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우(조지아텍 정보공학 석사 과정)
우리는 종종 "다 먹고살려고 하는 짓인데"하고 말한다. 이처럼 경제는 인간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 활동의 하나이다. 가상 사회 역시 엄연한 인간의 사회이므로 경제 활동이 없을 수가 없다.
가상 사회의 경제는 광범위한 영역을 포함한다. 원래 경제란 분야 자체가 거대하기 때문이다. 온라인
쇼핑부터 머드에서의 돈벌이까지,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경제 현상을 가상 사회의 경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 필자가 말하는 가상 사회의 경제는 요즘 유행하는 전자상거래와는 조금 다른 것임을 먼저
밝히고자 한다. 물론 이러한 구분은 전자상거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넓은
시각으로 접근한다면 가상 사회의 경제에 전자상거래가 포함될 것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머드 같은
가상 사회에서 어떠한 경제 시스템을 제공하며 사용자들은 이런 시스템에서 어떤 경제 활동을 하는가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내 직업은 토끼사냥꾼, 네 직업은 하느님
울티마 온라인 같은 가상 사회형 게임에서는 게이머들이 게임을 하는데 필요한 무기나 필요한 아이템을 사야 한다. 울티마 온라인에는 크고 작은 마을이 존재하고 마을 안에는 각종 물건을 파는 상점이 있다. 물론 물건을 사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게이머들은 돈을 벌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게이머들은 어떻게 돈을 벌까?
울티마 온라인의 가상 경제는 교역(trade)에 기반을 두고 있다. 게이머들은 울티마 온라인이 제공하는
세계 안에서 이곳 저곳을 다니며 여러 아이템들을 찾아내어 상인에게 팔아 돈을 번다. 울티마 온라인의 가상 경제는 물리적 세계와 마찬가지로 '필요와 공급의 원칙'이 적용된다. 이를테면 재고가 많이 쌓인 아이템은 잘 안팔리거나 혹 팔게 되더라도 값을 싸게 치르게 된다.
마을마다 아이템의 재고량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아이템이라도 마을마다 그 가격이 차이가 난다. 그래서 마을마다 다니며 그 마을에 부족한 아이템을 더 높은 가격에 파는 게이머들도 있다. 또는 다른 게이머들로부터 물건을 구입하여 또다른 게이머들에게 물건을 파는 중개무역을 하는 게이머들도 있다.
초보 게이머들은 돈도 벌고 전투 경험치도 올릴 수 있는 '토끼 사냥'을 주로 한다. 산으로 가서 토끼나 다른 짐승을 사냥한 다음 가죽과 고기를 가지고 마을에 내려가 푸줏간에 파는 것이다. 전투 경력이 좀 있고 수양이 덜(?)된 게이머들은 다른 약한 게이머를 공격하여 물건을 뺏는 산적질을 하기도 한다.
토끼 같은 짐승이나 아이템은 시스템이 자동으로 생성한다. 게이머들은 시스템이 기본으로 제공하는
물건들은 가지고 돈을 버는 것이다. 자원은 공짜로 제공되지만 공짜로 취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토끼 죽어!"한다고 토끼가 죽는 것이 아니라 칼이나 활을 이용하여 토끼를 사냥해야 한다. 즉 자원
확보를 위한 게이머들의 노력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교역에 드는 노력도 필요하다.
사냥을 해서 돈을 벌어야 더욱 좋은 무기를 가지고, 그래야 다른 게이머나 괴물들에게 살해당하지
않으므로 게이머들은 늘 경제 행위를 하게 된다. 즉 시스템이 제공하는 환경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 경제 행위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조금만 바꿔 생각해 보면 가상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은 모순일 수도
있다. 가상 세계는 철저한 인조 세계로, 모든 것이 사람 손에 의해 창조되고 조작될 수 있다. 따라서
"토끼죽어!"라고 말만 하면 토끼가 그 자리에서 죽는 세계를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가상 세계, 가상 사회란 결국 컴퓨터 시스템이므로 그렇게 되도록 프로그램 코드만 만들어 주면 되는 것이다.
물론 울티마 온라인은 게임이므로 적당한 도전을 불러오는 결핍 요소들이 있어야 재미있다. 오락실에
동전을 집어넣은 다음 마이크에 대고 "최고 보스 죽어!"라고 말하는 것으로 게임이 단번에 끝난다면?
그렇지만 전지전능의 예가 게임에 없는 것은 아니다. 둠(Doom) 같은 3D 그래픽 게임에는 속임수 코드
(cheat code)라는 것이 있어서 무기를 한꺼번에 가지거나 적에게 공격을 당해도 죽지 않는 신(이를 god mode라고 부른다)이 되어 게임을 할 수도 있다.
물리적 세계에서 우리가 돈을 버는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굶어 죽기 때문이다. 복잡한 경제학적
원리를 안 따지더라도 이것이 경제 행위의 근본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어도
살 수 있다면 누가 일을 하겠는가? 그러나 가상 세계는 굶어 죽는 일은 없다. 굶어 죽지 않게
프로그램을 만들면 그만인 것이다. 배고프지 않게 프로그램을 만들고 늙지 않게 코드를 작성해 주면
되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울티마 온라인 같이 제한된 환경을 일부러 설정해 두어 게이머들이 살아가기
위해 경제 행위를 하게 만드는 것은, 게임의 진행을 위해 제작사가 조작한 하나의 세트에 불과한 것인
셈이다. 물리적 세계와는 달리 누군가 인위적으로 조작한 환경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 시스템이 제대로 된 경제 시스템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를테면 일반 게이머들이 시간과 정력을 투자해 악착같이 토끼 사냥을 하고 다니는 동안, 이 시스템의 내부 코드를 잘 아는 위저드들이나 기술력을 갖춘 해커들은 둠의 속인수 코드 같은 것을 사용하여 단번에 백만장자가 될 수도 있다. 물리적 세계에서는 제 아무리 하늘이 내린 재주를 갖추었더라도 손에 있는 천 원 짜리 지폐를 만 원 짜리 지폐로 바꿀 수 없다. 하지만 가상 세계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실제 울티마 온라인에서는 유오익스트림(UO Extreme)이라는 거의 속임수 코드에 가까운 보조 프로그램이 게이머들 사이에 은연중에 사용되어 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오리진(울티마 온라인 제작사)에서는 유오익스트림을 불법 프로그램으로 판정하고 사용을 금지시켰다.
