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역지대로 탈바꿈, 지역경제의 선두에 선다
90년 이후 동남아 지역으로 수출시장 다변화 시도
우리 지역 경상남도 수출액의 22.2%를 차지하고 마산시 수출액의 83%를 차지하는 어마어마한 산업체, 마산수출자유지역이 지난 3일로 30주년을 맞이했다.
이에 본사에서는 수출자유지역의 생성과정과 지역사회에서의 역할을 알아본다. <엮은이 말>
■ 자유무역지역으로 발돋움
경남지역에서 가장 선두로 달려온 마산수출자유지역은 오는 7월 자유무역지역으로 바뀌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할 준비를 하고 있다. 기존의 제조업 외에도 무역업, 무역대리업, 물류업 등의 입주를 허용하여 자유로운 제조 및 무역활동 여건을 조성하고자 기반을 다지고 있는 것이다.
기존의 제조업은 경쟁력 있는 기술이 아니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단위면적 1인당 수출실적이 우리나라 최고의 생산성을 보였다'라는 말을 하찮게 여기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조만간 자유무역지역으로 바뀌면서 지역 최고의 산업체로 재도약할 것으로 기대된다.
■ 형성배경과 우리나라 경제상황
우리나라의 경제는 60년대 제1차 경제개발기간 중 외자에 의존한 수입대체형 공업화전략을 추진해왔다. 차관원리금 상환부담, 원자재 및 시설재 수입.수요 확대에 따른 국제수지적자가 확대되고 노동집약적 경공업으로 경제가 편중되어 경쟁력 부문에 있어 취약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후 제2차 경제개발기간중 공업구조를 개선해 수출주도형 경제구조로의 전환을 모색했고 수출확대를 위해 외국자본과 기술을 도입할 수 있는 임해지역 특수수출지역을 설치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1963년 수출자유지역의 설치구상 및 논의를 시작으로 69년 대통령 수출진흥확대회의에서 자유지역설치를 지시하고 이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이후 수출자유지역설립추진위원회가 구성되어 69년 8월 마산에 설치키로 결정이 되고, 70년 1월 1일 수출자유지역설치법이 공표되면서 자유지역은 시작되었다.
70년에는 정부에 의한 정책적인 계획이 내려졌다. 제조업 부문의 외국인 직접투자를 유치함으로써 수출을 진흥하고 고용증대 및 기술향상을 도모하고자 한 것이 그것이다. 경제발전을 위해 경제개발 초기단계에 외국인투자혜택을 부여하고, 수입관세의 면제, 통관절차 간소화, 행정서비스가 제공되는 특별경제구역을 설치해 본격적으로 자유지역선정에 들어갔다.
수출자유지역의 규모는 총부지 24만평에 총고용인원 1만 2,850명으로 현재 입주 기업체만 해도 77개이다. 이 중 지원기업체는 60개인데, 타 기업체와는 차별적으로 외국인 투자기업이 44개로 전체의 57.1%를 차지하여 주로 외국투자자를 상대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국기업은 33개로 42.9%를 차지하는 등 업종별로는 전기.전자 및 정밀기기 관련업이 39개로 50.6%의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특히 수출자유지역은 외국기업들 중에서도 일본과의 연계가 깊어 170만 불어치를 수출하고 있으며 자본투자와 기술도입에 있어서 일본과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 발전되기까지
75~80년의 수출자유지역은 수출지원시책, 역외가공 활성화 등의 제도를 개편해 기존의 제조업 위주의 산업에서 자본규모가 큰 전자전기, 기계.금속 업종의 투자확대로 수출이 급성장해왔다. 이후 80년대에는 전국적으로 노동자들의 시위가 잇따르면서 수출자유지역에도 노사분규와 급격한 임금상승, 저임금 후발개도국과 경쟁, 선진국 보호무역주의 등으로 경제여건이 악화되어 수출이 감소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이때 발생한 노사분규는 전국적인 분위기와 함께 국가별로 다른 기업체가 많고 각회사가 밀집되어 있어 그 파급효과가 더욱 컸다고 볼 수 있다.
