단이 아닌 목표로 본다고 밖에 달리 이해할 도리가 없다. 실제로 그린벨트밖에 있는 토지들에 대한 규제 강화와 영국식 개발허가제의 도입, 그린벨트를 유지하고 수혜자인 국민들에게 환경세를 징수하거나 서울의 건축밀도를 낮추고 개발제한구역 토지 소유자들에게 개발권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재산권 피해를 보상하자는 제안(이정전 1998b) 들을 보면 개발제한구역을 지키고 확대하는 것이 사회적 목표인 것처럼 여겨진다. 영국의 개발허가제는 제2차대전 직후 국가의 통제가 당연시되는 분위기에서 도입된 것이며 이 제도를 우리 나라에 당장 도입할 경우 토지 시장과 국민경제 전체에 미칠 파급효과는 상상하기도 힘들다. 개발제한구역 주민들에 대한 보상 재원을 환경세를 통해 마련한다는 발상은 대다수 주민들이 개발제한구역의 수혜자이고 지불의사를 지니고 있을 때 논의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개발제한구역의 수혜자는 개발제한구역 인근에 사는 지극히 소수의 시민들뿐이며 나머지 시민들은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간접적인 피해자이다. 실제로 1998년 8월에 실시된 토지공사의 설문조사에서는 개발제한구역 토지를 매수하거나 손실을 보상하는데 소요되는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세금을 올릴 경우 부담하지 않겠다는 응답자가 36.8%에 달하였으며 부담할 용의가 있는 경우 1만원 이하가 31.4%로 나타났다. 또한 주민들에 대한 보상을 위해 서울 시내 용적율을 낮추고 개발제한구역 주민들에게 개발권을 주자는 제안은 개발제한구역을 유지하기 위해서 앞으로 서울에 집을 사려는 사람들의 부담을 높이는 불공평한 대안이다.
개발제한구역은 도시계획의 한 가지 수단이지만 유일한 수단은 아니다. 도시계획의 궁극적인 목표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삶의 질을 보장해 주는 데 있을 것이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환경의 질뿐 아니라 주거공간과 휴식공간도 중요하다. 앞으로 땅을 전혀 개발하지 않는다면 모르겠거니와 앞으로 2005년까지 전국적으로 4,250만 평의 택지가 공급되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선택은 분명해진다. 환경가치가 낮은 땅을 활용하고 나머지 땅은 잘 지키되 가능하면 도시민의 휴식공간으로 일부 활용하자는 제도개선 기본방향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린'에 대한 수요는 소득이 상승함에 따라 증가하고 사람들이 보다 중요하게 느끼는 것은 가까이 있는 '그린'이지 멀리 두고 보기만 하는 '그린'이 아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과제인 그린벨트 제도개선의 향방은 여론의 지지도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개발제한구역 제도개선협의회 시안이 발표된 후 언론 매체를 통해 많은 토론이 이루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찬성, 반대의 입장이 많은 일반 시민들에게 전달될 수 있었으며 제도개선안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이해가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제도 개선 발표 직후에 '그린벨트 살리기 국민행동'이 한국갤럽을 통해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는 그린벨트의 '현재상태 유지'가 37.9%, '지금보다 확대'가 24.9%로 '지금보다 축소'가 37.2%로 나타났다. 그러나 1998년 11월 30일에 EBS(교육방송)가 코리아 리서치센터에 의뢰해 실시한 조사에서는 개발제한구역 이외 지역 응답자의 7.8%가 전면해제, 29.8%가 상당부분 해제, 53.1%가 일부분 해제, 그리고 9.4%가 해제불가에 답하여 어떤 식으로든 개발제한구역이 해제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90.6%에 달하였다. 찬성 이유는 대부분이 주민생활불편 해소(39.6%)와 주민 재산권 회복(27.0%)이었고 토지이용률 향상은 23.0%에 불과하였다. 반면에 반대 이유는 69.6%가 자연환경보전을 들었다. 이것은 개발제한구역을 어떤 식으로든 손대기 시작하면 환경보전이 어려워진다는 대부분의 신문 사설 논조와 비슷하다. 따라서 앞으로 제도개선안을 확정하기까지 환경 측면에 대한 논리적 설득노력을 강화하고 제도개선이 궁극적으로 70여만 개발제한구역 주민들 뿐 아니라 도시 주민전체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부각시켜 공감대를 넓혀 가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보인다.
필자는 지금까지 개발제한구역의 순기능은 과장될 정도로 깊이 인식된 반면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잘 인식되지 않았기 때문에 개발제한구역이 지금까지 소중하게 지켜져 왔다고 생각한다. 개발제한구역이 '도시의 허파'이며 '생명벨트'라면, 그리고 사회에 아무런 비용도 끼치지 않는다면, 당연히 자손만대에 보전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개발제한구역이 환경보전을 위한 최선의 정책수단이 아니며 그 사회적 비용이 막대하다는데 있다. 특히 개발제한구역의 사회적 비용이 가장 큰 곳은 수도권과 부산 등 대도시권이다. 따라서 민원해소 차원이 아니라 토지자원의 효율적 이용을 목표로 하는 개발제한구역 제도개선을 위해서는 수도권집중억제 논리를 극복해야 한다. 필자가 걱정하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토지부족 문제의 본질이 입지에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을 건드리는 것은 정치적으로 안전한 길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개발제한구역 제도개선과 관련하여 토지이용규제권의 지방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토지이용은 국지적 현상이므로 그 내용이 국지적인 환경의 특성에 따라 달라야 하며 중앙정부에 의한 획일적인 규제는 바람직하지 않다. 선진국 도시들에서 규제의 주체는 지역주민들의 의사를 반영한 지방정부이다. 지방정부나 주민들은 그 지역의 개발의 이득의 직접적 수혜자이며 환경오염의 직접적 피해자이다. 이러한 이득과 피해는 재산가치에 반영되므로 주민들이나 지방자치단체들에게는 그 지역의 재산가치 총액을 극대화할 분명한 유인이 있다. 지방자치단체에 맡기면 환경이 파괴될 것이라는 우려는 단기적으로 일리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토지이용규제의 중앙집권화의 명분이 되어서는 안된다. 지방정부의 계획수립 및 관리능력을 배양토록 지원하고 중앙에 있는 환경단체 본부들보다 더 현장에 가까이 있는 이른바 풀뿌리 시민집단의 감시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장기적인 해법일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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