결국 울티마 온라인의 경제는 그 게임의 세계에서나 통하는 장난감 경제인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상 경제가 물리적 경제와 연결되면, 특히 가상 사회의 재산이 물리적 세계의 실제 가치(value)로 교환될 수 있다면 게임 속의 소꿉장난 같은 수준을 떠나 진짜 경제 시스템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주시해야 한다.
최초의 가상 화폐, 해비텟의 토큰
가상 사회에 경제 시스템을 도입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비교적 초창기의 가상 사회에 해당하는
해비텟(Habitat)에서도 가상 경제 시스템을 볼 수 있다. 해비텟은 1985년 MIT에서 만들었는데, 놀랍게도 당시의 기술로 그래픽 기반의 가상 사회를 구현하였다. 그래픽 케릭터인 아바타(avatar)를 사용하고 아바타의 머리를 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도 바로 이 해비텟이다.
해비텟에서는 토큰(token)이라는 가상 화폐가 있었다. 이 토큰은 회원들이 어떤 활동을 하여 버는 것이 아니라 접속할 때마다 일정량이 주어졌다. 해비텟의 제작자들은 지역마다 물건의 가격을 다르게 하는 등 물리적 세계의 경제 시스템을 모방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토큰이란 것이 노력해서 버는 것이 아니라 접속할 때마다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토큰은 자꾸 비축되는 반면 소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여 곧 토큰의 가치가 엄청나게 떨어지게 되었다.
해비텟의 토큰은 시스템을 만든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경제 시스템으로 초창기 가상
사회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경우이다. 물론 경제 원리에 전혀 기초하지 않았으므로(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만들어낸 경제 시스템이니 오죽 하겠는가) 해비텟의 경우처럼 거의 실패했다.
해비텟의 가상 경제 시스템에서 한가지 흥미 있는 것은 해비텟의 회원들이 그냥 공짜로 받는 토큰보다는 다른 회원들과 벌이는 대회에서 승리하여 얻어오는 머리에 더욱 가치를 두게 되어 얼마 안 가 공식 화폐인 토큰의 양보다 쟁취해 온 머리의 갯수가 부를 나타내는 상징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토큰을 주고라도 머리를 사겠다는 회원들이 나타났고 또한 머리를 많이 쟁취한 회원들은 그 중에 괜찮은 머리를 경매에 붙이기도 했다고 한다.
또다른 경제 시스템의 예를 보자. 텍사트오스틴 주립대학의 샌디 스톤(Sandy Stone)은 사이버스페이스
관련 연구 분야에서 큰 비중을 가진 학자 중의 한 명이다. Pt. Moot는 그녀가 만든 머드인데, 이
머드에서는 게이머가 돈을 벌어(금광에 가서 금을 캐는 일) 음식을 사먹지 않으면 굶어 죽게 되어
있었다. 해비텟과 달리 공짜로 돈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사용자들은 자연히 일을 하고 돈을 벌기
시작하였다. 또한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는 음식을 사먹어야 하므로 자연스럽게 돈을 쓰기 시작하였다.
이런 경제 시스템은 물리적 세계와 비슷하게 가상 사회 안에 어느 특정한 제한을 두어 사용자가 그
제한을 극복하기 위해 경제 행위를 하도록 강요하는 방법이다. 앞서 말한 울티마 온라인의 경제
시스템도 이 경우에 해당된다.
자유 경제 체제가 도입되다
이런 경제 시스템의 문제점은 이미 언급하였듯, 경제 행위를 끌어내기 위해, 물리적 세계에나 있는
제한을 가상 사회에 일부러 둔다는 것이다. Pt. Moot에서도 프로그램 한 줄만 고치면 게이머들이 굶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데도 경제 활동을 유도하기 위해 일부러 그런 제한을 두고 있다. 이렇듯 억지로 만든 순수 가상 경제 시스템은 진짜 경제로 발전하지는 못한다.
이런 방식은 물리적 세계의 여러 제한점을 잘 극복하는 가상 사회의 특징을 전혀 살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해킹 등을 통한 각종 경제 비리를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된다. 앞서 말한 울티마 온라인의
유오익스트림이 대표적인 예이며 역시 앞서 소개한 속임수 코드라던가 몇몇 '하느님' 프로그래머들에
의한 시스템 조작도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
가상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또다른 경제 시스템은 물리적 세계의 경제와 연결을 짓고 있는 형태로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형태이기도 하다. 물리 세계와 연결된 가상 경제의 초창기 예는 3회에서 소개된바 있는 람다무(LamdaMOO)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제3부 참고)
람다무는 해비텟의 토큰과 비슷한 쿼터(quota)라는 것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쿼터는 토큰처럼
가상 화폐가 아니었다. 유닉스(UNIX) 운영 체제에 익숙한 사람은 알겠지만 쿼터는 하드 디스크의 용량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람다무에서는 각 사용자에게 일정량의 쿼터를 할당해 주었다. 쿼터는 토큰처럼 시스템이 공짜로 제공해 주기는 하지만 토큰과는 아주 큰 차이가 하나 있었다. 쿼터는 토큰과는 달리 물리적 세계에 존재하는 실제 물건으로서 물리적 세계의 자원의 제한성을 받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먼저 쿼터가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부터 알아보자. 람다무는 사용자가 객체 지향적 프로그래밍 언어를
가지고 자기의 가상 공간을 직접 만들어 가는 머드이다(MOO가 MUD Object-Oriented임을 상기하자).
여기서 말하는 공간이란 곧 프로그래밍 코드와 사용되는 데이터이다. 사용자가 공간을 만들고 나면 이
공간을 시스템에 저장해야 할 것이다. 쿼터는 바로 공간을 저장할 저장 용량을 나타내는 값이다. 한메일 같은 무료 메일 서비스에서 제공하는 메일 저장 용량과 같은 것이다.