현재는 이러한 노사분규도 연간 1회 정도 일어나는 등 노사간의 갈등이 적은데 임금수준이나 근로조건 등에 있어 노동자들의 불만이 적고 노사간 화합이 잘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나라 전체가 흑자를 보이며 수출 호황을 맞았던 88년 이후에 기존의 저임금 노동집약적 산업의 한계를 벗어나 기술집약적 산업구조로 이행하고자 노력한 결과이다.
90년대에는 글로벌화에 의한 금융위기로 경제가 정체상태를 겪게 되면서, 고용인원이 1만8,000명에서 1만3,000명으로 감소하는 등 수출자유지역 내에서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했다. 이에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기술집약적 산업으로의 전환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또 지역별 수출 외국인투자기업의 상당수가 투자모국에 수출함에 따라 수출 대상국이 일본, 미국으로 편중되어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왔고, 90년 이후 중국이나 홍콩 등 동남아지역으로 수출시장을 넓히는 등 수출시장 다변화를 통해 해외 직수출을 선호한다.
■ 현재와 미래
매년 수출액의 40% 이상의 외화가득, 국산원부자재 수입 등을 통해 창출된 부가가치를 지역경제에 환원해 지역경제를 활성화시켜 온 수출 자유지역은 해외에 본사를 두어야 하는 중계무역이 현실적으로 힘든 국내에서 그 특징을 잘 살려 운영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중계무역이라 하면 외국의 선진기술을 가져와 우리의 노동력으로 제조를 해 다시 수출하는 형태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외국의 우수한 기술력이나 선진기술을 비용없이 바로 들여와 우리의 기술을 한층 상승시킨다는 의미에서 이는 잘못된 생각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지역경제의 선두에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앞장서고 있는 수출자유지역이 자유무역지대로 바뀌면서 새로운 사업형태와 다양한 기술력으로 세계무대에서 경쟁해 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90년 이후 동남아 지역으로 수출시장 다변화 시도
우리 지역 경상남도 수출액의 22.2%를 차지하고 마산시 수출액의 83%를 차지하는 어마어마한 산업체, 마산수출자유지역이 지난 3일로 30주년을 맞이했다.
이에 본사에서는 수출자유지역의 생성과정과 지역사회에서의 역할을 알아본다. <엮은이 말>
■ 자유무역지역으로 발돋움
경남지역에서 가장 선두로 달려온 마산수출자유지역은 오는 7월 자유무역지역으로 바뀌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할 준비를 하고 있다. 기존의 제조업 외에도 무역업, 무역대리업, 물류업 등의 입주를 허용하여 자유로운 제조 및 무역활동 여건을 조성하고자 기반을 다지고 있는 것이다.
기존의 제조업은 경쟁력 있는 기술이 아니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단위면적 1인당 수출실적이 우리나라 최고의 생산성을 보였다'라는 말을 하찮게 여기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조만간 자유무역지역으로 바뀌면서 지역 최고의 산업체로 재도약할 것으로 기대된다.
■ 형성배경과 우리나라 경제상황
우리나라의 경제는 60년대 제1차 경제개발기간 중 외자에 의존한 수입대체형 공업화전략을 추진해왔다. 차관원리금 상환부담, 원자재 및 시설재 수입.수요 확대에 따른 국제수지적자가 확대되고 노동집약적 경공업으로 경제가 편중되어 경쟁력 부문에 있어 취약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후 제2차 경제개발기간중 공업구조를 개선해 수출주도형 경제구조로의 전환을 모색했고 수출확대를 위해 외국자본과 기술을 도입할 수 있는 임해지역 특수수출지역을 설치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1963년 수출자유지역의 설치구상 및 논의를 시작으로 69년 대통령 수출진흥확대회의에서 자유지역설치를 지시하고 이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이후 수출자유지역설립추진위원회가 구성되어 69년 8월 마산에 설치키로 결정이 되고, 70년 1월 1일 수출자유지역설치법이 공표되면서 자유지역은 시작되었다.
