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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환경, 경제학, 그리고 그린벨트

환경, 경제학, 그리고 그린벨트



서울경제 1999.7.12

오늘날 환경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과거 어느 때보다 높다. 깨끗한 물, 깨끗한 공기, 열대림과 습지의 보전에서부터 생물 다양성, 지구온실화 방지에 이르기까지 관심의 대상도 다양해졌다. '환경친화적', '녹색', '그린'을 내 건 제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나 그린벨트나 영월 댐(동강) 문제를 둘러 싼 열띤 논쟁 역시 환경에 대한 높은 관심의 표출로 보인다. 이처럼 환경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는 것은 환경오염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기도 했지만 환경재가 소득이 높아질수록 수요가 증가하는 일종의 사치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빈곤이 최대의 오염원인이다 (Poverty is the greatest polluter.)"라는 인디라 간디의 말이나 오늘 날 북한의 산에 나무가 별로 없다는 사실은 환경보전이 환경의 질에 대한 지불능력을 필요로 한다는 진리를 입증한다.

개발이냐 환경보전이냐 하는 식의 이분법적 논리는 큰 의미가 없다. 실질적인 문제는 환경의 질과 경제적 풍요로움을 조화시켜 삶의 질을 높여갈 구체적인 방법을 찾는데 있기 때문이다.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과 접근방식은 다양하며 이에 따라 정책대안도 달라진다. 예컨대 환경주의자들은 인간이 지구에 살 권리와 함께 지구를 보전하여 후손에 물려줄 의무도 부여받았다는 도덕적 각성과 윤리의식의 함양을 환경 문제 해결의 중요한 수단으로 본다.

이에 반해 경제학적 접근은 인간은 주어진 경제적 유인에 반응하여 행동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제주체들의 의사결정을 환경친화적으로 유도할 경제적 유인과 반대유인을 제공하여 인간의 욕구와 생태계의 소요간의 조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환경정책 수단의 선택에 있어서 오염물질의 사후처리보다는 가격정책 등 수요관리를 통한 배출량의 사전적 감축을, 직접규제보다는 간접규제를 선호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쓰레기 종량제는 좋은 예이다. 과거에는 쓰레기수거료가 쓰레기 배출량에 관계없이 재산세 금액에 비례하여 부과되었으므로 사람들이 쓰레기 배출량을 줄일 유인이 없었다. 그러나 쓰레기 종량제의 도입으로 쓰레기 배출량에 따라 봉투 구입 비용이 증가하게 되었으므로 쓰레기 양을 줄이고 재활용을 모색할 이유가 생긴 것이다. 우리 나라 물 사용량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은 이유 중의 하나도 물 값이 상대적으로 낮다는데 있다.

경제학에서는 환경오염이 환경재에 대한 재산권이 형성되지 않아서 발생하는 문제라도 본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추운 겨울 날 담배를 피우지 않는 한 사람이 택시 앞자리에, 애연가인 다른 승객이 뒷자리에 타고 있다고 하자. 이 경우 뒷자리의 승객이 (택시 안의 공기를 자신의 소유로 간주하고) 담배를 피우면 공기를 오염시켜 앞자리에 있는 손님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그러나 만일 택시 안의 공기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 승객의 것이라면 뒷자리의 승객이 담배를 피울 경우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셈이 된다. 이 경우 두 승객 중 한쪽에 공기에 대한 재산권이 주어지고 서로 거래하도록 허용하면 자발적인 협상에 의해 택시 안의 공기라는 귀중한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될 수 있다. 즉 흡연자가 담배를 피움으로써 얻는 추가적인 이득과 담배연기로 인한 추가적인 피해가 같아지는 적정한 대기 오염 수준이 달성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코우즈(Coase)의 정리이다. 물론 현실의 환경문제는 훨씬 복잡하다. 이해 당사자가 많고 누가 누구에게 얼마나 피해를 주는지를 알아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효율성과 함께 공평성의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배출권의 허용 총량을 정해 놓고 그 한도 안에서 발행된 오염배출권의 거래를 허용하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으며 지구온실화 가스 배출량 감축과 관련하여 배출권의 국가간 거래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경제학의 가장 기본적인 진리는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르며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이다. 환경문제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에 그린벨트가 '도시의 허파'이므로 해제하면 안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그린벨트 중에는 임야가 아닌 땅이 40% 가까이 된다. 이 면적은 현재 주거용, 상업용으로 개발된 토지 전체면적과 맞먹는다. 그러다 보니 우리 나라 도시민들은 높은 집값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주거비가 높아지면 환경보전에 대한 지불여력이 낮아진다. 결국 우리의 선택은 그린벨트 내에 있는 환경적 가치가 낮은

땅을 활용할 것인지, 아니면 그린벨트는 맨땅까지 온전히 지키고 그 외곽에 있는 임야나 녹지를 개발할 것인지이다. 환경정책은 그 자체로서 중요하다. 그러나 그린벨트는 효율적인 환경정책 수단이 아니며 사회적 대가가 너무 크다. [[그린벨트 보전 논리 중에 미래 세대가 그들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능력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현 세대의 욕구를 충족해야 한다는 지속가능한 개발론이 있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개발의 개념에는 현 세대의 저소득층에 대한 배려도 분명히 포함되어 있다. 어차피 현 세대보다 높은 생활수준을 누릴 후손들을 위해 현재를 살고 있는 서민들이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는 무리가 있다.]]
경제학자들의 역할은 정책당국이나 시민들이 환경과 관련된 정책의 양면성을 이해하고 충분한 정보를 토대로 결정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환경보전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들 중의 하나이다. 그렇다면 "경제학이라는 과학과 환경주의라는 종교"라는 한 경제학자의 표현을 지나치다고 비난하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