사용자는 람다무에 처음 가입할 때 일정량의 쿼터를 할당받는다. 이후 사용자가 쿼터를 추가로 받고
싶으면 ARB(Architecture Review Board)라고 불리는 평위원회에 쿼터를 신청해야 한다. ARB는 쿼터를
추가로 요구한 회원이 만든 공간을 평가하는 기관이다.
ARB는 회원의 작업을 평가하는 기관이지만 ARB의 평가가 좋으면 쿼터를 할당받고 그렇지 않으면 못 받게 된다. 사실상 쿼터라는 가치를 관할하는 강력한 권력 기관이었다. 그러나 람다무의 모든 정책이
회원들의 비밀 투표에 의해 결정되는 민주주의 방식으로 바뀌고 나서 회원들은 투표를 통해 ARB로부터
쿼터 관리라는 권력을 박탈하게 되었고 그 이후 회원들은 자유롭게 쿼터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자유 경제 체제가 도입된 것이다.
물리적 사회에서 거래되는 가상 재산
초기에는 쿼터의 소비가 사용자들이 각자의 공간을 더 넓혀감에 따라, 프로그래밍 코드로 채워지는
쿼터의 소비로만 한정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공간을 더 잘 만드는 회원들이 다른
회원들의 공간을 대신 지어주게 되면서, 쿼터가 통화처럼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공간을 대신 만들어준
회원들이 일정량의 쿼터를 건설비로 받기 시작한 것이다.
곧이어 다른 형태의 '비즈니스'도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를테면 아주 재미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고
다른 회원으로부터 공간의 사용료를 받는 것이었다. 일종의 엔터테인먼트 사업이 나온 것이다. 또
대학교의 연구소와 같은 방식으로 쿼터를 벌어 쓰는 회원도 있었다. 대학이 회사로부터 연구비를 지원
받아 연구를 하듯, 다른 회원들에게 쿼터를 받아 공간을 만들고 그 결과를 돌려주는 방법이었다.
공간을 잘 만들지 못하는 회원들은 다른 방식으로 쿼터를 벌어야 하므로 공간 이외의 사럽들도 나왔을
것이다.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사업은 무엇일까? 공식적인 이야기는 없지만 아마 매춘 사업이 아닐까
싶다. 채팅으로 가상 섹스를 해주고 화대로 쿼터를 할당받는 것이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가상 섹스는 누구나 쉽게 해 볼 수 있고, 많은 머드에서 이미 대중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쿼터는 앞서 말했듯 하드 디스크 용량이므로 가상 사회 시스템이 무한정 생산해 낼 수 없는 물리적인
물건이다. 물리적 세계의 자원의 한정성과 쿼터가 소비되고 유통되는 가상 사회의 사회 활동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 쿼터를 통화로 한 경제 시스템이 갖추어진 것이다.
가상 경제가 물리적 경제로 연결되어 실제적인 경제로 발전한 것은 가상 사회에서의 재산이 물리적
세계에서 현금으로 매매되면서부터이다.
이베이(eBay)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경매 웹사이트이다. 이곳에 가면 울티마 온라인의 아바타나
아이템을 팔겠다고 올린 글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조금 오래된 것이기는 하지만 필자가 가지고 있는
자료중에 울티마 온라인의 아바타를 521달러에 팔겠다고 내놓은 것도 있다. 이런 글들은 미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국내의 대표적인 머드 게임인 리니지 등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울티마 온라인이나 리니지 등에서 힘이 강한 아마타를 키우거나 가치 있는 아이템을 모으는 일은 돈과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는 일이다. 힘들게 모은 아이템이나 어렵게 키운 아바타는 앞서 소개한 해비텟의
머리처럼 매우 귀중한 재산으로 여겨지게 되었고, 이런 아이템을 물리적 세계에서 사고 팔기 시작한
것이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초보 게이머에게는 시간과 정력을 투자하고 고생해서 아바타를 키우는
것보다, 이처럼 이미 힘을 갖춘 아바타를 사는 것이 훨씬 편할 것이다.
이런 매매가 성행하자 오랫동안의 경력(?)을 통해 아바타 키우는 법을 잘 알고 있는 노련한 게이머들이 아바타를 전문적으로 키워 판매하는 장사를 하기도 했다. 거래 가격이 때로는 수십만 원까지 올라가기도 하므로 아바타 판매가 신종 사업이 될 만도 하다. 가상 사회에서 직업을 가져 물리적 세계에서 먹고사는 것이다.
가장 경제와 물리적 경제를 연결하자
여느 온라인 거래에서나 볼 수 있는 사기 사건도 발생하였다. 물리적 세계와 마찬가지로 머드에서도
도둑질을 하거나 자기보다 약한 아바타를 축이고 재산을 빼앗는 범죄 행위가 있기 마련이다. 울티마
온라인과 같은 머드에서는 아바타의 힘이나 아이템만큼 그 아바타의 명성도 중요한데, 이런 반사회적
행위로 악명이 높아진 아바타를 초보 게이머들에게 속여 팔아 넘기는 일들이 종종 발생한 것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초보 게이머들은 싼값에 강한 힘을 가진 아바타를 구했다고 좋아한다. 그러나 머드에 들어가자마자 다른 게이머들에게 잔뜩 욕을 먹거나 심지어 살해당하기도 하였다. 속아서 그 아바타를 구입한 게이머로서는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지만 2회에서 설명한 바 있는 가상 사회의 신원의 문제로 인해 자신이 일전의 그 나쁜 게이머가 아님을 증명할 길이 없었다. 아바타의 매매는 이처럼 아바타로만 신원이 확인되는 가상 사회에서 새로운 신원의 이슈를 불러온다.
국내 여로 포탈 사이트나 쇼핑몰에서 운영하는 사이버 머니(cyber money) 역시 가상 경제와 물리적
물리적 폭력으로 가상 재산을 빼앗다
어느 한 고등학생이 온라인 게임 '리니지'에서 다른 인물을 공격해 숨지게 했다. 그 과정에서 채팅으로 반말과 욕설이 오갔다. 숨진 게이머가 '직접 만나서 싸워보자'라고 하여 장소를 정해 만난 것이 화근이 되었다. 숨진 게이머가 한 지방도시에서 유명한 조직폭력배였던 것이다.