70년에는 정부에 의한 정책적인 계획이 내려졌다. 제조업 부문의 외국인 직접투자를 유치함으로써 수출을 진흥하고 고용증대 및 기술향상을 도모하고자 한 것이 그것이다. 경제발전을 위해 경제개발 초기단계에 외국인투자혜택을 부여하고, 수입관세의 면제, 통관절차 간소화, 행정서비스가 제공되는 특별경제구역을 설치해 본격적으로 자유지역선정에 들어갔다.
수출자유지역의 규모는 총부지 24만평에 총고용인원 1만 2,850명으로 현재 입주 기업체만 해도 77개이다. 이 중 지원기업체는 60개인데, 타 기업체와는 차별적으로 외국인 투자기업이 44개로 전체의 57.1%를 차지하여 주로 외국투자자를 상대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국기업은 33개로 42.9%를 차지하는 등 업종별로는 전기.전자 및 정밀기기 관련업이 39개로 50.6%의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특히 수출자유지역은 외국기업들 중에서도 일본과의 연계가 깊어 170만 불어치를 수출하고 있으며 자본투자와 기술도입에 있어서 일본과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 발전되기까지
75~80년의 수출자유지역은 수출지원시책, 역외가공 활성화 등의 제도를 개편해 기존의 제조업 위주의 산업에서 자본규모가 큰 전자전기, 기계.금속 업종의 투자확대로 수출이 급성장해왔다. 이후 80년대에는 전국적으로 노동자들의 시위가 잇따르면서 수출자유지역에도 노사분규와 급격한 임금상승, 저임금 후발개도국과 경쟁, 선진국 보호무역주의 등으로 경제여건이 악화되어 수출이 감소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이때 발생한 노사분규는 전국적인 분위기와 함께 국가별로 다른 기업체가 많고 각회사가 밀집되어 있어 그 파급효과가 더욱 컸다고 볼 수 있다.
현재는 이러한 노사분규도 연간 1회 정도 일어나는 등 노사간의 갈등이 적은데 임금수준이나 근로조건 등에 있어 노동자들의 불만이 적고 노사간 화합이 잘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나라 전체가 흑자를 보이며 수출 호황을 맞았던 88년 이후에 기존의 저임금 노동집약적 산업의 한계를 벗어나 기술집약적 산업구조로 이행하고자 노력한 결과이다.
90년대에는 글로벌화에 의한 금융위기로 경제가 정체상태를 겪게 되면서, 고용인원이 1만8,000명에서 1만3,000명으로 감소하는 등 수출자유지역 내에서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했다. 이에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기술집약적 산업으로의 전환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또 지역별 수출 외국인투자기업의 상당수가 투자모국에 수출함에 따라 수출 대상국이 일본, 미국으로 편중되어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왔고, 90년 이후 중국이나 홍콩 등 동남아지역으로 수출시장을 넓히는 등 수출시장 다변화를 통해 해외 직수출을 선호한다.
■ 현재와 미래
매년 수출액의 40% 이상의 외화가득, 국산원부자재 수입 등을 통해 창출된 부가가치를 지역경제에 환원해 지역경제를 활성화시켜 온 수출 자유지역은 해외에 본사를 두어야 하는 중계무역이 현실적으로 힘든 국내에서 그 특징을 잘 살려 운영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중계무역이라 하면 외국의 선진기술을 가져와 우리의 노동력으로 제조를 해 다시 수출하는 형태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외국의 우수한 기술력이나 선진기술을 비용없이 바로 들여와 우리의 기술을 한층 상승시킨다는 의미에서 이는 잘못된 생각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지역경제의 선두에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앞장서고 있는 수출자유지역이 자유무역지대로 바뀌면서 새로운 사업형태와 다양한 기술력으로 세계무대에서 경쟁해 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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