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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경제경영

쌀 개방을 반대하는 이유

한균자 교양학과 교수 / 한국방송통신대학보 1991년 12월 30일.

몇년전 담배시장 개방 압력으로 우리를 불쾌하게 했던 미국이 지금은 또 쌀시장 개방을 놓고 우리 정부와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이것은 종속적 경제발전론에 대한 논의가 겨우 잠잠해지기 시작한 근래 학계주변의 분위기를 다시 자극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의 쌀개방에 대한 대한정책은 확고한데 반해 우리정부의 대응은 그렇지 않다는 데 있다. 정부의 대응이라는 것은 고작 국민을 의식해서 "쌀개방은 절대 없을 것이다." 라고 했다가 "만약에..", "불가피할 경우엔..", "상황을 미리 대비해서 쌀 이외의 대체농산물을 개발 보급하는데 주력하겠다."는 등 상대편의 의지가 강하게 나올수록 우리 정부의 의지는 상대적으로 희석되고 있다. 이런 유형의 충격요법에 숙달되어 온 우리 국민은 이제 그 내재적인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 짐작할 수 있을 만큼 현명해졌다.

칼라 힐스를 내세운 미국의 완강한 태도에 비해 우리 정부는 독립적인 의지표명이 아니라 일본, 캐나다등 다른 나라들과 공동대처해 나가겠다는 입장만을 거듭 밝히고 있을 뿐이다. 그러던 차 지난 15일 (12월 15일) 와타나베 미치오 외상은 일본 쌀시장의 3~5%를 개방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공식제시했다. 그러므로 우리 정부는 동반자를 하나 잃은 셈이다.

와타나베 외상의 말대로 일본정부는 쌀시장의 일부를 개방할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UR협상이 이루어지면 일본은 상대적으로 얻는 부분이 훨씬 크기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정이 다르다. 농산물을 내어주고 받아올 2,3차 산업부문에서 우리는 아직도 기술,정보,써비스면에서 앞서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핵심적인 문제는 득과 실을 따져 본 손익계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더욱 그 손익계산이 현재의 상황을 준거로 한 단기적인 차원에서 볼때는 우리에게도 분명 득이 있다. 그러나 쌀은 깨나 콩등의 다른 농산물과는 달리, 우리에게는 단순한 농산물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쌀은 우리민족의 생명이요, 넋이요, 우리문화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지금 수입압력을 받고 있는 Calrose는 (벌써 시장에 많이 유통되고 있다함) 미국의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되는 쌀이다. 이 쌀은 우리의 입맛에 잘 맞는다. 이 쌀이 수입되는 한 우리의 벼농사는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은 뻔한 일이다. 싸고 맛있는 쌀이 유통되고 있는한 국민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일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한편 정책적으로 농가에 대한 피해보상이 적절히 주어지고 대체농작물을 적극 보급 지원한다면 농가에서 쌀 생산을 점차 기피할 것임은 또한 분명한 일이다. 결국 해가 거듭할 수록 우리는 우리의 주식을 남에게(미국) 의존하는 날이 오게 될 것이라는 것 또한 분명한 일처럼 느껴진다.

미국의 쌀 생산을 주로 하고있는 캘리포니아 지역은 원래 비가 많이 오는 곳이 아니다. 그런데 지난 5년간 가뭄이 계속되었다. 연속적인 가뭄으로 수원지의 물보유량이 점차 줄어들자 주정부는 가뭄대책을 여러가지로 발표했다. 그중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정책이 논에 물 안대주기 였다. 벼농사는 많은 물을 필요로 하는 반면 수익성은 낮다는 것이 이유였다. 장기적으로는 점차 논을 줄여나가야 할 것이라는 수자원보호대책이 제시되기도 했다.

비가 안오면 양수기를 동원해서 지하수라도 퍼올려 벼농사를 지어야 하는 우리네 정서와, 논에는 단수를 해서라도 자기집 앞의 잔디에는 물을 주어야 하는 미국인의 정서는 근원적으로 같을 수가 없다.

우리 7천만 국민의 주식이 그들 손에 달렸을때, 캘리포니아의 가뭄이 5년에서 그치지 않고 10년간 계속될때, 그 때에도 Calrose가 지금처럼 싼 가격에 거래될 수 있을까?

우리는 빵 안먹어도 되고 우유나 쇠고기 안먹어도 된다. 그러나 밥을 안먹을 수는 없는 국민이다. 쌀은 우리 민족문화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쌀은 단순한 농가 소득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생존과 안보에 직결되는 우리 모든 국민의 미래가 달려있는 문제이다. 쌀개방을 반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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