여러 명의 부하를 몰고 온 그 폭력배는 고등학생을 두들겨 팼다. 그리고는 "가지고 있는 물품들 모두 내놔". 그 고등학생은 리니지에서 몇 달간 고생하여 모은 무기들을 모두 빼앗겼다.
8월 31일자 한겨레신문에 다음과 같은 매우 흥미를 끄는 기사가 실렸다. 필자가 이 기사에 특히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그 폭력배가 빼앗아 간 것이 물리적 재산이 아니라 가상 사회의 재산이라는 점이다. 물론 사건이 발발한 주된 이유는 자신의 아바타를 죽인 것에 대한 분노와 그로 인해 오간 말싸움이었고, 무기 등을 빼앗아 간 것은 분풀이의 하나 정도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사건은 앞으로 가상 사회의 재산을 뺏기 위해 물리적 세계에서 폭력을 쓸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크다. 제법 강한 아바타나 귀중한 가상 재산을 소유한 사람(이는 어른이 아니라 초등학생일 수도 있다)의 물리적 신원을 찾아내어 폭력 등으로 이를 뺏은 다음 다른 사람들에게 파는 신종 범죄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래의 또 다른 기사(전자신문 8월 12일자)도 이와 비슷한 절도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온라인게임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면서 타인의 ID를 부정한 방법으로 알아내 이를 사기 등의 범죄에 이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어 게이머 사이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달 말 성동경찰서는 부정하게 절취한 온라인게임 '리니지'의 게임 속 아이템을 팔아 넘기려 했던 고교생 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자주 들르던 PC게임방에서 이 업소 주인 지 씨의 ID와 패스워드를 알아내 타 게임방에서 지씨의 ID로 접속한 뒤, 그 동안 지씨가 벌어들인 각종 아이템을 자신들의 ID에 옮겨 놓고 이를 20만원 가량에 팔아 넘기려 했다.
경찰은 도난 당한 자신의 아이템을 찾아달라는 지 씨의 신고에 따라 게임제작사 엔씨소프트의 협조로 ID를 역추적한 끝에 이들을 검거했으며 이 사건은 사이버시대의 새로운 절도사건으로 기록됐다.
경제를 연결하는 또 하나의 좋은 예이다. 국내외 대표적인 포탈 사이트인 골드뱅크에서는 회원들이 광고나, 리서치, 각종 이벤트에 참여하면 사이버 머니를 받게 되고, 사이버 머니가 쌓여 3만 원이 되면 진짜 현금으로 돌려주는 제도를 두고 있다. 또한 조만간 많은 쇼핑몰들이 사이버 머니로 쇼핑을 하거나 회원끼리 물건을 사고 팔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고 한다. 일종의 가상 화폐 제도가 탄생하는 것이다.
사실 이런 아이디어는 최근에 나온 것이 아니다.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전 가상 사회의 주인공역을 맡아 왔던 사설 비비에스를 회고해 보자. 많은 비비에스가 회원의 활발한 활동을 끌어내기 위해 여러 정책을 사용했었는데, 그중 특히 많이 쓰인 것이 바로 활동량 적립 제도였다. 이를테면 글을 올린 횟수가 일정치를 넘으면 회원 등급이 올라간다던가 특정 게시판에 글을 쓸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는 것이다.
몇몇 비비에스에서는 긍정적 답장이 많은 글일수록 그 글을 쓴 회원에게 점수를 더 많이 주는 식으로 이 방법을 더욱 정교하게 응용하기도 하였다. 긍정적 답장이 많다는 것은 그 글이 다른 회원들에게 주는 영향이 큰 것으로 그만큼 비비에스(또는 해당 게시판)의 활성화에 공헌을 끼쳤다는 논리에서 나온 것으로, 같은 글이라도 그 글의 가치 여부를 따지는 일종의 인센티브 제도인 것이다.
사이버머니나 활동 적립제나 모두 사용자의 왕성한 활동을 유도해 내려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사용자가 늘 거주하는 물리적 세계와 달리 가상 사회는 사용자가 능동적으로 접속을 해 활동을 해야
사회가 운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리적 세계와는 달리 가상 사회는 '안 들어가면 그만'이기 때문에
사용자의 활동을 적극 끌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실제 돈이 오가는 물리적 경제와 가상
경제를 교묘하게 연결한 것이다.
긍정적으로 볼 때 이러한 형태의 가상 경제는 물리적 경제의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온라인
쇼핑몰이 늘어나면서 택배 사업이 활기를 띠는 것처럼 말이다. 앞서 언급한 아바타의 매매처럼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수도 있다.
물론 부정적인 면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가상 사회의 미비한 신원성 문제와 고급
기술력을 악용한 신종 사기이다. 가상 재산이 물리적 재산으로 연결될 수 있게 됨에 따라 시스템
개발자나 운영자의 경제적 횡포나 비리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시스템의 코드를 잘 아는
프로그래머(운영진일수도 있고 실력이 좋은 해커일 수도 있다)가 강한 아바타 수십 개를 만들어 개당
수십만 원에 파는 사건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가상 사회에서 실제 사용되고 있는 몇 가지 가상 경제 시스템들을 살펴보았다. 필자는
현재로서 가장 발전한 가상 경제는 물리적 세계의 경제와 연결된 가상 경제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런 형태의 가상 경제 시스템이 주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이러한 형태의 가상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물리적 경제와의 조화나 법률의 적용과 같은 각종 사회 문제들이 새로운 이슈로 떠오를 것이다.@
참고문헌 :
Julian Dibbel, MUD Money
Ultima Online Tutorial
Wired May 1998. "Kill Bunnies, Sell Meat, Kill More Bunnies"
Avatars for sale from www.avault.com
Electric Communities, Commerce and Society in Cyberspace
윤웅기, 머드게임을 중심으로 본 가상 사회의 도래와 법률 문제
한겨레 신문 99년 8월 31일, (흐름)온라인 머드게임 '리니지'열풍
전자신문 99년 8월 12일, 온라인게임 ID도용 '비상벨'
우리는 종종 "다 먹고살려고 하는 짓인데"하고 말한다. 이처럼 경제는 인간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 활동의 하나이다. 가상 사회 역시 엄연한 인간의 사회이므로 경제 활동이 없을 수가 없다.
가상 사회의 경제는 광범위한 영역을 포함한다. 원래 경제란 분야 자체가 거대하기 때문이다. 온라인
쇼핑부터 머드에서의 돈벌이까지,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경제 현상을 가상 사회의 경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 필자가 말하는 가상 사회의 경제는 요즘 유행하는 전자상거래와는 조금 다른 것임을 먼저
밝히고자 한다. 물론 이러한 구분은 전자상거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넓은
시각으로 접근한다면 가상 사회의 경제에 전자상거래가 포함될 것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머드 같은
가상 사회에서 어떠한 경제 시스템을 제공하며 사용자들은 이런 시스템에서 어떤 경제 활동을 하는가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내 직업은 토끼사냥꾼, 네 직업은 하느님
울티마 온라인 같은 가상 사회형 게임에서는 게이머들이 게임을 하는데 필요한 무기나 필요한 아이템을 사야 한다. 울티마 온라인에는 크고 작은 마을이 존재하고 마을 안에는 각종 물건을 파는 상점이 있다. 물론 물건을 사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게이머들은 돈을 벌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게이머들은 어떻게 돈을 벌까?
울티마 온라인의 가상 경제는 교역(trade)에 기반을 두고 있다. 게이머들은 울티마 온라인이 제공하는
세계 안에서 이곳 저곳을 다니며 여러 아이템들을 찾아내어 상인에게 팔아 돈을 번다. 울티마 온라인의 가상 경제는 물리적 세계와 마찬가지로 '필요와 공급의 원칙'이 적용된다. 이를테면 재고가 많이 쌓인 아이템은 잘 안팔리거나 혹 팔게 되더라도 값을 싸게 치르게 된다.
마을마다 아이템의 재고량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아이템이라도 마을마다 그 가격이 차이가 난다. 그래서 마을마다 다니며 그 마을에 부족한 아이템을 더 높은 가격에 파는 게이머들도 있다. 또는 다른 게이머들로부터 물건을 구입하여 또다른 게이머들에게 물건을 파는 중개무역을 하는 게이머들도 있다.
초보 게이머들은 돈도 벌고 전투 경험치도 올릴 수 있는 '토끼 사냥'을 주로 한다. 산으로 가서 토끼나 다른 짐승을 사냥한 다음 가죽과 고기를 가지고 마을에 내려가 푸줏간에 파는 것이다. 전투 경력이 좀 있고 수양이 덜(?)된 게이머들은 다른 약한 게이머를 공격하여 물건을 뺏는 산적질을 하기도 한다.
토끼 같은 짐승이나 아이템은 시스템이 자동으로 생성한다. 게이머들은 시스템이 기본으로 제공하는
물건들은 가지고 돈을 버는 것이다. 자원은 공짜로 제공되지만 공짜로 취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토끼 죽어!"한다고 토끼가 죽는 것이 아니라 칼이나 활을 이용하여 토끼를 사냥해야 한다. 즉 자원
확보를 위한 게이머들의 노력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교역에 드는 노력도 필요하다.
사냥을 해서 돈을 벌어야 더욱 좋은 무기를 가지고, 그래야 다른 게이머나 괴물들에게 살해당하지
않으므로 게이머들은 늘 경제 행위를 하게 된다. 즉 시스템이 제공하는 환경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 경제 행위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조금만 바꿔 생각해 보면 가상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은 모순일 수도
있다. 가상 세계는 철저한 인조 세계로, 모든 것이 사람 손에 의해 창조되고 조작될 수 있다. 따라서
"토끼죽어!"라고 말만 하면 토끼가 그 자리에서 죽는 세계를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가상 세계, 가상 사회란 결국 컴퓨터 시스템이므로 그렇게 되도록 프로그램 코드만 만들어 주면 되는 것이다.
물론 울티마 온라인은 게임이므로 적당한 도전을 불러오는 결핍 요소들이 있어야 재미있다. 오락실에
동전을 집어넣은 다음 마이크에 대고 "최고 보스 죽어!"라고 말하는 것으로 게임이 단번에 끝난다면?
그렇지만 전지전능의 예가 게임에 없는 것은 아니다. 둠(Doom) 같은 3D 그래픽 게임에는 속임수 코드
(cheat code)라는 것이 있어서 무기를 한꺼번에 가지거나 적에게 공격을 당해도 죽지 않는 신(이를 god mode라고 부른다)이 되어 게임을 할 수도 있다.
물리적 세계에서 우리가 돈을 버는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굶어 죽기 때문이다. 복잡한 경제학적
원리를 안 따지더라도 이것이 경제 행위의 근본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어도
살 수 있다면 누가 일을 하겠는가? 그러나 가상 세계는 굶어 죽는 일은 없다. 굶어 죽지 않게
프로그램을 만들면 그만인 것이다. 배고프지 않게 프로그램을 만들고 늙지 않게 코드를 작성해 주면
되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울티마 온라인 같이 제한된 환경을 일부러 설정해 두어 게이머들이 살아가기
위해 경제 행위를 하게 만드는 것은, 게임의 진행을 위해 제작사가 조작한 하나의 세트에 불과한 것인
셈이다. 물리적 세계와는 달리 누군가 인위적으로 조작한 환경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 시스템이 제대로 된 경제 시스템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를테면 일반 게이머들이 시간과 정력을 투자해 악착같이 토끼 사냥을 하고 다니는 동안, 이 시스템의 내부 코드를 잘 아는 위저드들이나 기술력을 갖춘 해커들은 둠의 속인수 코드 같은 것을 사용하여 단번에 백만장자가 될 수도 있다. 물리적 세계에서는 제 아무리 하늘이 내린 재주를 갖추었더라도 손에 있는 천 원 짜리 지폐를 만 원 짜리 지폐로 바꿀 수 없다. 하지만 가상 세계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실제 울티마 온라인에서는 유오익스트림(UO Extreme)이라는 거의 속임수 코드에 가까운 보조 프로그램이 게이머들 사이에 은연중에 사용되어 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오리진(울티마 온라인 제작사)에서는 유오익스트림을 불법 프로그램으로 판정하고 사용을 금지시켰다.
결국 울티마 온라인의 경제는 그 게임의 세계에서나 통하는 장난감 경제인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상 경제가 물리적 경제와 연결되면, 특히 가상 사회의 재산이 물리적 세계의 실제 가치(value)로 교환될 수 있다면 게임 속의 소꿉장난 같은 수준을 떠나 진짜 경제 시스템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주시해야 한다.
최초의 가상 화폐, 해비텟의 토큰
가상 사회에 경제 시스템을 도입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비교적 초창기의 가상 사회에 해당하는
해비텟(Habitat)에서도 가상 경제 시스템을 볼 수 있다. 해비텟은 1985년 MIT에서 만들었는데, 놀랍게도 당시의 기술로 그래픽 기반의 가상 사회를 구현하였다. 그래픽 케릭터인 아바타(avatar)를 사용하고 아바타의 머리를 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도 바로 이 해비텟이다.
해비텟에서는 토큰(token)이라는 가상 화폐가 있었다. 이 토큰은 회원들이 어떤 활동을 하여 버는 것이 아니라 접속할 때마다 일정량이 주어졌다. 해비텟의 제작자들은 지역마다 물건의 가격을 다르게 하는 등 물리적 세계의 경제 시스템을 모방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토큰이란 것이 노력해서 버는 것이 아니라 접속할 때마다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토큰은 자꾸 비축되는 반면 소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여 곧 토큰의 가치가 엄청나게 떨어지게 되었다.
해비텟의 토큰은 시스템을 만든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경제 시스템으로 초창기 가상
사회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경우이다. 물론 경제 원리에 전혀 기초하지 않았으므로(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만들어낸 경제 시스템이니 오죽 하겠는가) 해비텟의 경우처럼 거의 실패했다.
해비텟의 가상 경제 시스템에서 한가지 흥미 있는 것은 해비텟의 회원들이 그냥 공짜로 받는 토큰보다는 다른 회원들과 벌이는 대회에서 승리하여 얻어오는 머리에 더욱 가치를 두게 되어 얼마 안 가 공식 화폐인 토큰의 양보다 쟁취해 온 머리의 갯수가 부를 나타내는 상징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토큰을 주고라도 머리를 사겠다는 회원들이 나타났고 또한 머리를 많이 쟁취한 회원들은 그 중에 괜찮은 머리를 경매에 붙이기도 했다고 한다.
또다른 경제 시스템의 예를 보자. 텍사트오스틴 주립대학의 샌디 스톤(Sandy Stone)은 사이버스페이스
관련 연구 분야에서 큰 비중을 가진 학자 중의 한 명이다. Pt. Moot는 그녀가 만든 머드인데, 이
머드에서는 게이머가 돈을 벌어(금광에 가서 금을 캐는 일) 음식을 사먹지 않으면 굶어 죽게 되어
있었다. 해비텟과 달리 공짜로 돈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사용자들은 자연히 일을 하고 돈을 벌기
시작하였다. 또한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는 음식을 사먹어야 하므로 자연스럽게 돈을 쓰기 시작하였다.
이런 경제 시스템은 물리적 세계와 비슷하게 가상 사회 안에 어느 특정한 제한을 두어 사용자가 그
제한을 극복하기 위해 경제 행위를 하도록 강요하는 방법이다. 앞서 말한 울티마 온라인의 경제
시스템도 이 경우에 해당된다.
자유 경제 체제가 도입되다
이런 경제 시스템의 문제점은 이미 언급하였듯, 경제 행위를 끌어내기 위해, 물리적 세계에나 있는
제한을 가상 사회에 일부러 둔다는 것이다. Pt. Moot에서도 프로그램 한 줄만 고치면 게이머들이 굶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데도 경제 활동을 유도하기 위해 일부러 그런 제한을 두고 있다. 이렇듯 억지로 만든 순수 가상 경제 시스템은 진짜 경제로 발전하지는 못한다.
이런 방식은 물리적 세계의 여러 제한점을 잘 극복하는 가상 사회의 특징을 전혀 살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해킹 등을 통한 각종 경제 비리를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된다. 앞서 말한 울티마 온라인의
유오익스트림이 대표적인 예이며 역시 앞서 소개한 속임수 코드라던가 몇몇 '하느님' 프로그래머들에
의한 시스템 조작도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
가상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또다른 경제 시스템은 물리적 세계의 경제와 연결을 짓고 있는 형태로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형태이기도 하다. 물리 세계와 연결된 가상 경제의 초창기 예는 3회에서 소개된바 있는 람다무(LamdaMOO)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제3부 참고)
람다무는 해비텟의 토큰과 비슷한 쿼터(quota)라는 것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쿼터는 토큰처럼
가상 화폐가 아니었다. 유닉스(UNIX) 운영 체제에 익숙한 사람은 알겠지만 쿼터는 하드 디스크의 용량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람다무에서는 각 사용자에게 일정량의 쿼터를 할당해 주었다. 쿼터는 토큰처럼 시스템이 공짜로 제공해 주기는 하지만 토큰과는 아주 큰 차이가 하나 있었다. 쿼터는 토큰과는 달리 물리적 세계에 존재하는 실제 물건으로서 물리적 세계의 자원의 제한성을 받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먼저 쿼터가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부터 알아보자. 람다무는 사용자가 객체 지향적 프로그래밍 언어를
가지고 자기의 가상 공간을 직접 만들어 가는 머드이다(MOO가 MUD Object-Oriented임을 상기하자).
여기서 말하는 공간이란 곧 프로그래밍 코드와 사용되는 데이터이다. 사용자가 공간을 만들고 나면 이
공간을 시스템에 저장해야 할 것이다. 쿼터는 바로 공간을 저장할 저장 용량을 나타내는 값이다. 한메일 같은 무료 메일 서비스에서 제공하는 메일 저장 용량과 같은 것이다.
사용자는 람다무에 처음 가입할 때 일정량의 쿼터를 할당받는다. 이후 사용자가 쿼터를 추가로 받고
싶으면 ARB(Architecture Review Board)라고 불리는 평위원회에 쿼터를 신청해야 한다. ARB는 쿼터를
추가로 요구한 회원이 만든 공간을 평가하는 기관이다.
ARB는 회원의 작업을 평가하는 기관이지만 ARB의 평가가 좋으면 쿼터를 할당받고 그렇지 않으면 못 받게 된다. 사실상 쿼터라는 가치를 관할하는 강력한 권력 기관이었다. 그러나 람다무의 모든 정책이
회원들의 비밀 투표에 의해 결정되는 민주주의 방식으로 바뀌고 나서 회원들은 투표를 통해 ARB로부터
쿼터 관리라는 권력을 박탈하게 되었고 그 이후 회원들은 자유롭게 쿼터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자유 경제 체제가 도입된 것이다.
물리적 사회에서 거래되는 가상 재산
초기에는 쿼터의 소비가 사용자들이 각자의 공간을 더 넓혀감에 따라, 프로그래밍 코드로 채워지는
쿼터의 소비로만 한정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공간을 더 잘 만드는 회원들이 다른
회원들의 공간을 대신 지어주게 되면서, 쿼터가 통화처럼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공간을 대신 만들어준
회원들이 일정량의 쿼터를 건설비로 받기 시작한 것이다.
곧이어 다른 형태의 '비즈니스'도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를테면 아주 재미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고
다른 회원으로부터 공간의 사용료를 받는 것이었다. 일종의 엔터테인먼트 사업이 나온 것이다. 또
대학교의 연구소와 같은 방식으로 쿼터를 벌어 쓰는 회원도 있었다. 대학이 회사로부터 연구비를 지원
받아 연구를 하듯, 다른 회원들에게 쿼터를 받아 공간을 만들고 그 결과를 돌려주는 방법이었다.
공간을 잘 만들지 못하는 회원들은 다른 방식으로 쿼터를 벌어야 하므로 공간 이외의 사럽들도 나왔을
것이다.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사업은 무엇일까? 공식적인 이야기는 없지만 아마 매춘 사업이 아닐까
싶다. 채팅으로 가상 섹스를 해주고 화대로 쿼터를 할당받는 것이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가상 섹스는 누구나 쉽게 해 볼 수 있고, 많은 머드에서 이미 대중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쿼터는 앞서 말했듯 하드 디스크 용량이므로 가상 사회 시스템이 무한정 생산해 낼 수 없는 물리적인
물건이다. 물리적 세계의 자원의 한정성과 쿼터가 소비되고 유통되는 가상 사회의 사회 활동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 쿼터를 통화로 한 경제 시스템이 갖추어진 것이다.
가상 경제가 물리적 경제로 연결되어 실제적인 경제로 발전한 것은 가상 사회에서의 재산이 물리적
세계에서 현금으로 매매되면서부터이다.
이베이(eBay)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경매 웹사이트이다. 이곳에 가면 울티마 온라인의 아바타나
아이템을 팔겠다고 올린 글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조금 오래된 것이기는 하지만 필자가 가지고 있는
자료중에 울티마 온라인의 아바타를 521달러에 팔겠다고 내놓은 것도 있다. 이런 글들은 미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국내의 대표적인 머드 게임인 리니지 등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울티마 온라인이나 리니지 등에서 힘이 강한 아마타를 키우거나 가치 있는 아이템을 모으는 일은 돈과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는 일이다. 힘들게 모은 아이템이나 어렵게 키운 아바타는 앞서 소개한 해비텟의
머리처럼 매우 귀중한 재산으로 여겨지게 되었고, 이런 아이템을 물리적 세계에서 사고 팔기 시작한
것이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초보 게이머에게는 시간과 정력을 투자하고 고생해서 아바타를 키우는
것보다, 이처럼 이미 힘을 갖춘 아바타를 사는 것이 훨씬 편할 것이다.
이런 매매가 성행하자 오랫동안의 경력(?)을 통해 아바타 키우는 법을 잘 알고 있는 노련한 게이머들이 아바타를 전문적으로 키워 판매하는 장사를 하기도 했다. 거래 가격이 때로는 수십만 원까지 올라가기도 하므로 아바타 판매가 신종 사업이 될 만도 하다. 가상 사회에서 직업을 가져 물리적 세계에서 먹고사는 것이다.
가장 경제와 물리적 경제를 연결하자
여느 온라인 거래에서나 볼 수 있는 사기 사건도 발생하였다. 물리적 세계와 마찬가지로 머드에서도
도둑질을 하거나 자기보다 약한 아바타를 축이고 재산을 빼앗는 범죄 행위가 있기 마련이다. 울티마
온라인과 같은 머드에서는 아바타의 힘이나 아이템만큼 그 아바타의 명성도 중요한데, 이런 반사회적
행위로 악명이 높아진 아바타를 초보 게이머들에게 속여 팔아 넘기는 일들이 종종 발생한 것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초보 게이머들은 싼값에 강한 힘을 가진 아바타를 구했다고 좋아한다. 그러나 머드에 들어가자마자 다른 게이머들에게 잔뜩 욕을 먹거나 심지어 살해당하기도 하였다. 속아서 그 아바타를 구입한 게이머로서는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지만 2회에서 설명한 바 있는 가상 사회의 신원의 문제로 인해 자신이 일전의 그 나쁜 게이머가 아님을 증명할 길이 없었다. 아바타의 매매는 이처럼 아바타로만 신원이 확인되는 가상 사회에서 새로운 신원의 이슈를 불러온다.
국내 여로 포탈 사이트나 쇼핑몰에서 운영하는 사이버 머니(cyber money) 역시 가상 경제와 물리적
물리적 폭력으로 가상 재산을 빼앗다
어느 한 고등학생이 온라인 게임 '리니지'에서 다른 인물을 공격해 숨지게 했다. 그 과정에서 채팅으로 반말과 욕설이 오갔다. 숨진 게이머가 '직접 만나서 싸워보자'라고 하여 장소를 정해 만난 것이 화근이 되었다. 숨진 게이머가 한 지방도시에서 유명한 조직폭력배였던 것이다.
여러 명의 부하를 몰고 온 그 폭력배는 고등학생을 두들겨 팼다. 그리고는 "가지고 있는 물품들 모두 내놔". 그 고등학생은 리니지에서 몇 달간 고생하여 모은 무기들을 모두 빼앗겼다.
8월 31일자 한겨레신문에 다음과 같은 매우 흥미를 끄는 기사가 실렸다. 필자가 이 기사에 특히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그 폭력배가 빼앗아 간 것이 물리적 재산이 아니라 가상 사회의 재산이라는 점이다. 물론 사건이 발발한 주된 이유는 자신의 아바타를 죽인 것에 대한 분노와 그로 인해 오간 말싸움이었고, 무기 등을 빼앗아 간 것은 분풀이의 하나 정도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사건은 앞으로 가상 사회의 재산을 뺏기 위해 물리적 세계에서 폭력을 쓸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크다. 제법 강한 아바타나 귀중한 가상 재산을 소유한 사람(이는 어른이 아니라 초등학생일 수도 있다)의 물리적 신원을 찾아내어 폭력 등으로 이를 뺏은 다음 다른 사람들에게 파는 신종 범죄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래의 또 다른 기사(전자신문 8월 12일자)도 이와 비슷한 절도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온라인게임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면서 타인의 ID를 부정한 방법으로 알아내 이를 사기 등의 범죄에 이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어 게이머 사이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달 말 성동경찰서는 부정하게 절취한 온라인게임 '리니지'의 게임 속 아이템을 팔아 넘기려 했던 고교생 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자주 들르던 PC게임방에서 이 업소 주인 지 씨의 ID와 패스워드를 알아내 타 게임방에서 지씨의 ID로 접속한 뒤, 그 동안 지씨가 벌어들인 각종 아이템을 자신들의 ID에 옮겨 놓고 이를 20만원 가량에 팔아 넘기려 했다.
경찰은 도난 당한 자신의 아이템을 찾아달라는 지 씨의 신고에 따라 게임제작사 엔씨소프트의 협조로 ID를 역추적한 끝에 이들을 검거했으며 이 사건은 사이버시대의 새로운 절도사건으로 기록됐다.
경제를 연결하는 또 하나의 좋은 예이다. 국내외 대표적인 포탈 사이트인 골드뱅크에서는 회원들이 광고나, 리서치, 각종 이벤트에 참여하면 사이버 머니를 받게 되고, 사이버 머니가 쌓여 3만 원이 되면 진짜 현금으로 돌려주는 제도를 두고 있다. 또한 조만간 많은 쇼핑몰들이 사이버 머니로 쇼핑을 하거나 회원끼리 물건을 사고 팔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고 한다. 일종의 가상 화폐 제도가 탄생하는 것이다.
사실 이런 아이디어는 최근에 나온 것이 아니다.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전 가상 사회의 주인공역을 맡아 왔던 사설 비비에스를 회고해 보자. 많은 비비에스가 회원의 활발한 활동을 끌어내기 위해 여러 정책을 사용했었는데, 그중 특히 많이 쓰인 것이 바로 활동량 적립 제도였다. 이를테면 글을 올린 횟수가 일정치를 넘으면 회원 등급이 올라간다던가 특정 게시판에 글을 쓸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는 것이다.
몇몇 비비에스에서는 긍정적 답장이 많은 글일수록 그 글을 쓴 회원에게 점수를 더 많이 주는 식으로 이 방법을 더욱 정교하게 응용하기도 하였다. 긍정적 답장이 많다는 것은 그 글이 다른 회원들에게 주는 영향이 큰 것으로 그만큼 비비에스(또는 해당 게시판)의 활성화에 공헌을 끼쳤다는 논리에서 나온 것으로, 같은 글이라도 그 글의 가치 여부를 따지는 일종의 인센티브 제도인 것이다.
사이버머니나 활동 적립제나 모두 사용자의 왕성한 활동을 유도해 내려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사용자가 늘 거주하는 물리적 세계와 달리 가상 사회는 사용자가 능동적으로 접속을 해 활동을 해야
사회가 운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리적 세계와는 달리 가상 사회는 '안 들어가면 그만'이기 때문에
사용자의 활동을 적극 끌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실제 돈이 오가는 물리적 경제와 가상
경제를 교묘하게 연결한 것이다.
긍정적으로 볼 때 이러한 형태의 가상 경제는 물리적 경제의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온라인
쇼핑몰이 늘어나면서 택배 사업이 활기를 띠는 것처럼 말이다. 앞서 언급한 아바타의 매매처럼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수도 있다.
물론 부정적인 면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가상 사회의 미비한 신원성 문제와 고급
기술력을 악용한 신종 사기이다. 가상 재산이 물리적 재산으로 연결될 수 있게 됨에 따라 시스템
개발자나 운영자의 경제적 횡포나 비리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시스템의 코드를 잘 아는
프로그래머(운영진일수도 있고 실력이 좋은 해커일 수도 있다)가 강한 아바타 수십 개를 만들어 개당
수십만 원에 파는 사건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가상 사회에서 실제 사용되고 있는 몇 가지 가상 경제 시스템들을 살펴보았다. 필자는
현재로서 가장 발전한 가상 경제는 물리적 세계의 경제와 연결된 가상 경제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런 형태의 가상 경제 시스템이 주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이러한 형태의 가상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물리적 경제와의 조화나 법률의 적용과 같은 각종 사회 문제들이 새로운 이슈로 떠오를 것이다.@
참고문헌 :
Julian Dibbel, MUD Money
Ultima Online Tutorial
Wired May 1998. "Kill Bunnies, Sell Meat, Kill More Bunnies"
Avatars for sale from www.avault.com
Electric Communities, Commerce and Society in Cyberspace
윤웅기, 머드게임을 중심으로 본 가상 사회의 도래와 법률 문제
한겨레 신문 99년 8월 31일, (흐름)온라인 머드게임 '리니지'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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